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미국 항공고·미시간대학’ 거쳐 한국 코트로…한양대 김다빈의 멈추지 않는 비행

정다윤 기자 / 기사승인 : 2026-07-08 1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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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이른바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이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열세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한양대 김다빈(198cm, F)'이다.

#소년로그
김다빈은 한국과 미국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데이빈 호프먼(Davin Hoffman)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김다빈은 농구는 물론 축구, 스키, 미식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운동 감각을 키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기는 활동에 가까웠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은사를 만나면서 농구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농구의 진정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주변 친구들이 다 운동을 하니까 저도 7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러 스포츠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친구들과 소통하고 연결되는 재미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코트를 누비면서 농구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고등학교 때 정말 좋은 감독님을 만났는데, 그분 덕분에 농구에 큰 영감을 받았고 농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김다빈이 농구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데는 고등학교 시절 감독이 심어준 특별한 멘탈리티와 환경이 있었다. 코트 위에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배운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감독님이 해주신 말씀을 하나하나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실수해도 괜찮다’는 믿음이었죠. 경기 중에 하는 실수는 사실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거든요. 사람은 불편한 상황에 놓였을 때 비로소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결국 실수는 제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시절 찾아온 급격한 신체 변화는 김다빈의 플레이 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여름 사이 키가 훌쩍 자랐고 긴 팔을 앞세운 수비 범위까지 더해지면서 팀 내 핵심 수비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때 키가 정말 많이 컸어요. 덕분에 수비에서 제 역할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당시 우리 팀은 코트 전체를 압박하는 풀코트 프레스 전술을 자주 썼는데, 제가 팔이 길다 보니 프레스의 맨 앞선에 서서 상대 가드들을 괴롭혔어요. 고등학교 팀 자체가 수비 훈련을 정말 엄청나게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농구를 향한 열정은 뜨거웠지만, 미국 대학 무대의 높은 벽 앞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기회가 마땅치 않았던 그는 미시간대학교에 학업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를 정말 사랑했지만, 미국 대학 레벨에서 선수로 뛸 기회를 잡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대신 미시간대학교에 학업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아쉽지만 농구를 그만두기로 일반 학생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나서야 제가 농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갔지만 코트를 향한 향수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지역의 농구 인프라 덕분에 다시 농구공을 손에 쥘 수 있었고 세미프로 무대와 트레이너 활동을 거치며 마음속 깊이 묻어둔 선수의 꿈을 다시 깨웠다.

미시간대학교에 다닐 때 정말 농구를 쉬지 않고 했어요. 주변에 오픈짐 많았고 농구를 즐기는 사람도 가득했거든요. 실력이 뛰어난 세미프로 수준의 팀에서 뛰기도 했고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개인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농구와 다시 부딪히면서 제가 이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코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알게 됐죠. 다시 선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바로 그때 마음속에서 피어올랐습니다.

농구공을 다시 잡고 싶다는 갈망은 결국 김다빈을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으로 이끌었다. 미국과 한국 이중국적을 가진 그는 한국행을 단순한 도전이 아닌, 자신의 농구를 다시 이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바라봤다.

제가 농구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농구는 단순히 코트 위에서 경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해 주거든요. 농구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한국에 와서 문화 속에 직접 녹아들며 언어를 배우는 기회도 얻었잖아요. 제 삶에서 이런 점들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와요.

한양대와의 인연은 배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를 통해 닿았다. 당시 김다빈은 실전에 가까운 5대5 연습경기에 짧게 투입됐고,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줘야 했다. 말보다 플레이가 먼저인 자리였던 만큼, 그에게 트라이아웃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무대였다.

구체적인 연결 경로를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한국에서 농구를 하고 있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다시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마자 어머니는 본인이 하실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주셨어요. 주변 지인분들에게 ‘한국에서 농구할 기회가 있을까’, ‘혹시 관련해서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끊임없이 물어봐 주셨죠. 그러다 건너건너 연락이 닿았고 지난해 여름 한양대에 와서 트라이아웃을 치른 끝에 이번 시즌을 함께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테스트는 단 하루의 평가로 끝나지 않았다. 김다빈은 약 3주 동안 정식 선수들과 같은 훈련 일정을 소화하며 기량을 검증받았다. 경기력뿐 아니라 팀원들과의 호흡, 소통 능력, 팀 적응력까지 다각도로 평가받으며 한양대의 선택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6월쯤 한국에 들어와서 3주 정도 팀과 함께 생활했어요. 팀 연습이 있으면 같이 훈련을 받았고 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 일정에 맞춰서 똑같이 움직였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정식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합이 끝나고 코트가 비면 혼자 남아 따로 개인 훈련을 하기도 했어요. 팀의 시스템과 훈련에 얼마나 잘 녹아드는지 그리고 한국어 이해도나 소통 능력이 한국에서 농구를 하기에 충분한지까지 종합적으로 지켜보는 과정이었죠.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3주 동안 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제 진가를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학농구능력시험
농구 안팎에서 끊임없는 노력 끝에 한양대 유니폼을 입게 된 김다빈.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기량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스스로 매긴 등급을 통해 그의 장점과 보완점, 그리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공격- 4등급
수비- 2등급
슈팅 능력- 6등급
피지컬- 1등급
골밑 능력- 2등급

김다빈이 스스로 매긴 능력치 성적표는 현재 자신의 농구 색깔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을 둔 선수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특히 피지컬과 골밑 플레이에서는 가장 높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탄탄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한 수비와 골밑 장악력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는 평가였다.

지금은 공격보다 수비가 제 강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센터 포지션이다 보니 경기 중에 외곽에서 슈팅 찬스가 많이 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슈팅은 아직 경기 안에서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고, 앞으로 더 채워나가야 할 숙제라고 느껴요. 대신 확실한 강점은 피지컬과 골밑에 있다고 자신합니다. 경기를 뛰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참 많은데, 어떤 순간이 와도 제가 온전히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건 결국 피지컬이더라고요. 센터로서 골밑 찬스가 자주 오기 때문에 그 부분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그가 앞으로 가장 발전시키고 싶다고 꼽은 부분 역시 수비였다. 다만 미국에서 익숙했던 수비 방식과 달리,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이는 한국 농구 특유의 조직적인 수비 시스템은 김다빈에게 새로운 과제로 다가왔다. 그는 개인 수비 능력뿐 아니라 팀 수비의 움직임과 로테이션까지 익히며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구에서 피지컬과 수비는 제 의지에 따라 언제든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어요. 다만 한국에 와서 직접 부딪쳐 보니, 이곳의 수비 체계가 제가 미국에서 익숙했던 방식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솔직히 꽤 헤맸어요. 한국 수비는 템포가 훨씬 빠르고 유기적이에요. 미국에서는 1대1 개인 수비 상황이 많은 반면, 한국은 선수가 잘라 들어가고 유기적으로 스위치에 스위치를 거듭하는 ‘팀 수비’가 굉장히 끈끈하고 훌륭하거든요. 이 흐름을 따라가는 게 처음에는 정말 헷갈렸습니다.” 


낯설고 복잡한 한국식 팀 수비에 녹아들기 위해 김다빈이 택한 방법은 공부였다. 그는 코트 밖에서도 아이패드와 영상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수비 전술과 움직임을 반복해 익혔다. 몸으로 부딪히기 전 머리로 먼저 이해하려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수비 전술이 눈에 잘 익지 않아서 아이패드에 다양한 수비 상황을 일일이 그려가며 공부했어요. 공격수가 왼쪽으로 파고들 때, 혹은 코너에서 베이스라인으로 잘라 들어올 때 우리 수비진이 각각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정리했죠. 지금은 몸으로 체득될 만큼 반복 훈련을 해서 아이패드가 없어도 될 정도가 되었어요.


제가 뛴 경기 영상도 정말 많이 돌려봤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아 여기서 놓쳤구나’, ‘다음엔 이 길목을 먼저 막아야겠다’ 하고 복기했어요. 파울로 끊어야 할 타이밍이나 반 박자 더 빨리 움직여야 하는 위치를 영상을 통해 냉정하게 점검한 게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슈팅 능력에 스스로 6등급을 매긴 김다빈의 하루는 남들보다 늦게 끝난다. 공식 훈련이 모두 끝난 뒤에도 홀로 코트에 남아 자신만의 슈팅 루틴을 반복한다. 다양한 실전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이어가며 부족하다고 평가한 슈팅 능력을 하나씩 끌어올리고 있다.

훈련이 끝나면 항상 코트에 남아 개인 훈련을 소화하는 저만의 루틴이 있어요. 골밑과 중거리 여러 지점을 돌며 각각 슛을 메이드 시켜요. 그다음에는 3점슛 라인으로 나가 지점별로 슛을 가져갑니다. 단순히 멈춰 서서 던지는 게 아니라 철저히 경기 중에 나올 수 있는 실전 상황을 가정해요. 


찬스가 나는 위치에서 10개, 20개씩 연속으로 던지기도 하고, 수비가 타이트하게 붙는 상황을 생각해서 드리블을 섞기도 하죠. 3점슛 모션 이후 펌프 페이크에 이은 원 드리블 점퍼, 다시 페이크를 주고 돌파하는 원 드리블 레이업까지. 코트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몸이 기억하도록 전부 연습하고 있습니다.” 


#대학로그
미국에서도 대학을 다녔던 김다빈은 이제 한양대의 일원으로 코트에 선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득점이 아니라 팀에 어떤 방식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지다. 화려한 플레이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피지컬과 수비를 경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 기반 위에서 슈팅과 블록 등 다른 플레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는다. 팀에 안정감을 더하는 것이 그의 농구 철학이다.

이 같은 철학은 한국 농구를 경험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가 가장 크게 체감한 차이도 수비였다. 미국 농구가 1대1 수비를 기반으로 돌파 상황에서 한 차례 정도 도움 수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 한국 농구는 한 선수가 도움을 가면 또 다른 선수가 그 빈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연쇄적으로 움직인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적인 수비는 김다빈에게 가장 신선하면서도 적응해야 할 과제로 다가왔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수비가 더 좋다고 느껴요. 훨씬 더 짜임새 있고 팀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미국에서는 주로 내 매치업을 막는 것에 집중한다면, 한국에서는 코트 위의 모두를 신경 써야 해요. 제 마크맨뿐만 아니라 동료의 매치업까지 끊임없이 살피며 도와야 하죠. 공격 쪽에서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농구가 확실히 3점슛 시도 빈도가 더 높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역시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수비 시스템인 것 같아요.

김다빈이 앞으로 경기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단순한 개인의 존재감이 아니다. 그는 현재 한양대가 처한 순위나 연패라는 기록에 갇히지 않고, 팀이 가진 가능성을 코트 위에서 증명하고자 한다. 자신이 가진 수비와 피지컬을 앞세워 한양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한양대가 지금 연패도 겪고 있고 순위도 아래쪽에 머물러 있지만, 저는 우리가 한국의 그 어떤 팀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 팀이 코트 위에서 그걸 멋지게 보여줬으면 좋겠고, 저 역시 그 안에서 제 역할을 단단히 해내고 싶습니다. 팀이 잘 풀릴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모두 지켜봤는데요. 좋은 경기를 펼칠 때의 한양대는 상대에게 정말 위험하고 강력한 팀이에요. 보는 사람들에게도 큰 흥미를 주는 팀이죠. 어떤 날이든, 어떤 팀을 만나든 이길 수 있는 팀이라는 걸 보여주는 데 제가 꼭 보탬이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도 분명하다. 그는 코트 위에서 어떤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며,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만의 강점을 보여주며 꾸준히 존재감을 쌓아가는 것이 김다빈이 그리는 미래다.

제 스스로는 어떤 팀,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든, 설령 그게 NBA 선수나 프로 선수일지라도 저는 끝까지 악착같이 부딪치며 제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낼 거예요. 결국 중요한 건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확실하게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선수라는 증명을 꼭 해내겠습니다.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다빈. 낯선 환경 속에서도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그가 앞으로 어떤 선수로 성장해 나갈지 기대를 모은다.

 

#일상로그
김다빈에게는 코트 밖에서도 특별한 경험이 있다. 그의 미국 고등학교 시절은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흘러갔다. 김다빈이 졸업한 학교는 일반적인 교육과정에 항공 교육을 접목한 독특한 형태의 ‘웨스트 미시간 항공 아카데미(West Michigan Aviation Academy)’였다. 비행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교육과정이 함께 운영되는 학교에서 그는 농구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까지 경험하며 시야를 넓혔다.

일반 고등학교이긴 하지만 비행 학교가 함께 운영되는 정말 독특한 학교였어요. 학교 자체가 지역 공항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비행기가 두 대나 있었거든요. 들리는 말로는 지금은 세 대로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에서 학생들은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로 실제 비행기를 타며 조종사의 꿈을 키운다. 군과 상업 항공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가진 베테랑 전문가들에게 배운 지식은 그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면허까지 보유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비행기를 직접 타고 조종 면허를 따는 데 필요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정식 고등학교 수업처럼 탄탄한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고, 20명에서 30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함께 면허 취득을 준비했죠. 공군 출신 조종사나 상업 항공사 출신 등 다양한 배경과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 밑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제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경험이었고, 그 학교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2003년생인 김다빈은 신입생이지만 팀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처음에는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다빈이 형’이라 불렀지만, 미국에서 자란 그는 한국식 호칭 문화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같은 팀 동료인 만큼 편하게 불러주길 바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팀원들과도 한층 가까워졌다. 그 결과 지금은 ‘한양대 할아버지’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리며 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제가 ‘아이고’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라 미국에서도 많이 들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그 말을 할아버지 말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손유찬이 ‘그거 할아버지 말’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가끔 ‘우리 할아버지’라고 말씀하세요. 그런 분위기가 재밌어요.

김다빈의 한국어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무엇보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남다르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국어 연습을 하고 싶다며 취재진의 양해를 구했고, 서툴더라도 직접 한국어로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한국어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는 데에는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팀원들의 역할도 컸다.

마윤재가 영어를 잘해요. 제가 궁금한 게 있으면 영어로 ‘이걸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윤재가 알아듣고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면 돼’라고 알려줘요. 팀에 한국어 선생님이 많아요. 김준하도 많이 도와주고 다들 제가 계속 한국어를 말할 수 있게 도와줘요. 모두 좋고 착해요.

#사진_김다빈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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