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죽기 아니면 살기, 내 삶은 항상 치열했다" 안양 KGC 김승기 감독

점프볼 편집부 / 기사승인 : 2021-07-05 17:54:49
  • -
  • +
  • 인쇄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은 매 순간 계획이 분명한 남자다. 3년 전, 그는 이재도와 전성현, 그리고 문성곤이 돌아오면 다시 한 번 우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3년 후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그의 인생 모토는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꼭 성공만 이어진 건 아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었고 같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승기 감독은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김승기 감독의 인생, 점프볼 기자들이 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봤다.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은 매 순간 계획이 분명한 남자다. 3년 전, 그는 이재도와 전성현, 그리고 문성곤이 돌아오면 다시 한 번 우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3년 후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그의 인생 모토는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꼭 성공만 이어진 건 아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었고 같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승기 감독은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김승기 감독의 인생, 점프볼 기자들이 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봤다.

※본 기사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파란만장했던 터보 가드의 현역 시절

김승기 감독은 중앙대와 삼성 시절 ‘터보 가드’로 불렸다. 크지 않은 키에도 탄탄한 몸과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저돌적인 돌파와 터프한 수비를 펼친 선수였다. 그러나 프로 출범 이후 김승기 감독의 커리어는 조금씩 암흑기를 맞이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무릎 부상은 탄탄대로였던 그의 인생을 어둡게 했다.

민준구_중, 고교 그리고 대학 때까지 김승기라는 이름은 농구판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선수 시절의 본인을 회상한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중학교, 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농구가 어렵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다.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학년 때부터 계속 뛰는 선수였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아마 1패만 했을 것이다. 집안이 어려워서 힘든 적은 있어도 농구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다. 대학 때도 똑같았다. 몸도 좋았고 아픈 곳도 없었다. 삼성전자에 입단했을 때는 조금 헤맸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상무로 갔고 무서울 것 없이 잘 해냈다. 다시 삼성으로 돌아오니 무릎이 아프더라. 당시 집안이 어려웠고 연봉이 깎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프로가 출범했고 부상 중에도 계속 뛰다 보니 일찍 은퇴하게 됐다.

김용호_용산고 재학 시절에는 정말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나 경기가 있다면.

3학년 때 출전했던 전국체전이 기억난다. 그 전에 열렸던 종별선수권대회 8강에서 탈락했다. 그게 유일한 1패였을 것이다. 이후 양문의 선생님께서 정말 강하게 훈련 시켰고 그 효과를 봤다. 전국체전에서 강원사대부고랑 경기를 했는데 전반에 40-10 정도로 앞섰을 것이다. 수비가 정말 기가 막혔다. 마지막에 대회를 마무리하고 울었던 기억도 있다.

민준구_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무릎 부상을 안고도 1997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 때는 (강)동희 형과 (이)상민이가 있었고 나는 세 번째 가드였다. 결승 때는 내가 잘해서 우승할 수 있었다(웃음). 정광석 감독님, 김동광 코치님이 나를 좋게 봤던 것 같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계속 보강 운동을 했다. 그분들 눈에는 준비를 굉장히 잘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근데 너무 무리했던 것 같다. 삼성으로 돌아오니 무릎이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 어쩌면 1997년이 나의 전성기이자 마지막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무서울 게 없었다. 수비하면 다 뺏을 수 있었고 치고 들어가면 무조건 한 골을 넣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허재 감독님 말고는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준구_일본의 하세가와 마고토와는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에서 계속 만났다. 진짜 치열했다. 청소년 대표팀은 물론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그리고 성인 국가대표 팀까지 기가 막히게 붙었다. 서로 못 막았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나 나나 엄청 더러운 플레이를 했다(웃음). 힘도 워낙 좋았다. 다시 만나면 반갑지 않을까. 아마 일본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현재 하세가와 마고토는 일본 3x3 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김용호_고질적인 무릎 부상에도 쉬지 않고 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또 집안 문제도 있었다. 어쩌면 참고 계속 뛰면서 많은 것들을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된 지금도 아이들이 부상을 당해도 최대한 연봉이 깎이지 않으면서 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한다. 다시 몸을 만들고 빠르게 돌아와서 전처럼 활약하는 것을 기대한다. (박)형철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함)준후도 그렇고. 나는 B급 선수로 끝났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서호민_터보 가드라는 별명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

허진석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별명이다. 쇠절구, 탱크 등 그 당시 그분이 만들어 준 별명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터보 가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세련된 별명이지 않나. 그 때 선수들의 별명은 전부 허진석 선생님이 만들어 준 것들이다.

김용호_학생 선수 시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세대, 고려대가 아닌 중앙대를 간 이유가 있을까.

그 당시 용산고 출신은 모두 중앙대로 간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워낙 위대한 분이 가시지 않았나(웃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후회도 했다. 결국 중앙대에 갈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중앙대 출신 프로 감독으로 두 번 우승했으면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민준구_보통 프로 감독들은 학생 선수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본인도 양문의, 정봉섭이라는 대단한 스승 밑에서 지도받지 않았나. 큰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나를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기본기를 제대로 갖출 수 있었다. 자세, 그리고 스텝을 기반으로 하여 용산고 때는 수비를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코치, 감독님들이 내게 큰 영향을 줬다.

서호민_전창진 감독이 인터뷰에서 김승기 감독을 삼성전자로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들었다.

정말 자주 봤다. 또 나를 엄청 아껴줬다. 용산고 선후배라서 그런지 더 잘 챙겨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중앙대에서 삼성전자로 잘 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랜 시간 끊긴 관계가 나로 인해 다시 연결됐다. 전창진 감독님께서 공을 많이 들였다. 매일 전화하고 자주 만났다.

민준구_농구 대잔치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것 같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중심이었지만 중앙대도 인기가 많았다. 졸업한 뒤에도 문경은 감독과 나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휴일만 되면 체육관 앞에 팬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회사에서 팬들에게 자장면을 사주기도 했다.(웃음). 선물도 엄청 많았다. 지금 선수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리어카로 가져가야 했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그런 팬들이 이제는 아들을 농구 선수로 키우고 있다. 하하.

민준구_현역 시절,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막기 힘들었던 선수는 누구인가.

(강)동희 형이 제일 힘들었다. 스피드가 좋고 팔도 길었다. 센스까지 좋으니 정말 막기 힘들었다. 허재 형보다 더 어려웠다. 물론 농구는 더 잘했지만. 동희 형 다음으로 허재 형이 가장 힘든 상대가 아니었을까. 그 외에는 다 쉬웠다. 무릎이 아팠던 시절에도 스틸은 많았을 것이다. 2001-2002시즌 때는 수비상도 받았다. 혼자 공부도 많이 했고 워낙 수비는 자신 있었다.

서호민_본인에게 TG, 또는 동부라는 팀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 최고의 행복을 누렸던 곳이기도 하지만 또 아픔까지 안긴 팀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에 있을 때 많이 불행했다. 무릎이 아팠고 돈도 없었다. 그런데도 돈을 안 쓰는 편이 아니라서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고도 많이 치고 또 방황했다. 사실 TG에 왔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 둘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김)진모가 태어났고 (김)동현이까지 이 세상에 나오니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때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재활했다. 몇 년 동안은 웨이트 트레이닝장, 그리고 사우나에서 살다시피 했다. 별명도 관장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뛸 수 있었고 우승까지 했다. 좋은 기억만 남은 팀이다. 모비스(현 현대모비스)로 잠시 떠났지만 동부로 바뀐 팀으로 다시 돌아와 은퇴했으니 가장 많은 추억을 담은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생을 제시해준 사람

김승기 감독에게 전창진 감독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또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사람이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기에 다다랐을 때 코치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서 보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김승기 감독은 정상급 지도자가 됐고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전창진 감독이 이끈 KC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만큼 김 감독에게 전창진 감독은 큰 존재였기 때문이다.

민준구_전창진 감독과 인연이 유독 깊다. 매니저-선수, 감독-선수, 감독코치 등 다양한 관계를 가져왔다. 김 감독에게 전창진이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삼성전자에 간 이유였다. 그 뒤에도 TG에 갔을 때 “먼저 가 있어”라고 하더라.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다음 시즌에 갑자기 감독으로 왔다(웃음). 그 때부터 인연이 더욱 깊어졌다. 예전에는 나이 많은 선배님이었는데 TG에선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서운한 점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니 모두 큰 도움으로 돌아왔다. 너무 고마운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코치로서 그 분을 보좌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내게 코치 제의를 해준 분이기도 하다. 1년 더 뛸 수 있다는 생각에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더라. 더 할 수 있다고 말하니 코치를 하라고 해줬다. 막막하던 내 인생에 다른 길을 제시해준 사람이다.

김용호_반대로 손규완 코치에게는 본인이 형님이자 감독이다. 10년 넘게 본인 곁을 지킨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 친구도 정말 잘 배웠다. 전창진 감독님께 배운 농구, 그리고 사회성 등 다양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사실 (손)규완이도 성질이 조금 있다. 이제는 그 성질을 컨트롤할 줄 안다. 감독급 코치라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코치로 있으면서 거의 감독급으로 성장했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나의 일을 맡길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해야 속이 풀렸다. 하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틈을 주려고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도 성장할 수 있다. 그 부분을 손 코치가 잘 채워서 좋은 팀의 감독이 되었으면 한다.

김용호_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계속 돈을 벌어야 했다. 선수로서 은퇴 시기가 다가왔고 그때 코치 제의를 받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치로 시작해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동부에 있었던 3년 동안은 평균 3시간 정도만 자고 계속 일했다. 전창진 감독님이 주무셔야만 그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 옆을 지켰다.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 고생이 결국은 빛이 됐다. 전창진 감독님이 KT로 가시면서 “(김)승기 고생했으니까 같이 가야지”라고 했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민준구_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선수들을 성장시켰다. 또 기대에 못 미쳤던 선수들을 다시 끌어올린 사례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

강대협은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전창진 감독님에게 꼭 데려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오자마자 성공하지 않았나. 이광재는 줄넘기 100개를 못할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슈팅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다. 아마 지금 얼굴을 보면 엄청 지겨워 할 것 같다. 두 친구가 대표적으로 기억난다. KT 때는 조성민, 그리고 이재도, 김영환 같은 친구들이 생각난다. KGC인삼공사에선 배병준, 변준형 같은 친구들도 있었다. 변준형은 이제 70% 정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김용호_이재도와는 KT, 그리고 KGC인삼공사에서 인연을 쌓고 있다. 본인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선수 시절에 낯을 많이 가렸다. 적응기도 필요했다. 근데 (이)재도가 똑같다. 그래서 너무 잘 알고 있다. 1년 이상은 한곳에 머물러야만 적응한다. 그래서 이번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너는 연습경기부터 정규리그, 그리고 플레이오프까지 무조건 선발 출전이다”라고 못 박았다. 우리 팀 의 확실한 1번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주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꼭 도와주고 싶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잘 들어맞았다. 내가 실패해봤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호민_예지몽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KGC인삼공사로 가기 전에 꿈에서 선수, 관계자가 꿈에 나왔다고 들었다. 이 정도면 KGC인삼공사와 만남은 운명 아닌가. 또 그것 말고도 감독 부임 이후에도 예지몽을 많이 꿨다고 하던데.

 

KT에 있었을 때였다. 잠깐 낮잠을 잤는데 김성기 사무국장과 함께 골대 밑에서 둘이 대화를 하는 꿈을 꿨다. 또 선수들과 대화도 했다. 1~2번도 아니고 계속 같은 꿈을 꿨다. 그러다가 감독이 됐는데 그때부터는 우승하는 꿈을 계속 꿨다. 내가 직접 선수로 뛰기도 했고 코치, 감독 때도 다 우승하는 내용이었다. 그 뒤 1년이 지났고 결국 통합우승을 했다. 정말 별 꿈을 다 꾼 것 같다. 패턴에 대한 꿈을 꾼 뒤에는 자다 깨서 노트에 다 적어놓기도 했다. 그게 또 잘 들어맞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김승기 감독의 확고한 지도자 철학

힘겹게 선수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 김승기 감독. 그런 과거가 있기에 김 감독은 지도자 철학을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었다. 김승기 감독은 자신을 거쳐 가는 모든 선수들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많은 연봉을 받고, 웃는 얼굴로 팀을 떠나도 좋다고 말하는 대인배다. 김승기 감독이 이 같은 생각을 가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민준구_현재 농구대잔치 세대 감독들 중 가장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승만 두 번이다. 실력인가, 아니면 운이 많이 작용한 결과인가.

 

진심으로 말하면 5대5인 것 같다. 운칠기삼 정도는 아니고. 운도 좋았지만 오랜 코치 생활을 통해 얻은 노하우도 많은 도움이 됐다. 선수 구성, 리빌딩, 그리고 기존에 계획했던 것들이 잘 맞아떨어졌다. 키퍼 사익스, 데이비드 사이먼, 제러드 설린저 등 기가 막힌 외국선수들을 영입한 것도 좋은 기억이다. 만약 2017-2018시즌 4강 플레이오프 때 (오)세근이 의 발목만 돌아가지 않았다면 DB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디온테 버튼에 대한 수비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다음 플랜을 생각했다. 재도와 (전)성현이, 그리고 (문)성곤이가 돌아오는 시기, 여기에 (박)지훈이, (변)준형이까지 잘 키워놓으면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다음 시즌에는 우동현, 한승희, 양승면 등 이런 선수들이 잘해줄 것이다. 탄탄한 벤치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을 생각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2-2023시즌에는 다시 한 번 우승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용호_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사례가 됐다. 큰 명예였을 것 같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기록이고, 또 깨기 쉽지않은 기록이지 않나. 농구를 하면서 프로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감독으로서 성공하고 있다는 지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기록을 세웠을 때 기분이 좋다. 사실 나는 이미지가 좋은 감독은 아니다. 의도한 것도 있다.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과감한 발언을 했다. 김승기라는 사람이 무시 받을 정도로 하찮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면 가장 낮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 선수들도 다 성장했고 이제는 감독인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때다.

서호민_현역 선수 시절의 강점을 그대로 옮긴 팀이 현재의 KGC인삼공사가 아닐까 싶다.

공격적인 수비를 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선수 시절에도 상대의 볼을 뺏는 게 바로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맨날 연구하고 또 뺏으러 다녔다. 잘하는 선수가 아닌 못하는 선수에게 트랩 수비를 들어가는 방법도 오랜 연구 끝에 찾은 것이다. 변칙적인 걸 좋아한다. 득점을 많이 주더라도 좋다. 대신 우리도 득점을 많이 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농구가 재밌어진다. 많은 분들이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게임 재밌지 않나.

민준구_강한 성격, 그리고 그에 따른 지도 방식이 화제였다.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때는 부드러웠지만 정규리그 때만 하더라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선수들과도 자주 부딪혔을 것 같은데.

선수들이 가진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다. 근데 그러면 또 삐진다(웃음). 혼낸 뒤에 달래주는 시간이 반복됐다. 성현이는 잘 삐져서 말을 못하겠더라. 현대모비스와 4강 플레이오프 때는 몇 마디 했더니 아예 경기를 막 했다. 하하. 그래도 하나씩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기에 그랬던 것이다. 성현이는 슈팅, 성곤이는 리바운드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성곤이의 리바운드는 3점슛 1개 넣은 것과 같다. 성현이는 자기 수비까지 다 해주는 성곤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성장한 게 바로 재도, 성현이, 성곤이, 그리고 준형이다. 희종이는 아파도 자기 몫을 해준다. 세근이는 든든하고 (제러드)설린저는 단단했다. 나중에 얼마나 편하게 했나. 이제는 내가 뭐라고 하는 것보다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지키고 또 보여주면 앞으로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민준구_어쩌면 그런 과정 속에서 건강도 조금은 잃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괜찮은지 궁금하다.

많이 괜찮아졌다. 예전에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무조건 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주식을 하다가 친구에게 속아서 망했고 장사하다가도 망했다. 가족이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건데 쫄딱 망했다. 그래서 농구에 올인한 것이다. 정말 죽기 살기로 했다. 사실 KGC인삼공사 감독이 됐을 때도 여기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나 역시 전창진 감독님과 함께 나가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족을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왔고 지금에 오르게 된 것 같다. 덕분에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서호민_설린저 영입은 모 아니면 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모두가 우려했던 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설린저가 미국에서 훈련한 영상을 봤다. 또 2년 전 중국에서 뛰었던 영상도 다 돌려봤다. 물론 수술 이력이 있었고 여러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허리 부상만 재발되지 않으면 문제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그대로 팀을 나가려고 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짐도 다 싸놨을 정도로 굳게 결심했다. 처음 합류했을 때 ‘됐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99%의 확신이 생겼다. 몸도 좋았고 플레이가 기가 막혔다. 세근이 몸만 버텨주면 우승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고 이제는 짐을 풀어야 한다. 천천히 하나씩 꺼내놓고 있다. 

김용호_우승 후 다시 2년 계약을 맺었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결과인 것 같은데.

계약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3, 4년 계약을 맺었다면 우승을 3, 4년 뒤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2년이라고 판단했다. 다음 시즌, 그리고 다다음 시즌 안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또 농구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KGC인삼공사에 비싼 선수를 영입,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할 선수들이 모여서 기분 좋게 농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행복해야 한다. 형철이도 행복할 것이다. 또 준후 역시 다음 시즌에 꼭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내가 가진 농구 철학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서호민_본인 역시 자신을 닮은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승기라는 사람의 뒤를 이어 가장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재목은 누구인가.

희종이가 적임자다. 꼭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KGC인삼공사에 오랜 시간 있으면서 주입해왔던 농구를 가장 잘 이끌 사람이다. 내가 만약 이 팀을 나가게 된다면 꼭 희종이가 뒤를 이어주기를 바란다. 또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고 싶다. KBL 인기를 위해서라도 희종이가 해줘야 한다. 정장을 입고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뱃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 데 조금 늦은 듯하다(웃음).

서호민_젊은 감독임에도 정말 많은 것을 이뤘다. 앞으로 10년은 더 감독으로서 활약할 수 있겠다. 이때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내 품에서 떠나는 선수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많은 돈을 받고 다른 팀에 가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제껏 전부 그렇게 됐다. 다른 곳에 가서 바보짓 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우리 팀에 오는 아이들 모두 좋은 홍삼 먹고 좋은 선수들이 됐으면 한다. 나 역시 불행했던 시절을 겪고 이 자리에 섰다. 내 선수들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인터뷰_민준구(정리), 김용호, 서호민 기자
#사진_점프볼DB(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