[매거진] 어쩌면 다신 나오지 않을 진기록! 플레이오프 MVP에 담긴 별별 에피소드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4 06: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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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부산 KCC를 2025-2026시즌 우승으로 이끈 허훈이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되며 허재, 허웅의 뒤를 잇는 ‘삼부자 MVP’ 서사가 완성됐다. 허재는 소속팀이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MVP로 선정됐던 유일무이한 사례다. ‘꼬꼬농’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다뤘던 그의 투혼은 여전히 농구 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허재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남기긴 했지만, 플레이오프 MVP에는 저마다 숨겨진 사연이 가득했다. 그동안 미처 다루지 못했던 플레이오프 MVP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돌아봤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테리코 화이트 이전에 ‘도깨비 슈터’가 있었다

KBL 출범 후 29차례 챔피언결정전이 치러지는 동안 총 24명이 MVP의 영예를 안았다. 양동근, 오세근(이상 3회), 김주성(2회)이 2회 이상 수상한 가운데 외국선수 신분으로 MVP에 선정된 선수는 총 4명이었다. 2001 외국선수 드래프트 1순위 출신이자 역대 최초의 외국선수 MVP 마르커스 힉스부터 NBA에 도전했던 스코어러 테리코 화이트, ‘퍼펙트 텐’을 이끈 제러드 설린저까지. 모두 한국 땅을 밟을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던 외국선수다.

설린저는 부상에 따른 공백기로 인한 우려의 시선이 다소 있었을 뿐, 기량 자체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 NBA 출신이었다. NBA에서 총 269경기 중 172경기에 선발로 나설 정도였다.

앞서 언급한 3명과 달리 2002-2003시즌 원주 TG(현 DB)에서 뛰었던 데이비드 잭슨은 2002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8순위로 지명됐다. 조니 맥도웰, 아티머스 맥클래리 등 탱크 유형에서 힉스와 같은 테크니션으로 외국선수 트렌드가 변화를 겪는 시기에서 선호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슈터 유형의 외국선수였다.

TG는 2002 신인 드래프트에서 빅맨 김주성을 선발, FA 서장훈을 영입한 삼성과 함께 외국선수 선택의 폭이 넓은 팀이었다. 덕분에 고교 시절 전미 고교 랭킹 40위 내에 오를 정도의 유망주였던 잭슨을 2라운드 막판에 선발할 수 있었다.

잭슨의 별명은 ‘도깨비 슈터’였다. 기복은 슈터에게 따라붙는 숙명이지만, 외국선수 신분이었던 잭슨에겐 유독 달갑지 않은 별명이었을 터. 실제 잭슨은 2002-2003시즌 2라운드에 평균 4개의 3점슛(성공률 53.7%)을 터뜨리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순위 싸움이 치열해진 5라운드에는 절반 이하인 1.7개(성공률 30%)에 그치는 등 시즌을 치르는 동안 잦은 기복을 겪었다.

집중 견제를 받을 땐 동료들의 찬스를 살려주길 바랐던 전창진 감독과 마찰도 빚었다. 잭슨은 6라운드가 한창이었던 2003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님도, 나도 서로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갔던 잭슨은 대구 동양과의 챔피언결정전을 지배, 최후에 웃었다. 6경기 평균 20.8점 3점슛 3개 4리바운드 3.8어시스트 2.3스틸로 활약했고, TG는 잭슨의 활약에 힘입어 4승 2패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TG의 정규시즌 순위는 3위였으며, KBL 역사상 4강에 직행하지 못하고도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사례였다.

잭슨은 챔피언결정전에서 TG가 이긴 4경기에서 27점 3점슛 4개(성공률 34%)를 기록한 반면, 패한 2경기에서는 8.5점 3점슛 1개(성공률 16.7%)에 그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기복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지만, 역설적으로 경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수였다는 게 기록으로도 증명된 셈이었다. MVP도 잭슨의 몫이었다. 70표 가운데 39표를 획득, 동료 허재(28표)를 제치며 짧고도 굵었던 KBL 커리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정점 찍은 ‘2대2 마스터’

‘최초’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짜릿하고 강렬하다. 챔피언결정전은 가장 농구 잘하는 2개 팀이 대결하는 무대지만, 체급 차가 두드러졌던 대진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럼에도 스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윕으로 우승을 달성한 팀은 4개 팀에 불과했다. 2025-2026시즌 역시 KCC가 무서운 기세로 3연승하며 팀 역대 최초 스윕, KBL 최초 부산에서의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했으나 4차전에서 고양 소노에 일격을 당해 5차전을 치러야 했다.

최근 사례만 봐도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스윕. 최초의 사례는 2005-2006시즌 삼성이었다. 정규시즌에는 양동근-크리스 윌리엄스 콤비에 조직력을 더한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해볼 만했다.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 4승 2패 우위를 점했고, 모비스와의 상대 전적에서 우위에 있는 팀은 삼성과 KCC(4승 2패)뿐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과 모비스의 격차는 예상보다 더 컸다. 삼성은 정규시즌 최소 실점 1위(78.7실점)를 상대로 매 경기 85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평균 91.8점을 쏟아 부으며 스윕을 달성했다.

서장훈, 이규섭, 네이트 존슨, 올루미데 오예데지 등 국내, 외국선수에 걸쳐 화려한 전력을 지닌 삼성의 핵심은 강혁이었다. 에이스라 불리기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단번에 떨쳐냈다. 주희정의 이적 공백을 메우며 4경기 평균 17.3점 3점슛 1.8개 6.5어시스트 1.3스틸로 활약, 스타 군단을 이끌었다.

강혁이 1, 2번을 오가며 골밑 돌파 후 내준 패스는 여러 차례 모비스의 수비를 무너뜨렸고, 존슨과의 2대2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2대2가 강혁의 시그니처가 된 시리즈가 바로 이 챔피언결정전이었고, 당시 적장이었던 유재학 감독 또한 “강혁의 2대2는 알고도 막지 못했다. 강혁을 비롯한 삼성 선수들은 농구를 알고 했다”라고 말했다.

강혁은 “데뷔 초기부터 돌파를 즐겼는데 경력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야도 넓어졌다. 무엇보다 (서)장훈이 형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신인 시절에는 팀이 10점 이상 앞서고 있을 때나 뛸 수 있는 선수였다. 상무에 다녀온 이후 주전이 됐고, 좋은 선수들을 만나 주역이 된 후에도 우승할 수 있었다. 선수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라고 회상했다.

2인자 설움 떨쳐낸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전주가 연고지였던 2008-2009시즌의 KCC는 정규시즌이나 플레이오프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끝에 우승한 팀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6강, 원주 동부(현 DB)와의 4강 모두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렀던 KCC는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드라마를 썼다. 1차전에서 패하고도 3연승하며 우승을 목전에 뒀지만, 이후 2차례 우승 리허설을 치르고도 철수를 거듭해야 했다.

결국 KCC는 마지막 승부까지 치른 끝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정규시즌 54경기, 플레이오프 17경기 총 71경기를 치른 끝에 차지한 우승. 현대모비스와 함께 가장 많은 우승(7회)을 달성한 KCC가 홈에서 우승 축포를 쏘아 올린 유일한 시리즈였으며, 주인공은 추승균이었다. 플레이오프 MVP 투표에서 67표 가운데 60표를 획득, 이상민에 이은 ‘만년 2인자’ 설움을 떨쳐냈다.

만 35세 베테랑이자 팀 내 최고참이었지만, 추승균은 챔피언결정전에서 가장 많은 평균 37분 25초를 소화했다. 단순히 많은 출전시간만 기록했던 게 아니다. 패색이 짙었던 4차전 연장에서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리는 등 평균 14.6점 3점슛 1.4개 2.1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리즈를 지배했다. 2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평균 어시스트는 양 팀 통틀어 강혁(5개)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추승균은 그간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 불릴 정도로 묵묵히 역할을 소화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이상민, 조성원 등 화려한 선수들의 뒤를 받치며 공수에 걸쳐 공헌했지만,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만큼은 달랐다. 이상민이 떠난 후 첫 챔피언결정전이었던 만큼, 언제 또 올지 모를 우승 그리고 MVP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추승균이 그동안 쌓은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욕심’을 내비친 이유였다. 추승균은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상복이 없었다. 그 시즌만큼은 상 욕심이 났고, 다신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뛰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프시즌부터 상 욕심이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실제 추승균은 정규시즌에도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는 개인 첫 베스트5 수상이었다.

신인이 팀 내 최다득점을?

국내선수가, 그것도 신인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팀 내 최다득점을 올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 할 것 같은 기록을 만들었던 유일한 선수, 바로 오세근이다. ‘오세근 드래프트’라 불렸던 2011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안양 KGC(현 정관장)에 지명됐던 오세근은 시즌 내내 기대에 걸맞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힘싸움에 정교한 중거리슛, 압박수비부터 지역방어까지 벤치의 지시를 모두 이행하는 BQ까지 지녀 KGC의 리빌딩 종결을 이끌었다.

KGC는 오세근의 활약에 힘입어 전신 시절 포함 최초로 4강에 직행했고, 오세근은 하이라이트 필름도 끊임없이 만들었다. 정규시즌 맞대결에서 김주성을 앞에 두고 인 유어 페이스를 터뜨렸고, 서울 삼성과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는 신인 최초 트리플더블(27점 12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달성하기도 했다.

오세근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도맡았다. 6경기 평균 17.5점 야투율 56% 5.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스틸. 신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2011-2012시즌은 KBL 출범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선수 1명 보유 1명 출전 제도 하에 치러진 시즌이었다. 외국선수의 출전시간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 제도에서도 크리스 다니엘스(16.2점)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것. 신인이 팀 내 최다득점을 올린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MVP의 영광은 당연히 오세근의 몫이었다. 78표 가운데 54표를 획득하며 신인 신분으로 MVP 트로피까지 따냈다. 이 역시 이승현이 데뷔 2년 차였던 2015-2016시즌에 최연소 기록을 새로 썼을 뿐, 여전히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2년 차 시즌에 발목 인대 파열이라는 시련이 뒤따랐지만, 화려한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찍은 쉼표일 뿐이었다. 오세근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 2016-2017시즌에 KGC를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2번째 플레이오프 MVP를 따냈고, KGC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2022-2023시즌에도 MVP 트로피를 추가했다. 총 3회 수상 경력을 쌓은 오세근은 여전히 양동근과 함께 플레이오프 MVP 최다 수상 공동 1위를 지키고 있다.

형제의 난

“의식한 것 같다. 따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내 눈에는 그게 보인다.” 2013-2014시즌, 유재학 감독이 LG와의 맞대결이 끝나면 유독 자주 남긴 한마디였다. 그 대상은 문태영이었다. 형 문태종과의 맞대결에서는 승부욕이 남달랐다는 것.

실제 문태영은 정규시즌서 LG를 상대로 가장 많은 평균 15개의 야투를 시도했지만, 모비스는 LG를 상대로 재미를 못 봤다. 맞대결에서 3승 3패로 맞섰으나 득실점 마진에서 -9점을 기록, 나란히 40승을 거두고도 LG에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를 넘겨줬다.

문태영의 승부욕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순 없는 노릇. LG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은 모비스로선 문태영이 더욱 효율적으로 공격에 집중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유재학 감독의 선택은 변칙이었다. 6경기 가운데 3경기에서 이지원을 선발로 투입, 문태종에 대한 전담 수비를 맡겼다.

수비 부담을 덜어낸 문태영은 유재학 감독의 배려에 경기력으로 답했다. 국내선수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6경기 연속 20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22.2점 8리바운드 2.2스틸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공격 리바운드를 매 경기 2개 이상 잡아내는 등 스스로도 더 많은 공격권을 따내기 위해 한 발 더 뛰며 형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유재학 감독 역시 우승 직후 “형을 의식한 게 이번 시리즈에서는 득이 됐다. 공격 리바운드까지 열심히 참여하니 자연히 손쉬운 기회도 많아졌고, 꾸준히 득점을 쌓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문태영 역시 이를 인정했다. “공격에 늘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더 적극적으로 슛을 던지려고 했다. 형과의 맞대결이기도 했고, 창원체육관은 내가 3시즌 동안 홈경기를 치른 체육관이었다. 그게 슛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문태영의 말이었다.

문태영이 연일 고득점을 퍼부은 모비스는 6차전에서 함지훈이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하는 위기에도 4승 2패로 리핏에 성공했다. MVP는 기자단 투표에서 81표 가운데 73표를 획득한 문태영에게 돌아갔다.

문태영은 2008년 도입됐던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입성했다. 전태풍과 이승준 등이 드래프트 동기였고, 이듬해에는 형 문태종이 전체 1순위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귀화혼혈 드래프트는 2012년을 끝으로 폐지됐고, 이후에는 영입 권한이 남아있는 팀들에 한해 자유계약 형식으로 영입이 가능했다. 즉, 문태영은 귀화혼혈 드래프트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플레이오프 MVP로 남게 된 셈이다.

‘만수’를 이긴 2라운더

이현호를 시작으로 김훈, 오재현 등 신인상 출신에 롱런한 김동욱까지.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으로 성공 스토리를 썼던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이대성만큼 큰 획을 그은 선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2013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됐던 이대성은 뛰어난 1대1 능력과 수비력, 철저한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프로에서도 ‘도전의 아이콘’다운 커리어를 이어갔다. 제대 후 보장된 안정적인 길 대신 G리그 도전을 택하는 건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그래도 ‘만수’에게까지 도전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이 이야기는 현대모비스와 전자랜드가 맞붙은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재학 감독은 이대성이 지닌 재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했지만, 선뜻 자율적인 경기 운영을 맡길 순 없었다.

“자유이용권을 무작정 주면 선수가 망가질 것 같고, 또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하기엔 선수의 창의성을 죽이는 것 같고….” 당시 유재학 감독의 고충이었다. 그러자 이대성이 먼저 제안했고, 유재학 감독은 흔쾌히 응했다. “우승하면 자유이용권? 콜!”

자유이용권은 이대성에게 무엇보다 큰 동기부여가 됐다. 챔피언결정전 5경기에서 평균 16.2점 3점슛 2.8개(성공률 38.9%) 2.6리바운드 3.6어시스트 1.2스틸로 펄펄 날았다. 베테랑 양동근과 함지훈의 희생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판을 깔아줘도 결국 능력이 있어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법이다. ‘몹벤저스’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전력을 구축했던 현대모비스는 역대 최초 V7을 달성했고, 그 중심에 있었던 이대성은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KBL 역사상 최초의 2라운드 출신 MVP였다.

이대성은 MVP로 선정된 직후 “MVP가 된 것보다 자유이용권을 받은 게 더 기분 좋다. 솔직히 감독님을 미워한 적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시즌 도중 속마음을 말씀드렸고, 이후 감독님께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감독님을 믿고 농구에 임하니 좋은 결과도 나왔다. 물론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프리스타일로 농구를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더 신나게 농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친정에 비수 꽂은 ‘로버트 허리’

“연예대상을 노리려면 하반기에 바짝 끌어올려야 한다.” 방송인 이경규가 남긴 말이다. 엇비슷한 성적이라면 승부가 갈리는 막판 임팩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허일영의 MVP 등극은 누구보다도 극적인 스토리였다.

창원 LG와 서울 SK가 맞붙은 2024-2025시즌 챔피언결정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승부의 연속이었다. LG가 역대 최소경기 정규시즌 우승(46경기)을 달성했던 SK를 상대로 1~3차전 모두 승리하자, SK는 4~6차전을 쓸어 담으며 설욕했다. 3연승하며 우승을 눈앞에 뒀던 팀이 7차전을 맞이한 건 LG가 역대 최초의 사례였다.

KBL을 넘어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NBA 플레이오프에서도 없었던 리버스 스윕 기운이 감지되던 순간, 베테랑 허일영이 경기를 지배했다. 5개의 3점슛 가운데 4개를 넣는 등 7차전에서 양 팀 통틀어 최다인 14점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전까지 몸담았던 친정에 비수를 꽂은 것. 오리온, SK에 이어 LG에 이르기까지. KBL 최초 3개 팀 우승을 달성한 허일영이 ‘허텐’에서 ‘로버트 허리’로 레벨업하는 순간이었다.

MVP의 영예도 안았다. 80표 가운데 32표를 획득, 23표에 그친 칼 타마요를 가까스로 제쳤다. 시리즈 전체 기록만 본다면 허일영(8점 3점슛 1.9개 3.6리바운드)은 타마요(15.6점 3점슛 1.9개 7.6리바운드 1.3스틸)나 아셈 마레이(11.9점 13.1리바운드 4.6어시스트 2.1스틸)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기는 팀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7차전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점, 상대적으로 적은 출전시간(17분 38초)에도 효율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자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대 최고령 MVP 기록도 새롭게 썼다. 만 39세에 달성, 2022-2023시즌 오세근(36세)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허일영은 역대 플레이오프 MVP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시즌 출전시간이 20분 미만(14분 46초)에 불과한 벤치멤버이기도 했다.

조상현 감독과 트러블을 겪기도 했다. 조상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허)일영이를 비롯한 고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라고 말했지만, 허일영은 묵묵히 때가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보여줬다.

“솔직히 말하면 SK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SK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고, 이 팀에서 마무리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통보를 받아서 마음이 복잡했다. 비즈니스인 걸 알면서도 아쉬웠다”라고 회상한 허일영은 “LG에 왔을 때 한국 나이로 41살이었는데 수비 못한다고 욕을 많이 들었다. 감독님과 얘기해봤지만, 감독님도 한 고집하는 분이다. 결국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었다. 출전시간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상도 뒤따랐다. 3점슛을 넣는데도 상대가 다른 선수에게 협력수비를 가서 더 자신 있게 던지다 보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3개 팀에서의 우승도, 최고령 MVP도 언젠가 깨질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최초의 선수로 영원히 남는다. LG에서의 우승이 내 농구 인생에서는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라며 시리즈를 돌아봤다.

#사진_점프볼DB(유용우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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