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인들이 기억하는 한국 농구의 역사 '이성구'

한필상 / 기사승인 : 2017-06-21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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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신촌/한필상 기자] 모든 농구인들의 기억 속에 故이성구 선생은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었다.


때론 엄한 스승이었고, 때론 한 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선배였다. 과연 故이성구 선생의 제막식을 찾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故이성구 선생의 모습을 물어보았다.


이영복(막내아들)_가족들에게 자상한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은사님이나 스승의 모습으로 비쳐질 때가 많았다. 오히려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의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볼 수 있게 돼서 항상 죄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로서 원칙을 중시했고, 가족들에게는 밖에서처럼 인자한 부분은 조금은 인색했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최영식(휘문고 후배)_연배 차이가 많아 내가 휘문고에서 운동을 할 때는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우상과 같은 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휘문이나 연세의 농구인 이기보다 한국 농구의 역사,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김동욱(농구협회 부회장)_한 마디로 고집 쎄신 분이라고 말 하고 싶다. 선생께서 체육부장으로 계실 때 잠시 불러서 연세대를 지도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행정적인 것 외에서는 농구에 미쳤던 사람 중에 한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희택(연세대 제자)_선생님을 떠올리면 자상하시면서도 자율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훈련을 할 때도 두 가지 전술을 가지고 양 팀으로 나눠 해 보신 뒤에 어떤 전술이 더 괜찮냐고 물어 보신 일도 있었고, 대회 출전도 선수들의 의사에 맡기실 때도 있었다.


정주현(농구인 후배)_친 부모 같은 분이었다. 제일은행 감독 시절에 매일 같이 댁에서 청량리에 있던 제일은행 숙소로 오셔서 기술적으로나 도움을 주셨고, 내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어서 나에게는 친 부모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강병건(이성구기념사업회 회장)_이성구 선생 하면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부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제자나 후배들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많이 노력을 하셨다. 농구에서도 그리고 인격적으로도 정도를 걷게 하는 것이 그분이 생각하셨던 길이었다.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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