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클리퍼스의 역사를 바꾼 롤 플레이어 테렌스 맨, Who That Mann?

서호민 기자 / 기사승인 : 2021-07-05 20: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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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클리퍼스는 지금까지 미국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지 못한 팀이었다. 1970년 창단 후 50년 간 단 한 차례도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적이 없다. 그 50년 묵은 한이 올해 드디어 풀렸다. 클리퍼스는 지난 6월 19일(이하 한국시간) 2021시즌 NBA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6차전에서 유타 재즈를 131-119로 이겼다. 한때 25점 차로 지던 경기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이 승리로 클리퍼스는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클리퍼스의 창단 첫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이 선수의 존재가 없었다면, 반전드라마를 아마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로 2년차 무명 테렌스 맨이다. 시즌 개막전까지만 해도 맨은 가비지 타임에 투입될 선수 정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금 맨은 클리퍼스의 상승세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이제 맨이라는 선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왔다. [본 기사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열리기 전 작성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기사는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플로리다 대학출신의 테렌스 맨은 대학무대에서 4년을 모두 보내고 NBA에 진출했다. 그렇기에 맨은 자신의 드래프트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많다. 그가 축구를 포기하고 농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때는 15살인 2012년.(*당초 맨의 아버지는 맨이 축구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랐으나, 맨은 농구를 더 하고 싶어 했고 NBA에 진출한 지금은 모든 가족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자란 그는 틸튼 고교 시절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교 마지막 해 경기당 평균 23.1득점 7.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틸튼 고교의 농구 스타로 떠오른 맨은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플로리다 대학의 부름을 받았다.

맨이 플로리다 대학 시절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건 2학년 때였다. 특히 4학년인 2018-2019시즌 37경기에 나서 경기당 11.4득점(FG 50.5%) 6.5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16강(스윗 16)에 올려놓았다. 대학 시절 4년 간 누적 1,322득점 710리바운드 269어시스트 112스틸을 기록한 맨은 플로리다 대학 역사상 세 번째로 1200+득점 600+리바운드 200+어시스트 100+스틸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플로리다 대학시절, 테렌스 맨 경기기록
2015-2016시즌 평균 5.2득점(FG 58.4%) 3.7리바운드 0.9 어시스트 3P 30.8% FT 45.8%
2016-2017시즌 평균 8.4득점(FG 57.6%) 4.5리바운드 1.7어시스트 3P 30.4% FT 66.3%
2017-2018시즌 평균 12.6득점(FG 56.8%) 5.4리바운드 2.6어시스트 3P 25.0% FT 65.5%
2018-2019시즌 평균 11.4득점(FG 50.5%) 6.5리바운드 2.5어시스트 3P 39.0% FT 79.0%

하지만 맨은 다듬어야 할 게 많은 선수였다. 다재다능하지만 어느 한 가지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사실 2019 드래프트 당시만 하더라도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2019년 당시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의 샘 베세니(Sam Vecenie) 기자는 당시 드래프트를 앞둔 맨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남겼다.


"그는 매우 영리하고, 터프하게 경기 운영을 한다. 전체적으로 평가했을 때 공수 양면에서 기여도가 큰 선수다. 다만 점프슛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3점슛 시도 횟수 자체가 적어 팀 공격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그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슈팅력을 더 키워야 한다. 하지만 맨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노력을 이어간다면 머지 않아 NBA에서 쏠쏠한 벤치 멤버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휴대 전화 배터리 1%의 기적


맨이 드래프트 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맨은 드래프트대상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드래프트 컴바인 초청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 고향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맨은 휴대 전화 배터리를 1% 남겨 둔 상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컴바인을 담당하는 NBA 관계자였다. 긴 기다림 끝에 컴바인에 참가해도 된다는 초청 연락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그 배터리 1%가 훗날 클리퍼스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맨은 컴바인에 참가했고, 클리퍼스 구단의 눈도장을 받아 2019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48순위로 클리퍼스에 입단한다. 제리 웨스트 클리퍼스 특별고문은 당시 드래프트 직후 “맨은 시즌 막판 이 되면 우리 팀의 핵심 로테이션 멤버로 뛰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맨의 재능을 칭찬했다. 웨스트의 말은 결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었다.

데뷔 시즌 주로 가비지 타임에 뛰었던 그는 2년차인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출장 시간을 보장 받기 시작했다. 올 시즌 맨은 정규리그 67경기에서 평균 18.9분 출장 7.0점(FG 50.9%) 3.6리바운드 1.6어시스트 0.4스틸을 기록, 대부분의 기록들에서 2년차 선수들 중 상위권에 위치해있다. 3점슛 역시 표본은 많지 않지만 평균 41.8%(평균 0.6개 성공)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196cm의 신장을 지닌 맨은 가드와 포워드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가드로서 경기조율과 2대2 플레이 전개능력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돌파에 이어 스핀 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등 풋워크가 좋고, 여기에 운동능력을 기반으로 한 돌파 능력까지 갖춘 슬래셔 유형의 선수다.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득점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좋다는 것도 맨의 또 다른 장점이다. 맨은 슬래셔 유형의 선수가 부족했던 클리퍼스에 좋은 조각이 됐고, 지난 시즌 41경기에 나서 평균 9분도 뛰지 못했지만, 올 시즌에는 67경기에 나서 20분 가까이 출전 시간을 늘리며 클리퍼스의 핵심 로테이션 멤버로 자리잡았다. 

레너드의 부상 이탈, 클리퍼스의 구세주가 된 맨

클리퍼스는 유타 재즈와 플레이오프 서부 준결승 4차전까지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팀의 에이스 카와이 레너드가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레너드는 유타와 서부 준결승 4차전 도중 오른쪽 무릎을 다치면서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입었다. 이로써 레너드는 17일 열리는 5차전 결장이 확정됐고, 남은 시리즈 복귀도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레너드와 폴 조지를 앞세워 우승에 도전하던 클리퍼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셈. 

 

하지만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라고 했던가. 터런 루 클리퍼스 감독은 레너드의 빈 자리를 식스맨 자원인 맨으로 채웠다. 맨에게는 진짜 우연히 찾아온 기회였다. 그리고 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5차전 선발 출전 한 맨은 25분 42초를 뛰며 13득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공격에서 맨은 루디 고베어와 매치업됐다. 고베어가 누군가. 올해의 수비수 세 차례, 올 NBA 디펜시브 팀만 아홉 차례 선정된 리그 최고의 수비수 아닌가. 196cm 맨과, 216cm 고베어의 키 차이는 무려 20cm 차이가 난다. 그런 고베어를 상대로 맨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했다. 4쿼터 종료 2분 39초를 남겨두고 고베어를 상대로 인유어페이스 덩크슛을 작렬한 장면은 이날 맨이 만든 최고의 하이라이트 필름이었다.

백미는 6차전이었다. 5차전과 마찬가지로 선발 출전의 명을 받은 맨. 루 감독은 6차전을 앞두고 맨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유타 수비수들은 40%대 3점 슈터인 너를 오픈으로 둘거야. 그러니까 너 자신을 믿고 던져."

루의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은 맨은 이날 경기에서 그간 감추고 있던 자신의 잠재성을 폭발시킨다. 맨은 6차전에서 3점슛 10개를 던져 무려 7개를 적중시키며 신들린 슛 감각을 뽐냈다. 정규리그 그의 경기당 평균 3점슛 성공 개수가 0.6개 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사실 클리퍼스는 이날 전반을 25점이나 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클리퍼스의 완패가 예상됐다. 하지만 3쿼터가 끝났을 때 점수는 91-94. 단 3점 차였다. 추격전을 이끈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맨이었다. 전반에 14득점을 올린 맨은 3쿼터 시작 1분 44초 만에 3점슛을 터트리면서 후반 첫 득점을 올렸다. 대역전극의 서막을 알린 득점이었다. 맨은 고감도의 외곽슛에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돌파를 시도하며 유타의 수비벽을 완전히 헤집어놨다.

클리퍼스는 4쿼터 시작 1분 24초만에 니콜라스 바툼(16점 7리바운드)의 3점슛과 잭슨의 레이업 슛으로 96-95의 역전에 성공했다. 맨은 4쿼터에도 5점을 추가하면서 힘을 보탰다. 결국 클리퍼스는 25점차 열세를 극복하고 131-119로 승리,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맨의 ‘미친 활약’이 가져다 준 의미 있는 승리였다.

이날 맨이 올린 39점은 NBA는 물론 대학 무대에서도 올려본 적이 없는 점수다. 공교롭게도 이날 유타의 도노반 미첼이 똑같이 39점을 올렸는데, 미첼의 활약과 비교했을 때도 맨은 전혀 꿀릴 게 없었다. 야투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은 각각 71.4%(15/21)와 70.0%(7/10)로 준수했고, 코트 마진 역시 +8을 기록했다. 더 대단한 건 36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단 한 개의 실책도 범하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경기 종료 후 LA 전역은 난리가 났다. 이날 작성된 외신 기사의 제목은 온통 맨으로 도배됐다.

팬들은 "도대체 맨이 누구?" "맨의 인지도 크게 올라가겠다", "오늘부터 카와이 맨이라고 불러줘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맨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상대 팀 에이스 미첼은 맨에게 클리퍼스의 영웅이라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시즌 내내 우리 팀은 어떤 선수가 다치면 다른 누군가 나타나 그 선수의 공백을 메워줬다.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맨은 오늘경기에서 매우 큰 일을 해냈다. 이런 큰 경기에서 3점슛 10개를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맨은 슛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을 믿고 있었다. 오늘 밤 맨의 활약은 정말로 믿기 힘든 수준이였다." - 터런 루 감독


"우리는 2년 차 선수(맨)가 끝내는 시리즈를 봤다. 림을 향해 힘차게 공격하는 그의 모습에서 여러분들은 엄청난 빛을 봤을 것이다. 맨은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가장 인상 깊은 선수였다." - 폴 조지

"맨에게 경의를 표한다. 중학교 때부터 맨의 플레이를 지켜봐왔는데 그는 매우 전투적인 플레이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엄청난 노력파다. 클리퍼스에 로테이션에 합류한 뒤에도 잘하고 있으며, 오늘 가장 큰 활약을 보여줬다." - 도노반 미첼

맨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평소 동료애와 리더십이 남다른 선수로 알려져 있다. 대학시절 2학년 때부터 동료들 사이에서 "캡틴"이라 불리는 등 리더십에 정평이 나 있었다. 맨은 피닉스와 서부 준결승 시리즈에서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레너드의 복귀 시점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클리퍼스는 피닉스와 시리즈가 열리기 전부터 맨을 코트에 오래세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레너드가 복귀한 뒤에도 맨은 팀내 공수 비중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비에서 맨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히 크다. 

 

클리퍼스로서도 레너드가 돌아온다고 해서 굳이 맨의 출전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갈 이유는 없다. 맨은 오는 2022-2023시즌까지 클리퍼스와 620만 달러 짜리 계약이 되어 있다. 다음 시즌 계약은 올해 8월까지 방출되지 않을 경우, 전액 보장되며 마지막 시즌에는 팀 옵션으로 묶여 있다. 즉 클리퍼스는 이 알짜배기 선수를 향후 2년 간 헐값으로 써먹을 수 있는 셈이다.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맨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활약을 이어갈 경우, 연간 1,0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올시즌 맨이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는 인상적이다.

세상의 모든 농구 감독들이 좋아할 롤 플레이어. 지금 맨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식어가 아닐까. 누군가의 공백은 누군가에게 기회가 된다. 흔치 않은 그 기회를 잡아 이름을 알린 선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때의 실수'로 많은 걸 잃고 힘겹게 기회를 얻은 선수도 있다. 좀 더 성숙된 자세로 도전한 그 역시 '무명'의 설움을 씻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시즌 루겐츠 도트(오클라호마시티)가 신 스틸러로 등장하며 팬들을 열광케 했다면 2020-2021시즌, 우리는 맨의 활약에 열광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테렌스 맨 프로필
1996년 10월 18일생, 196cm 97kg, 슈팅가드/스몰포워드, 플로리다 주립대학 출신
2019 NBA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8순위 LA 클리퍼스 지명
2020-2021시즌 67경기 평균 7.0점(FG 50.9%) 3.6리바운드 1.6어시스트 기록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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