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4) 중앙대 문가온 "인성과 실력 모두 갖춘 선수가 되고 싶다"

조형호 기자 / 기사승인 : 2022-06-22 06: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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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네 번째 미생은 중앙대 문가온(G/F, 190cm)이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육각형 선수’를 꿈꾸는 문가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농구인 집안에서 태어난 농구선수 ‘문가온’
문가온은 농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농구선수였고, 아버지는 트레이너였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농구를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농구와 친분을 쌓았다. 문가온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 농구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결국 강원도 춘천으로 전학을 택하며 농구 인생 출발을 알린 문가온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삼일중학교로 진학한 그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중학생이었음에도 숙소 생활이 안 되는 탓에 오피스텔에서 홀로 지냈다. 전학으로 인해 1년간 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아 경기도 못 뛰었다. 부모님 또한 힘들어하는 문가온을 보며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경기에 뛰지 못하는 만큼 새벽까지 개인 훈련을 지속하며 간절함을 표출했다. 결국 그는 3학년이 되고 가파른 성장세를 맞이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김도완 선생님을 만났어요. 사실 저는 (김도완)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평범한 선수도 아닌 못하는 선수였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제 농구 인생을 바꿔 주셨어요. 1년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인성이나 농구 등 모든 부분에서 성장하게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힘들었던 중학교 생활과 부족했던 제 모습을 발전시켜주신 선생님께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포기보다는 오기가 앞섰다
삼일상고로 진학한 문가온은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 나갔다. 첫 대회 예선 당시 기회를 받지 못하는 등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그의 진가를 발휘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왕중왕전 결승에서 안양고와 만났어요. 제 기억에 전반까지 슛 두 개를 시도해 모두 놓쳤거든요. 코치님도 슛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되도록 슛을 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종료 직전 저에게 찬스가 와서 던졌는데 그게 결승 득점이 됐죠. 경기가 끝난 뒤 코치님께서도 간이 큰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웃음). 그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문가온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팀이 4관왕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듬해 이현중의 유학과 주전 선수들의 이탈로 삼일상고에 큰 위기가 닥쳤다. 실제로 여론에서조차 삼일상고를 약체로 분류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삼일상고 천하가 끝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주장으로서 매일 팀원들을 불러 모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전력상 약해진 건 맞지만 힘없이 무너지긴 싫었어요. 결국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춘계 대회 4강에 오르기도 했죠. 그때 농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문가온은 그해 여름 U-18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며 국내에서 치러진 연습 경기를 통해 예열을 마쳤다. 그러나 결전의 태국 땅을 밟은 그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문가온은 큰 허탈감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스스로 기대도 많이 했고 엄마도 태국까지 보러 오셨는데 기회가 안 오더라고요. 중국전과 대만전에는 단 1분도 못 뛰었어요.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울었죠. 그래도 대표팀에 다녀온 뒤 느낀 부분도 많았고, 오기도 생겼습니다”

U-18 대표팀에서 소집 해제된 뒤 전국체전에 나선 문가온은 고등학생 마지막 대회를 준우승으로 장식했다. 4강에서 강호 무룡고를 만나 열세가 예상됐지만 독기를 품은 그는 주장으로서 팀을 결승 무대로 이끌었다. 

 

#간절함과 투지의 아이콘, ‘문성곤’을 롤모델로 삼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대학교 진학이 늦게 결정됐어요. 사실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았거든요. 그때 중앙대학교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고 너무 감사한 마음에 바로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중앙대를 선택한 것에 100% 만족하고 있습니다”.

중앙대에 입학한 문가온은 순탄치 않은 첫해를 보냈다. 입학 초반부터 기회를 잡는 듯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MBC배에서는 스타팅 라인업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그의 출장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문가온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힘들었던 한 해를 마무리했다.

2학년이 된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박진철의 부상과 이준희의 프로 진출로 기회가 늘어나며 점차 본인의 진가를 발휘했고,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2학년 때 팀 전력이 약해졌어요. 그때 운 좋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쳐서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 같아요. 프로 경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봤지만 특히 문성곤 선수의 경기를 찾아보면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문성곤 선수 특유의 간절함과 투지가 인상 깊었거든요”

“4학년이 된 후에는 프로행에 대한 간절함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올 시즌 기록 면에서 좋아졌는데 팀원들이 궂은일을 해줘서 제가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었고, (박)인웅이에게 수비가 쏠릴 때 (정)성훈이가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줘서 제가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똘똘 뭉친 동료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문가온은 올 시즌 공격과 수비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박인웅과 강력한 ‘원투펀치’를 결성하는 등 팀을 리그 4위로 이끌었다. 경기당 평균 18.2점 9.8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기록한 문가온은 본인의 주가를 한층 끌어올리며 프로행에 성큼 다가섰다.

“요즘 드래프트 현장에 있는 제 모습이나 프로 경기를 뛰고 있는 상황이 꿈에 자주 나와요(웃음). 프로행이 기대가 되는 만큼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남은 대회에서 수비나 리바운드뿐 아니라 슛을 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어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프로는 1년에 54경기가 있잖아요. 제가 만약 프로에 가게 된다면 화려한 주목을 받는 선수도 좋겠지만 은퇴하는 날까지 결장 없이 전 경기 출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라고 팬들이 기억해 주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던 농구 인생이 화려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제2의 문성곤을 꿈꿨던 그가 제1의 문가온이 되어 프로 무대를 누빌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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