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명품 바이어가 된 이현중 전 KGC 통역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10-15 06: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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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농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프로팀의 구성원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현중 통역 역시 고교 시절 자신의 꿈을 ‘KBL 팀 통역’이라 적었고, 그 꿈을 이뤘다. 안양 KGC 통역이 된 후 굵고 짧은 2시즌을 보냈던 이현중 통역은 추억을 묻고 명품 바이어로 새로운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KGC 통역으로 입사했나?
2016년 당시 미국대학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고,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가있었다. 친구가 “네가 해야 할 일 같다”라며 KGC 통역 공고를 보내줬다. 친구는 장난으로 얘기했지만, 나는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2, 3일 만에 서류를 보냈고 한국에 온 후 하루 만에 면접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에게 얘기해주니 안 믿더라. 김성기 사무국장님, 문상운 과장님(현 KGC 여자배구단 사무국장)과 면접을 봤다. 마지막에 문상운 과장님이 센터와 가드의 픽앤롤 전개를 영어로 설명해달라고 하셨고, 내 답변에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며칠 후 지하철 안에서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는데 너무 떨리고 설렜다. 친구는 문상운 과장님 명함을 찍어서 보내줬는데도 끝까지 안 믿었다(웃음).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나?
중학생 때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갈 정도였다. 지금 키가 중학생 때 키였고, 전국대회 입상도 했다. 집이 의왕이어서 안양체육관에 자주 갔다. (오)세근이 형 사진 밑에서 라이언킹 포즈 취하며 사진 찍은 적도 있다. NBA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팀 던컨, 드후안 블레어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6개월 정도 다니다가 미국고등학교로 유학을 갔고, 미국고등학교에서도 농구를 했다. 당시 동료였던 나디엘 샤프는 실력이 좋아서 농구를 더 잘하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캔자스대에서 활약한 후 G리그까지 뛰었다. 맷 모블리도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본인은 어떤 스타일이었나?)언더사이즈 빅맨이었고, 그런 스타일의 선수를 좋아하기도 했다. 중학생 때부터 4, 5번을 봤다. 외국선수 중 예를 들면 웬델 맥키네스였다(웃음).

미국 유학을 다녀오게 된 계기는?

한국에 있을 때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미국고등학교를 1년 정도 다녀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성향이나 학업이 잘 맞았다. 체격이 있고 농구도 잘하는 편이어서인지 인종 차별이 없었고, 문화도 잘 맞아서 대학까지 미국에서 다니게 됐다. 대학 시절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전 학교에서 에세이를 과제로 낸 적이 있는데 ‘10년 후 나의 꿈’을 KBL 팀 통역이라고 썼다. 외국선수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 막연히 썼는데 에세이가 교내에서 1등으로 뽑혀 상금을 받았고, 나중에 꿈도 이뤘다.

2016-2017시즌 첫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키퍼 사익스의 방송 인터뷰를 통역할 때 너무 목소리가 커서 ‘선수보다 열정적인 통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화제가 됐을 땐 너무 쪽팔렸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네이버에 댓글이 있던 시절인데 놀리는 건 아니지만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후 누군가 편집해 드래곤볼과 합성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그게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쪽팔림을 넘어선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나도 계속 보니 재밌더라.

그때 목소리를 크게 냈던 이유는?
홈 개막전에서 서울 SK를 상대로 역전승(100-95)했고, 방송 인터뷰도 처음이었다. 흥분된 상태였고 마이크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프시즌 때는 감독님께 목소리 작다고 혼났다. 코트에서 평소 얘기하는 정도로 통역을 하니까 “그렇게 해서 들리겠냐”고 하셨고, 당시 매니저도 “감독님이 너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라고 했다. 혼난 후 크게 말하는 걸 습관화하려고 했다. 벤치에서 크게 얘기하는 습관이 생긴 게 방송 인터뷰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사익스는 리그 적응 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전까지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시즌 중반까지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오프시즌에 일본 전지훈련을 갔는데 경기력이 너무 안 좋았다. 한 번 흔들고 던지는 중거리슛을 많이 시도했는데 다 안 들어갔다. 패스도 그저 그랬다. 당시 족저근막염을 안고 있던 게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덩크슛은 했지만 폭발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오세근, 양희종, 이정현, 데이비드 사이먼 등 전력이 좋아서 웬만한 팀들은 이겼는데 유독 삼성에겐 약했다. 마이클 크레익이 있다 보니 외국선수 2명이 같이 뛸 때 매치업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우승은 힘들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사익스가 4라운드부터 KBL에 적응했다. 트레이너 형들이 아침, 저녁으로 몸 관리를 해주다 보니 몸 상태가 좋아졌고, 감독님이 지시하는 게 무엇인지도 정확히 인지하게 됐다. 4라운드 이후에는 아무도 못 막았다.

KGC가 실제로 마커스 블레이클리나 에릭 와이즈로 바꾸는 걸 추진하기도 했다. 사익스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아무래도 기분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와이즈가 대체선수로 오는 게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었다. 팀에 와서 잠시 훈련했고, 감독님도 인터뷰에서 대놓고 “사익스는 3경기만 지켜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익스 입장에선 시한부였다. 태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왕 이렇게 된 거 3경기 박살 내겠다. 집에 가게 되더라도 3경기는 다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사익스가 어떤 마인드로 경기를 대하는 선수인지 알게 됐다. 실제로 팀이 3승을 했고 2경기는 가비지타임이 나왔다. 사익스가 이관희를 상대로 인어유페이스까지 보여줬다. 좋은 경기력으로 3승 하니 감독님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사익스가 챔피언결정전 초반 부상을 당해 걱정도 됐을 텐데 우려를 딛고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사익스 공백에 대한 걱정이 컸을 것이다. 정상전력으로 싸워도 쉽지 않은 승부인데 한동안 사이먼만으로 경기를 치렀다. 오세근이 외국선수급 활약을 했고, 급하게 데려온 마이클 테일러도 팀에 잘 맞는 퍼즐이었다. 프로에서 우승을 하는 건 쉬운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레전드로 불리는 현주엽도 우승반지가 없는데 첫 시즌부터 우승을 하니 얼떨떨했다. 마지막 작전타임 때는 통역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스크린 위치를 제대로 안 잡아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첫 작전은 사이먼이었다. (박)재한이가 사이먼에게 볼을 투입해 파울이라도 얻는 것이었고, 감독님이 그게 안 되면 뭘 해야 하는지 얘기하시던 도중 (이)정현이 형이 1대1을 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이었다.

2시즌 모두 함께한 사이먼은 어떤 외국선수로 기억에 남아있나?
나에겐 큰 의미가 있는 외국선수다.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초창기에는 내가 미숙했던 부분으로 인해 서로 불편했고, 불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통역, 선수 관계를 넘어 형제가 됐다. 사이먼은 정말 똑똑한 선수였다. KBL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단어 1, 2개만 얘기해줘도 감독님이 뭘 주문하시는지 알아들었다. 지난주 이태원에서 사이먼을 만나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뀌어서 못 만났다. 조만간 약속을 다시 잡을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안양을 자주 갔는데 앞으로는 고양도 자주 갈 것 같다.

통역으로 일한 2시즌 모두 팀 성적이 좋았는데 2017-2018시즌 종료 후 퇴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첫 시즌이 끝난 후에는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더없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니까…. 2번째 시즌이 끝난 후에는 20대 후반을 앞두고 있어서 고민됐다. 통역을 너무 좋아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 이 부분을 말씀드리니 구단에서 국제업무를 제안했는데 그것도 고민이 됐다.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후 정직원이 되는 것이다 보니 확신이 없었다. 30대보단 20대 후반에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게 확률상 더 나을 것 같았다. 통역이나 국제업무로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겠지만, 도전을 안 하면 나중에 ‘나는 왜 거기서 만족했을까?’란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현재는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2018년 여름에 퇴사했고 하반기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미국에 있는 대학을 나왔고, 경제학 전공이다 보니 주위에서 취업이 잘 될 거라는 얘기를 쉽게 했는데 한국 취업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40~50개 기업에 지원했는데 합격한 건 10개 정도였다.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게 싫어 2018년 내에 꼭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준비하다 보니 연말쯤 롯데백화점에 합격했고, 2019년 초 입사했다. 지금은 상품본부 바이어로 근무하며 보테가 베네타, 구찌, 페라가모 등 럭셔리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 팀의 주된 업무는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일련의 과정을 협상하는 것이다. 시장, 고객, 상권 분석 업무를 하며 브랜드에 입점 제안을 위한 PT 제작을 한다. 나는 PT 영문 번역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프로모션, 팝업, 리뉴얼, 이동, 퇴점과 같은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통역을 하며 보람된 순간도 있었지만 고충도 많았을 것 같다.

통역을 희망하는 이들이 참고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단순히 농구를 좋아하거나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 아무리 박사학위가 있어도 농구를 모르면 안 된다. 정장 입고 벤치에 있으니까 겉으로 보면 멋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국선수들을 마트, 병원에 데려다주는 일이 훨씬 많다. 코트에서 작전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들의 정서를 관리해주는 게 어렵다. 요즘은 환경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쉬는 날 영화관에서 영화 보다가도 외국선수가 피자 시켜달라고 하면 나가서 피자를 주문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네가 늦게 처리해서 컨디션이 깨졌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사이먼은 새벽 4시에 집이 정전됐다며 전화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의지할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는 했다.

퇴사한 이후에도 농구는 계속 봤을 것 같다.
취업 준비할 때도 안양체육관에 자주 갔다. 퇴사 후에도 1년 동안 지문이 등록되어있더라. 그래서 편하게 놀러 갈 수 있었다(웃음). KGC를 응원하는 입장이다 보니 제러드 설린저와 함께 우승할 때 너무 재밌게 봤다. 나도 기분이 좋더라. (전)성현이도 시즌을 거듭하며 너무 잘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FA 대박이 났다. 내 일처럼 기뻤다. 이외에도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있고, 사무국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취업 후 김성기 국장님이 조언해주셨고, 문상운 과장님도 “잘 선택했어. 잘 될 거야”라며 격려해주셨다.

KGC는 오프시즌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KGC의 올 시즌을 예상한다면?
김승기 감독님 영향이 컸던 팀이다. 명장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을 잘하셨다. 정현이 형처럼 다방면에서 잘하는 선수가 아닌 (문)성곤이, 성현이 같은 선수들에겐 “넌 이것만 해”라고 지시하셨다. 그걸 마스터하면 다음에 다른 부분을 끌어 올리려고 하셨다. 감독님은 떠났지만 감독님께 배운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다크호스를 넘어 여전히 강팀이라고 본다. 세근이 형 건강 얘기가 몇 년째 나오고 있지만 그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근이 형은 계속 증명했고, 본인 역시 몸 상태 얘기를 듣는 게 지긋지긋할 것이다.

NBA에 도전 중인 이현중과 이름이 같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농구와 관련된 꿈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NBA리거 사익스의 유니폼을 받는 것이었다. 사익스는 KBL에 있을 때 매일같이 “나는 NBA에 가서 꿈을 이룰 거야”라는 말을 했고, 실제로 여러 리그를 거쳐 NBA에 콜업됐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운도 실력이다. 준비가 됐기 때문에 기회를 받은 것이다. 약속대로 유니폼을 보내줬는데 사이즈가 살짝 작아서 아쉽다. 내 몸에 맞았다면 입고 다녔을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이현중이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농구 팬이라면 모두 이현중의 도전을 응원할 것이다. 나 역시 NCAA 경기를 챙겨봤다. 이현중이 NBA리거가 된다면 직접 유니폼을 살 것이다. 따로 마킹할 필요도 없다(웃음).

다시 농구계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가능성이 0은 아니지만, 확률은 높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해 후회는 했다. ‘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두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나’란 생각을 했고, 매출 분석하다가 농구 보면 저기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감독님도 2, 3년 정도 연락하셔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팀 선수들에게 연락받은 적도 있다. 다만, 진지한 오퍼는 아니었다. 결혼을 안 했다면 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통역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았지만, 여기서 하루하루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진_최창환 기자, 점프볼DB(유용우 기자), 이현중 통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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