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남녀농구를 관전한 뒤의 단상(斷想)들

기자 / 기사승인 : 2021-03-04 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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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로 배운 나의 농구라는 것이 얼마나 낡았는지 이따금 실감한다. 어떤 경기를 볼 때 감독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선수의 플레이를 그 동기나 과정, 내용과 결과 모두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기자들에게 인기 있는 감독이나 선수가 보인다. 기자들은 곧잘 감독이나 선수에게 매혹되어 그들의 성공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때로는 상상의 세계에서 그들을 신화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감독이나 선수의 입장에서, 이러한 환경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에누리 없는 현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이겨내야 할 공간은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냉엄한 현실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응원가는 허공에 메아리치다 사라지는 환청과 다름없다. 허재와 같은 스타들은 미디어가 키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현실과 싸웠고 적어도 농구 코트에서는 매 순간과 투쟁했다. 그들의 명성과 업적은 그 결과물들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2의 허재’, ‘제2의 이충희’가 있었다. 대부분 미디어가 만든 별명이다. 그리고 그토록 수많은 ‘제2의’ 그 무엇들은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은 흔적으로 사라져갔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감독과 선수 중에도 미디어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취 역시 응원과는 무관하다. 그냥 그들이 뛰어난 것이다. 기자는 자신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게 낫다. 기자로서의 사명과 자존심 같은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코트에서 땀도 눈물도 피도 흘려보지 않은 기자들이 농구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같은 말은, 그냥 하는 말이다. 기자가 사용할 문장은 아니고, 곧이듣는다면 멍청이다.

다음은 최근 텔레비전 중계 덕분에 몇 경기를 지켜본 뒤 정리한 단상들.

#2
3월 2일 남자프로농구 KT 93-88 삼성: 연장경기를 했다. 경기의 질을 평가하자면 인색할 수밖에 없다. 복불복 내기 같은 경기. 직업선수들의 경기라고 보기 어려운 실수가 연속해서 나왔다. 패한 팀의 허물이 크다. 가드가 톱에서 드리블을 하다 바이얼레이션을 지적받아 공격권을 내준다. 아웃 오브 바운스 장면에서 하프라인 바이얼레이션을 기록하는 경우는 자주 보기 어렵다. 물론 선수들이 지쳐 있는 연장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삼성의 벤치는 자신들의 통제력을 점검해야 한다.

나는 하프라인 바이얼레이션을 기록한 선수의 (기량이 아니라) 팀과 경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의심한다. 이 선수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파울을 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심판이 휘슬을 불어 주지 않으면 제자리에 멈추어 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 결과는 삼성이 4-5나 3-5의 수적 불리를 안고 수비하는 현실로 이어진다. 이런 태도는 동호인 농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 선수에게 2005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정채봉 선생이 이야기한 ‘첫 마음’을 돌아보라고 권하겠다. 2005년 9월 30일자 중앙일보의 22면에는 지금보다 훨씬 몸이 날렵한 루키가 ‘햄릿처럼 심각하다.’고 표현한 기사가 실렸다. 첫 마음을 간직한 사람만이, 그러니까 순수하고도 진실한 마음(Heart Of Gold)을 끝내 지켜내는 선수만이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더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한 경기를 보고 삼성의 벤치나 선수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불행하게도 이 언저리가 우리 프로농구의 경기품질이라는 현실을 감안해야 하니까. 경기가 끝난 다음 잠시 코치의 훈련 기술, 경기 구성 능력 등을 생각해보았다. 우리 농구의 벤치 영역은 더 개발할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무국, 선수단, 벤치 중에서 가장 역량이 부족한 쪽이 벤치다. 물론 더 나아질 여지는 있다. 다만 나는 코치들이 비시즌에 어느 정도 자신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지 (현장을 떠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확인하기 어렵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프로농구 감독 가운데 유재학, 추일승, 유도훈 등은 배우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배우려는 이의 가슴속에는 야망과 겸허가 공존한다.

#3
3월 3일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삼성생명(2승1패) 64-47 우리은행(1승2패) : 두 팀 모두 놀라운 경기를 했다. 우리은행은 품위 있게 물러섰으며, 위성우 감독은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이 팀은 더 강해질 것이다. 삼성생명은 대단했다. 그래도 삼성생명의 승리를 이변으로 보고 싶지 않다. 승리한 팀에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 삼성은 믿기 어려운 힘을 발휘했다. 갈수록 강해졌다. 그 힘의 근원을 임근배 감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임 감독은 리그와 시즌을 조망하면서 긴 호흡으로 준비와 행동을 병행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의 윤곽을 확인한 다음에는 선수 기용 폭을 확대해 경험치를 높이고 에너지를 비축했다. 나는 윤예빈이나 김보미가 갑작스럽게 폭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나 경기인들이 ‘미쳤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근배 감독의 선수 기용 전략은 참신하면서도 이상적이다. 어느 지도자든 선수를 다채롭게 기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상당수가 “그럴 선수가 없다.”고 말한다. 남녀프로농구가 1쿼터 12분제를 채택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럼 벤치에 앉아있는 저 수많은 남성과 여성은 구경꾼 아니면 식객(食客)이란 말인가. 우리 농구는 아직 “결국은 ‘할 놈’이 한다.”는 정예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정예주의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우리는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결국은 타이틀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농구가 정예주의의 결실을 꾸준히 누려왔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1969년 남자농구 역사상 첫 아시아 제패는 ‘김인건-유희형-신동파-이인표-김영일’이라는 부동의 베스트5가 이룩한 업적이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감독 방열) 금메달의 주인은 박수교-신동찬-이충희-신선우-임정명이다. 여자대표팀도 기용 폭을 크게 선택한 사례가 드물다. 1984년 LA올림픽(감독 조승연) 은메달 주역은 최애영-이형숙-김화순-성정아-박찬숙을 꼽아야 한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감독 정주현)에서 우승한 대표 팀은 조금 폭이 넓어서 정미경-이형숙-최경희-성정아-조문주 라인에 정은순과 천은숙 등이 가세했다.

우리 농구의 한 흐름을 이룬 정예주의 선수 기용 전략은 그 자체를 비판하기 어렵다. 결국은 성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논란을 피할 수 없겠지만,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따낸 우리 여자대표팀의 선수 기용 전략도 살펴봐야 한다. 대표 팀은 가장 중요한 목표인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우리 대표 팀의 경기력에 비춰보면 최종예선 진출도 놀라운 업적이었다. 이 결과를 놓고 농구팬들이 “선수들을 고생시켜서 얻어낸 그따위 티켓은 필요 없다.”고 비난한다면 겸허히 들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스포츠 팬들은 깨어 있다. “선수의 인권을 훼손하면서 따낸 올림픽 금메달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 우리 스포츠 팬들의 선언이자 요구이다.

‘혹사 논란’은 매우 다루기 어려운 영역의 담론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깊이 들여다보겠다. 그러나 팬들의 비판과는 별도로 ‘미디어와의 소통 부족’을 문제 삼아 사령탑을 경질한 농구협회의 태도는 매우 비겁했다. 여러 보도와 증언을 참고하면 ‘1승’과 ‘본선 진출’이라는 명징한 목표 설정에 협회와 대표 팀 사령탑이 공감했음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선전을 모두 마친 대표 팀의 사령탑은 협회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다. 적어도 이 당시의 상황만 살피면 농구협회는 경기 단체로서 무능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미디어와의 소통은 대표 팀의 임무가 아니다. 필요가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이다. 최종예선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는 몇 명이었는가.

각설하고, 정예주의의 퇴조는 불가피하다. 삼성생명과 임근배 감독의 성공(챔피언 결정전의 승패가 어떻게 가려지는가에 관계없이)은 이른바 트렌드의 이동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불어 우리 농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의 일부를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임근배 감독의 실험을 승인하고 기다려준 삼성생명 프런트의 결단과 인내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 회사가 운동팀을 운영하는 우리 스포츠 토양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선수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일을 해낸 구단은 강한 팀을 만들고 오랫동안 강자의 지위를 누린다.

#사족(蛇足)

선수의 능력차는 팀원들의 굳은 의지나 감독의 지략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는 내가 “왜” 지고 있는지, 어떠한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떠한 행동은 “왜” 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 “왜”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아주 불행한 경우에는 선수생활을 그만둔 다음에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높은 수준의 경기는 습관과 숙달이 아니라 “왜”의 싸움이 된다.

경기에서 진 다음 “내가 실수를 했다.” “내 책임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감독이 많다. 추세일까. 책임감 있고 ‘쿨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 순간 모든 것에 대한 포기? 하지만 기자 입장에서 감독이 이렇게 말하면 퍽 불편하겠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히는 느낌. 단절감. 어떤 실수를 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러기 어렵다. 미안할 뿐 아니라 정말 실수를 한 감독은 설명해 주지 않을 테니까. 승부가 생업인 사람은 안다. 작은 균열을 파고들면 거대한 성채도 쓰러뜨릴 수 있음을. 터럭 같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내가 기자라면 감독들과 신사협정을 하고 싶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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