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규 칼럼니스트]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면 각 구단은 전력 보강을 위해 움직입니다. 겨울에 야구팬들은 난로(stove) 주변에 모여 누가 나가고 들어오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 열기가 실제 경기 못지않아 ‘스토브리그’라 부르기 시작했죠. 농구는 봄에 시즌이 끝나고 여름에 그 소식을 나눕니다. 스토브 주변이 아닌 에어컨 아래에서 소식을 나눈다고 하여 ‘에어컨리그’라 부릅니다.
에어컨의 찬바람도 뜨거운 관심을 온전히 식히지는 못합니다. 야구와 농구가 같고, NBA와 KBL이 다르지 않습니다. NBA는 앤써니 데이비스, 카와이 레너드 등 대형스타들의 이적으로 팬들을 흥분과 패닉에 빠지게 했습니다. 레너드의 LA 클리퍼스 행은 러셀 웨스트브룩의 이적과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리빌딩을 강제하는 후폭풍을 낳기도 했죠. KBL의 최대 이슈는 김종규였습니다. KBL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는 원주 동부의 샐러리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창원 LG의 플랜 B 역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외에도 하승진의 은퇴, 전태풍과 김상규의 이적 등 이야기 소재가 많았습니다.
화제의 중심에 오른 선수들이 있는 반면, KBL과 구단의 보도자료 한구석에 조용히 재계약 사실을 알린 선수들도 있습니다.
인천 전자랜드의 홍경기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1988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지난 시즌 기록은 10경기 평균 2분 54초 출장. 연봉이 14.3%가 올랐지만 4천만 원으로 평균에 못 미칩니다. 구단은 무엇을 기대하며 이 선수와 재계약을 했을까요? 이 선수는 또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마음으로 계약을 했을까요?
이 선수의 이력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청소년대표 출신의 촉망받는 유망주. 그런데 프로 첫 시즌을 마치고 현역 입대를 해야 했고, 제대 후 첫 번째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다시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았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두 번째 은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농구를 쉽게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낯선 몽골 땅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세 번째 프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구단에서 처음으로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홍경기 선수를 만났습니다.

한 팀에 일 년 이상 있어본 적이 없는데…
인터뷰 당일, 전자랜드와 대학 팀의 연습경기가 있었습니다. 홍경기는 전자랜드 선수로는 8번째로 코트를 밟았습니다. 연습경기에서 코트를 밟는 순서에 큰 의미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도 있습니다. 연습경기는 테스트 성격이 강하고, 순서가 뒤에 있는 것은 홍경기에 대한 기대가 작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미 세 번째 시즌을 함께 하는 선수라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땠어요?
체력을 올리는 중이라 아직은 힘든 상태입니다. 그래도 경기에 나서면 자신 있게 슛을 쏘려고 해요. 수비도 팀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합니다.
Q. 수비에 자신이 없나 봐요.(웃음)
없지는 않았는데 작년부터 수비에서 많이 혼나고 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원하는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많이 못 뛴 이유는 수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을 빨리 보완해야 기회가 주어질 것 같습니다. (정)영삼 형이 많은 얘기를 해주고 직접 보여주기도 해요.
Q. FA 계약을 맺었어요. 팀에서 특별히 요구한 것이 있었나요?
감독님이 “노력에는 끝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고 굵게 말씀하셨어요(웃음). 작년에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요.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Q. 전자랜드에서 세 번째 시즌입니다.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요?
동 포지션에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교해서 제 실력이 부족하니까 첫 해에는 배우자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했어요. 다음해 계약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웃음). 그런데 작년 시즌은 감독님께서 기회도 많이 주셨어요. 기회를 주실 때 잘해보자는 생각에 욕심도 있었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것도 경험이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보완하려고 노력해야죠.
Q. 나이가 있어요. 배우기보다 보여줘야 할 시기가 아닐까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배워야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후배들에게 가르쳐 줄 것도 있습니다. 은퇴를 두 번 했습니다. 농구가 간절했죠. 배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Q. 홍경기 선수의 장점은 역시 득점력일까요?
넣는 요령을 안다? 그런 요령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폭발력 있는 3점슛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선형이처럼 뛰어난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슈팅 연습을 더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전에서 성공률을 높여야죠. 욕심 때문에 슈팅 밸런스가 안 맞는 경우가 있는데, 비시즌에는 힘을 빼고 밸런스를 맞추는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연봉이 낮은 수준입니다. 연봉에 대한 불만은 없나요?
연봉이야 많으면 좋죠(웃음). 프로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전자랜드 구단과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뻐요. 한 팀에 일 년 이상 있어본 적이 없는데 벌써 삼 년입니다. 감독님, 코치님 모두 챙겨주시고 가르쳐주시고 하는 것이 느껴져요. 사무국부터 매니저 형까지 다 감사한 분들이고…. 팬들이 ‘전자랜드는 가족’이라고 하는데, 저에게도 그런 것 같아요.
Q. 올 시즌 목표는 1군에서 더 많이 뛰는 것이겠죠?
물론 더 많이 뛰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감독님께 ‘경기는 1분을 뛰어도 제 역할을 하는 선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홍세용에서 홍경기로
어지간히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도 홍경기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16년 12월에 이름을 개명했기 때문입니다. 개명 전의 이름은 홍세용. 군산중학교와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청소년대표 출신 가드입니다. 전력이 약한 군산고를 하드캐리 해서 협회장기 결승까지 올리기도 했죠. 그 대회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연속 40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결승전도 팀의 68득점 중 30점을 홀로 책임졌습니다. 그 해 추계연맹전은 6년 만에 팀을 전국 대회 정상으로 올리며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이후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부상에 시달렸고, 3학년 때는 한 경기도 못 뛰었습니다. 공보다 재활기구가 익숙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농구를 관둘 생각을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학년 때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드래프트 20순위로 프로에 진출했습니다. 그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뽑지 않은 팀들이 후회할 만큼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비가 약한 184cm의 단신 스코어러는 KBL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전자랜드에 다시 입단하기 전까지, 프로 첫 시즌 16경기 평균 2분 28초 출장이 전부였습니다.
홍세용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전국체전입니다. 홍세용이 입단한 놀레벤트 이글스가 대구 대표로 출전을 했죠. 1차전 조선대와 경기에서 29점 차 대승을 거두고 2차전에서 연세대를 만났습니다. 연세대는 최준용, 천기범, 안영준, 허훈 등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대학 최강팀입니다. 대부분이 그 경기를 놀레벤트의 대회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놀레벤트가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고, 36점을 기록한 홍세용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홍세용은 홍경기로 개명했고, 효험이 있었는지 6개월 후 전자랜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Q. 개명하고 프로에 다시 입성했어요. 개명 효과인가요? (웃음)
세용이 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웃음). 프로에서 1년 이상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지금 삼 년 이상 하고 있고, 생활도 만족합니다. 이름은 세용이가 더 좋은데요(웃음).
Q. 전자랜드는 어떻게 입단하게 됐나요? 먼저 연락이 온 건가요?
저는 드래프트 참가 자격이 없습니다. 이미 한 번 지명을 받으면 자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놀레벤트에서 계속 운동을 할 생각이었는데 김승환 코치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다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여기서 끝을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Q. 비슷한 형태로 2015년에 KT에 입단했습니다. 당시와는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당시 KT 가드진에 부상이 많아 제안을 받았죠. 얼떨떨했습니다. 다시 해도 되나 싶기도 했고, 몸도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하고 싶다는 패기만으로 들어갔지만 운동을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몸을 만든 이후에는 경기 감각이 문제가 됐습니다. 공백 기간이 너무 길었던 거죠. 이번에는 그때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추어와 몽골리그지만 계속 경기를 뛰었으니까요.
Q. KT에서는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 운동을 소화할 수 없었어요. 뒤늦게 몸을 만들었지만 경기 감각이 안 올라왔습니다. 1년을 놀았잖아요.
Q. KT에서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은퇴가 상처를 덜 받았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첫 번째 은퇴가 더 힘들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다시 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은퇴 권유를 받았죠. 두 번째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첫 번째 은퇴 후에는 잠시 놀았지만, 두 번째 은퇴 후에는 뛸 수 있는 팀을 바로 찾았어요. 대학교 후배의 권유로 박성근 감독님을 뵙고 놀레벤트 이글스라는 실업팀에 입단했습니다. 프로팀과 환경의 차이가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농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Q. 놀레벤트라는 무명 실업팀이 전국체전에서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대학 최강 연세대를 이겼어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당연히 생각 못 했죠. 열심히만 하자고 선수들끼리 얘기했습니다. 정신력이 승리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부상이 있었는데 오늘 한 경기만 죽을 각오를 하자는 생각으로 진통제를 맞고 뛰었어요. 경기 초반에 연세대가 앞서면서 저학년을 투입했고, 우리가 따라갔죠. 그때 분위기가 넘어왔습니다. 느슨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더 강하게 압박했고, 연세대 선수들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Q. 당시 동료였던 김준성이 그 해 드래프트에서 프로에 갔습니다. 부럽지는 않았어요?
많이 부러웠죠. 그리고 용기도 생겼습니다. 다시 도전할 마음이 생겼어요. 다음은 제가 가겠다고 다짐했죠. 연세대와 경기가 끝나고 (김)준성이가 코트에 앉아 통곡을 했습니다(웃음). 그 마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어요.
Q. 몽골 리그도 뛰었습니다. 점프볼 강현지 기자가 ‘한 경기 41득점을 기록해 화제’라는 기사를 전하기도 했어요.
리그 참가보다 체력훈련 목적이 더 컸어요. 놀레벤트 선수들이 각각 다른 팀에 소속되어 경기를 했습니다. 출전 시간을 많이 못 받은 선수들도 있었는데, 우리 팀은 박성근 감독님이 계셔서 기회를 많이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고, 당시 강현지 기자에게 인터뷰 요청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Q. 몽골 리그는 어때요? 우리와 차이가 많나요?
리그 참가 팀은 여섯 개로 적습니다. 체육관도 저희 보조체육관보다 작아요. 그런데 농구 인기는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홈 앤 어웨이가 아니에요. 같은 체육관에서 하루에 두 경기를 하는데, 관중들이 많이 옵니다.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보다는 농구를 많이 거칠게 합니다. 몸싸움이 심한데 파울 콜은 관대한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말이 안 통하니까 심판이나 상대 선수에게 우리나라 말로 안 좋은 소리도 했죠(웃음). 외국선수의 고충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Q. 고등학교 때의 명성을 생각하면 이후 선수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어요. 부상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까요?
없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대학교 4학년은 제대로 뛰어서 프로에 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죠. 팀 내 상황도 어수선했고…. 아직 어리다 보니 운동을 하기 싫어졌고, 부상으로 인해 더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핑계에요. 부상도 실력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는 코트에서 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삶은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유도훈 감독은 “본인의 열정과 열심히 하는 만큼 기회를 많이 못 줘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단신 외국선수가 들어오면서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은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죠. 이번 시즌 홍경기에게 기대하는 것은 ‘중요한 시기에 나와서 던지는 외곽포’입니다. 물론 그전에 엔트리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국내 선수에게 허락된 자리는 10개. 그런데 경쟁해야 할 선수만 10명이 넘고, 그 안에는 외국선수도 있습니다.
프로 입단이 출전 시간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전자랜드에서 두 시즌 동안 1군 기록은 12경기가 전부입니다. 평균 출전 시간도 3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정규리그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던 ‘D-리그의 에이스’는 아직 그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시즌도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공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칭찬도 많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뭘 잘했다고 칭찬을 들었나 싶어요. 농구를 하면서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농구가 제 삶이 됐어요. 삶은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도전은 삶에 목표를 만들고,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죠.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은 꿈을 꾸지 않는 것입니다. 도전 대신 포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단 1분을 위해 1톤이 넘는 땀을 흘리는 홍경기 선수와 인터뷰를 하며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든 당신은 옳다.” - 헨리 포드


BONUS ONE SHOT | 홍경기의 문자
인터뷰 다음 날 홍경기 선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분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내용을 문자로 보내주면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래는 홍경기 선수가 보낸 문자입니다.
“이익수 단장님을 비롯한 구단 사무국 직원분들. 그리고 유도훈 감독님, 김승환 코치님, 김태진 코치님, 이찬형 매니저 형, 변영재 통역 형, 임철환 트레이너 형, 유선철 버스기사님까지 제게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홍경기 선수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행복하다’와 ‘감사하다’입니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옳았습니다.
#본 인터뷰는 2019년 7월에 진행되었으며,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진_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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