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는 제 아들 이현중은요”

김종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01-05 0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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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18)] LA올림픽 은메달 주역 성정아(하)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는 말이 있다. 잘 자란 자녀를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2번째 NBA리거를 노리는 데이비슨대 이현중(21·201cm)의 경우가 딱 그렇다. 이현중은 나날이 늘어가는 빼어난 농구 실력으로도 주목받지만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성숙한 태도와 특유의 성실성 등으로 주변의 칭찬을 받고 있다.


이현중을 길러낸 농구선수 출신 부부 이윤환, 성정아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특히 어머니 성정아(56‧184㎝)같은 경우 선수시절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레전드라는 점에서 국가대표 출신 모자로 화제성이 높아지며 팬들의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아들 덕분에 저도 덩달아 소환되고 있어요”


이현중의 맹활약에 성정아 또한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부에서 본인의 인터뷰를 할때도 수시로 이현중을 언급하는 등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본인 얘기를 할 때 보다 아들 이야기가 나올 때 텐션이 올라갔고 내용도 많았다.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농구패밀리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다. 선수로서의 경력때문인지 자신과 아들만 너무 부각 된다는 것.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이현중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반듯한 성실 청년으로 자란데에는 부친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부부가 함께 이현중을 키워낸 것이다. 부친 또한 워낙 성실한 인물로 유명한 만큼 이현중의 현재 모습 상당수는 거기에서 기인한 바도 클 것이 분명하다. 현재 이현중이 그렇듯 현역시절 부친 역시 슈터였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이현중의 누나 이리나 역시 적지 않은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는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동생을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부모와 누나로부터 비롯된 좋은 집안 분위기가 있기에 이현중 역시 마음 편하게 농구에만 집중하는게 가능했다. 이현중의 성장일기에는 부모와 더불어 누나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 때도 승부욕이 엄청났어요”

Q.농구를 하기 전 이현중은 어떤 아이였나요?

제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이)현중이는 어릴 때 키가 별로 크지 않았어요. 지금 프로 농구보면 다들 사이즈가 얼마나 좋아요. 상당수가 어릴 때부터 장신자 장학금도 받고 그랬지만 현중이는 그런 것을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크게 주목을 못 받았고 저 역시 ‘현중이를 농구 선수로 키워야겠다’ 그런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는 않았어요. 한데 이 녀석이 어릴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농구를 좋아하더라고요. 농구를 볼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제가 어머니 농구대회 같은 곳에서 경기를 뛰면 따라와서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앉아서 보더라고요. 그때 현중이가 4~6살 당시였어요. 아장아장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닐 때라 보통은 부산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그러는 아이들이 많은데 엄마의 시선으로 봐도 현중이는 남다르더라고요. 교회에서도 그랬어요. 예배하러 가면 마지막까지 함께 했어요. 필요하다 싶은 순간,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집중력이 유난히 높았다고 생각되요.

Q.농구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같은 경우 특정팀에 빠지고 그런 경우도 많다고 하라고요.
맞아요. 이상하리만치 삼성을 좋아하더라고요. 아빠가 삼성전자 농구단, 제가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출신인 것은 맞아요. 삼성하고 인연이 깊은 선수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현중아 삼성을 응원해야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삼성의 골수팬이 되더라고요. 저희가 삼성 출신이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삼성 경기에 관심을 가져서 성향이 흡수되었는지 아니면 삼성 선수들이 멋져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워낙 어릴 때인지라 서로 기억은 희미하지만 뭔가 꽂히는 계기가 있었겠죠. 그때는 저희가 삼성에서 뛴 것도 현중이는 몰랐어요.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언젠가 호주 출신 외국인선수가 삼성생명에서 뛸 때였어요. 그때 경기장에 가서 함께 관람을 했는데 삼성이 경기에서 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본 현중이가 펑펑 우는거에요. 삼성이 지고 있다고.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저도 좀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울지 말라고 경기 끝난 것 아직 아니다고 다독거려줬죠.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집중을 하나 싶었어요. 남자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삼성이 지면 현중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거에요. 정말 삼성에서 상을 줘야 될 정도로 엄청나게 몰입하더라고요. 나중에는 본인의 승부욕 만큼 삼성이 성적이 안나니까 ‘나 이제 삼성 팬 안할거야! 다른 팀 응원할거야’라고 할 정도였어요.

 

 

“의사? 난 못해. 농구선수 할거야”

Q.보는 것 만큼 하는 것도 좋아했을 것 같아요.

그럼요. 농구에 대한 애정은 타고난 것 같아요. 아이들 어릴 때 방학이 돌아오면 어학연수겸 해서 미국, 뉴질랜드 등으로 종종 데리고 나갔어요. 당시에 딸아이를 농구를 시킬 생각이 있었던지라 길게 봐서 영어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그 부분에 치중을 많이 뒀어요. 영어만 잘해도 크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으니까요. 외국에 있다보면 쇼핑할 일이 있잖아요. 딸아이는 쇼핑을 좋아하니까 즐겁게 돌아다니는데 현중이는 쇼핑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어요. 그러한 와중에서도 공 하나만 쥐어주면 자기가 알아서 혼자 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보면 가방에 큰 공, 작은 공 등 공이 몇 개가 들어있었는지 몰라요.

Q.농구인 부모의 눈으로 봤을 때도 어릴 때부터 재능이 느껴졌나요?
현중이가 6살 때 보스턴 농구박물관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슛 이벤트 같은 것을 했어요. 저와 딸아이 그리고 현중이까지 셋이서 다 나가서 참여했죠. 저하고 딸은 떨어졌고 현중이가 자유투를 쏙쏙 잘 집어넣으며 통과를 한거에요. 아직 어려서 힘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언더슛이라고 하죠. 두손으로 밑에서부터 들어 올리듯 쏘는 것. 현중이가 그런 식으로 슛을 던졌어요. 미국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니까 어른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아…,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고 그런 시절이 아니라서 동영상 같은 것도 자유롭게 찍고 그러지 못했잖아요. 지금 같으면 잘 찍어서 추억으로 보관하고 그럴텐데 너무 아쉬워요. 제 아들이지만 정말 신통하고 귀여웠거든요.

Q.공부도 곧잘 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공부도 상당히 잘했어요. 뭔가를 가르치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게 상당히 빠르더라고요. 이래서 부모들이 ‘내 자식은 천재인가보다’하고 착각하나봐요.(웃음) 저희 부부도 농구 선수 출신이고 그때는 딸아이도 농구를 하고 있었으니 집안에 공부를 하는 사람도 하나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현중아, 너는 공부도 잘하니 나중에 의사를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니?”라고 넌지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현중이가 그러는거에요. “엄마, 나는 안돼. 의사는 맨날 앉아있어야 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리고 나는 5살 때부터 꿈이 바뀐 적이 없어. 나는 농구선수 할거야”라고 당차게 대답하는 거에요. ‘저 녀석은 농구를 시켜야겠구나’ 확신하게 됐죠.

 

 

Q.농구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인가요?
제가 조금 농구를 일찍 시작한 케이스인지라 딸아이는 살짝 속도를 늦췄어요. 공부도 시키고 이것저것 경험을 쌓게한 이후 초등학교 5학년 정도에 시켰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살짝 늦은 감도 들었어요. 사실 저는 그래도 공부를 어느 정도 잡아놓고 하는게 어떨까 싶었지만 남편이 ”이왕 시킬 것이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고 생각해보니 그게 나을 듯 싶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도 공부는 중요하죠. 그래서 현중이에게 물어봤죠. “아빠는 농구를 빨리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는데 엄마는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농구하면서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라고 했더니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곳이 수원 매산초등학교였어요. 매산초같은 경우 운동을 아주 많이 시키는 곳이 아니에요. 2~3시간 정도? 공부도 하면서 운동을 하기에 적격이다고 판단했죠. 그때가 4학년 때였어요.

"한걸음씩, 서두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Q.열정이 넘쳐서 운동 욕심을 가져갈 법도 했는데, 서두르지 않으셨어요.
기존 지도자분들의 지도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마시구요. 제 개인적인 사견입니다. 엄마로서 제 나름대로 아들에게 맞춤 성장을 시도했던 것이죠. 초등학교 때 운동을 많이 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즐기면서 하는게 딱 좋은거죠. 강제로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혹사를 하게 되면 몸에도 무리가 가고 성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공부는 반드시 시켰어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적당히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 하는 만큼 그대로 했죠. 운동 후 집에 돌아와도 밀린 진도 다 봐주고 교육 방송도 시청했어요. 공부에 대한 욕심보다는 기본적인 것은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가 컸어요.

Q.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게 어린 나이에 힘들었을텐데 잘 따라왔나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죠. 다행히도 묵묵히 따라줬어요. 공부를 해야 본인 좋아하는 농구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웃음)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어요. 운동하는 친구들 중에는 공부 자체를 낯설어 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중이는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늘 해오던 방식이니까요. 그 결과 공부도 곧잘해서 중학교도 전체 8등인가로 들어갔나 그랬을거에요. 그 뒤에도 공부 욕심도 좀 생겼는지 “엄마, 나 학원 다니면 더 잘할 수 있는데 현재는 농구가 중요하니까 이 정도만 유지할게“라고 말하는 등 양쪽 다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상당수 운동 선수들 같은 경우 시험을 보게 되면 막 대충 찍어버리고 엎드려 자고 그런 모습이 있는데 현중이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것은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Q.확실히 최근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하는 쪽이 좋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더라고요.
맞아요. 공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지식과 소양을 쌓아가면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인생이라는 것은 변수가 많잖아요. 운동선수 같은 경우 운동에만 올인하다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보통의 사람들만큼도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 몰릴 수 있어요. 저희 딸만 봐도 그래요. 중간에 농구를 그만두게 됐지만 본인이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놓으니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도 제 몫을 하고 있잖아요. 저희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저 역시 자녀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공부까지 하면 운동할 시간을 빼았긴다? 아니죠. 운동 선진국 등을 보면 학점 다 이수하면서도 프로에 가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운동선수 은퇴 후에 지도자를 꿈꾼다면 더더욱 공부를 해야죠. 지식이 있어서 좋은 지도자도 될 수 있으니까요. 그때 가서 이를 악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부하는 습관이라는 것을 어릴 때 길러놓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거든요.

 

 

Q.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영어와 가까워진 것이군요.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저 같은 경우 아이들이 운동을 마치면 바로 제 차로 픽업을 해서 데려왔어요. 하교시간을 아껴서 차 안에서 영어 테이프라도 틀어놓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줬죠. 그러다보니 영어하고도 가까워져서 나중에 미국 가서도 살짝 나은 부분도 있었고 외국 생활이나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일부 덜어줬던 것 같아요. NBA 아시아 캠프에 나갔을 때의 일이에요. 아시아 유망주들이 대거 참여했던 당시 캠프에서 현중이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어요. 그것을 지켜봤던 아시아 부회장이 현중이하고 따로 얘기가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김효범씨가 같이 있었으니까 통역을 해주려고 옆에 섰는데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질문에는 현중이가 직접 대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부회장도 깜짝 놀라며 ”너 영어도 할줄 아는구나?“하면서 더 좋게 보게 된거죠. 미리 공부해놓은 영어가 이후 꿈을 이뤄가는데 정말 큰 도움으로 작용했다고 보면 되요.

"아빠야? 감독이야?"


Q.NBA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현중이는 진작부터 외국에 나가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르잖아요. 금전적인 부담도 있고 루트도 자세히 모르고요. 그러던 차에 현중이를 좋게 봐준 아시아 부회장이 호주에 있는 NBA 글로벌 아카데미에 초대를 하면서 고민이었던 부분이 싹다 해결된거죠. 물론 호주로 유학을 갈 때까지만 해도 NBA는 여전히 멀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죠.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유망주들이 몰려들 것이며 또 경쟁은 얼마나 치열하겠어요. 하지만 국내보다 인프라가 훨씬 좋은 농구 선진국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소득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했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서 호주 캔버라대학 부속고등학교에 편입을 해서 일반 학생들처럼 정규수업을 받는거에요. 농구는 수업을 마친 후에 소화하게 되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제가 고집해온 교육관이잖아요.

 

 

Q.아버님 생각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저랑 생각이 조금 달랐어요. 유학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아니, 그럼 우리 삼일(상고)은 어쩌고? 삼일이 망가지는 것은 볼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거에요. 어이가 없었죠. 삼일상고 농구부 감독으로서 팀전력 약화에 대한 걱정은 알겠는데 감독 이전에 아빠 아닌가요. 자식의 미래가 달려있는 엄청난 기회일수도 있잖아요. 공과 사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남편의 입장도 이해는 갔지만 엄마 마음에서는 또 그게 아니죠. 서운하더라고요. “아빠야? 감독이야?”그렇게 되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렇게 잠깐 부딪혔지만 저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의 의견을 가장 먼저 중요시해요. 이후 남편이 현중이를 불러서 “너가 하고싶은게 뭐야?”라고 물었고 현중이가 “아빠 저는 외국에 가서 부딪혀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니까 그제서야 허락을 하더라고요. 현중이 의견을 존중해준 것은 고맙지만 처음 그 반응이 저는 기가막히고 웃겼어요.(웃음)

Q.대학교까지 외국에서 다닐 것으로 염두에 두고 간 것은 아니시죠?
현중이를 제가 데리고 호주에 갔는데 당시에는 그 정도까지는 예상 못했죠. 대학은 국내에서 다녀야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2월부터 12월까지 프로그램 참여하고 졸업할 때 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음 일정을 짜기로 했죠. 그리고 이틀 정도 지났는데 딸아이와 함께 호텔에 있던 저에게 현중이가 침통한 음성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나 못하겠어. 여기 친구들 피지컬도 너무 좋고 내가 못따라갈 것 같아”하면서 막 우는거에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거에요. 한국에서 자퇴처리까지 하고 와서 먼 곳으로 왔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심정이 들면서 저도 혼란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현중아, 그럼 어떻하면 좋겠니?”하고 물으니까, “엄마…, 사실은 나도 잘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힘겨움이 느껴졌어요.

"현중이의 치열한 노력이 느껴졌어요"


Q.낯선 곳에서 적응도 안되고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거기 아이들하고도 융화가 잘 안되었나 봐요. “현중아 그럼 친구들하고 밥도 같이 안먹어?”라고 물었더니, “똑같이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나 혼자 밥을 먹는 느낌이야”라고 힘없이 대답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는데 저도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저도 울고 현중이도 울고 둘이 전화기 잡고 막 같이 엉엉 울었어요. 잠시후 NBA의 유망주발전 시니어 디렉터인 박유진씨에게 전화를 했어요. “큰일났어요. 우리 현중이 어쩌죠?”“라고 하소연을 했죠. 그랬더니 박유진씨가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현중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그쪽에 연락을 해서 좀더 신경을 쓰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줬지만 그래도 엄마입장에서는 안심이 안되더라고요.

Q.걱정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당초 일정보다 더 그곳에 머무르면서 현중이 경기를 계속 보러 다녔어요. 당시 현중이는 식스맨으로 경기를 뛰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경기를 뛸 때와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일단 플레이에 너무 자신감이 없었어요. 장기인 슛팅도 별로 시도하지 않고 계속 패스만 돌리면서 리바운드한다고 돌아다니고 본인의 평소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게 확 느껴졌죠. 하도 이상해서 현중이에게 물었죠. ”현중아, 너 드리블도 할 수 있고 슛도 할 수 있는데 왜 패스만 하면서 돌아다녀?“그랬더니 ”엄마, 그냥 나한테 맡기면 안돼? 처음부터 이기적으로 할 수는 없잖아. 내가 팀플레이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봐줘“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뭐라고 그러겠어요. 알겠다고 하는 수 밖에요. 다시 생각해보니 현중이 말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Q.당시 아드님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휴우…, 적응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겠죠. 어쨌거나 당시 현중이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경기장 분위기나 동료들이 대하는 태도 등에서 여러 가지가 느껴졌어요. 인종차별 같은 것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것도 있고 현중이도 많이 얼어있기는 했어요. 영어도 공부로 하는 것하고 실전에서 부딪히는 것은 또 다르잖아요. 긴장을 하다보니 말도 잘 안들어오고 소통에서 어려움도 많았을거에요. 그러다가 사흘쯤 지났을까요. 현중이가 “엄마 걱정하지마. 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잘하고 있다는 뜻보다는 이왕 남아서 하기로 결정했는데 구태여 엄마한테 ‘나 힘들어. 못해’라고 말하는 것이 별반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위로? 위로는 되지만 안심이 되겠냐고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불안한거에요. 그 뒤로도 전화를 할때면 ”엄마 나 이제 잘하고 있어“를 비롯해서 그날 칭찬받은 것을 줄줄이 얘기하더라고요. 반신반의하면서도 좋은 일이니까 ”정말 잘됐다“하면서 조금씩 안심이 되어갔어요. 나중에 알고보니까 여전히 힘들었더라고요. 현중이가 힘들 때마다 김효범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속내를 털어놓았고 나중에는 둘이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멀리있는 엄마 걱정 안 끼치려고 애써 씩씩하게 군거죠.

Q.현지에서의 공부는 어땠나요?
농구에 대한 적응만큼이나 공부도 쉽지 않았죠. 현중이가 원래 수학은 뛰어나게 잘했어요. 거기서도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영어로 된 세계사 등 다른 과목들이죠. 영어 자체도 완전히 마스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의 과목을 배운다는 것은 누구라도 생소 했을 거에요. 어쨌거나 옆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은 계셨지만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서 농구, 공부 모두 해야 되니까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수밖에 없었겠죠.

 

 

Q.결과론이지만 잘 이겨내고 적응해 나간거죠?
시행착오도 많고 온갖 어려움도 이어졌지만 결국은 적응을 넘어 완전히 극복해서 농구도, 공부도 모두 잘했죠. 이후에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리더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호주, 아르헨티나 등 여러나라 친구들이 현중이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우리 현중이가 까칠하고 말도 없어 보이던데 여기 친구들이 다들 좋아하네?’ 잠시 의아한 마음도 들었어요. 여기에는 현중이의 노력이 정말 많이 들어갔겠죠. 처음에 그렇게 어려워하다가 리더 역할까지 했다는 사실이 제 아들인 것을 떠나서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거기에 좋은 경기력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관심도 받아서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서 NBA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불과 15개월 정도에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인터넷에서 데이비슨대를 쳐보니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만 나오더라고요”

Q.데이비슨대는 어떻게 가게된 것인가요?
많은 미국 대학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합을 뛰었는데 현중이가 엄청 잘했나봐요. 관중들도 환호하고 관계자들도 와서 악수를 청하고 그랬데요. 본래 규정상 악수를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인상적으로 봤나봐요. 그러던 중 현중이가 전화를 해서 “엄마, 미국에 데이비슨대라고 있는데 거기 감독님이 나를 좋게 본 것 같아”라고 말하는거에요. 데이비슨대? 미국에 무슨 대학이 있는지 그런 것 잘 모를 때잖아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밖에 안나오는거에요. 정보가 없으니까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지금이야 현중이가 뛰니까 데이비슨대가 유명해지고 알려지게됐지만 당시에 데이비슨대를 아는 국내 분들이 얼마나 계셨을까요. 어쨌거나 데이비슨대하고 현중이가 인연은 있었나봐요. 당시 아카데미 감독님께서도 현중이의 플레이 스타일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데이비슨대학과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주셨어요. 한술 더 떠 “만약 그곳에서 오퍼가 안오면 내가 직접 전화를 해보겠다”고 까지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데이비슨대 감독님한테 전화가 와서 “너가 우리 대학에 오고싶으면 SAT 1,000점을 넘기면 여유있게 입학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을 했나봐요. 당시 현중이 점수가 920점 정도 됐거든요. 그래가지고 현중이가 조금 더 노력해서 1,030점인가를 받아서 자격요건을 갖추게 되었어요.

Q.그럼 곧바로 데이비슨대를 선택한 것인가요?
아뇨. 곧바로 정하지는 못했어요. 어느날 현중이가 “엄마, 클레이 탐슨 알지? 탐슨이 나온 워싱턴 주립대학교에서 오퍼가 왔어”라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거에요. 현중이가 탐슨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본래는 케빈 듀란트를 동경했지만 탐슨처럼 플레이하고 싶다고 하며 많은 부분에서 롤모델같이 된거죠. 당시 워싱턴 주립대 감독님께서 다른 대학에 있을 때부터 현중이를 눈여겨봤어요. 그래서 당시 아카데미 감독님에게 “이현중을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렇다면 조금 더 레벨이 높은 대학을 맡아라. 그럼 확률이 높아진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대답이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는데 공교롭게도 워싱턴 주립대에 자리가 나서 그분이 거기로 가게 된거에요. 그리고 가자마자 바로 연락해서 현중이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신거죠.

Q.워싱턴주립대도 직접 가보셨나요?
그럼요. 조금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자리잡고 있기는 했지만 학교 자체는 상당히 크고 농구부 역시 막 감독이 바뀌어서 체계가 덜 잡힌 느낌은 들었어도 분위기도 좋았어요. 무엇보다 현중이를 강력하게 원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중이 역시 “이곳도 괜찮을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었어요.

 

 

Q.하지만 최종 선택은 데이비슨대였습니다.
그렇죠.(웃음) 이후 데이비슨대를 갔는데 농구부가 너무 정돈이 잘된거에요. 밥 맥킬롭 감독을 비롯해서 코칭스탭의 용모도 깔끔하고 이것저것 체계가 잘 잡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유스러움과 잘 짜여진 시스템이 적절하게 공존 된 곳이다는 첫인상을 받았어요. 워싱턴주립대보다 데이비슨대가 더 맘에 들었어요. 어디가 더 낫다 아니다가 아닌 개인적으로 데이비슨대에 더 호감이 간거죠. 얘기를 나누는데 감독님께서 “나는 너를 많이 혼낼 생각이다. 스테판 커리처럼 좋은 선수로 키워주겠다. 그럴 각오는 되어있다면 여기로 와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현중이에게 ‘출장시간도 보장해주겠다’는 말까지 개인적으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언제나처럼 선택은 현중이에게 맡겼고 최종적으로 데이비슨대를 다니게된거죠.

Q.데이비슨대에서는 처음부터 잘했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기복이 좀 있었죠. 현중이가 1학년 때 가족이 함께 경기를 보러 미국을 간 적이 있어요. 하필 저희가 갔을 때 현중이 컨디션이 뚝 떨어진 상태였어요. ‘어? 왜 저러지?’싶을 정도로 플레이를 잘 못하더라고요. 현중이 얼굴에서도 당황스러움이 묻어났어요. 출장시간도 조금씩 줄어들고 ‘이러다가 벤치로 밀리는 것 아니야’라는 불안감도 들더라고요. 감독님께서 현중이를 좋게 봐주시기는 했지만 원칙에 엄격하신 분이셨어요. 단순히 예쁘다고 출장시간을 더 주고 그럴 분은 아니잖아요. 훈련을 잘 따라오고 경기장에서 증명을 해야 기회를 주는 것이죠. 시합 때 실수하면 감독님께서 막 혼내고 저희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였어요. 이래저래 현중이가 너무 기가 죽어 보여서 ‘우리 아들이 저것을 어떻게 견디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저희에게는 “걱정하지 마라. 처음에는 다 시행착오가 있다. 내 아들처럼 보살피겠다. 안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다행이 저희가 돌아간 후 차츰차츰 경기력이 돌아오면서 다시 잘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다 보니까 멀리서 온 가족에게 ‘나 여기서 인정받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부담감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던 감독님이 요즘에 보면 현중이를 쳐다볼 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질 만큼 신뢰도가 엄청 높아지셨더라고요. 정말 고마우신 분이죠.

Q.단순히 기량이 좋아져서가 아닌 여러 가지 태도 등이 더해져 신뢰를 쌓게 된 것 같아요.
맞아요. 감독님께서는 원칙을 정확히 지키시는 분이고 클래식한 느낌이 강한 지도자세요. 미국 친구들 같은 경우 재능은 있지만 자유분방한 스타일도 많잖아요. 현중이는 그냥 농구 밖에 몰라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안할 때는 팀 훈련을 소화한 이후에도 혼자서 개인 훈련하고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니까 어른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수밖에 없겠죠. 미국에도 세대차이같은게 있을 것 아니에요. 그분 눈에도 현중이가 ‘요즘 아이들 같지 않네’그렇게 느껴졌지 않나 싶어요. 코로나 터졌을 때 한국에 들어와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가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온라인 수업 듣고 개인 훈련하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규제가 심하지도 않았는데요. 권장하는 시기였어요. 그러고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몸이 더 잘 만들어져서 오니까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바깥에 나갔다 돌아오면 몸이 더 망가져서 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기 전 몸 상태만 유지해도 잘한 것이죠. 현중이같은 경우는 ‘저 한국가서도 농구만 했습니다’라고 몸으로 증명한 것이니까 제가 감독이라도 엄청 예뻤을 것 같아요. 이후에는 시즌 후 한국에 간다면 “어 그래, 얼마든지 갔다와”하면서 흔쾌히 허락해주세요. 갔다 오면 오히려 더 좋은 상태로 복귀하니까요.(웃음)

Q.NBA는 언제부터 목표에 두셨나요?
사실 명확한 목표가 세워진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호주에 갈 때도 멀리 보고 간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NCAA 조차 계획에 두고 있지 않았죠. 현중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경기를 TV로 종종 봤어요. 그때마다 “엄마, 나는 골든스테이트 경기장에 직접 가서 경기 한번 보는게 소원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랬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하나씩 현실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현중이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죠. 무엇이든지 한번에 되는 것은 없잖아요. 그간 얼마나 고생했고 지금도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지라 대견한 마음이 커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현중이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Q.선수로서 뛰실 때보다 아들 경기 지켜볼 때가 더 긴장 되실 것 같아요.
맞아요. 훨씬 아주 아주 훨씬요. 선수 시절에야 긴장될 때도 있었지만 ‘에잇! 될대로 되라’라고 패기를 앞세워 덤벼들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아들 경기를 지켜볼 때는 한경기 한경기가 긴장될 때가 정말 많아요. 조금만 부진해도 ‘어? 무슨 일 있나?’싶고, 과격한 충돌이라도 나면 혹시 다칠까봐 조마조마하고요. 제가 옆에서 뛰는 동료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관여해서 도와줄 수 있는게 없잖아요. 앞서도 말했지만 저는 현중이가 NBA를 못가도 전혀 상관이 없어요. 다만 현중이가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고 지금까지 치열하게 경쟁해왔으니까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응원할 뿐이에요. 물론 한 사람의 농구인으로서는 현중이뿐 아니라 좀 더 많은 선수들이 NBA에서 뛰면서 한국농구가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엄마로서 바라볼 때는 안타까웠던 순간이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Q.적지않은 시련을 겪으면서 아들의 멘탈도 많이 강해졌을 것 같아요.
그럼요. 날로 강해지고 성숙해지고 있죠. 어떨 때는 제가 위로를 받는다니까요. 그래도 저에게는 아들인지라 늘 걱정되고 그렇지만요.(웃음) 언젠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 보이길래 “NBA 못 가면 어때? 국내로 들어와서 다시 기회를 노려보면 되지”라고 말했더니 “엄마, 끝까지 한번 해볼래. 일본 선수도 해냈잖아.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낮지만 힘 있는 음성으로 대답하더라고요. 같은 순수 동양인으로서 와타나베 유타의 NBA 입성이 많은 자극이 된 것 같았어요. 지난달에 전미 랭킹 톱10팀으로 꼽히는 앨라배마 대학과 경기를 가졌었잖아요. 워낙 강팀인지라 저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전을 벌여야 하는 현중이는 얼마나 부담이 컸겠어요. 경기 전날엔가 현중이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아들, 앨라배마 선수들은 앞으로 네가 경쟁할 NBA 선수들보다 훨씬 약하잖아. 문제없이 이길 수 있어’라고 했더니 ‘알겠어’라고 답장이 왔더라고요.

Q.슈터로서의 자질은 언제부터 보였나요?
현중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손끝 감각이 아주 좋았어요. 농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동료들이 공을 주면 쏙쏙 잘 넣었던 기억이 나요. 슈터로서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남편을 닮지 않았나 싶어요.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선수로서 대성은 못했지만 슈터로서 감각이 매우 좋았다고 들었거든요. 슈터로서의 능력치는 아빠 몫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지금이야 장신 슈터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중이는 키가 늦게 큰 케이스라 어릴 때는 작았잖아요. 그러면 다른 학부모들이 ‘어, 현중이란 학생이 잘한다고 들었는데 키는 생각보다 안 크네요?’라고 대놓고 물어보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솔직히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어요. 농구 했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보면 알아요. 키가 클지 안 클지. 대표적으로 제가 그랬잖아요. 그럴 때면 “예,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지금보다는 낫겠죠”라고 웃으면서 대답하고 말았던 기억이 나요.

Q.마지막으로 여전히 선수 성정아를 기억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간혹 팬분들을 만나면 ’열심히 했던 선수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무엇보다 그 말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수 생활 내내 제가 가슴에 품고 있던 단어이니까요. 실력이야 선수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제가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훈련하고, 열심히 경기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요. 더불어 부상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다 보니 항상 낮은 자세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은퇴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선수 생활에서 배웠던 자세적인 부분들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이제는 전 농구선수 성정아보다도 이현중 엄마로 더 유명세를 타고있는데, 엄마 입장이라서 그런지 더 감사하고 기쁘네요.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날씨까지 쌀쌀합니다. 다들 함께 기운내셔서 힘든 시기 잘 견디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램 가져봅니다.

Q.아참! 하나 더, 엄마 입장에서 아들을 응원하는 팬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현중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지면서 ’NBA 입성이 가능하다. 어렵다‘부터 순위 예측까지 팬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긍정적인 의견이든 부정적인 의견이든 모두 다 감사합니다. 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 일은 알 수 없잖아요. 현중이가 NBA를 가서 좋은 모습으로 한국농구를 알리는데 힘을 보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설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NBA를 가냐, 못가냐‘로 단정 지어 버리기에는 그동안 쌓은 노력과 과정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사람으로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팬들의 응원으로 멀리에서 아들이 더욱 힘을 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릴께요.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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