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민준구 기자]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얻어낸 성과였다. 시작부터 역경의 연속이었던 한국여자농구대표팀이 4강에 오르며 ‘농구 월드컵 티켓 획득’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은 29일 인도 벵갈루루에서 열린 2017 FIBA 여자농구 아시아컵 3·4위전에서 중국에게 로 패하며 대회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내년에 열리는 2018 스페인 여자농구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면서 우리의 목표를 이뤘다. 실제 기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전체 12명 중 8~9명이 전부였던 한국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였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3강을 형성한 호주, 일본, 중국과의 실력 차이를 체감했다. 한국도 4강의 한 축을 책임졌지만, 앞선 3팀과 우리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었다. 신장, 스피드, 슛 등 어느 것 하나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목표는 이뤘지만, 냉정하게 살피면 아시아에서도 이젠 상위권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다.
‣ 연이은 부상 악령
한국은 대회 개막 전부터 잇따른 선수들의 부상 소식에 휘청거렸다. WKBL(한국여자프로농구) 최고의 ‘돌격대장’ 박혜진과 슈터 강아정의 대회 출전이 불투명했다. 김한별은 출전이 가능했으나 뉴질랜드와의 경기 이후 모습을 감췄다. 선수들은 진통제를 맞고 출전할 의사를 밝혔으나, 서동철 감독과 전주원 코치는 남은 선수들로 대회를 진행했다.

대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국은 또 한 번 부상 소식을 들었다. 이미 대회 준비 기간 때부터 몸이 좋지 못했던 김단비가 부상이 악화되며 출전할 수 없게 됐다. 박혜진과 강아정의 부상으로 공격력에서 큰 손실을 본 한국은 주득점원이자 에이스인 김단비까지 쓰러지며 좌절했다.
결국 한국은 대회 막판에 펼쳐진 호주와 중국전에서 체력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히 중국과 치른 3·4위전에선 전반전까지 대등한 승부를 펼치다 후반에 급격히 무너졌다. 기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적어 뛰는 선수만 계속 코트에 모습을 보였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문제지만, 12명의 정원을 지혜롭게 채우지 못한 것은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 호주의 참여, 중위권으로 전락한 한국
아주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만 바라봤다. 일본과 대만은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나 지금은 전세가 역전됐다. 엄청난 지원과 좋은 인프라를 갖춘 일본은 어느새 한국을 넘어 중국까지 무너뜨렸다. 2015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은 중국을 꺾고 아시아 여자농구의 왕좌를 차지했다.

더 암울한 사실은 세계 랭킹 4위 호주가 올해부터 아시아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2차례 맞대결을 펼쳤던 한국은 평균 20.5점을 밀리며 완패했다. 단 한 번의 우위도 점해보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아시아 최강 일본도 호주에겐 한 수 접어야 했다. 물론,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100% 전력을 다하지 못했지만, 순수 실력 차이를 부정할 순 없었다. 한국은 여전히 외곽슛 위주의 공격을 벗어나지 못했고 박지수를 이용한 페인트 존 플레이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장신의 박지수에게 정확한 엔트리 패스를 줄 선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김단비와 심성영을 번갈아 가면서 포인트가드로 내세웠지만, 상대 앞 선 선수들이 철저하게 압박하며 그들을 괴롭혔다.
대회 우승은 또다시 일본이 차지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WNBA에서 활약 중인 도가시키 라무의 부재 속에서도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농구를 보였다는 것에 고무적이다. 아시아 무대에 첫 선을 보인 호주와 세대교체에 성공한 중국까지 한국이 차지할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이젠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밑바닥부터 시작할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 농구 월드컵 티켓 확보, 자라나는 새싹들의 무대 되어야
이번 대회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임영희와 박지수다. 최고참과 가장 막내인 선수가 한국의 중심을 지켜온 것. 그러나 이제 임영희의 대표팀 활약은 불가능하다. 발탁될 순 있겠지만, 더 새로운 얼굴로 대표팀을 꾸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중심엔 박지수가 있다. 박지수는 평균 10.3득점 8.2리바운드 2.2블록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아직 힘과 안정성에선 만족할 수 없지만, 만 18세의 어린 나이로 내로라하는 아시아 최고 선수들과 정면 대결을 펼쳤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박지수가 중심이라면 그 주변을 받쳐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심성영과 김소담 이었다. 두 선수 모두 대표팀 경험이 처음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중추 역할을 해줬다. 심성영은 밖에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김소담은 박지수의 옆을 지키며 장신 선수들과 적극적인 몸싸움을 벌였다. 박혜진과 강아정이 뛸 수 없었던 한국은 이들의 활약으로 4강 티켓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세대교체는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평균 연령 27세로 참가팀 중에서 호주와 함께 가장 나이가 많은 팀이었다. 중국은 25세, 일본은 24세로 한국보다 2~3살 정도가 낮다.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위해선 더 많은 신예들이 나타나야 한다. 무조건적인 세대교체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의 빠른 성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 FIBA 스페인 여자농구 월드컵 티켓을 따낸 것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4 농구 월드컵에서 한국은 신진 선수들로 구성해 출전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정예 멤버를 국내에 잔류시킨 부분도 있지만, 세계 강호와 맞붙어 본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1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철저한 준비를 통해 조화로운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 전문가들의 시선은 어땠을까?
조현일 SPOTV 해설위원
“없는 자원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농구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뒀으면 한다. 최근의 행보를 봤을 때는 일본, 중국과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우리만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은 심지어 우리보다 평균 연령이 적다.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심성영이나 김소담처럼 젊은 선수들이 위축되지 않고 제 몫을 해냈다. 박하나도 적극적인 움직임과 궂은일을 잘해줬다. 아직 반칙 관리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점점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번 대회에서 12명의 선수를 골고루 기용할 수 없었다. 이제는 시간을 두고 뛸 수 있는 선수들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회가 지날수록 선수들의 움직임이 무뎌졌다. 실력을 떠나서 체력적인 문제로 진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대교체가 필요하지만, 급하지 않아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정말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을 길게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은 전 삼성생명 코치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준비는 분명했다. 그러나 아시아 강팀과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는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에서도 분명히 경쟁력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아쉬울 뿐이다. 단순히 중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지원을 잘 한다고 실력이 늘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기와 같은 부분에서도 밀렸기 때문에 마냥 외부의 차이를 두고 말할 순 없다. 부상 선수가 많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력 차를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한다고 해도 현재 우리가 중국과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보긴 힘들다. 우리가 이제는 중국과 일본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인정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막연하게 ‘황금세대’를 기다리지 않고 장기적인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땅에 씨를 뿌리고 여유를 갖고 키워야 한다. 당장 배고프다고 땅 속에 있는 씨를 먹어선 안 된다. 농구 월드컵 티켓을 확보했다는 부분에선 낙관적이지만, 다른 모든 면에서는 반성과 그에 따른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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