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늦게 피어도 확실하게' 성균관대 정시후, 확신으로 채워갈 슈터의 성적표

황혜림 기자 / 기사승인 : 2026-07-18 09: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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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황혜림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루키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마지막, 열여섯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성균관대 정시후(190cm, G)’이다. 


#소년로그
정시후의 부모님은 원주 DB의 팬이었다. 자연스레 농구를 접한 정시후는 관중석을 넘어 코트 위에서 직접 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역 팬들의 응원 열기가 뜨거운 도시 원주에서, 농구와 함께 호흡하며 자라난 소년은 그렇게 녹색 유니폼을 입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어요. 부모님이 농구 보러다니는 걸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농구를 많이 봤어요. 특히 제가 자란 곳이 원주인데, 워낙 농구 인기가 좋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직접 경기를 봤을 때 당시 DB였던 허웅 선수가 되게 멋있어 보였는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DB 유소년 클럽에 다니게 됐어요.”

팬심을 코트 위 열망으로 바꿀만큼, 그가 현장에서 느낀 농구의 매력은 강렬했다. 득점이 터졌을 때 경기장에 울리는 관중들의 함성과 에너지는 그를 농구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클럽 농구를 거쳐 엘리트 농구를 시작한 정시후는 삼선중과 경복고를 거쳤다. 두 학교 모두 남중부와 남고부의 전통 강호 학교인 만큼,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는 책임감도 뒤따랐다.

“우승을 다투는 학교에서 계속 뛰다보니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워낙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고, 선배들이 매년 좋은 성적을 낸 덕분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최선을 다했어요.”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정시후에게 유독 기억에 남는 대회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통영에서 치른 협회장기다. 당시에 발목 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지만, 대학 입시와 팀을 위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복귀해야 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뛰고 그랬었는데,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그래도 그 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힘든 걸 잊을 만큼 뿌듯했어요.“


#대학로그
검증된 슈터인 정시후가 성균관대를 선택한 배경에는 코칭스태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있었다.

“성균관대를 선택한 이유 중에 제일 컸던 건 감독, 코치님과 선수들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소통을 많이 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무엇보다 김상준 감독님이 중앙대 감독을 맡으셨을 때부터 무척 잘 가르치신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배워보고 싶은 것도 있었어요. 실제로도 선수 한 명 한 명을 무척 아끼고 잘 가르쳐주세요.”

경복고 시절까지는 스윙맨으로서 3번(스몰 포워드)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했던 정시후였지만, 김상준 감독의 지도 아래에 가드로 포지션을 전향, 볼 컨트롤 연습도 하고 있다.

“제가 키가 190cm로 윙맨 치고 큰 편은 아니라 3번으로는 잘 쓰지 않으시고, 주로 2번(슈팅 가드)으로 기용해주세요. 근데 제가 아직 2번을 보기에는 볼 핸들링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계속해서 상대 수비에게 몸을 붙이고 드리블해야 된다고도 말씀 많이 해주세요.”

정시후는 이번 시즌 KUSF 대학농구 U-리그 정규리그 11경기에 출전해 총 25득점(평균 2.27점, 1.18리바운드)을 기록했다. 고교 시절 밥 먹듯 두 자릿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수치일 수 있다. 대학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한 탓이다.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이 아무래도 수비의 강도가 완전히 달라요. 형들과의 힘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고등학교 때만큼 편하게 슛을 쏘거나 득점을 올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성균관대 특유의 강력한 압박 수비도 이제는 체득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성균관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프레스 수비에 막혀 고전했던 정시후는, 이제 상대를 압박하는 시스템을 몸소 배워가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성균관대랑 연습경기를 하면 수비가 정말 강해서 코치님이 전용 패턴도 만드셨는데, 그래도 성균관대의 프레스 수비를 못 뚫었어요. 진짜 수비의 압박이 엄청 강해서 제가 드리블 치면서 넘어오지도 못했는데, 대학에 와서 제가 수비 연습을 해보니 왜 상대가 힘들어하는지 알겠더라고요(웃음). 그만큼 감독님께서 수비 조직력을 많이 강조하세요.”

다만 끈끈한 조직력이 요구되는 고차원의 수비인 만큼, 완벽히 녹아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비를 뒷받침할 체력과 피지컬 역시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저는 아직 제 수비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팀 수비 방식이 꽤 달라서 초반에 고생을 좀 했어요. 경복고에서는 스위치가 되면 그대로 막았지만, 성균관대에서는 스위치 이후 유기적으로 밖으로 다시 로테이션을 돌며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 많아 좀 어려웠어요. 지금은 팀 수비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1대1 수비나 미스매치 상황에서 포스트 수비를 할 때 힘이 부족해 밀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에도 김상준 감독이 궁극적으로 정시후에게 기대하는 것은 '득점력'이다. 김 감독은 시즌 전 동계 훈련부터 정시후의 슛 감각과 적응 속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도 강조하시지만 공격적인 부분에서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 주세요. 스텝이 맞으면 주저하지 말고 쏘라고 하세요. (구)인교 형의 스크린을 받아서 쏘든, 무빙슛을 쏘든 수비가 조금만 떨어져 있으면 무조건 타이밍을 잡으라고 신뢰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입학 전 치렀던 첫 동계 훈련은 정시후에게 큰 터닝 포인트였다. 새로운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고 자신감을 채운 시기였다. 특히 일본 전지훈련에서 매일 연습 경기를 치르며 김상준 감독의 두터운 신뢰 속에 많은 출전 시간을 받았고, 이는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정규리그가 시작되자 대학 무대의 긴장감은 예상보다 컸다. 출전 시간이 겹치고 뜻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으면서 조급함이 생기기도 했다. 반등의 계기가 된 것은 지난 7월 상주에서 열린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였다. 위기감 속에서 잡은 간절한 기회였다.

“이번 MBC배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꼈어요. 동계 훈련 때의 좋은 기억만 믿고 막연하게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리그에 들어가니 몸이 굳고 긴장이 심해지더라고요. '지금 온 기회들을 놓치면 겨울부터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으로, 슛이 안 들어가더라도 자신 있게 타이밍을 가져가며 감각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마침 터져줬어요.”

그는 남자대학부 6강 동국대학교와의 경기에서 2쿼터에만 3점슛 4개를 몰아치며 19분 7초 동안 17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로 활약했다. 주전들의 컨디션 난조로 동국대에게 1쿼터 리드를 내줬지만, 새내기 정시후의 외곽포가 성균관대의 든든한 방어선이 되었다.

“첫 슛이 들어갔을 때부터 뭔가 감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세번째… 계속 들어가니까 뭔가 느낌이 다르구나, 오늘은 다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이후로 되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어요.”

이어진 중앙대와의 준결승에서도 3점슛 세개를 터뜨리며 분전했지만, 2025년 MBC배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중앙대의 기세 앞에 무너졌다. 아쉬운 패배 속에서도 정시후는 스스로 개선해야 할 점을 명확히 짚어냈다.

“중앙대와의 경기는 상대의 활동량과 파이팅에 밀린 게 컸어요. 속공을 허용하고 백코트가 늦어지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내줬어요. 팀원들의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궂은일을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요.”

큰 점수 차 패배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었지만, 성균관대 특유의 소통 문화가 빛을 발했다. 김상준 감독은 선수들에게 먼저 장난을 건네고 독려했다.

“그날 감독님 생신이었는데, 작년에도 감독님 생신에 MBC배에서 졌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왜 내 생일마다 이러냐고 하셨어요(웃음). 그래도 감독님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후반기가 남아있으니 여기서 다운되면 안되고, 진 이유를 생각하고 복습하면서 더 나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대학농구능력시험
정시후는 자신의 농구 등급표 중 외곽(3PT) 영역에 자신 있게 1등급을 매겼다. 성균관대가 외곽 화력을 보강하기 위해 영입했을 만큼 그는 고교 시절부터 검증된 슈터였다. 그가 이근준의 뒤를 이어 경복고의 슈터 계보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팀 내 포지션과 제 장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이)학현이 형이랑 (윤)지원이가 볼 핸들링을 거의 다 했었고 포스트 존에서는 (윤)지원이가 해주니까, 제가 슈터 포지션에 있을 때 출전 시간을 확보하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슈터가 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간 이근준을 따라 꾸준히 연습했던 무빙슛이 바탕이 되었다. 그는 이전까지 슈터가 아니었음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준비하고 있었고, 그 덕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근준이 형이 워낙 슛을 잘 쏘는데, 2학년 때 형이랑 둘이 슛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슈터는 아니었지만 따라다니면서 같이 슛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형이 보통의 연습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연습을 했거든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쏘는 법이 없어요. 계속 움직이면서 쏘는데 그걸 많이 따라했어요.”

반면 피지컬에서는 냉정하게 6등급을 매겼다. 인터뷰 전반에 걸쳐 언급한 피지컬과 몸싸움에서의 약점은 리바운드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리바운드는 의지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연습 경기에서 제가 잡으려고 계속 의식하면 몇 개씩 잡는데, 그래도 피지컬의 한계가 있기는 하더라고요. 지금은 시즌 중이어서 갑자기 증량을 하면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 우선은 현재 상태를 잘 유지하고 다음 비시즌에 몸을 제대로 키워보려고요.”

그럼에도 분명히 나아진 건 있다. 성균관대의 체계적인 지원 덕분에 근력과 신체 밸런스가 빠르게 잡혀가고 있다.

“완벽히 만족스러운 상태를 100%라고 본다면 지금은 30~40% 수준이지만,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좋아졌어요. 학교에서 주 3회 피지컬 트레이닝 센터에서 와서 트레이닝을 해주셔서 몸도 점점 올라오고 신체에 걸리는 부하도 줄어드는 중이에요.”

#일상로그
힘겨운 입시 경쟁을 거쳐 입학한 대학 무대에서, 정시후가 꼽은 가장 기대했던 로망은 '축제'였다.

“대학 축제에 정말 가보고 싶었어요. 올해는 서울캠퍼스에서 축제가 열려 농구부 부원들과 다 함께 버스를 타고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사람도 너무 많고 날씨도 더워서 구경하기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좋은 추억이 됐어요.”

운동만 하던 고교 시절과 달리, 대학에서의 1학년 1학기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시기였다. 선배들의 조언이 때로는 뒷통수(?)를 치기도 했지만, 조언을 참고해 다가올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미리 그려보고 있다.

“학점 따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았어요. 근데형들이 종이를 70장씩 쌓아놓고 형광펜 칠하면서 공부하는 거 보면 저거 나중에 어떻게 하지… 생각하기도 해요.”

“1학기 시간표를 다 형들이 추천해준 수업으로 짰는데, 누가 추천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경제학원론에서 진짜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로만 수업이랑 과제가 진행이 돼서 저희끼리 이거 대체 누가 추천했냐고 얘기했어요(웃음).”


겨울부터 이어진 자기 확신이 흔들릴 때쯤, 정시후는 스스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며 더 나은 후반기를 다짐했다.

다가오는 겨울을 지나 신입생 티를 벗고 약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성균관대의 끈끈한 수비의 한 축이자 매서운 윙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적응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후반기 시작 전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한 정시후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사진_점프볼 DB, 정시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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