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신입생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열두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한양대 김형준(197cm, F)'이다.

#소년로그
김형준이 농구공을 처음 쥔 계기는 뜻밖에도 '다이어트'였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이미 170cm의 신장을 자랑했던 그는, 큰 키만큼이나 체격도 남달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 앞 클럽 농구의 문을 두드렸다.
부모님의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서 운동하며 땀을 흘려보라"던 권유도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렇게 찾아간 코트에서 농구의 진짜 매력을 발견했고, 살을 빼려던 목적은 이내 코트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슛 던졌을 때, 그물이 '철썩'하고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꽂히더라고요. 그 손맛과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마침 명진초 장인호 코치님이 '본격적으로 엘리트 농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고, 농구가 마냥 재밌어서 고민 없이 빠져들었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농구였지만 엘리트 선수의 길은 쉽지 않았다.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며 마주한 첫 동계 훈련은 혹독함 그 자체였다. 산을 타는 건 기본이었고, 경기가 끝날 때마다 인터벌 트레이닝과 트랙 질주가 이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더라고요. 두 달 만에 9kg이 빠지면서 몸이 몰라보게 가벼워졌거든요. 그 힘든 시간 덕분에 5학년 때부터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코트 위를 누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농구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진지해졌다. 화봉중 진학 이후 어느새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기, 울산에서 열린 2022년 연맹회장기는 강렬한 승부욕을 일깨운 무대였다.
당시 화봉중은 김형준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신장이 낮았다. 반면 8강 상대인 용산중은 장신 자원이 즐비한 팀이었다. 모두가 화봉중의 열세를 점치자, 묘한 오기가 피어올랐다.
"용산중이랑 라이벌이라고 주변에서 말하더라고요. 꼭 이겨보고 싶었죠. 경기 전날 후배랑 밤늦게까지 체육관에 남아 손발을 맞췄어요. 마침 홈에서 열린 대회라 고등학교 형들과 학교 친구들도 엄청나게 응원을 와줬거든요. 결국 용산중을 꺾었죠. 그때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노력은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화봉중은 연맹회장기 우승에 이어 전국소년체육대회 정상까지 밟았다. 김형준은 소년체전 MVP까지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스스로 중학교 시절을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로 꼽은 이유기도 하다. 당시 김현수 코치의 혹독한 지도 아래, 그는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탄탄한 수비 메커니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무룡고로 진학한 그는 U16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각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선수들과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남다른 자부심이었지만, 팀 내 최장신으로서 상대국의 거구들을 막아내고 리바운드를 사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따라왔다. 하지만 그 부담감은 성장의 밑거름이 됐고, 당시의 고된 훈련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표팀 때 운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8월에 훈련하는데 체육관 에어컨이 안 틀어지는 거예요. 안 그래도 운동이 진짜 힘든데 에어컨까지 안 나오니까 너무 더워서 다들 숨이 턱턱 막히고 완전히 녹초가 됐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래도 훈련 끝나고 다 같이 해외에서 수영하고 놀았던 건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
국제무대에서 한 뼘 더 자란 김형준은 무룡고 2학년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5경기 연속 더블더블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개인 역량을 꽃피웠고, 3학년이 되자 팀 농구의 가치를 체감했다. 고교 시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준우승을 거둔 제50회 협회장기 대회였다. 대회 기간 그는 평균 9.3점 9.1리바운드로 활약하며 무룡고의 골밑을 단단히 사수했다.
"안양고랑 붙은 8강전(18점 13리바운드)이 유독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정재엽 선수를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봐왔고 자주 맞붙었는데, 이겨서 정말 좋았거든요. 제 득점도 잘 나왔고, 이어진 4강에서는 경복고라는 큰 벽까지 넘어서서 대회 전체가 여러모로 뜻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대학농구능력시험
수능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반 학생들처럼, 농구 선수에게 코트는 실력을 증명하는 시험장이다. 대학 무대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선 김형준은 자신의 농구 성적표를 직접 채워 넣었다.
궂은일에는 망설임 없이 '1등급'을 매겼다. 공격 리바운드와 박스아웃, 스크린 등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플레이를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농구 시작할 때부터 다른 건 밀리더라도 '궂은일에서는 밀리지 말자'는 마인드였어요. 지금도 1학년이다 보니 다른 팀 형들보다 아직 경험과 기량은 부족할 수 있어도, 투지나 몸싸움만큼은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요. 감독님께서 강조하시기도 하고, 늘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세요. 저도 공격 리바운드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요."
슈팅 능력 역시 높게 평가하며 2등급을 줬다. 한양대에서 공격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강지훈과 손유찬 등 공격력이 뛰어난 선배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골밑에서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꾸준한 슈팅 훈련으로 공격 옵션을 넓혀가는 중이다.
"팀 훈련이나 연습할 때 보면 감각이 좋은 것 같아요. 연습에서는 성공률이 60~70% 정도는 돼요. 남은 경기에서는 더 자신 있게 슈팅을 가져가 보려고요. 3점슛은 리그에서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야간 훈련 때 중거리슛과 함께 꾸준히 다듬고 있어요."

하지만 그의 목표는 슈팅 능력 향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공격에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플레이의 폭도 넓혀가고 있었다.
"시즌 초에는 픽앤팝으로만 슛을 쏘려고 했다면, 이제 롤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하려고 해요. 안에서의 플레이가 단단해져야 밖에서도 기회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렇게 하나씩 갈고 닦아 내외곽을 넘나드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가장 냉정한 평가를 내린 항목은 민첩성이었다. 특히 가로 수비는 스스로 가장 보완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훈련을 통해 빈틈을 하나씩 메워가고 있다.
"대학교는 몸싸움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초반에는 적응이 안 돼서 사렸어요. 이제는 그런 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아직 밀릴 때가 많지만 제가 먼저 다가가서 부딪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리바운드도 결국 의지잖아요. 신체 조건에서 밀리지 않고 잘 잡으려고 해요. 기본적인 박스아웃이나 스크린, 정해주신 전술을 제가 잘 이행하면 될 것 같아요. 아직 박스아웃이 서툴지만요(웃음)."

"제가 세로 수비는 키가 커서 괜찮은데 아직 가로 수비가 잘 안돼요. 보완하기 위해서 가드 친구들이랑 1대1을 많이 해요. (소)지호한테 꿀팁 물어보면서 도움을 얻고 있어요. 지호가 수비를 잘하거든요."
수비 보완법을 이야기하던 김형준은 가장 먼저 소지호의 이름을 꺼냈다. 두 선수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대학까지 줄곧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 단계씩 함께 올라왔다. 오랜 시간을 동행하며 서로는 경기 안팎에서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었다.
"지호가 농구 외적으로도 마인드가 참 좋아요. 제가 아직 1학년이다 보니까 경험이 많지 않아서 힘들 때가 많았거든요. 멘탈이 무너질 때마다 도와주고, 농구적으로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 줘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그냥 눈빛만 봐도 다 알 정도예요. 지난 고려대 전(6월 23일)에서도 경기가 잘 안 풀려서 벤치로 나왔는데 지호가 ‘아직 1학년이니까 잃을 거 없다. 깨지더라도 열심히 자신감 있게 하라’고 말해줬어요. 일상에서는 장난도 잘 치는데 코트 안에서는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친구예요."
겹겹이 쌓아 올린 노력은 코트 위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올 시즌 13경기 동안 평균 16분 29초를 소화하며 3.85점 3.08리바운드를 기록했고, 77.8%의 자유투 성공률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화려한 기록은 아닐지라도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내는 모습에서 한양대의 현재이자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대학로그
"2주 동안은 오로지 뛰기만 했어요. 체육관 뛰고, 언덕 뛰고, 계단 뛰고, 트랙 뛰고 다시 체육관에서는 오전-오후-야간으로 서킷 트레이닝을 했죠. 정말 힘들었는데 다 같이 버티다 보니 서로에게 의지를 하게 되더라고요. 형들이랑 서먹했는데 친해진 계기가 돼서 좋았어요."
'한양대 동계 훈련이 힘들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닌 현실이었다. 신입생 김형준에게 그 환경은 농구란 무엇인가를 다시 쓰게 한 첫 매듭이자, 팀을 하나로 묶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가 됐다. 하지만 땀방울이 채 마르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부상이 찾아오기도 했다.
"대만 전지훈련 때 허리를 다쳐서 3주 정도 쉬어야 했어요. 상대의 거친 파울에 부딪혔는데 제가 날아가서 넘어졌거든요. 허리를 잡고 코트 위에 누워 있었는데 아예 움직이질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구급차에 실려 나갔어요. 다행히 한국에 와서 검사를 받아보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어요. 2주 정도 짧게 재활하고, 정확히 개막 일주일 전에 맞춰서 간신히 복귀했죠. 운 좋게도 그때 이후로 허리 통증이 재발하지는 않았어요."
밀도 높은 훈련을 지나 맞이한 대학 생활은 그에게 농구만큼이나 낯설면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안에는 쉼표 같은 순간도 있었다.
"연예인 공연을 보려고 오후 4시부터 들어갔는데, 시작이 7시더라고요. 그날 더웠는데 3시간을 스탠딩에서 버티긴 무리라 좌석으로 옮겼죠.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구조라 점심 이후 밤 11시까지 아무것도 못 먹고 쫄쫄 굶었어요. 그런데 노천극장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아, 이게 대학 낭만이구나' 싶더라고요."

낭만적인 캠퍼스의 기억을 뒤로하고 돌아온 코트는 다시 치열한 현실이었다. 대학 리그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전반기 팀 성적은 3승 10패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김형준은 결과라는 성적표에 매몰되기보다 그 과정을 배움의 재료로 삼으며, 농구의 다음 페이지를 읽어내고 있었다.
"농구를 시작하고 이렇게 져본 적은 처음이에요. 근데 지는 것도 농구 인생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하나하나 공부가 돼요. 지난 경기 때 잘못된 부분을 다음 경기에서 반복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패배마저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김형준은 대학 무대라는 도화지에 자신이 어떤 선수가 돼야 할지 스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코트에서는 '미친개'처럼 하고 싶어요. 데드볼 상황에서 제일 먼저 달려가서 공 살리는 것처럼 진짜 공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집요한 선수요. 그리고 기록도 평균 더블더블을 달성하고 싶고 수훈 선수도 욕심나요. 정말 원하는 건 팀에 필요로 하는 선수로 남는 거예요. 프로에 가서 4번(파워 포워드)을 소화하는 게 최종적인 목표예요."
그가 말한 '미친개'라는 표현은 단순한 거친 플레이를 넘어, 팀의 빈틈을 메우는 헌신과 포기를 모르는 근성을 의미했다. 코트 위를 질주하는 그의 성장은 이제 막 가속도를 붙였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훈련의 땀방울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농익어갈 때, 김형준의 농구는 비로소 그가 지향하는 모습으로 새겨질 것이다.
#사진_김형준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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