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용호 기자] 지난 2019년 6월 1일, 농구계 모든 시선이 원주 DB에게 꽂혔다. 앞서 문을 닫았던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역대 최고 보수로 김종규를 영입한 DB가 전주 KCC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김민구를 영입한 것. 2019-2020시즌 중 상무에서 두경민이 전역 예정이었던 DB는 대학리그를 호령했던 경희대 3인방을 단숨에 모았다. 2013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2,3순위를 휩쓸었던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 영광의 시절을 보냈던 세 절친은 농구인생에 있어 누구나 받을 수 없는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면 프로농구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들의 그때 그 시절은 어땠을까. 늘 든든했던 트리오의 기둥인 김종규와 추억 여행을 떠나봤다(본 인터뷰는 지난 2월경에 진행됐습니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우승이 익숙했던 대학리그 최강자
2010년 대학농구리그 출범 이후 리그를 호령했던 학교는 두 곳이다. 오세근, 김선형 등의 호화 멤버로 52연승 대기록을 남겼던 중앙대, 그리고 만만치 않은 40연승을 달리며 쌍두마차를 이뤘던 경희대. 당시 경희대에서 트리오를 이뤘던 김종규, 두경민, 김민구는 대학리그 4년 동안 93.9%(77승 5패)라는 엄청난 통산 승률을 남겼다.
어마어마했던 결과를 낳았던 세 선수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2010년으로 시계를 돌린 김종규는 “민구와 저는 중, 고등학생 때 학교가 같은 경기도라 항상 맞붙었던 친구였어요. 굉장히 농구를 잘하는 선수였는데, 그래서 제가 민구네 학교(삼일상고)를 한 번도 못 이겼었죠(웃음). 매번 지면서 저 친구랑 같이 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같은 대학을 가게 된 거에요. 경민이는 대학에서 처음 만나게 됐는데, 첫 만남부터 체력에서 나오는 활동량과 슛이 정말 뛰어난 친구라는 걸 단번에 느꼈죠. 말도 많은 친구였고요. 하하.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셋이 함께 경희대에 입학하면서 세간의 기대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라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했다.
각자 다른 학교에서 모여든 세 선수는 경기를 거듭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대학리그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친구들을 바라본 김종규는 “민구, 경민이와 뛰면서 분명 느낀 게 있었어요. 1학년 때만 해도 저희는 신입생이었고, 중앙대는 (오)세근이 형, (김)선형이 형 등 훨씬 더 좋은 멤버 구성이었는데 대등하게 경기를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2학년 때부터는 이 무대의 주인공이 우리가 될 거란 자신감이 생겼던 거죠. 덕분에 저희 대학 시절 승률이 90%가 넘잖아요”라고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2학년 때 우승을 하고 나서는 이젠 정말 우리가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는 팀이 됐다는 걸 느꼈어요. 매 경기 때마다 분위기로 압도하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라고 3인방의 호흡이 완성된 순간을 짚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이 부터 왕관을 쓰는 자리에 올랐던 걸까. 김종규는 이후 3,4학년 시절을 자신의 정체기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그때 성장에 있어서 약간의 멈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좋은 멤버들과 저학년일 때부터 우승을 하다 보니 분명 목표를 이루기는 한 건데, 개인적인 발전에 있어 둔함을 느꼈던 거죠. 그렇다고 해서 경희대 훈련이 절대 쉽지도 않아요(웃음). 제가 개인적으로 실력을 더 갈고 닦았어야 했는데 후회스러운 면도 있어요. 그때는 그게 티가 안 났었는데, 프로에서 고전하면서 뒤를 돌아보기도 했었죠”라고 자신을 돌아봤다.

그렇다면 김종규가 꼽는 대학 시절 최고의 우승은 언제였을까. 그의 시선은 3학년 때였던 2012년 MBC배 대회에 꽂혔다. “그때도 저희가 압도적으로 우승을 할 거란 평가를 받았을 때에요. 근데 제가 조별 예선에서 점프를 뛰고 내려오다가 정말 심한 발목 부상을 당한 거죠. 그때 다치고 들었던 생각은 ‘결승전만 뛰자’라는 거였어요. 어떻게든 빨리 회복하려고 그 때 일주일 동안 트레이너 누나가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면서 저를 도와줬어요. 밤새 아이싱을 갈아줬거든요. 덕분에 고려대와의 결승전을 뛸 수 있었죠. 풀타임에 가깝게 뛰었는데 우승을 하고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 번도 우승하고 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 자신과 싸워서 이긴 느낌이었어요. 우승도 좋지만 뭔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냈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김종규의 말이다.
이쯤 되니 김종규에게만 경희대 시절 이야기를 듣기는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인터뷰 당시 김종규를 구경(?)하던 두경민, 김민구에게도 최고의 우승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두경민은 “우승은 항상 좋았죠. 저는 아직까지도 모든 우승하는 과정들을 다 기억해요”라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김민구는 완장의 무게감 때문인지 모든 순간, 모든 날이 다 좋았던 모양이다. 김민구는 “우승할 때는 다 좋았죠. 근데 우승을 많이 하다보니까 주변에서 ‘당연히 경희대가 우승하겠지’라는 시선도 있었어요. 사실 저희는 나름대로 긴장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매 경기 이길 때마다 ‘아, 오늘도 이겼다. 다행이다’라고 한숨을 돌렸던 것 같아요. 부담이 그만큼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그 때 정말 힘들었는데…
밖에서 경희대 3인방을 바라보기엔 그저 영광의 시간이 누렸던 최강자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 영광의 순간들을 수차례 만들어내기 위해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이 있었던 것. 일단 김종규는 자신들이 이뤄낸 업적에 다시 한 번 자랑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경희대에 가면 운동부들이 가져온 우승기들을 나열해 놓는 곳이 있어요. 경희대 체육부 역사가 70년 정도 됐는데, 신입생 때는 우승기가 한쪽 벽면만 채워져 있었거든요. 근데 저희가 4년 만에 우승기를 다른 한쪽 면에 더 채웠어요. 하하. 나가면 이겼으니까요. 그런 거보면 대학리그 연승 기록을 깨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워요. 저희가 1학년 때 40연승까지 했었는데, 그 연승을 멈춘 게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중앙대였거든요. 하필 또 저희 홈이었어요.”
실력도 워낙 출중했지만, 그 많은 우승의 뒤에는 분명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터. 김종규에게 경희대 훈련 이야기를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에서 처음 나왔던 단어는 ‘대만 전지훈련’.
김종규는 “경희대에 악명 높기로 소문난 것 중 하나가 대만 전지훈련이에요. 일단 하루 스케줄을 말씀드리면, 5시 30분에 일어나서 운동하러 나갈 준비를 하면 6시가 돼요. 그 때부터 7시 30분까지 새벽 훈련을 합니다. 8시 쯤 아침을 먹죠. 그리고 9시 30분에 오전 훈련을 나가요. 그러면 12시 30분 정도가 되니 1시에 점심을 먹고요. 이 때 잠깐 쉴 수가 있어요. 오후 훈련은 3시 30분부터 시작되는데 3시간 정도 훈련을 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이제 야간 훈련을 해야죠(웃음). 8~10시까지 운동을 하고 나면 그제서야 하루가 끝났었어요. 새벽-오전-오후-야간, 이 스케줄을 두 달 동안 반복해요.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하루를 제대로 쉬지 않았다는 거죠. (최부영) 감독님이 가끔 쉬게 해주셔도 하루 4번 운동 중에 한두 번을 빼주시는 거지 하루를 통째로 쉰 적은 없어요”라고 생생하게 극기 훈련을 소개했다.
이어 “운동량은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진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것 같기도 해요. 그 두 달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면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눈물의 대만이었단다. “선수들 모두 한 번씩은 울어봤을걸요”라며 말을 이어간 김종규는 “대만 전지훈련을 가면 선수들이 다 한 번씩은 위기가 왔었어요. 너무 힘들고 지치니까요. 아! 훈련 외에 또 하나가 있었어요. 최 감독님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경기 내용에 대한 레포트를 써오라고 하셨었어요. 정말 흔히들 아는 대학 레포트 형식으로요. 아니면,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 미리 어떻게 경기를 할 건지 레포트를 쓰기도 했죠. 이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네요(웃음). 저희 팀에는 ‘노력도’라는 수치도 있었는데, 이걸 전지훈련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체크했었어요. 다들 노력은 하는데, 얼마나 더 열정을 보이는가를 체크하는 거죠. 그래서 새벽 운동이 5시 30분에 시작인데, 더 노력하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4시에 일어나서 체육관에 나갔던 기억이 나요”라며 추억에 푹 잠겼다.
극한의 상황에 처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이들이 이겨내지 못할 상황도 없었다. 이에 김종규는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이제 어딜 가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강인해져서 졸업을 한 거죠. 그 때 전지훈련을 갔다 올 때마다 선수들끼리 서로 이 정도면 군 면제 시켜줘야 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어요”라고 말했다.

※ 3인방의 이야기는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 사진_ 홍기웅 기자,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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