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관우가 농구공을 잡은 것은 형 때문이었다. 3형제 중 막내인 이관우는 4살 때부터 4살 터울의 큰 형을 따라 농구 클럽으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농구공을 잡게 됐다. 7살 때부터 클럽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관우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심판의 권유로 엘리트 농구에 발을 들였다.
엘리트 농구의 시작을 위해 벌말초로 향한 이관우는 4학년 때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5학년 때부터 이주영과 강성욱의 백업 가드로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년이 되면서 실력과 키가 모두 자랐고, 이주영과 강성욱의 졸업으로 생긴 빈 자리를 차지했다.
초등학교 6학년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자신감을 갖고 졸업했지만 중학교 농구는 초등학교와 달랐다. 실력은 물론이고, 피지컬에서도 밀리며 이관우는 다시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려움을 겪던 이관우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KBL 유스 엘리트 캠프 참가였다.
"유스 캠프에서 초등학교 때 같은 팀이었던 주영이 형을 다시 만났어요. 그때 주영이 형이 많이 잘하더라고요. 성욱이 형도 결승에서 상대했는데 압도적으로 졌어요. 그래서 성욱이 형, 주영이 형은 계속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성욱이 형은 드리블이 좋아서 그런 점을 가드로서 본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영이 형은 슛과 득점력이 좋은 형이었어요. 너무 잘하는 형들이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두 형들의 합쳐진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스 캠프 이후 성장세를 보이며 자리를 잡은 이관우는 3학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모두 사라졌고, 이에 이관우는 현재보다 미래를 바라본 결정을 내렸다. 용산고 진학을 위해 용산중 전학을 결심한 것. 이 중대한 결정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이정석 코치였다.
"3학년 때 실력을 정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죠. 코로나 19 전에 상주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그때 이정석 코치님이 용산중 전학을 권유를 하셨어요. 그래서 용산중으로 가려고 했는데, 용산중으로 바로 전학이 되지 않았어요. 어차피 코로나19로 경기를 못하니까 미리 서울 쪽 학교로 가야겠다 생각해서 양정중으로 전학을 갔어요. 전학 징계는 코로나19 때문에 경기가 없어서 상관 없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훈련에만 매진하며 3학년을 보낸 이관우는 용산고로 향했다. 중학생 때까지 농구 실력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던 이관우는 전통의 명문 용산고의 농구를 마주하면서 좌절감을 경험했다. 스피드와 실력은 당연했고, 장점이라 생각했던 슈팅마저 다른 선수들에게 밀린다는 사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는 경기가 없었고, 2학년 때까지는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용산고에 가니까 라인업도 화려하고 잘하는 형들이 너무 많았어요. 스피드도 당연히 뒤쳐지고 장점이었던 슛도 그저 그런 선수, 오히려 부족한 선수인 것 같아서 거대한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어요. 많이 울기도 했고, 형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어요."

"해외 선수들을 상대해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어요. 한국에서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도 해외에 가면 평범해지니까 벽이 느껴진다 싶었어요. 그래도 뉴질랜드전에 키 큰 선수들 앞에서 개인 기량을 펼치고 승리했던 것이 값진 경험이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성인 돼서도 태극마크를 한 번 달아보고 싶어요."
이관우의 국제 무대 경험은 끝이 아니었다. 8월부터 열린 'NBA 국경 없는 농구캠프 2022 아시아'에 참가할 유망주 5인에 선발돼 호주로 향했고, 해외 선수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 NBA 선수 및 코치의 가르침과 호주 선수들과의 맞대결은 귀중한 경험이 되었고, 특히 3점슛 콘테스트 우승은 슈팅 자신감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U-16 때는 호주를 만나지 못했는데, 캠프에는 호주 선수들이 많았어요. 호주 선수들은 뉴질랜드나 레바논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키 큰 선수들이 농구를 잘하면서도 알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해외라서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3점슛 컨테스트 우승은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고, 해외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 같아요."
국제 대회 중간마다 어려움은 있었다. 대표팀에서 복귀한 직후 이관우는 종별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지만 준우승에 머물렀다. 대회 4연패를 노렸던 용산고는 이동근의 부상 공백을 이겨내지 못하며 삼일상고에 무릎을 꿇었고, 이관우는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겪어야 했다. NBA 국경 없는 농구 캠프 이후에도 연습 경기에서 부진하자 이관우는 농구공을 놓을 생각까지 했다.
"종별선수권 대회 때 동근이 형이 다쳐서 제가 많이 뛰었는데, 용산고가 대회 3연속 우승을 하다가 동근이 형이 다치자마자 준우승을 했어요. 대회 끝나고 학교에 가자마자 이세범 코치님 품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전국체전 가기 전에도 고려대와 연습 경기에서 너무 못해서 혼나고 출발 하루 전에 부모님께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때도 이세범 코치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이겨낼 수 있었죠."
이세범 코치의 설득에 농구공을 다시 잡은 이관우는 3학년 시즌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팀내 최고참인 3학년이자 팀의 주축 선수가 되면서 책임감은 더욱 커졌고,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전통의 강호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승이 필요했다.
하지만 첫 대회였던 춘계연맹전부터 준결승전에서 전주고에 발목을 잡히며 3위에 그쳤고, 협회장기 대회에서도 결승전에서 무룡고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이관우와 용산고는 무너지지 않았고, 이후 5개 대회를 모두 휩쓸며 이관우는 5연속 우승으로 3학년 시즌을 마쳤다.
이관우는 어려운 순간마다 손을 잡아주며 버티게 해준 이세범 코치와 많은 가르침을 준 정선규 코치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마쳤다.
"이세범 코치님이 가장 기억에 남고, 저랑 비슷한 포지션인 정선규 코치님도 기억에 남아요. 슛이 워낙 좋으시고, 저처럼 키가 작으셔서 피드백도 많이 주시고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셨어요. 특히, 슈팅에 대한 부분을 많이 알려주셨던 것 같아요. 이세범 코치님은 생활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셨어요. 게을러지지 않고 성실하게 운동하는 것을 중요시하셔서 그때 잡힌 습관들이 대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산고를 졸업한 이관우는 성균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김상준 감독과 자유로운 분위기. 이 2가지 이유는 이관우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이관우의 다음 무대는 성균관대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관우가 성균관대 입학 후 마주한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대학교에 오기 전에 김상준 감독님이 성균관대에 오면 경기를 많이 뛸 수 있고, 자유로운 농구를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처음 왔을 때에는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게 훈련이 많이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훈련도 힘들었지만 대학 훈련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형들이 워낙 잘하다 보니까 경기도 뛰지 못해서 의기소침하고 불만도 생겼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을 많이 만지며 슛에 일가견이 있었던 이관우에게 공을 만지지 못하는 시간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힘든 훈련과 적은 출전 시간은 슈팅 자신감에도 영향을 끼쳤고, 장점을 잃은 이관우를 기용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을 만지지 않는 시간이 아예 없을 정도로 공을 항상 만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오니까 2~3주 동안 공을 만지지 않고 뛰는 훈련만 하는 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고, 연습 경기 끝나고도 뛰는 훈련이 많아서 뛰는 양이 많았던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항상 영리하게 하는 플레이를 좋아하시고, 저한테 가장 기대하시는 것은 슈팅인 것 같아요. 항상 자신 있게 슛을 쏘라고 하셨는데, 1학년과 2학년 초반에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관우가 마주한 벽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크지 않은 신장과 왜소한 체격은 대학 무대에서 크나큰 약점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크게 느끼지 못했던 피지컬의 열세를 인지한 이관우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보완해 나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스스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 형들이 웨이트를 하는 것을 보니까 무게가 완전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2년 동안은 무조건 하루 1~2시간씩 웨이트를 했던 것 같고, 훈련 전에도 일찍 나가서 웨이트를 했어요. 살도 많이 찌고 웨이트 무게도 달라지면서 변화가 느껴졌고, 경기에서도 느껴졌지만 주변에서도 볼 때마다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그때 피지컬이 좋아졌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팀 내 입지를 점점 넓힌 이관우는 강성욱의 프로 진출로 3학년 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김윤세와 함께 백코트 듀오를 형성했고, 개막전부터 장점인 3점슛 능력을 맘껏 뽐내며 고려대를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관우는 3점슛 7개 포함 22점 5어시스트로 맹활약했고, 이 승리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고려대전 승리였어요. 대학에서 고려대를 꺾은 것이 처음이라 가장 행복했어요. 주변에서도 다 질 것 같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든 이기자는 생각을 했어요. 연세대는 2학년 때 승리한 적이 있는데, 3년 동안 고려대를 이겨본 적이 없어서 꼭 이기고 싶었어요. 제가 주축으로 뛰면서 처음 잡았다 보니까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개막전부터 맹활약하며 기대감을 높힌 이관우는 시즌 중반까지 50%에 가까운 3점슛 성공률을 유지하며 활약을 이어갔다. 정확한 슈팅 능력을 앞세운 이관우의 꾸준했던 득점력이 폭발한 경기는 6월 12일 명지대전이었다. 이관우는 벤치에서 출발했지만 3점슛 10개를 터뜨리며 36점을 기록, 커리어하이를 작성하며 팀의 완승(96-58)을 이끌었다.
"사실 벤치에서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살짝 좋지 않았어요. 시합을 뛰면 좋고 뛰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라 항상 시합을 뛰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코치님께서 몸을 열심히 풀고 잘 준비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준비하고 투입됐어요. 첫 3점슛은 운이라 생각했는데, 2번째부터는 감이 좋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팀 동료들도 밀어주고 감독님도 이럴 때 많이 넣어야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항상 꿈꿔왔던 3점슛 10개를 넣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절정을 찍은 개인 성적과 함께 팀 성적 역시 상위권을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던 이관우의 앞길을 막은 것은 부상이었다. 커리어하이를 작성한 직후 경기에서 바로 나온 부상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몸을 풀 때부터 좋지 않은 느낌이 있었어요. 햄스트링이 약간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수비를 하다가 뚫리다 보니까 먹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커서 점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죠. 크게 다친 느낌이 들어서 2~3개월은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살짝 나더라고요. 페이스가 좋았던 시기에 부상을 당하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크게 힘들었어요."

"이제 복귀해서 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발목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복귀한 느낌이라 후회하고 있어요. 원래 방향 전환도 좋아하고, 점프도 높진 않지만 많이 뛰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점프를 뛰는 것이 두려워서 항상 테이핑하고 운동 1시간 전에 미리 나가서 보강 운동을 하고 있어요."
부상을 이겨내며 컨디션과 경기력을 끌어올린 이관우는 성균관대의 정규리그 2위 확정을 이끌었다. 게다가 2위를 확정한 경기의 상대가 고려대였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개막전에서도 맹활약하며 고려대를 잡는 데 기여했던 이관우는 이 경기에서도 17점 6어시스트로 고려대 사냥에 앞장섰다. 고려대전 승리를 염원했던 이관우에게 2번의 승리는 큰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다른 팀보다 고려대는 항상 강팀이라 각인이 되어 있었어요. 주변에서는 다 질 것 같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든 이기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팀을 올해 2번이나 잡았다는 것 자체가 하면 된다는 생각과 이기지 못하는 팀은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것 같아요. 누가 더 열심히 하고 간절했는지가 승패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플레이오프를 앞둔 이관우는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며 프로 무대로 발걸음을 옮길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관우는 지난해에도 얼리 엔트리를 고민했다가 김상준 감독과 의논 끝에 포기한 바 있다. 이번 시즌 3점슛 성공률 47.3%를 기록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 이관우는 기량 발전에 대한 만족보다 부상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했다.
"원래 작년에 나가려고 했는데, 보여준 것도 없고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감독님도 보여준 것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내년에도 기회가 있다고 하셔서 저도 그 말에 바로 수긍했어요. 그래서 동계 때부터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아요."
"3점슛 기록은 좋지만 프로에 진출하려면 1번(포인트가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딩적인 면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그리고 부상 이후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서 50%는 만족하고 50%는 후회돼요. 부상을 당한 것이 가장 후회되고 복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무리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관우가 내세운 자신의 최대 강점은 단연 '슈팅'이었다.
"제 가장 큰 장점은 슛입니다. 2대2 플레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농구를 하면서 느린 발과 수비가 약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웨이트도 많이 하면서 보완했습니다.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점도 같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왼손잡이 가드답게 이관우가 발전을 위해 바라보고 있는 롤모델은 한호빈(서울 삼성)이다. 이관우는 왼손잡이 가드에 180대 초반의 크지 않은 신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호빈과 비슷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관우는 한호빈의 플레이 스타일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호빈 선수를 닮고 싶어요. 확 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플레이 스타일도 닮고 싶고, 저와 같은 왼손잡이 가드다 보니까 가장 닮고 싶은 선수인 것 같습니다."
"가드인데도 몸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아서 저도 프로에 진출하려면 몸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서 웨이트를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가 2명씩 뛰면서 슛이 없는 선수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슛이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게을러지지 않고 그 장점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관우는 장점인 슈팅에 관한 롤모델로는 유기상(창원 LG)를 언급했다. 데뷔 4년차임에도 KBL과 한국을 대표하는 슈터로 거듭난 유기상을 바라보며 이관우는 슈터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왼손잡이 슈터는 드물어서 딱히 닮은 선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오른손 슈터로 생각하면 (유)기상이 형을 닮고 싶어요. 용산고 선배님이신데, 한국을 대표하는 슈터다 보니까 기상이 형만큼 3점슛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이관우 역시 그 장면의 끝에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뒀다.
"일단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가 돼서 많은 시간을 소화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연차가 쌓인 이후에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3학년 때 했던 플레이를 프로에서도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했던 슈팅이나 2대2 플레이가 그대로 나올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치지 않고 경기를 뛰면서 오래오래 살아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국가대표를 한 번이라도 나가보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이관우의 최종 목표는 'KBL을 대표하는 왼손잡이 가드가 되는 것'으로 분명했다.
"왼손잡이 가드 하면 김승현 선수가 떠오르는데, 나중에는 김승현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생길 거니까 그 사람들은 김승현 선수 대신 이관우가 떠오를 수 있도록 왼손잡이 가드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관우는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와준 김상준 감독, 그리고 함께 고생한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김상준 감독님께서 3점슛 거리를 상관하지 않는 자유로운 농구를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대학교에서 가장 자유롭게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다른 팀에 갔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NBA처럼 3점슛 거리와 상관 없이 넘어오자마자 슛을 쏘는 것을 감독님은 오히려 좋아하셔서 저와 너무 잘 맞았던 것 같고, 감독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저를 케어해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형이 2명이 있다고 했었는데, 제가 운동을 하니까 형들이 피해를 본 게 많아요. 저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다 참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이제 프로에 가면 가족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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