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네 번째 주인공은 경희대 김서원(184cm, G)이다.

#001_Scan: 경희대 김서원
어린 시절의 김서원에게 땀 흘려 뛰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이면 밥도 마다한 채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축구를 즐겼다. 그런 일상에 '농구'가 스며든 건 초등학교 2학년 클럽 활동을 통해서였다.
시작은 단순한 취미였지만 우연히 찾은 프로농구 경기장에서 선수의 꿈이 싹텄다. 아버지와 함께 관중석에서 접한 코트의 생생한 열기는 어린 김서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버지랑 경기를 보러 갔는데 골망 흔들리는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많은 관중의 응원 속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보는데 '나도 저기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농구가 하고 싶어졌죠."
하지만 코트를 향한 열정만으로 곧장 선수의 길에 들어설 수는 없었다.
"농구는 키 큰 사람들에게 유리한 종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밥 먹는 걸 안 좋아해서 중학교 들어갈 때 140cm 후반대로 작고 왜소했어요. 당연히 부모님께서 엄청 반대하셨죠. 그런데도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계속 대화를 시도했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건 하게 해주시는 스타일이어서 끝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집요한 설득 끝에 중학교 1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농구공을 잡았지만,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양정중에서 간간이 코트를 밟았지만 예선 탈락이 이어졌고,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코치마저 팀을 떠나자 전학을 결심하게 됐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무렵 삼선중으로 둥지를 옮겼다.
전학 징계로 인해 공식 경기 출전이 묶인 시기. 벤치에 앉아 코트를 지켜봐야만 했던 그 시간은 김서원에게 단순한 '기다림'이 아닌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뛰어난 동료들이 즐비한 삼선중에서 훈련은 실전의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밀도가 높았다.
"(박)정환이나 (안)성우, 동기인 (이)채형이처럼 잘하는 선수가 정말 많았어요. 공식 경기는 못 뛰었어도 저희끼리 3대3이나 4대4를 많이 했거든요. 그때 저도 모르게 실력이 많이 늘었던 거 같아요. 삼선중에서 패스와 시야를 엄청나게 배웠죠."
코트 뒤편에서 밑거름을 다진 김서원은 3학년 종별선수권 개막전에서 15점 10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달성했고, 준결승에서 23점(3점슛 2개)을 몰아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기다림 끝에 자신의 가능성을 코트 위에서 증명한 대회였다.
마침내 날개를 펴나 싶었던 찰나, 경복고 진학 직후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김서원은 이 공백마저 도약의 발판으로 반전시켰다.
"1학년 때 임성인 코치님이 새로 오셨어요. 코로나 여파로 프로 형들도 쉬면서 경복고 출신 선배님들이 모교로 많이 오셨죠. 픽업 게임 같은 느낌으로 경기를 엄청 했어요. 코치님도 은퇴하신 지 오래되지 않으셔서 같이 1대1하고 부딪히면서 알려주셨어요. 코로나로 인해 대회는 못 나갔지만 오히려 많은 형들이 와서 같이 운동한 게 재밌었어요."

특히 선배 이준희와의 훈련은 김서원에게 변화의 계기가 됐다.
"농구하면서 키는 자랐지만, 몸은 여전히 말랐었거든요. 근데 준희 형이 몸이 엄청 좋잖아요. 그래서 같이 운동해달라고 말했어요. 웨이트를 같이 하면서 그때부터 몸이 커진 것 같아요.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죠. 준희 형이 저녁에 '운동할래?'라고 연락이 오면 집에 있다가도 바로 나갔어요. 그리고 밤늦게까지 홀로 슛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 선수가 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마인드를 다시 새겼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마침내 대회가 재개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번엔 포지션 변경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줄곧 1번(포인트가드)을 맡아왔지만, 팀 사정상 2번(슈팅가드)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것이다.
"저도 1번을 맡고 싶었지만, (이)경민이도 있어서 둘 다 1번을 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경민이가 좋은 능력을 갖췄으니 맡겨두고, 저는 보조 리딩 곁들인 득점력 있는 가드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사실 득점보다 패스 주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엔 힘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각자 포지션에서 확실한 장점을 보여주는데 저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 들까 봐 불안감도 컸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더 다양하게 공격을 시도했어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흘린 땀방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의 플레이에는 여유가 깃들었다. 제47회 협회장기에서 3경기 연속 20점 이상을 올리며 준우승을 견인했고, 2022 주말리그 왕중왕전 준결승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28점 8리바운드 9어시스트라는 트리플더블급 활약으로 끝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002_Life in University
변화와 제약의 순간마다 피하지 않고 경험을 쌓은 김서원은 경희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새내기 시절부터 황영찬과 백코트 듀오를 이루며 앞선을 책임졌다. 평균 30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대학리그 12경기에서 평균 11.6점 4.8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신입생임에도 제 몫을 해낸 지표였지만, 김서원의 기억 속 1학년은 짙은 아쉬움뿐이었다.
"지금 그때 경기를 다시 보면 '진짜 농구를 막 했구나' 싶어요(웃음). 전체적인 흐름도 모르고 그저 골 넣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일단 득점해서 이겨야지'라는 생각뿐이었어요. 대학 시절 중 1학년 때 평균 득점이 가장 높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겉보기엔 스탯이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결코 농구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게다가 신입생일 때 대학농구 인기가 많았을 때였거든요. 관중이 너무 많은 거예요. 원정 가면 들리는 야유도 낯설었어요. 그래서 긴장을 진짜 많이 했어요. 너무 긴장한 탓에 플레이가 꼬이는 날엔 그 여파가 계속 이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실전 경험은 그에게 최고의 굳은살이 됐다. "2학년 때부터는 주축이라 '긴장하면 안 된다. 더 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긴장을 아예 안 해요. 오히려 어느 경기를 해도 그저 재밌어요."

역할도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야전사령관을 맡으며 코트 전체를 조율해야 했다. 고교 시절 내내 2번으로 뛰었던 그에겐 만만치 않았다.
"전체적으로 경기 운영하는 걸 아예 몰랐어요. 상황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부족했죠. 1번을 쭉 해왔으면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알고 했을 텐데 안 해봤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팀원들에게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면서 내 원래 있던 장점도 보여줘야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제가 그때는 시야가 넓은 편도 아니었고 2대2도 잘 못했거든요."
시행착오 속에서 김서원은 1번 자리의 무게감을 배워나갔다. "가드가 급해지면 팀 전체가 급해진다"는 감독의 한마디를 경기마다 되새겼다. 흐름이 답답할 때마다 동료들과 쉴 새 없이 소통하며 자신만의 템포를 조절했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시즌 후반기로 갈수록 경기 운영은 몰라보게 매끄러워졌고, 서툴렀던 2대2 플레이도 정교해졌다. 넓어진 시야는 1학년 MBC배 평균 4.67어시스트였던 기록을 2학년 때 7.75어시스트로 끌어올리는 자양분이 됐다.
중앙대와의 원정 경기(2024년 6월 10일)는 그 변화가 증명된 순간이었다. 한때 20점 차 가까이 뒤졌으나 김서원의 손끝에서 반격이 시작됐다. 그는 송곳 같은 패스로 무려 13개의 어시스트를 찔러 넣으며 81-73 역전승을 이끌었다. "2학년 때 중앙대 원정 가서 한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점 차를 뒤집어서 인터뷰도 했거든요."
그렇게 김서원은 2024년 어시스트(평균 6.8개)와 스틸(평균 2.3개) 부문에서 대학리그 2위에 안착했다.

하지만 상승세가 이어지던 김서원에게 3학년 전반기, 뜻하지 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던 '농구에 대한 흥미'마저 차갑게 식어버릴 만큼이었다.
"개막전부터 MBC배 전까지 너무 못했어요. 5반칙도 많이 나오고 농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어요. 내 역할을 너무 못한다는 생각에 공격도 잘 안되더라고요. 농구 처음 하는 사람마냥 레이업도 놓치고 그랬어요. 자신감이 떨어져서 엄청나게 울기도 했죠. 3학년 전반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힘들다는 투정도 부렸다.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서 걱정하시고 당황하셨죠. 부모님은 '당연히 그런 시기가 올 수 있다. 그걸 이겨내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거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주신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도 다시 정신 차렸어요."
"돌이켜보면 키가 커서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농구가 아니잖아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제가 선택한 거니까 항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어요."
그 시기를 극복하고 대학에서의 마지막 해를 맞이한 김서원은 김민구 코치의 지도 아래 위닝 멘탈리티를 다졌다.
"코치님께서 '지는 게 습관이 되면 안 된다. 졌을 때는 기분이 나쁘고 속상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모두 능력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고 격려도 해주셨어요. 그때 많이 깨달아서 동계 훈련 연습경기부터 다 이기려고 했죠."
코치진의 가르침 속에 팀 전체가 무장했고, 이는 성적으로 직결됐다. 덕분에 경희대는 전반기를 12승 2패, 리그 2위로 마쳤다. 지난 시즌 9위에 머물며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좌절됐던 아픔을 지워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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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방 안에서 나온 책, 페이지 여백마다 직접 적어 내려간 메모가 가득하다. |
멘탈 관리도 철저해졌다. 책 『챔피언의 마인드』를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문장 아래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목표와 책 속의 문구들을 A4 용지에 적어 방 벽에 붙여두며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챔피언처럼 행동하고 느끼며 경기하라, 오늘 경기는 내 최고의 경기가 될 것이다.'
"운동 가기 전이나 경기 전에 항상 읽고 나가요. 그럼 자신감이 생겨요. 그 책을 읽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멘탈이 강해졌어요."
목표를 좇는 방식도 구체화했다.
"시즌 목표 두 개가 있어요. 3점슛 성공률이랑 턴오버 대비 어시스트. 이 목표도 금은동으로 정해야 해요. 예를 들면 제가 동국대 때 턴오버를 하나도 안 했는데 12어시스트를 해서 스스로 금메달을 줬어요. 반대로 턴오버 3개에 6어시스트면 동메달을 주는 식이에요. 이렇게 하면 동메달은 아쉬우니까 채우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좋아요. 금메달이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잖아요."
실제로 학년이 거듭될수록 3점슛 시도가 늘어났고, 성공률도 나아졌다. 어시스트는 가파르게 늘어났고, 가드의 척도인 턴오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연세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그간 거친 과정의 결실이었다. "(김)수오랑 룸메이트인데 '4학년 졸업하기 전에 연세대 한번 제대로 이겨보자'고 약속했거든요. 연세대를 항상 못 이기다가 홈경기에서 이겼어요. 근데 주축이 빠졌어서 원정 때 이겨야 진짜 이긴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 다 이기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서로를 끌어안았어요."

#003_Application
대학 무대에서 내실을 다진 김서원은 프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꼽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는 '수비와 헌신'이다.
"대학에서 수비만큼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해요. 제 장점은 성숙함과 꾸준함이에요. 코트에 들어설 때마다 최선을 다해 궂은일을 하고, 두루두루 잘할 수 있어요. 훗날 저를 지도하실 분들께 '아, 이런 선수도 있구나' 라는 걸 꼭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이처럼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장점은 코트 밖에서의 끊임없는 공부가 발판이 됐다. 농구를 향한 진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서원이다. 농구 관련 기사를 챙겨 읽는 것은 물론, KBL 경기 영상을 '풀 경기'로 돌려보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다. 득점 장면만 모아둔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는 코트 위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늦은 밤 야식을 먹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작은 화면 속 코트를 맴돈다.
"어릴 때부터 농구 보는 건 워낙 좋아했는데, 대학에 와서 프로 형들과 연습 경기를 뛰다 보니 간절함이 커졌어요. 꿈을 이루고 싶어서 경기를 더 챙겨보게 되더라고요."
경기를 챙겨보며 얻은 효과도 컸다. "경기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기 흐름을 읽는 눈이 생겼어요. 요즘엔 타임아웃 부를 타이밍까지 맞춰보곤 해요(웃음). 게임 뛰는 선수도 스스로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고 믿거든요. 특히 제 포지션은 더더욱 그래야만 하고요. 꾸준히 경기를 챙겨본 덕분에 팀이 밀릴 때나 대등할 때, 혹은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제가 경기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닫게 됐어요."
코트 위 조율 능력뿐만 아니라 퍼스트 스텝과 캐치 앤 드라이브 역시 돋보인다. 돌파 과정에서 수비와 부딪히며 앤드원을 이끌어내는 집중력이 좋고, 미드레인지에서는 백보드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등 실속 있는 공격 루트를 보여준다.
이러한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코트 전체를 읽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그는 외곽에서의 3점슛도 가다듬고 있다. 상대 수비를 외곽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패스와 돌파의 길도 함께 열린다는 판단에서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늘 '슛은 결국 자신감'이라고 강조하시거든요. 훈련량도 당연히 받쳐줘야 하지만, 실전에서 자신 있게 쏘면서 직접 느껴야 하는 것 같아요. 슈팅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들어가요. 팀원들도 안 들어가도 괜찮으니까 자신 있게 쏘라고 서로 그런 말을 많이 해줘요. 자신감을 가장 많이 심어줬던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서원이 바라는 건 '프로 무대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처음 왔을 때, '신입생답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주겠다'고 얘기했었어요. 프로 무대에 가서도 신인다운 패기와 열정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쏟을 준비가 돼 있어요."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향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허훈이 보여준 투혼과 맞물린다. 에이스의 화려함을 잠시 내려놓고 끈적한 수비에 몸을 던지던 허훈의 플레이는 김서원의 뇌리에 박혔다.
"제가 지금 경희대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도 닿아 있어서 프로에 가면 저렇게 뛰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화려한 선수보다 강하게 수비하고 팀원의 찬스를 살려주면서 경기 전체를 조율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농구한 선수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름을 날린 선수가 아니었기에 '내가 저렇게 돼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저 선수를 이겨보겠다'라는 독기를 가지게 됐어요. 지금도 저보다 훨씬 주목받는 선수가 많지만, 그들을 넘어서겠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저를 책임감 있고 성숙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런 진심을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사진_점프볼DB, 이연지 인터넷기자, 김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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