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선수 드래프트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23번 열렸다.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는 870명(드래프트 현장에 참석한 인원 기준)이며 이 중 495명이 뽑혔다. 한 때 드래프트가 끝난 뒤 수련선수를 뽑기도 했고, 2군 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한 선수가 있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인원은 500명을 훌쩍 넘는다.
프로 입단은 또 다른 시작이다.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은 기존 선수보다 더 나은 기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학창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던 선수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꾸준하게 자기 기량을 발전시키는 성실함도 필수 조건이다.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 중 그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를 뽑는다면 윤원상과 곽정훈, 오재현이다. 여기에 이준희도 눈 여겨봐야 한다.

윤원상(180.9cm, G)은 올해 초만 해도 로터리픽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렇지만, 1차와 2차 대회로 열린 대학농구리그에서 부진해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빠르면 1라운드 중반, 늦으면 2라운드 이후까지 밀릴 수도 있다고 한다.
윤원상의 부진 조짐은 프로와 연습경기부터 나타났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고양 오리온과 단국대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윤원상이 대학 입학 후 그렇게 부진한 걸 처음 봤다. 윤원상은 “손등 부상을 당해서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부상도 원인이겠지만, 3학년 때와 역할이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대학농구리그에서 평균 27.3점을 올린 윤원상은 공격에서 중심이었다. 곁에는 울산 무룡고 후배였던 박재민이 수비 등 궂은일을 도맡았다.
올해는 달랐다. 중앙대에서 단국대로 편입한 조종민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서자 윤원상이 볼을 가진 시간이 대폭 줄었다. 부상까지 당해 조종민과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 대학농구리그에선 발바닥에 티눈이 있어 정상적인 몸 상태도 아니었다. 윤원상은 1차 대회가 끝나자마자 티눈 제거 수술을 받았다.
대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프로에서 고전하는 가드들을 보면 슛이 불안한 경우가 많다. 윤원상은 대학농구리그에서 매년 평균 2.0개 이상 3점슛을 성공했고, 4년 평균 2.55개의 3점슛을 넣었다. 올해 대학농구리그에서 득점(12.3점)이 대단히 부진했지만, 눈 여겨볼 대목은 어시스트다. 평균 7.7개로 1차 대회 예선 기준으론 공동 3위다.
더구나 한 고교 선수는 “단국대와 연습경기 할 때마다 윤원상 선수가 정말 대학 최고 가드임에도 항상 팀에 맞춰주고, 잘 하는 선수들이라면 있기 마련인 어깨에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며 “팀 운동할 때도 진짜 죽기살기로, 이 악물고 하는 걸 보고 그걸 본받아서 몸 풀 때나 운동할 때 그 형처럼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실력을 떠나서 마음가짐이 되게 좋기 때문에 그 형을 롤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대학 4학년 때 반짝 활약을 본 뒤 선수를 뽑았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기도 한다. 윤원상은 반대로 4학년 때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부진했다. 윤원상이 가진 최고 무기는 지난해 대학농구리그에서 27.3점을 올린 공격력이 아니라 고교 선수가 반할 정도의 성실함이다. 이 때문에 프로에서도 부족한 게 있다면 이를 충분히 채울 자질이 있는 건 분명하다.

상명대는 올해 12개 남자 대학 중 최약체 중 하나였다. 대학농구리그 1차 대회에서 조선대와 함께 편성되자 조선대를 이길 수 있을지 걱정까지 했다. 상명대는 결선진출을 넘어 팀 창단 최초로 4강 무대까지 밟는 돌풍을 일으켰다. 1차 대회에서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듯 2차 대회에서도 결선 토너먼트에 올랐다. 팀 정원은 8명이었지만, 두 대회 모두 가용인원은 6명이었다. 코트에 나선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 이상을 발휘했다. 만약 곽정훈이 없었다면 상명대는 결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곽정훈은 1차 대회에서 평균 31.2점 12.0리바운드 3점슛 3.0개를 기록했다. 2010년 대학농구리그 출범 후 MBC배 대학농구리그, 농구대잔치, 대학농구리그 3개 대회에서 이런 기록을 남긴 선수는 아무도 없다. 곽정훈은 2차 대회에서 부진했다고 해도 평균 18.5점 10.0리바운드(3점슛 2.3개)로 최소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곽정훈은 2018년 9월 조선대와 경기에서 손목 골절 부상을 당한 바 있다. 이 때 오히려 곽정훈이 팀 내에서 인정받는 슈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곽정훈이 부상으로 빠지자 펄펄 날아다닌 선수가 김성민(LG)이다. 김성민은 2016년 상명대에 입학하자마자 대학농구리그에서 평균 17.6점 3점슛 평균 2.6개를 넣었던 득점원이었다. 2학년 때 부상 때문에 고전했던 김성민은 3학년 때 간혹 득점에서 두각을 나타내곤 했지만, 오히려 수비나 궂은일에 좀 더 치중하는 듯 했다. 곽정훈이 빠지자 다시 제자리를 찾은 김성민은 3점슛을 중심으로 득점을 책임졌다. 곽정훈의 부상 전 8경기에서 평균 13.9점 3점슛 2.2개를 성공했던 김성민은 곽정훈이 부상당한 후 6경기에서 23.5점 3점슛 4.2개를 기록했다. 슈팅 능력이 있는 선배 김성민이, 더구나 1년 이른 드래프트 참가를 앞두고 있음에도 후배 곽정훈에게 슈터 자리를 내줬다.
이번 드래프트 참가자 중에서 박지원, 이우석, 차민석이 빅3를 형성한 가운데 양준우, 한승희, 박진철 등이 남은 로터리픽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대학 감독들도 이와 비슷한 예상을 했다. 다만, 한 대학 감독은 “곽정훈은 작년과 또 달랐다. 화려한 플레이나 득점이 많은 것보다 예를 들면 공격 리바운드 할 때 꼭 곽정훈이 보였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적극성을 되게 좋게 봤다”고 곽정훈을 올해 대학농구리그에서 가장 두드러진 선수로 지목한 뒤 이번 드래프트 로터리픽 후보로까지 꼽았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이 아프다며 훈련에 자주 빠지는 걸 아쉬워한다. 물론 몸이 좋지 않을 때 쉬는 게 정답이다. 다만, 이를 악용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수들은 당연히 성장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상명대 고승진 감독은 “몸 관리를 이렇게 잘 하는 선수는 처음 본다. 몸이 조금 안 좋으면 병원 가서 진료를 받고 사우나를 한 뒤에 훈련을 참가한다. 어떻게든 훈련을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곽정훈의 훈련 태도를 높이 샀다.
곽정훈은 슈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아직 부족한 점은 있지만,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속공의 제일 앞선을 달리며 리바운드 가담도 적극적이다.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곽정훈은 여기에 성실하다. 프로에서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한양대 3학년인 오재현은 1년 빨리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사실 오재현이 드래프트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의외였다. 이미 이근휘가 드래프트 참가를 확정한 상태였다. 더구나 오재현은 3년 전 한양대 입학 당시를 떠올리면 이렇게 빨리 드래프트에 나올 선수가 아니었다.
경복고 시절 오재현은 서정현, 정호영, 양재민 등 동기들이 일찌감치 어느 대학이든 합격할 수 있는 기록을 만들어놓고 주말리그 왕중왕전에 출전하지 않았을 때 후배들을 이끌며 고군분투했다. 한양대에 입학할 때도 쟁쟁했던 동기들에 비하면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오재현은 그럼에도 1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코트를 밟았다. 한양대 정재훈 감독이 오재현을 출전시킨 이유는 단 하나,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선수들에겐 학년과 상관없이 출전 기회를 주는 게 정재훈 감독이 팀을 이끄는 철학 중 하나다. 그에 가장 부합했던 선수가 오재현인 것이다.
오재현은 2018 대학농구리그에서 자유투 성공률 51.7%(15/29)를 기록했다. 2개 중 하나만 넣었다. 물론 2018년 마지막 두 경기에서 7개의 자유투를 모두 성공했다. 그렇지만, 2019년 들어서도 초반 4경기에서 25.0%(2/8)로 시도 자체가 적었다고 해도 자유투 감각이 좋지 않았다. 오재현은 부상을 당해 잠깐 휴식을 가졌는데 5월 복귀한 이후 자유투 성공률을 84.3%(43/51)로 끌어올렸다. 올해 대학농구리그에선 94.15(16/17)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했다.
오재현은 2018년과 2019년 대학농구리그 모두 3점슛 8개를 시도해 1개만 넣어 성공률 12.5%(1/8)를 기록했다. 돌파 중심의 경기를 펼쳐 3점슛 시도가 적고, 성공률도 낮았다. 지난 2월 전라남도 여수에서 만났던 오재현은 “슛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동계훈련 동안 슛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 결과는 올해 열린 대학농구리그에서 35.7%(5/14)로 증명했다.
어릴 때부터 대표팀에 뽑히는 등 최고의 길을 걷어온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오재현처럼 부족한 걸 하나씩 채워나가는 선수는 프로에서 실패할 확률이 적다. 오재현의 가치가 올해 대학농구리그 개최 이후 오른 것도 이런 성장하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오재현에서 이 기사를 마치려고 했다. 그렇지만, 생각을 해보면 이준희까지 언급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오재현을 높이 평가하는 건 좋은 신체 조건을 갖추고 점점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준희를 한 번 생각해보자. 올해 드래프트에서 박지원과 이우석이 굉장히 빨리 뽑힐 것으로 예상된다. 두 선수 모두 190cm 이상의 장신 가드다. 박지원과 이우석을 뽑지 못하는 팀은 이들이 프로에서 활약하는 내내 190cm 이상의 가드가 없다면 미스 매치를 걱정해야 한다. 이들보다 1~2살 어리고, 신장 192.5cm에 스피드가 있는 가드가 이준희다.
이준희는 올해 대학농구리그에 출전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학농구리그에서 16경기 평균 13분 46초 뛰었다. 가드진이 풍부했던 중앙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건 4월 22일과 30일, 성균관대와 경희대를 상대로 27점과 21점을 올렸을 때다. 대학에서 아직까지 검증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스카우트들은 최소한 1년 정도 더 대학에서 기량을 선보인 뒤 프로에 도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드래프트에선 확실한 순위를 내기 힘들다. 팀 사정과 선수의 어떤 부분을 높이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지명 순위가 달라진다.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면 3순위 이내 지명이 유력한 박지원과 이우석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라는 이유만으로도 탐이 날 뿐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면 분명 더 잘 할 수 있다는 잠재능력을 보여줬다.
이준희의 단점은 오른쪽 돌파가 많고 3점슛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준희는 지난해 대학농구리그에서 3점슛 성공률 13.0%(3/23)를 기록했다. 이준희는 앞서 언급한 오재현이 2년 동안 던진 3점슛보다 더 많이 시도했고, 성공률은 대동소이하다. 더 던졌다는 게 중요하다.
KBL은 올해부터 드래프트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컴바인에서 80kg 맥스 벤치 프레스를 측정했다. 이준희는 10회로 전체 선수 중 공동 4위다. 지난 6월 이준희와 전화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준희는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3월 학교에서 나와서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시는 (홍성홍) 선생님과 몸을 만들며 체력 운동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이 컴바인에서 나타났다. 오재현도 1년 만에 3점슛 성공률을 향상시켰다. 한 살 어린 이준희는 구단의 관리 하에 1년 동안 슈팅 훈련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근거다.
이준희는 지난 9월 통화에서는 “한 달 반 가량은 슛을 가장 중점적으로 배웠다. 처음에는 40~50% 가량을 집중했다. 밸런스가 잡히면 제 스스로 반복 연습했다”며 “공식대회에 나간 게 아니라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성공률을 지표로 보여줄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슛폼이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하는데 부드러워지고 타이밍도 빨라졌다. 실전처럼 훈련하는 3대3, 5대5 훈련에서도 (슛이 좋아진 게) 나타난다. 슛 훈련을 많이 하니까 자신감이 좋아졌다”고 슛을 많이 보완했다고 자신했다.
오재현은 대학무대에서 검증을 받았고, 이 때문에 가치가 많이 올랐다. 이준희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1살 어리고 신장이 더 큰 이준희를 오재현과 함께 놓고 고민하는 게 맞다.
윤원상과 곽정훈, 오재현, 이준희가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뒤 지명 순위 이상의 가치를 발휘할지, 아니면 이 글 자체가 민망해질지는 3년 즈음 지난 뒤 밝혀질 것이다.
#사진_ 점프볼 DB(홍기웅, 유용우 기자)
점프볼 / 이재범 기자 sinae@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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