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대한체육회 vs 국방부, 김영기 놓고 줄다리기

기자 / 기사승인 : 2022-06-16 21: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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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㉙
▲국제군인농구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한 김영기(왼쪽).

김영기는 국제용 선수였던 것 같다. 국내 경기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지만 국제무대를 밟으면 물 만난 고기처럼 코트를 누볐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경쟁력을 확인한 김영기는 2년 뒤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국제군인체육위원회(CISM) 주최 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1958년은 도쿄에서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해였다. 두 대회가 같은 시기에 열리는 바람에 모두 참가할 수는 없었다. 김영기는 이 시기에 공군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계군인선수권대회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에서는 국가를 대표해서 경쟁하는 대회에 김영기가 꼭 참가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계군인선수권대회 참가를 반대했다. 나중에는 김영기 뿐 아니라 군 복무중인 대표급 선수는 모두 아시안게임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는 백남정과 이종환 등이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김영기는 마지막까지 논란거리였던 모양이다. 조선일보의 1958년 5월 7일자 3면에 ‘색연필’이라는 문패 아래 관계기사가 보인다.


…몸뚱이는 한 개 뿐인데 같은 시기에 일본과 프랑스의 두 곳에서 개최되는 각각 다른 농구대회에 참가해야 하게 된 선수가 생겨서 화제. 한 군데는 오는 24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농구참가)이고 또 한 군데는 오는 26일부터 프랑스 니스에서 개최되는 국제군인농구대회로서 여기에 얘깃거리가 된 주인공은 공군 소속의 김영기 선수라는 것. 내용인즉 대한체육회에서는 전 국민의 대표선수로서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야만 된다고 하고 국방부 측에서는 군인선수로서 군인농구대회에 참가해야겠다고 해서 국방부에서는 김영기 선수에 대한 국제군인농구대회 원정여권 수속을 하고 대한체육회 측에서는 아시아경기대회 원정여권 수속을 하고 있으니 걱정.…

김영기에게는 군인대표팀과 국가대표 팀에서 모두 유니폼을 지급했다. 외무부의 여권도 두 팀 소속으로 각각 발급되었다.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라는 대한체육회의 요구는 끈질겼다.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대한체육회와 각을 세우고 대립했다. 김영기는 이때 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갈채와의 밀어』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아시아의 작은 올림픽’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그 쪽이 더 권위 있는 대회였고, 기술도 더 배워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 나가면 견문을 넓힐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김영기가 저울질을 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고, 논란은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 나가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김춘배, 김영수, 조병현, 백남정, 이종환, 조영호 등 군인대표 팀의 주력 선수들이 도쿄에 가게 됐다. 김영기는 천상희, 김동하, 강현성, 박남희, 문현장, 이경우, 김영원 등과 함께 프랑스로 갔다. 코치는 이상훈이었다.

김영기는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1958년 4월 20일,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같은 해 4월 25일에 출발했다고 『갈채와의 밀어』에 기록했다. 한데 조선일보의 1958년 5월 15일자 2면에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선수단과 세계군인선수권대회 참가선수단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이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경기대회(1958년 5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도쿄에서 열렸다. 아시아 20개국이 참가하였으며 참가 선수의 수는 1820명이다.)에 참가하는 울; 선수단은 5월 13일 밤 현지에 도착하였다. 일본까지는 하루 일정이므로 같은 날 출발했다고 보아야 정확하다. 세계군인선수권대회 참가선수단은 20일에 출발했다. 김영기가 참가한 세계군인선수권대회는 ‘국제군인체육위원회 주최 농구선수권대회’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 여러 곳에서 기억에 의존한 진술을 하는데, 상당 부분 정확하지만 이번 사례처럼 부정확한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다.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는 다음과 같다.

…우리 選手團 20日에 出發, 國際軍人籠球戰
국군농구선수단 일행 15명은 단장 이백림(李伯林) 대령 인솔 아래 오는 26일부터 불란서 니스 시에서 국제군인체육위원회 주최로 개최되는 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20일 장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참가국은 미국, 불란서(프랑스), 벨쥼(벨기에), 스페인, 이란, 화란(네덜란드), 한국 등 7개국이라 한다. (괄호 안은 필자 주)…

조선일보는 참가국이 7개국이라고 보도했지만 터키를 빠뜨렸다. 이 대목은 동아일보의 5월 17일자 3면 보도가 정확하다. 당시 동아일보 지면은 터키를 토이기(土耳其)라고 음역해 표기했다. 필자는 2022년 6월 16일 현재까지 국제군인체육위원회 주최 농구선수권대회의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 국내에는 대회 관련 기록이 없거나 남지 않은 것 같다. 국제군인체육연맹(International Military Sports Council)의 홈페이지도 당시의 기록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이 대회를 당시 우리 언론이 동행 취재한 것 같지 않다. 관련 기사는 ‘UPI=동양’ 통신을 거쳐 보도되었다. 보도 횟수도 많지 않다. 대회 참가 예정(조선일보 4월 16일자 2면), 출발 기사(조선일보, 동아일보), 폐막 기사(조선일보 6월 3일자 2면, 경향신문 6월 4일자 3면), 귀국 기사(조선일보 6월 13일자 2면) 등이 눈에 띈다.

1958년 국제군인체육위원회 주최 농구선수권대회의 내용은 김영기의 기록에 의존해 대강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에서 경기 진행방식과 우리 대표 팀의 승패 및 경기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 대회는 A, B조로 참가팀을 나눠 조별리그를 하고 그 성적을 토대로 순위 결정전을 했다. A조에서는 미국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B조에서는 대한민국 이란 터키 네덜란드가 순위를 다투었다. 대한민국은 첫 경기에서 터키에 1점차(김영기는 ‘반 골’이라고 표현했다-필자 주)로 졌다. 김영기는 “타임아웃 몇 초를 남겨 놓고 귀중한 자유투를 둘이나 얻은 내가 전부 실패하여 터키 팀에 지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튿날 열린 2차전에서는 이란을 ‘열 골에 가까운 스코어 차로’ 물리쳤다. 다음 상대인 네덜란드에도 ‘다섯 골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다. 조별리그를 마친 김영기는 “세계의 농구 수준으로 보아 우리들의 실력이 낮은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에도 좋은 성적을 얻고 보니 코치도 놀랐고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여기 김영기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다.

…결국 A조의 미국, 벨기에와 함께 B조에서는 한국과 터키가 결승전(결승 토너먼트를 뜻하는 듯하다-필자 주)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전에 진출한 우리는 첫 번 경기를 미국과 치르게 되었다. 과연 미국의 농구는 놀라웠다. 리바운드를 거의 빼앗기다시피 하는 우리 팀은 악전고투 끝에 여섯 골 반(15점)의 스코어 차로 지고 말았다. 한편 B조의 터키는 벨기에에 참패를 당했다. 미국과 벨기에가 1, 2위 결승전을 벌이기 직전에 한국과 터키는 3, 4위 결승전을 벌이게 되었다. 예선전에 분패하였던 우리니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터키를 이기고 싶었다. 결과는 네 골을 이기는 설욕전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3위를 차지했다. 한편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4위에 입상했다는 소식이었다. 나중에 귀국해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중계 방송하던 모 아나운서가 “지금, 스코어는 바로 45대40! 우리 한국 팀, 지금 5점을 리드당하고 있습니다. 아아, 이 자리에 불란서의 군인대회에 참가한 김영기 선수만 있었던들, 우리는 가볍게 이길 수 있는 게임인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의 6월 4일자 3면에 대회 폐막 기사가 보인다. 미국이 2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벨기에를 76:48로 크게 이기고 우승했다는 소식과 한국이 3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한 종합순위를 알려주고 있다. 1위 미국, 2위 벨기에, 3위 대한민국, 4위 터키, 5위 프랑스, 6위 스페인, 7위 이란, 8위 네덜란드. 같은 지면에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단 1진이 노스웨스트항공을 이용해 3일 오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리라는 예고 기사도 실렸다. 국제군인체육위원회 주최 농구선수권대회를 마친 우리 선수단은 주최 측에서 베푸는 관광길에 나섰다. 칸, 모나코를 거쳐 파리까지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그해 12월. 경향신문은 23일자 4면에 ‘성좌’(별자리)라는 간판을 내건 스타 선수 소개 지면을 통해 김영기를 사진과 함께 크게 소개했다. 제목은 ‘아시아의 명인(名人)’이었다.

…비약에 비약을 거듭, 아시아 제일을 자타가 공인하게 된 우리 농구계에 혜성과도 같이 나타난 선수가 공군 팀의 김영기 군. 23세가 되는 그는 농구선수 생활 불과 6년 만에 한국 구계(球界)뿐만 아니라 전(全) 아시아에서 명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변화무쌍한 그의 푸트워크는 비연(飛燕)과도 같다. 김 군이 일단 볼을 치면 적 수비진을 뚫고 들어갈 때 아시아의 어느 나라 선수도 감히 막아낼 자는 없다. 전후좌우 문자 그대로 자유자재이다. 지난번 대만에서의 4국(한국, 중국, 필리핀, 일본) 농구 리그 때에 그가 보여준 기량. 매 게임마다 무인지경을 가는 듯 당장(當場)에 모였던 각국 코치와 국제농구계의 권위들로부터 ‘동양의 명인’이라고 이름 불렸던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를 따를 자 없을지도 모른다.”고 극언, 김 군을 찬양한 외국 권위도 있었으니 그의 농구 기(技)야말로 궁극에 이른 것이리라. 배재고교 때 말없고 너무나도 평범했던 농구선수 김 군. 그는 고대에 들어가자 천분의 소질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약관 19세로 당당 학생군 선발팀의 주력이 되었던 것이다. 3년 전 이미 한국의 올림픽 선수로 멜버른에 원정했으며 금년 5월에는 프랑스 니스에서의 세계군인대회에서 활약, 그리고 대만 원정. 이렇게 김 군은 우리의 호프로서 바삐 국제무대에 파견되었다. “입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폼, 무엇인지 모르게 다른 선수는 추종할 수 없을 것 같은 몸가짐”이라고 사계(斯界)의 지도자들을 경탄케 하는 그는 앞으로 전 세계의 명인, 즉 ‘미스터 바스켓볼’의 칭호를 미국선수로부터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케 한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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