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현승섭 객원기자] 박지원-박지현 남매가 노리는 ‘남매 동반 신인선수상’ 고지에 하은주-하승진 남매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
부산 KT는 11월 23일 KBL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연세대 박지원(190.8cm, G)을 지명했다. 장신 가드인 박지원은 슈팅력은 부족하나 훌륭한 신체조건,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KT는 연세대 3년 선후배 사이인 허훈과 박지원이 코트 안팎에서 만들어낼 상승효과도 기대할만했다.
드래프트 이후 박지원을 지켜본 KT 서동철 감독은 “배우려는 자세가 좋은 선수다. 패스 감각도 좋다. 슈팅력이 부족하지만, 본인이 노력하고 있으니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라며 박지원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박지원은 데뷔전인 5일 울산 현대모비스 전에서 서동철 감독과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지원은 이날 경기에서 8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박지원은 신인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돌파에 이은 과감한 레이업슛을 성공하며 단숨에 이목을 끌었다. 포지션 대비 큰 키를 활용한 수비도 합격점을 받았다. 박지원은 3경기 평균 20분 43초를 뛰며 6.3득점 3.3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12월 14일 기준)
한 달 전만 해도 이번 시즌 KBL 신인 선수들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라는 혹평을 들었다. 그러나 박지원은 첫 경기에서 농구관계자들에게 항변하듯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서울 SK 오재현 또한 8일 안양 KGC인삼공사 전에서 2018-2019시즌 신인왕인 변준형을 여러 차례 막으며 수비력을 과시했다. 실전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박지원의 활약은 드래프트 동기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었다. 원주 DB 이용우는 데뷔전인 7일 전주 KCC와의 맞대결에서 3점슛 2개 포함 6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용우는 8일 본지 인터뷰를 통해 이용우는 “박지원은 확실히 잘한다. 신인상 경쟁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며 박지원의 기량을 인정하면서도 신인선수상 경쟁에 참여하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현재 신인상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박지원. 그의 동생인 박지현(아산 우리은행)은 2년 전에 신인선수상을 받았다.
21개 구슬 중 단 한 개, 우리은행은 2018-2019시즌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확률 4.8%를 뚫고 박지현을 영입했다. 박지현은 183cm라는 큰 키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숭의여고 시절부터 여자농구의 미래로 주목을 받았다.
박지현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듯 빠르게 WKBL 무대에 적응했다. 데뷔 시즌인 2018-2019시즌에 15경기 평균 8득점, 3.7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박지현은 기자단 투표 101표 중 96표를 얻어 부산 BNK(당시 OK저축은행) 이소희를 따돌리고 2018-2019시즌 최고의 신인 자리에 올랐다.
현재 WKBL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박지현은 유망주 딱지를 일찌감치 떼고 W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박지현은 약점이었던 3점슛까지 단기간에 보완하며 2라운드 종료 후 생애 첫 라운드 MVP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박지현은 이번 시즌 13경기 평균 18.5득점 12리바운드 3.8어시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다. (※2020년 12월 15일 기준)
만약 박지원이 신인선수상을 거머쥔다면 남매가 신인선수상을 수상했다는 진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신’기록이 아니라 ‘진’기록일까? 이미 십여 년 전에 각각 신인상을 받은 남매가 있었다. 바로 국내 농구 역사상 최장신 남매인 `하남매`, 하은주와 하승진이다.

먼저 신인선수상을 받은 사람은 누나 하은주였다. 2007년 3월 20일, 하은주는 2007 WKBL 겨울리그 종료 후 73표 중 67표를 얻어 신인왕 자리에 올랐다. 1984년생인 하은주의 당시 나이는 만 23세. 하은주는 “신인에 해당하는 나이가 아닌데 받아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노력하겠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하은주는 굴곡진 농구 인생을 이겨내고 한국 무대에 복귀했다. 하은주는 중학생 때 무릎 연골이 닳아버리는 큰 부상을 입었다. 선일여자중학교는 농구를 그만두려는 하은주에게 “국내에서 농구를 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요구했고, 하은주는 각서를 쓰고 농구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농구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하은주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며 몸을 회복한 하은주는 2003년 샹송화장품에 입단했다. 당시 일본여자농구리그(WJBL)에는 외국 선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입단 전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스카이’라는 별명을 얻은 하은주는 데뷔 시즌인 2003-2004시즌에 21경기 평균 9.6득점 4.4리바운드 1.5블록슛을 기록했다. 선발 출장은 2회에 불과했지만, 벤치에서 나올 때마다 202cm라는 신장을 십분 활용해 골밑을 장악했다. 하은주는 2004년 3월 4일에 WJBL 신인선수상을 거머쥐었다.
2006년 2월, 하은주는 WNBA LA 스팍스와 2년 계약을 성사했다. 그러나 소속팀 샹송화장품이 하은주의 미국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계약 파문으로 샹송화장품과 결별한 하은주는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하은주는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WKBL 문을 두드렸다. ‘하은주 쟁탈전’에서 승리한 신한은행이 하은주와 FA 계약(연봉 1억2천만 원, 5년)을 맺었다.
같은 해에 정선민, 하은주를 영입한 신한은행은 ‘레알 신한’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17승 3패로 정규리그 1위에 오른 신한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신세계(2-0)와 삼성생명(3-2)을 차례대로 꺾고 6연패의 첫 단추를 끼웠다.
하은주는 WKBL 데뷔 시즌에 정규리그 15경기 평균 11분 49초 동안 5.8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5경기 평균 21분 40초 동안 14.6득점(2점슛 성공률 76.7%, 33/43) 4.8리바운드로 괴력을 자랑했다. 출전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공중에서 잡으면 한 골’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활약을 인정받은 하은주는 생애 ‘두 번째’ 신인상을 받았다.

누나 하은주보다 한 살 어린 하승진은 2009년에 신인상을 받았다. 2009년 5월 6일, 하승진은 기자단 총 투표수 80표 가운데 59표를 얻어 김민수(서울 SK, 21표)를 제치고 2008-2009 시즌 가장 뛰어난 신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하승진은 “부족한데도 나를 믿고 경기에 계속 투입해 준 허재 감독님께 감사하다. 같이 경쟁한 드래프트 동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특히,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팀의 분위기를 바꾸고 우승까지 하게 해준 (강)병현이가 신인왕이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하승진은 삼일중 시절부터 2m가 넘는 큰 키로 관심이 끌었다. 삼일상고로 진학한 하승진은 1년 선배 양희종(안양 KGC인삼공사), 박구영(울산 현대모비스 코치)과 함께 전승, 전관왕을 달성하며 ‘무적삼일’이라는 명성을 드높였다. 하승진은 큰 키를 영리하게 활용했고, ‘당시에는’ 꽤 정확한 자유투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승진은 연세대 예비 1학년 자격으로 2003 농구대잔치에 나선 방성윤, 양희종, 김태술과 함께 우승을 일궜다. 이후 하승진은 2004년 6월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6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지명됐다.
※ 연세대는 하승진에게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으면 조건 없이 NBA 진출’을 약속했다.
※ 2004 NBA 드래프트 명단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많다. 이 중 드와이트 하워드(1순위, LA 레이커스), 안드레 이궈달라(9순위, 마이애미 히트), 트레버 아리자(44순위, 오클라호마 썬더)가 현역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KBL을 거친 에메카 오카포(2순위), 故 안드레 에밋(36순위)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하승진은 미국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포틀랜드에서 두 시즌 동안 총 46경기, 평균 6.9분 출전, 1.5득점, 1.5리바운드만 기록했다. 2005-2006 시즌 종료 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된 하승진은 그해 9월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D리그(현 G리그) 팀인 애너하임 아스널에서 한 시즌을 보낸 하승진은 2007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당시 트레이드
포틀랜드 got : 자말 매글로어
밀워키 got : 스티브 블레이크, 브라이언 스키너, 하승진
※ 하승진은 2005년 4월 20일, 2004-2005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LA 레이커스 전에서 23분 33초 동안 13득점 5리바운드 1스틸을 기록했다.
NBA에서 오래 버티지는 못했지만, KBL 각 팀은 하승진에게 높은 관심을 보냈다. 그리고 2008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가 25% 확률을 이겨내고 하승진을 손에 넣었다. 허재 감독의 ‘복(福)코 전설’과 2006-2007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명가 재건의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KCC는 불협화음에 시달렸다. 하승진 입단 후 포지션 중복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든 서장훈과 KCC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KCC는 서장훈을 신인드래프트 전체 20순위인 김태환과 함께 전자랜드로 보냈다. 전자랜드는 신인 강병현(전체 4순위, 창원 LG)과 조우현, 정선규를 KCC에 내줬다.
트레이드 결과는 대성공. 트레이드로 팀 분위기를 바꾼 KCC는 임재현, 추승균 등 베테랑과 하승진, 신명호, 강병현 등 젊은 선수들이 신구조화를 이뤘다. KCC는 플레이이오프에서 전자랜드(3-2), 원주 동부(3-2), 서울 삼성(4-3)을 힘겹게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하승진은 느린 공수전환, 부정확한 자유투(성공률 45%)라는 약점을 갖고 있었지만, 골밑에선 위력적인 ‘기둥’이었다. 하승진은 정규경기 46경기, 평균 22분 동안 10.4득점(2점슛 성공률 65.3%) 8.2리바운드 1.3블록슛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기록은 더 좋았다. 17경기 평균 29분 22초를 소화한 하승진은 16.3득점 9.1리바운드 1.1블록슛이라는 빼어난 기록을 남겼다. KCC를 다시 일으킨 하승진은 누나가 신인선수상을 받은 지 2년 만에 신인선수상을 받았다. 이렇게 ‘신인선수상 남매’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하남매’의 남매 동반 신인선수상은 왜 잊혔을까?
하은주는 일본, 하승진은 미국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이 둘이 국내 리그에 데뷔했을 때 신인이라는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인선수상은 MVP와 비교했을 때 덜 주목받는다. 10년 이상 지난 이 시점에 '하남매'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박지원의 1순위 지명 여부도 망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20 KBL 드래프트 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박지원의 1순위 호명 가능성이었다. 박지원이 첫 번째로 불린다면 한국 농구 역사상 최초로 ‘1순위 남매’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초 1순위 남매’라는 타이틀 때문에 ‘최초’ 남매 동반 신인선수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유추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1순위로 차민석을 지명했고, 박지원이 신인선수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남매 동반 신인선수상 최초 사례는 아니다. 그렇지만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인기 감소로 스타 발굴에 목을 매는 KBL, WKBL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과연 박지원은 신인선수상 유력 후보다운 면모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15일 전자랜드 전에서 박지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_유용우 기자, WKBL 제공, 박상혁 기자, 홍기웅 기자
점프볼 / 현승섭 기자 julianmint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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