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S] (22)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 유수종 감독 “영원한 감독이고 싶다”

김진성 / 기사승인 : 2022-06-10 09: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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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농구의 경쟁력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며 세계 정상권에 서기도 했던 한국여자농구는 2000년대 들어서도 세계적인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낸 유수종 감독은 그런 여자농구의 산증인이다.
 


여자농구와의 인연
유수종 감독이 여자농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1947년생인 유 감독은 한영고와 경희대를 거쳐 해병대와 실업팀 전매청에서 운동을 했다. 1973년 선수 은퇴 후 덕성여중에서 체육교사와 농구코치를 병행하던 유 감독은 1980년 상업은행(現 우리은행)에서 코치 제의를 받게 된다. 상업은행은 남녀 통틀어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농구팀이었기에 유 감독은 망설임 없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던 팀이었어. 학교 체육선생이라면 안정적인 직장이었거든. 그때 상업은행이 꼴찌 팀이었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왜 모험을 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

유 감독은 상업은행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덕분에 13팀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던 상업은행은 강팀으로 부상했고, 유 감독은 2001년까지 무려 21년 간 상업은행에서 감독으로 활약했다.

하늘을 찌르던 여자농구 인기
유수종 감독에게 듣는 과거 여자농구 얘기는 필자의 흥미를 자극시켰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인 필자를 놀라게 한 사실은 과거엔 남자농구보다 여자농구가 더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1961년도인가 1962년도인가 박정희 장군배 동남아 여자농구대회가 있었어. 당시에 국가지원정책의 일환으로 박정희 장군이 만든 대회였지. 그때 여자농구가 국제 경쟁력이 좋았어.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좋은 역할을 했었거든. 여자농구가 국민들한테 사랑을 받은 결정적인 계기였지.”

당시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박정희 장군배는 체육관을 가득 메울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넥타이부대의 응원과 함께 열띤 응원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70년대에는 남자농구가 여자농구 경기에 끼워달라고 했다니 믿어지는가? 과거 여자농구의 인기를 반증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농구를 정말 좋아했어. 내가 1999년 시즈오카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하고 올림픽 티켓을 탔을 때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으로 대표팀을 초대했어. 그만큼 스포츠에 열의를 가지고 계셨지. 그런 거에 많은 보람을 느꼈어.”

당시 여자농구는 국민스포츠였다. 1967년도 체코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며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故 육영수 여사도 비서를 통해 틈틈이 대표팀에게 간식을 보낼 정도로 여자농구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요즘은 골프나 쇼트트랙이 잘 하니까 그런 쪽에 많이 관심이 가 있는 것 같아. 최근 들어 여자농구는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지. 공룡이 멸종했듯이 여자농구도 역사 속에 묻히진 않을까 자꾸 걱정이 돼. 지금 좀 힘들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쪽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해.”

화려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 유 감독이었다.

끊임없이 도전하라
유수종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건 1992년 청소년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여자청소년대표팀 감독에 발탁된 유 감독은 중국에서 열린 청소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 때 한국에서는 절대로 우승 못 한다고 얘기했었어. 남자는 서장훈, 추승균이 있어서 우승할 거라고 했는데, 여자는 관심도 없었지.”

하지만 유수종 감독은 이런 주위의 예상을 보란 듯 일축시키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가 중국하고 결승에서 붙었는데, 전반까지 큰 점수차로 앞서 버린거야. 그러니까 중국에서 아예 중계를 끊어버렸어. 그 정도로 텃세가 심했어. 어쨌든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우승을 해서 기분이 좋았어.”

한국농구는 현재 남녀 모두 아시아에서 중국의 벽을 넘지 못 하고 있다. 유 감독으로선 현재의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 보면 우리나라는 항상 2등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안 돼. 그 자리에 만족하는 건 그 것 밖에 안 된다는 거거든. 앞으로 후배 지도자들한테 그런 열세를 인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도전을 하라고. 중국한테는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자기가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거야. 감독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소속팀이 중요하니까 사명감이 결여된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이 아쉬워. 그런 걸 뛰어넘을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어.”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
1999년 시즈오카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따낸 유 감독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지휘봉을 잡는다. 당시 여자대표팀의 목표는 8강이었다. 8강에 올라가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생각지도 않게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해줬어. 정은순, 전주원, 박정은, 양정옥, 정선민…. 선수들의 기량도 무르익었었지. 정은순의 노련미가 최절정에 달해 있었고…. 사실 미국전도 자신이 있었어. 미국이랑 준결승에서 붙었는데, 사실 동메달을 위해서 미국전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지. 전반까지 42-40이었는데, 한국에선 분위기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였어. 근데 정은순이 후반 시작하자마자 다쳤지. 그게 타격이 컸어.”

한국여자대표팀은 세계최강 미국과 후회 없는 접전을 펼쳤다. 경기 후 미국팀의 감독조차도 한국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넬 앤 포트너 감독은 “경의를 표한다. 한국은 존경할만한 농구를 보여줬다”며 박수를 보냈다.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농구의 전설들이 총출동했다. 최고참 정은순을 비롯해 얼마 전까지 코트를 누빈 전주원, 정선민, 박정은, 양정옥 등 멤버가 쟁쟁했다.

“그때 다들 성실했어. 전주원도 그렇고, 정은순도 정말 죽어라 했지. 양정옥과 박정은이 모두 가드 출신이었어. 전주원까지 세 명이 가드였지. 거기에 센터에 정은순과 정선민이 있었으니까. 5명이 모두 시야가 좋고 패스 센스가 좋으니까 외곽이 잘 돌아갔어. 전주원은 최초로 트리플더블까지 했고. 내가 작전이 좋았다기보다는 그런 조합이 잘 이뤄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

한국은 신장이 큰 팀은 아니었지만, 전 선수들이 농구를 할 줄 아는 선수들이었다. 상대팀에선 누가 가드인지 모를 정도로 패스워크가 좋았다.

“그때 전주원-양정옥-박정은 콤비네이션은 정말 좋았어. 평균 신장도 외국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거든. 기동력과 외곽이 다 좋았지. 그때 당시로는 황금 멤버였어.” 결국 한국은 시드니올림픽에서 4강 진출에 성공했고, 3, 4위 전에서 브라질에 안타깝게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국여자농구의 국제경쟁력을 다시 한 번 되새긴 순간이었다.


감독의 조건
30여 년 동안 여자농구 감독으로 활약한 유수종 감독.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감독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프로팀 경기를 보면 언제든 부상선수가 나와. 그렇게 되면 선수층의 변화가 있고, 포지션의 공백이 생기기도 해. 근데 성적이 확 떨어져버리는 건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경기를 하다보면 부상도 있을 수 있고, 변수가 많잖아. 그것 때문에 졌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그걸 고치고 보완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지. 그걸 못 하는 사람은 감독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해.”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선수의 역할이 커지는 게 당연시 된다. 팬들은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에 열광하고, 스타급 플레이어는 막대한 연봉과 함께 명예를 누린다. 하지만 유 감독이 생각하는 진짜 감독은 그러한 모든 것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훌륭한 선수도 감독하기 나름이다.

“누가 다치면 대체 선수가 있어야지. 2번에 있다가 3번으로 갈 수도 있고, 3번에 있다가 4번으로 갈 수도 있고, 3번에서 5번으로 갈 수는 없어. 그건 영역의 침범이거든. 팀원이 12명이라면 18명 이상으로 만들어놔야 해. 선수들은 주 분담 업무가 있고, 대리 업무도 할 수 있어야지. 그게 바로 지도자의 역량이지. 근데 그건 금방 되는 게 아니야.”

유수종 감독은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유 감독의 훈련 스타일이 궁금했다.

“연습방법은 전체적으로 농구를 많이 이해시키려고 하지. 요즘 보면 경기 전에 워밍업 하는 것도 너무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느낌이야. 예전에 대표팀이 모이면 워밍업부터 똑같이 안 했어. 그런 것도 새롭게 창안해내서 했지. 과학적인 근거를 대면서 이해시켰어.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남의 걸 배우는 걸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유 감독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농구 철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볼을 주는 건 나보다 유리한 상황의 사람한테 주는 걸 원칙으로 해야 해. 유리한 지역이 있다면 그 곳으로 움직여야지. 그게 기본이야. 연습할 때 패스를 하고, 스크린을 걸고, 다시 패스를 한다. 이 훈련을 시간에 맞춰 시켰을 때 제 시간이 안 됐다. 그러면 무조건 다시 시켰어. 그걸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원칙에 맞추기 위해서 하면 선수들이 그걸 깨우치게 돼 있어.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훈련을 시킨 거지. 그게 연습의 주목적이야.”

 


영원한 감독이고 싶다
이쯤 되니 농구철학도 궁금해졌다. 유 감독은 “농구를 좋아해라. 뭔가를 사랑하고, 좋아할 때 다시 하고 싶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거든. 창의력이 발휘돼야 돼. 끌려 다니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 농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라고 얘기하지.”

유 감독은 현 지도자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지도자들한테는 모델케이스를 만들라고 얘기하고 싶어. 꼭 농구지도자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이라도 존경할 부분이 있다면 배우면 되거든. 선수들한테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라. 선수는 못 해도 다음에 잘 하면 되거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들 하잖아. 경기를 보다보면 짜증부리고 신경질 내는 지도자가 많은데, 별로 보기 좋지 않거든. 항상 여유 있게 기다림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어.”

현역에서 물러난 지 시간이 흘렀지만, 유 감독은 여전히 지도자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다. 마지막 마무리를 시원스레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 베이징올림픽 티켓을 획득했는데, 본의 아니게 베이징에 가지 못 했어. 아쉬운 마음이 있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8년을 대표팀 감독을 했어. 멋있게 감독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면이 미련이 남아. 아직도 감독을 하고 싶어. 몸은 좀 말을 안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영원한 감독이고 싶거든.”

# 선수들에게 전하고픈 필수 의식 3가지
난 선수들에게 딱 세 가지만 얘기한다.
첫 째, 공을 잡았으면 공격적이 되어야 한다. 공이 무기가 돼야지 짐이 되선 안 된다. 내가 공을 잡았을 때 공격적이 돼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

둘째, 패스를 해야 할 때 내가 불리한 지역에 있다면 드리블을 해라. 항상 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패스를 할 때는 항상 메시지가 전달되는 패스를 해라. 내 패스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가 동료한테 전해져야 한다.

셋째,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라. 코트에는 10명의 선수가 있다.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명이 평균적으로 공을 갖고 있는 시간은 4분이다. 공을 오래 갖고 있는 가드는 그 이상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4분 이하가 될 수 있다. 그 아까운 시간을 왜 준비 없이 보내는가. 항상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라. 이 세 가지는 철저히 한다. 그 안에서 선수들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 유수종 감독의 시드니올림픽 일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를 4강에 진입시키는 쾌거를 이룩한 유수종 감독이 점프볼의 요청으로 손때 묻은 자신의 일기장을 들고서 점프볼 편집부를 찾았다.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날부터 시드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는 유 감독은 시드니 올림픽 현장의 생생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자신의 일기를 점프볼에 전달하며 공개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9월 9일(토)
어제 김포공항을 저녁 8시에 출발, 현지시각 오전 8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까다롭고 엄격한 선수촌 출입절차를 생일 선물로 맞이했다. 54년째 맞이하는 새천년 첫 생일을 기내에서 맞고, 세계로 도약하는 기분으로 목표달성을 굳게 다짐한다. 생소한 올림픽 선수촌 생활의 시작은 감회가 남달랐고, 생전 처음 비즈니스 석에서 누린 또 다른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세계 모두가 내 탄생을 축하하는 듯 했다.
오후 5시 30분부터 시합 장소에서 가벼운 연습으로 오늘을 마쳤다.

9월 10일(일)
선수촌의 첫 아침은 맑고 한적했다. 새벽 5시 30분부터 평소대로 조깅을 즐겼다. 선수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땀을 빼고, 각국의 숙소 위치와 국기를 돌아보며 임전의 태세를 정비했다. 아침 7시에는 본부 경기 임원회의가 열렸고,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전달받았다. 여자농구는 연습관계로 입촌식 불참을 통보했고, 입장식도 다음날 경기 관계로 참가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오후 1시부터 2시간에 걸친 연습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주원이의 정상가동이 마음 든든했고 선형이의 눈 회복이 부진하여 안타까웠다. 내일 새벽부터의 일정관계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9월 11일(월)
제4차전 러시아전에 대비한 적응훈련으로 아침 8시 30분부터 경기장에서 2시간 연습을 했다. 중요한 러시아전이 오전에 배정되어 익숙지 못한 컨디션 조정이 자꾸 뇌리에 스친다. 목 표달성의 무거운 짐을 이겨내고, 독창성과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며 경기 내용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위기대처 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양하여 시드니의 싱그러운 풀내음 속에 당당히 어깨를 펼칠 수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 앞선다. 이기고 싶은 선수는 리바운드를 잡고, 승리하고 싶으면 백보드를 지배하며, 슛은 찬스가 나며 던지는 것이고, 림은 던지는 선수에 의해서 정복된다는 평범한 얘기를 하며 의를 다지고 정신을 재무장시킨다. ‘나가서 싸워서 이기고 돌아가자’는 “나싸이돌”을 복창하며 목표달성의 순간을 학수고대한다. 서울에서의 숱한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고, 여자농구의 중흥과 조국과 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유보하고, 고통과 불편함을 참고 감수하며 뛰고 또 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오후에는 선수촌 내 웨이트장에서 한 시간 동안 가볍게 몸을 풀었고 체력적 컨디션을 재조정했다. 도핑 테스트에 이종애 선수가 지목되어 신경이 쓰였고, 남북동시 입장시 정은순 선수의 기수선정을 국가적 차원에서 양해할 수밖에 없었다.

9월 12일(화)
오전에는 잔디밭을 4km정도 뛰었고 오후에는 AIS팀과 연습경기를 했다. 상대가 다소 전력이 떨어져서 골고루 핸디캡을 가하면서 전력점검을 했다. 외곽슛이 부진했고, 심판의 불리한 판정도 한 몫 했지만 파울관리를 못해 3명의 주전이 퇴장당했다. 저녁은 모처럼 시내에서 김치찌개, 부대찌개로 소주 맛을 보았다. 시합은 가까워오고 상대전력 파악은 진부한 상태이고 주위의 도움도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며 어깨에 더더욱 중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연습은 모자람을 보완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며, 잘 되는 것을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이는 것인데 너무들 정신적 지주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9월 13일(수)
10시 45분부터 12시 45분까지 오전 연습을 끝내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도 웨이트 트레이낭장에는 모두들 나와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하고자 하는 마음과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해서 대견스럽기도 하다. 김재율 국제 심판이 선수촌까지 내방했지만 밖에서 만나 몇 마디만을 건네고 돌아가야 했다. 먼길을 왔지만 규정상 입촌이 안된다는 것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내일의 일정을 체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여유가 좀 있는 날이었다.

9월 14일(목)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연습을 했다. 경기장에서 뉴질랜드 연습장면을 목격했다. AIS 수준의 팀이었다. 가볍게 슈팅 위주로 오전 연습을 끝내고 오후엔 연습게임에 임했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몸이 무거워 보였고 발이 원활하게 움직이질 못했다. 전반 부진을 후반에는 조금 만회했다. 연습경기도 끝냈고 이제는 ‘진인사 대천명’ 하늘의 섭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인촌에 들려서 가볍게 심판(김재율)과 저녁식사를 했다. 선수촌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시내에서 선수촌으로 오는 길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

9월 15일(금)
맑고 푸른 하늘아래 드디어 개막일이 밝았다. 계수나무 토끼 한 마리가 방아찧는 모습이 선명히 드러나는 아침 만월은 더욱더 빛이 났다. 은순이의 기수 임무와 올림픽 개막행사를 직접 관전하기 위해서 전원 참관했다. 오전의 연습에서 선민이가 체력에 이상 징후를 약간 보였다. 대망의 개막전이 미국이라는 최강적이어서 다소 부담이 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재다짐했다. 개막식은 웅장하고 장엄했으며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남북동시입장이라는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벤트답게 참가국 중 주최국 호주를 제외하고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은 팀은 한국이 유일했다.

9월 16일(토) 미국 89-75 한국
올림픽 첫 무대 데뷔는 그런대로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점수 차를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다. 상대를 우리 페이스로 끌고 다니며 수시로 교체를 하면서도 10점 이상은 벌어지지 않게 하면서 정면 승부는 일부러 피하고, 중요한 일전을 위해 위장 승부를 펼쳤다. 선수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심리전도 병행하며 상대를 혼쭐나게 만들었다. 오늘 같은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해준다면 쿠바, 러시아, 폴란드는 그리 큰 장벽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어쨌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긴장을 풀지 않아야겠다. 오전 연습은 선수들의 자율 연습으로 하고 뉴질랜드대 폴란드 경기와 슬로바키아와 브라질전을 관전했다. 폴란드와 브라질의 완승으로 끝났다. 폴란드의 12번 선수 신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전반적인 전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고, 뉴질랜드의 괄목할만한 급신장이 신경쓰여지는 정도였다. A조 게임인 브라질과 슬로바키아도 우리가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라고 보아졌다. 어쨌건 슈퍼 돔(Super Dome)으로 진입하기 위한 러시아, 폴란드, 쿠바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선결과제이다.

9월 17일(일)
오전에는 쉬게 했다. 지금부터 진정한 경기라고 봐야 한다. 내일 경기는 어쨌든 이겨야만 하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우리 페이스만 지킨다면 무난한 승리를 가져오리라 확신한다.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연습을 했다. 무리한 연습보다 뛰는 연습에 비중을 두었고 속공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야간에는 혼자 남자농구 미국 드림팀과 중국팀의 대전을 관전했다. 정말 열광적일 수밖에 없으며, 왜 팬들이 몰리는지를 실감케 하는 가치있는 관전이었다.

9월 18일(월) 한국 101-62 뉴질랜드
오늘의 결과는 점친 대로 맞아 떨어졌다. 인터뷰에서 미국 감독과 같이 뉴질랜드 감독도 우리 팀의 경기 내용을 극찬해주었다. 쉴 새 없는 공격이 인상적이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이기겠다는 마음은 먹지 않았지만 의외로 많은 점수 차가 난 것이 못내 아쉬움이라고 했다. 101-62의 최종 스코어가 말해 주듯 전 선수를 고루 기용하며 전원 득점하는 기록도 남겼다. 야간에는 프랑스-슬로바키아와 호주-브라질전을 혼자 관전했다. 노도가 광란하는 듯 했다.

9월 19일(화)
조용히 보낸 하루였다. 오후 연습 후 내일의 전략을 심사숙고했다. 승리의 원천은 속공과 제2의 속공이 그 첫번째요, 바디 체크와 페이크, 페네트레이션 패스와 드라이빙 패스가 중요하며 픽앤롤 플레이가 가장 정확한 승리를 보장하고 상대 최장신 센터를 봉쇄하며 무력화시키는 ‘무용지물’이라는 전략적 작전명이 만들어졌다.

9월 20일(수) 폴란드 87-62 한국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했는데...너무 과신하며 자신감이 넘쳐 있는 데에 따른 하늘의 응징인가? 믿을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들이 전개됐다. 열심히 수비하여 쉽게 득점할 수 있는 것들을 어이없이 무산시키는 과오를 연발했다. 야투 성공률이 최악의 상태였고, 쉬운 노마크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곱절의 힘든 경기를 펼쳤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악몽같은 순간들이 너무 많이 전개됐다. 하늘의 뜻이라고 자위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9월 21일(목)
어제의 악몽을 떨쳐 버리려고 무척 애썼다. 처음으로 아침 조깅을 빼먹고 어제의 소주맛에 취해서 늦잠을 잤다. 11시 출발, 12시 15분부터 2시간 연습을 했다. 진정한 프로정신을 깨우치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독려했다. 끝났다고 할 때 시작하고, 안된다고 결론 내릴 때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프로근성임을 재확인 시켰다. 오늘은 오후에도 낮잠을 아주 달게 잤다. 내일의 격전을 각오하며 러시아전적을 꼼꼼히 살펴봤다. 두어명을 제외한 아줌마 부대들이다. 체력전을 전개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9월 22일(금) 한국 75-73 러시아(연장)
아침 조깅을 하면서 Lucky Seven을 부르짖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했으므로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겼다.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이기에 ‘결사항전’이라는 작전명을 하달해다. 기습적전과 결사항전의 비장한 각오가 하늘의 도움까지 어우러져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소련을 제압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가슴 벅찬,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흥분감을 주체할 수 없는 사상 최초의 기쁨을 사랑하는 모두와 같이 하고 싶다.

9월 23일(토)
경기 시간과 동일하게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40분까지 연습했다. 승부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 죄로 즐거운 비명을 올리며 아침을 생략했다. 연습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끝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상태로 전개됐다. 정선민 선수의 컨디션이 최대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안타깝다. 그러나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생활해야 하듯이 걱정은 접어둔다.

9월 24일(일) 한국 69-56 쿠바
“새 역사를 창조하자!”, “고추장 매운 맛을 보여주자” 감격적이고 가슴 뿌듯한 하루였다. 선수들이 대견스럽고 하늘이 고마웠다. 69-56의 최종 스코어가 다시금 뇌리에 떠올랐다. 걱정스러움과 기우를 떨쳐 버리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주원이가 트리플더블을 만들어냈고, 은순이의 야투 성공률과 정옥, 정은이의 3점 최다 선두유지는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부문별 세계 최고의 기록이 값진 금메달 못지않다고 생각된다. 실책도 적었던 완벽한 게임 운영은 여자농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초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아직도 무궁무진한 발전의 잠재력이 있다는 것에 희망과 꿈이 무진장이다. 어시스트 최고팀(주원이의 어시스트 여왕)과 가장 적은 T/O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작품이라고 자위한다, 세계열강이 우리의 지역방어를 깨지 못해서 무릎 꿇는 것이 통쾌하게 생각하며 긍지를 느껴본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진로를 깨우치고 새로운 도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지해 나가는 새역사 창조의 첨단적 역운이 될 것을 마음속에 재다짐 해본다. 일상에서 가장 값지고 통쾌한 하루이고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9월 25일(월)
아침 조깅은 상쾌했다. 벅찬 감회와 환희에 젖어서 날아갈 듯이 몸이 가벼웠다. 오전에는 휴식을 취하고 가볍게 슈팅 위주의 연습을 끝낸 후 다함께 USA드림팀의 경기를 관전했다. 프랑스와의 경기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보다는 농구쇼를 보는 것 같았다. 축하전화가 쇄도했다. 여러 곳에서 안부전화도 했다. 국내에서는 여자농구가 화제 거리가 되어있다고 했다. 모두들 좋아하고 축하를 보내줬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므로 프랑스와의 일전을 벼르면서 필승의 신념을 갖는다.

9월 26일(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기적을 창출하자.” 가시적 메달 사냥이 코앞에 다가왔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도,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며 빨리 도망가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하늘의 도움과 신의 지원으로 새 역사 창조에 첨단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자. 총재님으로부터 격려전화가 왔다.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지만 4강 진출을 내심 바라는 상태였다. 내 삶이 누구의 기대에 호응, 부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진로를 깨우치고 새로운 도전의 기치를 높여 치켜세우는 것일 테지만 국민의 사랑과 여자농구 중흥의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활성화의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프랑스와의 객관적 비교에서도 불리할 것이 없고, 통계자료의 수치에서도 절대 불리할 것이 없으므로 선수들의 사기 진작과 ‘하면된다’는 긍정적 자신감이 어우러지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메달사냥’의 총체적 작전명이 가시화될 수 있도록 촌치의 흐트러짐 없는 마음가짐을 돈독히 하면서 내일의 영광을 손꼽아 본다.

9월 27일(수) 한국 68-59 프랑스(8강전)
세계 4강 신화를 창조하는 주역이 됐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충만하다. 오전 내내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심리상태를 정리하지 못해 선수촌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프랑스 본부 앞에서 침을 뱉고 “너희는 오늘 나의 밥이다”라고 다짐을 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하늘과 부처님께 감사하며 조상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일일이 전하고 싶다. 꿈의 궁전 같은 슈퍼돔 경기장은 정말 부럽기 그지없는 좋은 시설과 광대하기까지한 어마어마한 장엄한 그대로였다. 오전 연습을 하면서 선수들도 탄성을 지르며 이런 경기장에서 게임을 못하고 갔으면 얼마나 억울하냐고들 했다. 가볍게 연습을 끝내고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할 것을 같이 약속했다. WKBL총재님의 메시지도 전달하면서 100%의 효과를 만끽하고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다짐했다. 브라질-러시아전을 관전했다. 아깝게 러시아가 67-68로 분패했다. 우리 앞 게임이라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우리가 승리함으로써(68-59) 그러한 염려(러시아와 재대결)도 사라졌다. 정말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고마운 마음을 가득 전하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말로 하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더 전진해나가자.

9월 28일(목)
비가 내리는 선수촌을 조깅했다. 하늘이 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뛰었다. 주체하기 힘든 이 영광스러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주위는 온통 맑고 청명함 그대로이고, 저절로 어깨춤이 두둥실 덜먹거린다.오전은 쉬고, 오후에 복수혈전이라고 선수들이 표현하는 미국전에 대비하여 가벼운 연습을 했다. 선수들도 움직임이 경쾌했다. 부담 없는 최선을 당부하고 ‘자연의 힘’에 대한 설명과 미국전의 작전명을 하달했다. “불가사의한 기적을 창출하자.” 도사의 힘은 자연의 힘이므로 ‘자연의 힘’이라 명명했다.

9월 29일(금) 미국 78-65 한국(4강전)
오전 연습은 게임 전 웜업과 슈팅으로 가볍게 정리했다. 승부를 초월하고 좋은 게임을 할 것을 당부했다. 욕심을 부리면 절대로 안 되고 WNBA를 WKBL이 혼쭐나고 당황하게 만들자고 했다. 놀리면서 페이크와 페인팅을 사용하며 속이는 부분에서 만이라도 이기자고 주문했다. 40-42의 전반 스코어는 정말 잘했다. 46-48에서부터 힘이 부치고 슛과 패스 범실이 잦아지며 무너졌다. 욕심을 자제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과욕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잘 싸웠다. 30-40점씩 어처구니없이 지던 것에 비하면 65-78은 잘 싸운 결과라고 자위한다.

9월 30일(토) 브라질 84-73 한국(순위결정전)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아침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조깅을 시작했다. 오만가지 전력이 머리에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하늘의 도움이 어느 쪽으로 기울까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승부의 갈림길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승리의 여신은 브라질의 손을 들어줬다. 모두들 애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오로지 메달사냥에 전심전력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더 보강하라는 하늘의 계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후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선수들을 달랬다. 세계의 벽은 높고 험난하다. 그러나 자기 한계극복과 하면된다는 신념이 뭉쳐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에는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 장기적인 안목과 대승적이고 거시적인 생각으로 장신 신인선수들을 길러내고 반복 숙련시키는 길만이 세계 여자농구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인 지원이 따라야 함을 다 함께 깨우쳐야 한다.
오늘의 세계 4강이 영원할 수 없지만 천재와 바보의 차이는 종이 하나로 그 벽은 그렇게 약하지 않음도 깨우쳐야 한다.

* 유수종 감독이 일기에 썼던 작전 암호명들
제1차전 미국 – 뒤통수
제2차전 뉴질랜드 – 나싸이돌
제3차전 폴란드 – 무용지물
제4차전 러시아 – 결사항전
제5차전 쿠바 – 고추장
제6차전 프랑스 – 메달사냥
제7차전(준결승) 미국 – 자연의 힘
제8차전(3,4위전) 브라진 – 온고지신

# 사진_문복주 기자, 본인제공

※ 이 글은 JUMPBALL 스페셜 에디션「TEAM KOREA」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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