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만 같았던 화려한 은퇴, 김보미는 그렇게 봄꽃을 피웠다

김용호 기자 / 기사승인 : 2021-05-02 09: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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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은퇴하기 전에 꼭 한번 우승하고 싶어요.” 베테랑 선수들의 가장 큰 바람이자 꿈이다. 김보미도 그랬다. 많은 선수들이 바라고 원했지만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려운 걸 김보미는 해냈다. 그것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말이다. 용인 삼성생명이 15년 만에 달성한 우승에 김보미의 이름은 절대 빠질 수 없다. 그만큼 김보미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 매 경기 코트에 설 때마다 간절함의 에너지를 쏟았다. 덕분에 환한 미소와 함께 유니폼을 내려놓았다.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박수칠 때 행복하게 떠났다
김보미는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삼성생명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당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계약이 김보미가 선수로서 한 마지막 사인이었다. 스스로 은퇴를 결심하고 뛰기 시작했던 2020-2021시즌. 매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했던 김보미는 삼성생명이 플레이오프로 향하던 길목에서 자신의 은퇴 의사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 한 마디 때문이었는지 베테랑은 더욱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고, 팀에 누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선 순간, 가장 큰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됐다.

Q. 기적과 같았던 우승 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너무 바쁘게 보낸 것 같아요. 시즌이 끝나고 첫 2주는 회사에 인사도 다니고,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그다음에는 친정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죠. 그간 찾아뵙지 못해 인사를 드려야 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은퇴해도 절대 한가하지 않더라고요.

Q. 우승하면서 은퇴하는 아름다운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게 아닌데 해냈어요. 이런 상상을 예전에도 해본 적이 있었나요.
그럼요. 언젠가부터 선수 생활의 마지막 순간에 우승하면서 은퇴하고 싶었어요. (배)혜윤이한테도 얘기한 적이 있고, 친구들과 만나면서도 은퇴 전에 꼭 한번 우승하고 싶다고 했죠.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면서요. 뭐랄까 내 발로 당당하게 코트를 걸어 나가고 싶었는데, 그 꿈이 다 이뤄진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떠나고 싶다는 바람도 이뤄졌고, 생각했던 대로 다 돼서 신기해요.

Q. 그럼 은퇴 시즌에 우승이라는 목표가 베테랑이 되면서부터 생긴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이 신인 때랑 2년차 때, 두 번이 전부였어요. 이후에는 항상 준우승으로 미끄러졌죠. 자꾸 아쉽게 지다 보니까 점점 어렸을 때 느꼈던 우승의 희열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뛸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다 보니 그 기쁨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었던 거죠. 사실 FA로 KB스타즈로 향할 때도 그런 기대가 컸어요. (박)지수가 있는 팀이기도 했고, 이적한 시즌에 챔피언결정전에 갔던 전력이었으니까요. 근데, 제가 KB스타즈가 우승하던 시즌을 앞두고 삼성생명으로 왔잖아요. 제 꿈이 이뤄지지 못한 건데 오히려 그때 우승하고 은퇴했으면 그저 그런 식스맨으로 은퇴하지 않았을까 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주축으로 뛰면서 은퇴한 게 더 기쁜 일인 듯해요.

Q. 말씀하신 대로 앞선 두 번의 우승과는 달리 마지막 우승 때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어요. 분명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우승을 하고 나면 골대 그물을 자르는 세리머니를 경기를 뛴 선수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2년차 때 그물을 잘라봤는데, 제 친구들은 그러지 못했죠. 트로피 들고 사진을 찍을 때도 언니들과 저를 불러서 사진을 찍어주시더라고요. 우승의 주역으로 뛰었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했죠. 근데, 그럼에도 전 주축이 아니었어요. 워낙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우승이 더욱 남다른 것 같아요. 모든 경기를 베스트 멤버로 뛰었잖아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온 힘을 다해 뛰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모습이었어요. 도대체 뭐가 자신을 그렇게 뛰게 했나요.
원래 힘들면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내긴 해요. 근데, 경기 때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을 하니까 코트에서 못 나가겠더라고요. 원래는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도 흐트러지는데, 유독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힘들어도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임근배 감독님도 제가 집중력을 유지하니까 코트에 남겨두신 게 아닐까요. 제 간절함과 저도 모르게 나오는 초인적인 힘을 보셨던 것 같아요.

Q. 봄 농구 무대에 서면서 공개적으로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어요. 지금이니까 다시 질문을 드리는 건데, 혹시 은퇴를 번복한 여지는 전혀 없었나요.
1도 없었어요(웃음).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다 쏟아내서 뛴 거예요. 또 그렇게 뛸 수 있었다면 은퇴를 미룰 수도 있었겠지만, 다음 시즌에는 이렇게는 못 뛸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원 없이 뛰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책임감 강했던 베테랑 슈터
2018년 FA 자격을 얻었던 김보미에게 쉴 틈 없이 풍파가 몰아닥쳤다. 당시 FA 협상 테이블에서 원소속 구단인 KB스타즈와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KB스타즈가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 소속이었던 염윤아를 영입했고, 이에 대한 보상선수로 김보미가 지목됐다. 그런데 그의 이적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상선수로 지명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삼성생명으로 향해야 했던 이하은과 1대1로 트레이드가 된 것이다. 2주 만에 두 번이나 소속팀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 그 와중에 김보미는 3점슛이 약했던 삼성생명에 합류하며 베테랑으로서 떠안을 짐이 많아졌다. 그러나 베테랑은 오히려 팀에 미안하다고 했다.

Q. 삼성생명이 커리어 마지막 팀으로 남게 됐어요. 3시즌을 보냈는데, 이 팀에서 기억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운동선수를 그만두는 게 여한이 없어요. 선수로서 할 건 다해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청소년대표팀을 시작으로 성인국가대표팀에 가봤고, 우승도 해보고 식스우먼상도 받아봤어요. 근데 유일하게 못 한 게 바로 주전이었어요. 비록 제 실력으로 된 게 아니라 (박)하나의 부상으로 인해 기회를 잡은 거지만, 어쨌든 삼성생명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춘 느낌이에요. 보통 나이가 들면 출전시간이 줄어들다가 은퇴하는데, 저는 오히려 늘어났잖아요. 개인 기록도 예전에 수술한 이후로 많이 떨어졌는데, 삼성생명에서 다시 오르는 모습을 보이며 은퇴를 하게 돼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Q. 오랜 시간 삼성생명의 약점이 3점슛이었기에, 외곽 슈터인 김보미의 어깨는 더 무거웠을 것 같아요. 유독 슛이 들어가지 않는 날에는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했잖아요.
혜윤이와도 했던 얘기인데 그동안 하나가 멱살잡고 팀을 이끌어준 게 많이 든든했어요. 그러다 무릎이 온전치 못하다 보니 제가 대신 들어간 건데, 저는 슛에 기복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제 뒤에 하나가 있다는 게 너무 든든했거든요. 그런 하나가 부상으로 빠지니까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생각에 남들의 비판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요. 오히려 팀에 도움 되지 못하는 게 미안했죠.

Q. 그 미안함 속에 정규리그 홈 최종전에서는 3점슛 9개를 터뜨렸어요. 개인 최다 기록이었는데, 이날이 터닝포인트가 된 걸까요.
사실 제가 작년 12월 중순쯤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당시에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차는 한 달 넘게 수리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죠. 플레이오프가 확정된 시기도 아닌 시점에서 몸이 점점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밸런스가 많이 깨졌죠. 머리도 아팠고요. 감독님이 배려를 해주셨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2월부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컨디션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던 때라 슛폼이 다시 잡혔던 것 같아요.

Q. 몸 상태를 회복하고 팀 승리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었겠네요.
3점슛을 9개 넣었다고 스스로 기뻐한 것보다는 드디어 제가 팀에 도움이 되고, 연패를 벗어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 활약을 하기 전까지 저를 비판하신 분들도 많았겠지만, 전 그저 어떻게 하면 슛을 잘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팀에 도움이 될 방법만 찾고 있었어요.

Q. 팀에 대한 얘기를 떠나 개인적으로 마지막 시즌에 개인 기록을 경신했다는 것도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경기를 뛰는 동안에는 그렇게 많이 넣은 줄도 몰랐어요. 경기가 어느 정도 기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저만 벤치로 안 빼시더라고요. 차라리 기록까지 몇 개 남았다고 정확히 말해주면 모를까, 자꾸 찬스나면 던지라고만 했거든요. 전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말이죠. 하하. 왜 안 뺐는지 알고 나니까 또 감사하더라고요. 사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고 코트 위에 서는 단 1분이 소중했는데, 그런 기회를 주셨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유니폼은 내려놨지만, 코트를 떠나진 않아
2021년 3월 15일, 삼성생명이 용인실내체육관에서 15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짓던 그 날. 김보미는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와 “농구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당분간 농구는 쳐다보기 싫다”라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거침없이 솔직한 속내가 나올 정도로 그는 코트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런데 4월의 첫날, 그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진경 전 하나원큐 코치가 신임 경기운영본부장으로 내정된 데 이어 경기운영부장의 자리에는 김보미의 이름이 올랐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연맹의 식구로 코트 컴백을 선택하게 됐을까.

Q. 최근 WKBL의 경기운영부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농구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잖아요.
농구를 직접 하는 게 그랬던 거죠(웃음). 보는 거는 제가 몸을 쓰지 않아도 되잖아요. 뛰는 건 이제 정말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진절머리 나게 뛰었어요. 솔직히 경기운영부장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에요. 너무 힘든 상태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원래는 쉬다가 유학을 위해 미국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국에 있으면서 농구를 볼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WKBL이더라고요. 너무 빠른 시기에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했죠. 지도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공부도 될 것 같았고요. 제가 어떻게 농구를 완전히 떠나겠어요.

Q. 만약 미국 유학이 가능했다면, 원래 계획했던 제2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사자격증까지 취득했고요. 그런데 교생 실습을 나가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마음을 접었죠. 하하. 그러다 교사보다는 농구 지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그런 면에서 WKBL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일단은 행정가로서 일을 하지만, 지도자의 면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경기운영본부로 향함에 있어서 걱정도 있을 것 같아요.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일단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선수 입장에서 경기운영본부를 바라봤을 땐 박정은 감독님이 변화를 시도하고 잘 이끌어오셨다고 생각해요. 또, 이번에 오신 정진경 본부장님도 일을 잘하신다고 주변의 칭찬이 많더라고요. 일단 저는 본부장님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 선수들과 소통을 장점으로 살려야 할 것 같아요. 소통 때문에 저를 뽑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최근까지 코트에서 느꼈던 점을 말씀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Q. 선수들에겐 아직 ‘보미 언니’의 느낌이 강할 텐데, 경기운영부장으로서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일단 연맹에서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연맹을 편하게 느끼고, 자신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선수들이 저에게 어떤 불만이 있는지, 하소연하고 싶은 건 있는지 편하게 말해줬으면 해요. 그걸 100% 다 받아들이고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방향성을 잡아나갈 수는 있으니까요.

Q. WKBL로 정식 출근은 7월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앞서 대학리그 여대부 해설위원으로 함께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정진경 본부장님이 추천해주셨어요. 해설을 해보면 경기에 대한 시야부터 시작해서 심판들의 움직임까지 보는 눈이 달라질 거라면서요.

Q. 해설위원 역시 새로운 길인데, 대학리그를 함께하기로 하고 나서 든 기분은 어땠나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 선택하긴 했는데, 너무 걱정돼요. 해설의 해도 모르거든요. WKBL 해설하시는 손대범 위원님께도 많이 여쭤봤는데, 벌써부터 사고치면 어떡할까란 걱정이 드네요(웃음). 다행히 제가 말은 많아요. 말을 잘한다는 건 아닌데, 박찬호급 투머치 토커죠. 주변에서는 오히려 말을 아끼라고 할 정도인데, 그래서 말하는 것보단 듣는 노력을 많이 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처음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네요.

모든 것에 최선이었던 선수 김보미, 안녕
그렇게 김보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당장 눈앞의 해설위원을 시작으로 WKBL 경기운영부장, 더 나아가 미래에는 그가 지도자로서 코트 한 켠에 양복을 입고 멋들어지게 서있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시간이 흐를 동안 그는 ‘선수 김보미’로서 후배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베테랑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그리고 선수로서 간절함이 뭔지를 보이며 화려하게 코트를 떠난 선수로 말이다.

Q. 다시 ‘선수 김보미’를 추억하며 마지막으로 한번 긴 여정을 돌아보려 해요. 은퇴를 하고 나니 스스로는 어떤 선수로 남은 것 같은가요.
어렸을 때부터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은 다한 선수가 목표였어요. 후배들에게도 늘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뛰어난 실력과 스킬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노력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요.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는 결국 오고, 여러 부분에서 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그런 선배로 기억되고 싶어요.

Q. 최고보다는 최선을 목표로 잡았던 계기도 있었나요.
흔히들 과정과 결과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고 얘기하잖아요. 저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저도 중,고등학생 때까지는 잘한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프로에 와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죠. 잘하는 언니들이 워낙 많아서 제 자신의 위치를 빨리 깨달았다고 할까요. 뛰어난 스킬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잡은 거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일찍 목표를 최선으로 잡은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저는 목표대로 묵묵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2021-2022시즌이 시작될 때 김보미의 선수 은퇴식도 열릴 텐데요. 우승했던 날과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질까요.
예전에 은퇴식을 상상했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7월부터 WKBL에서 일을 시작해 계속 농구장에 있을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별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지금 그때를 상상하기엔 아직 여력이 없기도 해요. 은퇴식을 하는 날까지 정말 바쁠 예정이라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Q. 누구보다 의미 있는 은퇴식이 열릴 그 날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보미의 라스트 댄스를 지켜봐 준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저는 선수가 40분을 뛰지 못하면 선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랬죠. 1쿼터 5분이 지나면 교체 사인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플레이오프 때 다리가 휘청거리고, 결국 넘어질 정도로 투혼을 불사른다고 칭찬해주셨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투혼이 아니라 체력이 없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저는 그래서 창피하기도 했거든요. 그럼에도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시고, 감동적이었다고 얘기해주셔서 힘이 됐어요.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응원 덕분이었어요. 제가 가는 마지막 길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마음 잊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김보미가 되겠다고 약속할게요!

김보미 프로필_
1986년 3월 6일생, 포워드, 176cm, 광주중앙초-수피아여중-수피아여고
2005 WKBL 신입선수 선발회 1라운드 3순위(우리은행 입단)

# 사진_ 유용우 기자

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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