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10피트 높이에 걸린 꿈

기자 / 기사승인 : 2021-04-26 16: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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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연기가 오르듯 먼지가 피어오르더니 소년이 말을 타고 달려오더라.”


소년은 날듯이 말 잔등에서 뛰어내렸다. 한 팔에 농구공을 끼고 있었다. 조상들, 아니면 어른들 가운데 누군가는 비슷한 자세로 독수리나 매를 다루었을 것이다. 사방이 트인 광야 한복판이었다. 거기 농구대가 있었다. 함석이나 양철로 만든 백보드는 절반이나 녹슬었다. 그래도 림이 반듯하게 자리 잡았다. 그물을 꿰면 어엿한 바스켓의 모습을 갖출 것 같았다. 소년은 거기서 농구를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또래 소년 몇이 더 왔다. 그들도 말을 타고 지평선 어디에선가 달려와 사뿐히 내려섰다. 길게 인사할 것도 없었다. 말없이 가슴께로 공을 던지면 곧 농구가 시작됐다. 그게 인사였다. 황량한 가운데 가끔 먼지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정해둔 점수 내기를 한 다음, 소년들은 올 때의 모습 그대로 떠났다. 꿈을 꾸었을까. 그런 상상을 할 만큼 신비롭게 시간이 흘러갔다.

1997년 9월. 몽골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임 아무개 선배가 사진 한 장을 툭 던졌다. 내 생각을 해서, 나에게 주려고 찍었다고 했다. 들판에 선 농구 골대. 사진만 봐서는 농구골대가 선 곳이 어디인지 알기 어려웠다. 한강둔치 어디라고 해도, 학생이 줄어 문을 닫은 시골학교 교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임 선배는 몽골의 국립공원 테를지를 여행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110㎞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해발 1300m의 대초원. 바람이 불 때마다 풀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임 선배는 “바람이 실어오는 것은 하늘”이라고 중앙일보에 썼다. “밤이면 하늘에서 별이 빨갛게 쏟아진다.”고 했다. 북극이나 에베레스트 같은 극지 탐험 취재가 전문인, 그러므로 그 자신이 모험가일 수밖에 없는 임 선배가 아무도 없는 몽골의 광야에서 후배를 생각해 주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그는 지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다.

임 선배가 몽골에서 사진을 찍을 무렵, 나는 어느 농구 잡지에 실을 칼럼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잡지는 우리나라 농구 미디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좋을, 수준 높은 스포츠 잡지였다. 나는 그 잡지에 농구의 매력과 미덕을 설명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무슨 글이든 쓰려면 실마리를 잡기 위해 방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저것 주절주절 늘어놓을 거리는 잔뜩 마련했지만 어느 쪽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임 선배의 사진을 받은 다음, 몽골의 초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나치게 먼 곳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농구 연감의 속표지를 장식한 사진 한 장에 매혹되었다.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1993년에 낸 공식 기록집이었다. 포탈라 궁이 멀리 보이는 티베트의 어느 장소에선가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소녀들이 농구골대를 향해 슛을 날리고 있었다. 그 사진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가 어떤 문장으로 칼럼을 써나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때 내 글을 모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글이 내 생각의 조각들이며,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내 생각의 작은 조각들도 모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쓴 칼럼은 내가 보관하고 있는 글 무리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때 내가 칼럼을 쓰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자, 틀림없이 칼럼의 어느 구석엔가 남았을 글의 소재인 사진들은 여전히 나의 서재 한곳에 잘 정리되어 있다. 당시 내 칼럼을 게재한 잡지사에 문의하면 되지 않느냐고? 안됐지만 그 잡지사는 망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잡지가 있지만 결코 같은 잡지는 아니다. 나는 농구전문잡지인 점프볼을 비롯한 스포츠전문지를 발간하는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전문잡지란 사업은 결코 수지를 맞출 수 없다.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는 한 뼈를 깎고 영혼을 갈아 넣는 발간작업을 장구한 시간 동안 계속하기 어렵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래에서 위를 향해 찍었다.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은 대부분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다. 농구는 그런 스포츠다. 조감(鳥瞰)할 수 없다. 상승의 스포츠이며 공간의 스포츠이고 도약의 스포츠다. 농구의 골은 지상에 있지 않다. 다른 스포츠 종목, 예를 들어 축구나 럭비에서 골대는 대지 위에 우뚝 선 거대한 관문이다. 허공에서 공을 다루는 배구는 지상에 그어 둔 테두리 안에서 승부를 겨룬다. 야구에서는 타격을 하거나 4구를 얻거나 공에 몸을 맞고 나간 주자가 5각형의 홈베이스를 통과해야 점수가 난다. 그러므로 야구도 대지에 뿌리를 깊이 박은 운동경기다. 골프는 아예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떨어뜨려야 한다. 하지만 농구는 허공에, 하늘과 땅 사이에 골이 있다. 공이 위에서 아래로 골을 통과해야 점수가 난다. 농구 경기의 골을 ‘바스켓’이라고 한다. 1891년 12월에 캐나다 출신 미국인 제임스 네이스미스(1861~1939)가 농구 경기를 고안하면서, 복숭아 수확용 바구니를 10피트(약 3m5㎝) 높이의 체육관 발코니에 걸어 놓고 거기 공을 던져 넣게 한 데서 유래한다.

지금도 변함없는 10피트 높이에 걸린 바스켓. ‘림(Rim)’이라고 불리는 골의 테두리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하면서도 아련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을 갖게 된다. 10피트는 마치 농구가 가진 어떤 소망,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을 ‘드림팀’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꿈의 팀’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패해 동메달에 그친 미국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팀이다.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같은 슈퍼스타들이 한 팀에서 뛰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그 후 프로선수가 주축을 이룬 미국 팀을 곧잘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1992년의 팀 외에는 진짜 드림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이 다 안다. 진짜 드림팀이든 아니든 한국농구가 미국농구를 이기는 일은 체 게바라가 말한 것과 같은 ‘불가능한 꿈’일지 모른다. 체가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갖자.”고 했을 때의 꿈은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일 것이다. 체의 꿈은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마쳤다.

그러나 한국 농구, 아니 한국 스포츠의 꿈이 비극적인 종말을 선고받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언젠가’에 걸고 싶다. 지난 4월 24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독일농구 프로A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인터넷 중계로 보았다. 프로A는 분데스리가 바로 아래에 속한, 말하자면 2부 리그다. 내가 사랑하는 바이엘 자이언츠 레버쿠젠은 오스터만 아레나(Ostermann Arena)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로슈토크 시울브스를 8점차(85:77)로 누르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연승을 기록했다. 지역수비가 위력을 발휘했고 골밑에서 강했다. 로슈토크의 막판 파울을 정확한 자유투로 응징하고 갑작스러운 맨투맨 전환으로 3점슛 작전을 분쇄했다. 감독 한지 그나드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코치답게 팀을 잘 지휘하고 있다. 이렇게만 해주면 레코드마이스터의 분데스리가 복귀도 꿈은 아니다. 독일리그 우승을 열네 번, 독일컵 우승을 열 번이나 기록한 레버쿠젠은 2007~2008시즌 6위를 마지막으로 뒤셀도르프에 리그 참여 지분을 매각하고 분데스리가를 떠났다.

레버쿠젠과 로슈토크의 경기를 보면서 “이 정도면 우리 프로 팀이 상대해도 대등한 경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 리그의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우리 선수들보다 체격이 좋다. 그러나 KBL의 상위권 팀에서 외국인 선수가 함께 뛰는 조건이라면 경쟁할 수 있는 상대라고 본다. 선수들의 빠르기 면에서, 감독이 구사하는 전술의 다채로움이라는 면에서 우리가 조금 낫지 않을까. 레버쿠젠은 24일 경기에서 2-3 지역방어를 사용해 골밑을 지켰는데, 이 정도 수준의 수비는 우리도 깨뜨릴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은 이러한 농구로 세계4강까지 올랐다.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도 (훨씬 더 노력해야 하겠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가 축구 경기에서 유럽이나 남미 팀을 이기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리 축구는 아주 가끔이지만 세계 챔피언을 이기기도 한다. 1970~80년대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차범근 선생은 기적 같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제2, 제3의 손흥민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꿈은, 특히 스포츠에서의 꿈은 로또와 다르다. 꿈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씨앗을 뿌려 보살피고 오랜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 성숙한다. 요행도 지름길도 없다.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으면, 스포츠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이 되고 만다. 챔피언으로 가는 길도 그렇다. 우리는 매 시즌 두 종류의 우승 경쟁을 본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나는 한동안 팀당 54경기를 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팀이 진짜 챔피언이라고 생각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0승이면 우승하고 정규리그 1위나 2위를 기록한 팀은 7승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규리그에서는 망친 경기다 싶으면 주전을 일찍 빼고 벤치 선수를 투입해 힘을 아끼기도 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한 시즌을 통해 강함을 증명한 팀들끼리 내일 없는 경기를 거듭한다. 팀이 보유한 역량을 모두 투입해서 싸우는 극한의 승부다. 이런 점에서 플레이오프 우승의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두 가지 우승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 농구는 삼성생명을 여자리그의 우승팀으로 가려내고, 남자리그 우승팀을 가리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4강전에서 25일 현재 KGC가 모비스에 2승으로, KCC가 전자랜드에 2승1패로 앞섰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모비스가 내리 3승을 거둬 결승에 오를 수도 있다. 전자랜드가 2연승을 꿈꾼대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꿈은 간직하는 순간 현실의 일부가 된다. 농구는 소망과 꿈의 경기이다. 시즌 우승이나 타이틀은 소망과 꿈을 (아주 조금이나마) 표상한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보다 높고 고결한 가치를 향한 추구가 농구 경기에 압축되어 있다. 농구를 만든 사나이는 자신이 고안한 경기가 ‘네이스미스볼’이라는 이름 대신 바스켓볼로 불리기를 원했다. 겸손한 사나이 네이스미스는 왜 바스켓을 닿을 듯 닿지 않는 10피트 높이에 걸었을까. 그것은 소박한 꿈의 높이이자 땀 흘린 자의 염원이 가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였을지 모른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리그가 개막했지만, 그래도 농구 경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농구 경기가 열리는 한 내 마음은 아직 봄이다. 두 시간 뒤 KGC와 모비스가 3차전을 한다. 지켜보겠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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