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육각형 가드를 향해, 단국대 김재욱 "대학 와서도 운동이 1순위예요"

윤소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06-15 20: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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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윤소현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루키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일곱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단국대 김재욱(182cm, G)’이다.

#소년로그

김재욱은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던 쾌활한 아이였다. 그 중에 축구를 먼저 접했지만, 어린 나이에 덥고 추운 날씨가 싫증이 나 운동을 멈췄다. 아버지가 농구를 권유했을 때도 흥미가 없었지만 우연히 동네에서 농구 경기를 보았고, 공이 림을 통과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축구를 했어요. 그런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1년 정도 운동을 쉬면서 또래 친구들처럼 놀고 먹기만 했더니 살이 많이 쪘어요. 부모님께서 답답하셨는지 농구를 권유하셨는데, 그때는 골대도 높고 손으로 하는 운동이 어색해 보여서 싫다고 했죠. 그러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농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공이 그물을 가르는 소리가 너무 짜릿하게 들리는 거예요. 그 순간 '어? 농구도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물 소리’의 쾌감에 공감하지 못할 이는 드물다. 공이 림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짧은 소리는 때로 경기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할 만큼 강렬한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 힘은 한 소년의 운명을 바꾸기에도 충분했다.

 

축구를 할 때와는 달리 그는 매일같이 코트를 찾았다. 유소년 클럽에 보내달라며 부모님을 직접 설득할 정도로 농구에 푹 빠졌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선수의 꿈도 분명해졌다. 그렇게 김재욱의 발걸음은 휘문중을 향했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여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1학년 때는 코로나가 겹쳤고, 2학년 때는 (이)제원이 형(성균관대), (김)범찬이 형(중앙대)을 필두로 3학년 형들이 엄청 잘했어서 많이 못 뛰었어요. 3학년 올라가서 주장도 맡았는데, 하필 무릎을 다쳐서 고생했어요. 그래서 휘문고 동계훈련 합류도 늦었죠.”


부상을 뒤로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휘문고에 진학했지만, 부상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늦게 합류한 동계훈련을 일주일 치르자마자 내전근이 찢어졌다. 복귀는 다시 4월로 미뤄졌다. 그러나 대회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개인 운동하다가 발목이 돌아갔다. 1학년의 반이 그렇게 날아갔다. 3학년이 빠지고 1,2학년 위주로 치르는 추계대회, 이제는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훈련했지만, 가장 큰 부상을 당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손목을 크게 다쳤어요. 손목이 제대로 꺾이지 않아서 슛도 던질 수 없었죠.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병실에 누워 있는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1년을 통째로 날렸는데, 다시 건강하게 농구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잖아요. 그때는 '이제 그만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세 차례의 부상과 재활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수술대에까지 올라야 했던 손목 부상은 남아 있던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그렇게 좋아했던 농구가 처음으로 하기 싫어졌다. 자신감을 잃은 채 병실 천장만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김재욱에게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현주엽 전 감독의 휘문고 부임이었다.
 

"프로 감독을 하시다가 저희 학교로 오신다고 해서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수술 후 쉬고 있을 때 직접 찾아뵙고 회복하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손목을 다치면 후유증 때문에 한동안 상체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그래도 농구공만 못 만질 뿐 하체는 멀쩡했으니까, 친구들이 훈련하거나 경기할 때 밖에서 혼자 뛰면서 감독님께서 시키시는 건 뭐든 열심히 했어요. 현주엽 감독님과 장상욱 코치님께서도 '부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열심히 준비하라'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큰 힘을 얻었죠."

 

Turning point.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다. 바닥난 열정을 채울 원동력을 찾은 김재욱은 하루에 세 번씩 재활 운동을 나갔다. 몸은 빠르게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고, 부상도 더 이상 당하지 않았다.
 

2학년 때부터는 원 없이 대회에 나섰다. 이는 휘문고의 선수층이 얇은 탓도 있었다. 유일한 가드 포지션으로 코트를 40분 내내 지켰던 김재욱은, 3학년 왕중왕전 대회에서 더 큰 짐을 지게 됐다. 박준성(연세대)의 부상이었다.

“3학년 내내 5명이 모든 게임을 뛰었어요. 5대5 훈련은커녕 3대3도 6명이 있어야 되니까 개인 훈련 위주로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왕중왕전에서 준성이가 다쳤어요. 준성이가 리바운드 비중이 높았는데, 상대도 높이가 좋은 제물포고였어요. 1학년 선수들도 뛰어야 하니까 제가 어떻게든 팀을 이끌어야 했어요. 저도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그 때 식중독에 걸렸는데, 40분 다 뛰고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인데 예선 탈락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서 이 악물고 뛰었더니, 슛이 던지는 대로 다 들어갔어요. 8강 상대로 경복고를 만나버려서 바로 졌지만(웃음), 팀 상황이 안 좋았을 때 주장으로서 잘 했던 경기라 기억에 남아요.”

그날 기록은 29점 2리바운드, 팀 점수의 3분의 1을 홀로 책임졌다. 부상에 주저앉지 않았던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한 선수가 됐고, 이제는 다음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학농구능력시험

김재욱은 고등학교 3학년 내내 3점슛을 경기당 2.6개를 집어넣은 기록을 바탕으로, 슛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 자신감이 반영되어 1등급을 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팅은, 손목 부상 이후 장착된 무기다. 그는 슈팅 말고도 공격에서 자신이 있다며 전반적인 공격 능력을 2등급으로 매겼다.

“우연치 않게 손목 다치고 나서 슛이 좋아졌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던지면 다 에어볼이었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정말 터닝 포인트네요. 수술하고 3개월동안 공 한번 못 만지고 있어서 복귀했을 때 슛폼 교정을 받았어요. 그 때부터 다 들어갔어요. 2학년 왕중왕전 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으로 3점 8개를 넣었던 게 기억이 나요. 돌파, 아이솔레이션도 자신 있어요.” 


대학 무대에서는 과도기를 겪기도 했다. 연습 경기에서 슛을 다 놓친 나머지 ‘슛 잘 넣는다고 했는데 왜 못 넣어’라는 석승호 감독의 장난 섞인 꾸중도 들었다. 그러나 슈팅보다는, 단국대 농구에 녹아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40분 내내 모든 공격을 책임져야 했던 고등학교 때와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슈팅은 원래 자신 있는 부분이라 안 들어간다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지금은 단국대의 활동량 많은 농구에 적응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격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패스 타이밍에도 공을 오래 잡는 습관이 남아 있더라고요. 오프 더 볼 움직임도 부족한 편이고요. 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텐션 차이가 큰데,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그런 부분을 많이 지적해 주시고 세심하게 가르쳐주고 계세요."

반면, 체력에서는 5등급을 줬다. 김재욱은 체력은 다른 부분의 기반이 된다고 하며, 체력이 부족하니까 들어갈 슛도 안 들어가고 시야도 좁아지는 것 같아 보완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단국대에 진학 후 뛰는 훈련을 많이 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서 단국대의 어마어마한 활동량의 이유가 드러났다.

“체육관이 엄청 크잖아요. 계단도 많은데, 체육관을 뛰는 훈련을 엄청 많이 해요. 사실 겁을 먹고 들어왔는데, 어디를 가든 힘들텐데 버티자는 마음으로 적응했어요.”

#대학로그

김재욱은 대학 무대의 기록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그의 기억에 남은 경기는 동국대전(3월 27일), 고려대전(4월 30일)이다. 20분 이상의 출전시간을 가져갔다.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피지컬이었다. 자신이 있는 부분이었지만, 선배들과의 대결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동근, 유민수 형 같은 포워드들 말고도 같은 포지션인 석준휘, 양종윤 형들한테도 피지컬이 밀렸어요. 그 때 웨이트도 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거 같아요. 저는 웨이트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 이후 6월 2일 연세대와의 경기, 김재욱은 32분 20초 출전하며 8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최영상과 매치하며 승부욕도 드러냈고, 이를 뛰어난 활동량으로 표출하며 연세대와의 접전을 이끌었다. 중계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선배들의 부상으로 받은 기회였지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김)태영이 형이 부상으로 빠졌는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절 믿어 주셨어요. 사실 대학 첫 주전으로 나간 경기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돌아보니까 잘했던 건 생각 안 나고 아쉬운 점만 생각나네요. 이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뒷심이 부족해서 졌는데 다음에는 이길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아요."
 

한편 단국대 체육관은 U-리그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고, 학생들도 많이 찾는다. 서포터즈도 즐거운 관람을 위해 응원가를 틀고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김재욱에게도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시끌벅적한 경기장이 새로운 활력소로 다가왔다. 첫 축제도 새로운 경험이 됐다.

“홈 경기에 학우들이 엄청 많이 와서, 뭐가 다른 지 궁금했는데 프로 경기 응원가도 나오고 이벤트도 많고 하니까 신기했어요. 다른 학교는 그렇게 안 하기도 하잖아요. ‘내가 대학리그에 왔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축제는 안 가려고 했는데 형들이 1학년 때는 꼭 가보라고 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엄청 재밌었어요.”

축제 이후 기억을 더듬던 김재욱은 생각나는 게 없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그 뒤로 이어진 대답에는 운동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운동이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새벽 운동을 하고, 수업 직전에도 운동하러 갈 정도라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기억인데, 연습경기가 겹쳐서 입학식도 못 갔어요. 대신 체육관 앞에 있는 곰 마스코트랑 사진만 찍고 바로 돌아왔죠. 그때는 '왜 곰이 있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유니폼에도 곰이 있더라고요. MT도 결국 못 갔고요. 운동이 힘들면 적당히 풀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아쉬웠던 대학생활도 차차 채워가면 된다. 최강민(현대모비스)의 뒤를 이을 슈터로 주목받고 있는 그는 팀을 든든히 받쳐주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이제는 고등학교 때처럼 제가 해결 안 해도 잘하는 형들이 많기 때문에 팀원들을 살려주는 플레이를 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 있는 슛으로 득점하는 팀이 필요로 하는 가드가 되고 싶어요!"

 

농구공을 놓으려 했던 고등학교 1학년과, 꾸준히 출전 기회를 받는 대학교 1학년은 출발부터 달랐다. 인터뷰 내내 드러난 성실함과 꾸준함을 바탕으로, 끝 없는 성장을 이루어 낼 김재욱의 모습을 기대한다.

 

#사진_점프볼DB, 김재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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