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박혜진으로부터 “지나가는 개가 부러웠다”는 명언을 남긴 우리은행의 여수 전지훈련. 선수들은 모두 “지금껏 받아본 훈련 중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여자농구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2-2013시즌 보여준 우리은행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말이다. 필자 역시 지금도 과학적,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시즌이었다. 어떻게 지난 시즌까지 단골 꼴찌를 하던 팀이 특별한 멤버 보강 없이 통합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는지 말이다.
임영희, 양지희, 박혜진, 이승아 등 선수들은 지난 시즌과 차이가 없었다. 외국선수 티나 탐슨을 선발했다고 하지만, 우리은행은 탐슨이 합류하기 전 2라운드까지도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비시즌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대체 우리은행은 비시즌 어떤 훈련을 했기에 한 시즌 만에 전혀 다른 팀으로 바뀐 것일까?
그 ‘훈련’의 출발점은 바로 매년 진행하는 여수 전지훈련이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 부임 후 매년 여수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시즌도 15일부터 27일까지 2주간 여수에서 땀을 흘린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다. 대체 우리은행은 여수에서 뭘 하고 오는 것일까?
▲타 팀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훈련방식
점프볼 취재진이 찾은 날은 18일 오후 3시. 여수에 위치한 흥국체육관이었다. 오전에 트랙훈련을 한 선수들의 오후 일과는 체육관 훈련이었다.
“먼 길 오셨습니다.”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박성배 코치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얼마 전 WNBA로 외국선수를 보러 다녀온 위 감독은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됐다며, 안색이 좋지 못 했다. 오랜 시간 선수들과 씨름을 해야 하는 탓에 코칭스태프 역시 지쳐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먼 곳에서 매년 전지훈련을 하는 이유는 뭔가요?” 필자의 질문에 위 감독은 “여수가 먹거리가 좋아요. 다른 곳보다 훈련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전지훈련을 위해 사전답사를 하는 우리은행이 여수를 전지훈련지로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체육관과 트랙훈련, 웨이트트레이닝장이 모두 있고, 산악훈련도 할 수 있는데다, 숙소 근처에 맛 좋은 식당도 많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을 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땀을 흘렸다. 줄지어 달리며 공을 백보드에 맞추면, 다음 선수가 잡고 다시 백보드에 맞추는 식으로 몸을 풀었다. 처음엔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달리는 거리가 코트 끝으로 점점 멀어졌다. 거리가 늘어나니 숨이 가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은행의 훈련은 독특했다. 다른 팀들이 흔히 하는 훈련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갑자기 스태프들이 코트 양 쪽에 종이컵을 두기 시작했다. 왜일까? 셔틀런 훈련을 위해서였다. 코트를 왕복해서 달리는 셔틀런 훈련은 선수들이 끝까지 가지 않고 그 근처까지 가 발을 찍고 오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선수들이 보다 확실한 훈련을 하도록 바닥에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종이컵 5개씩을 올려놓은 것. 선수들은 종이컵을 집어 다른 쪽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다보니 정확하게 지점까지 가야 했고, 종이컵을 옮기면서 허리를 낮게 숙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자세를 잡아주며 훈련효과를 낼 수 있는 것.
이날은 하체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선수들은 양 쪽 다리에 밴드를 차고 코트를 계속해서 왕복했다. 손으로 코트 바닥을 찍으며 사이드 스텝을 하는 훈련으로 코트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보고만 있어도 허리가 저려 왔다. 일반적으로 다른 팀에서 하는 훈련보다 2배 이상의 강도였다.
위성우 감독은 선수들의 자세를 강조했다. 형식적으로 하는 훈련은 의미가 없었다. 실제 경기를 치를 때의 자세를 꾸준히 유지하며 몸에 배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2번이나 설명을 해줬는데도 숙지를 못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위 감독은 적극적으로 시범을 보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몸싸움 훈련도 특이했다. 선수들이 몸을 기대어 밀면서 걷는가 하면 한 선수가 황소처럼 돌진해 4명의 선수와 부딪히는 훈련도 이어졌다. 양지희가 돌진할 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은퇴한 강영숙까지 있었다면 더 볼만할 듯 했다.
뒤이어 1:1 드리블 훈련과 3인 속공 훈련이 진행됐다. 드리블 없이 패스만으로 속공을 성공시켜야 했다.
훈련 강도가 높은 것은 물론 시간도 길었다. 오후 3시 시작한 훈련이 7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보통 야간에 하는 슈팅 훈련까지 오후에 소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체력의 끝을 맛본 트랙훈련
다음 날 오전은 웨이트트레이닝과 트랙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여수의 태양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이제 완연한 여름의 느낌이 물씬 났다.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여수 망마경기장. 트랙이 있는 운동장과 웨이트트레이닝룸이 모두 있어 훈련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선수들은 본 훈련 전 코어 운동을 하며 복부, 하체 근육을 단련했다.
본격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이 실시됐다. 선수들은 여러 운동기구를 들며 몸을 단련했다. 박언주, 박혜진 자매는 130kg에 달하는 역기를 들며 스쿼트 훈련을 해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건장한 일반 남성도 들기 힘든 무게였다.
이날 훈련의 백미(?)는 트랙훈련이었다. 박혜진도 가장 힘든 훈련으로 이 트랙 훈련을 꼽았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선수들은 피부보호를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트랙에 나왔다.
처음엔 트랙 10바퀴. 4000m였다. 3바퀴쯤 돌 때부터 선수 그룹이 나뉘었다. 김단비가 가장 앞선 가운데, 이은혜, 박혜진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후 이은혜가 치고 나가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이은혜는 우리은행의 ‘체력왕’으로 유명하다. 트랙훈련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이은혜는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1위로 들어왔다. 기록은 16분 55초. 유일한 16분대 기록이었다. 2위는 박혜진으로 17분 8초, 김단비가 17분 16초로 3위였다.
뒤이어 나머지 선수들도 차례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선수가 들어오자,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출발선에 모였다. 다시 출발! 이번엔 5바퀴였다.
이번에도 이은혜가 1등으로 들어왔고, 박혜진은 2등이었다. 마지막 선수가 들어오자, 또 다시 트랙을 뛰었다. 이번엔 3바퀴.
단골 꼴찌는 신인 이수경이었다. 이수경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고 곧바로 출발을 해야 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취재진 입장에서는 가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수경은 끝까지 트랙훈련을 완주하는 근성을 보였다.
또 1바퀴, 또 1바퀴. 우리은행 선수들은 이날 총 20바퀴를 뛰었다. 8km에 달하는 거리였다. 그렇다고 천천히 뛸 수도 없었다. 평균치보다 기록이 떨어질 경우, 또 다시 뛰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빠른 스피드로 완주했다.
이은혜는 모든 트랙훈련에서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체력왕’다운 모습을 보였다. 기록이 떨어지면 한 바퀴 더라는 말에 최고참 임영희의 등을 밀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양지희는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선수들과 차이 없는 체력을 보였다. 위성우 감독은 “WKBL 센터 중에서 양지희가 가장 잘 뛸 것이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양지희도 “매년 기록이 좋아지고 있다. 처음엔 20분이 넘게 걸렸는데, 올 해는 17분대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훈련이 끝난 후 선수들은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훈련의 강도는 혹독했다. 우리은행의 강인한 체력이 바로 이 여수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성우 감독은 “어떤 사람은 왜 농구선수가 트랙을 뛰냐고 묻기도 하는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힘든 훈련을 하며 인내심을 키우는 것이다”며 훈련의 의의를 설명했다.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4번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우리은행이지만, 승리에 대한 굶주림은 여전히 다른 팀들보다 더 간절해 보였다.
그들이 경기장에서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비시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흘린 그들의 굵은 땀방울이 이번 시즌 코트 위에서 플레이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사진 -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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