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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문정현(KT), 문유현 |
#001_Scan. 015번 참가자: 문유현
축구를 좋아하다 형을 따라 농구를 시작했고, 연습 경기에서 득점을 하며 농구의 매력에 빠졌다. 부모님의 우려에도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포워드로 농구 인생의 첫 발을 내디뎠다.
“형 따라서 농구를 계속 보고 접하게 되었어요. 저도 한번 해볼까 하고 호기심에 시작했죠. 초등학교 때 키가 크지는 않았는데 팀 사정상 포워드였어요. 초등학교에서는 되게 재미있게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인성이랑 농구의 재미를 동시에 알게 해주셨어요.”
화봉중학교에 진학한 뒤 긴 훈련을 이어가며 휴대폰 없이 버텨낸 3년은 쉽지 않았다. 함께 시작한 동기 7명 중 끝까지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누구보다 성공하겠다는 각오와 ‘이 팀에서 내가 가장 잘해야 한다’는 다짐이 그의 원동력이었다.
“3년 동안 6교시 끝나면 친구들이 낮잠을 잘 때 저는 항상 먼저 나와서 김현수 코치님께 슛이나 드리블을 배우곤 했어요. 잠을 잔 건 3년 동안 두세 번 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실력이 더 늘면서 코치님께서도 인정해 주셨죠. 여러 고등학교 스카우트 제안이 올 때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정말 뿌듯했어요. 그때 지도해주신 코치님은 제 실력을 가장 많이 끌어 올려주신 은사님입니다.”
그렇게 문유현은 무룡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스스로 농구 인생에 운명을 가르는 굵직한 책갈피를 꽂았다.
바로 직접 포지션 전환을 요청한 것. 177cm 포워드였던 1학년 시절, 어린 나이에 내린 그 과감한 결단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문유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여기다’라는 확신으로 스스로 판을 흔들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선택을 당당히 해냈다. 결코 평범한 선수가 아니었다. 남다른 판단력과 용기를 증명한 그 순간은 지금의 문유현을 빛나게 규정하는 가장 강렬한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제 터닝포인트였어요. 솔직히 키가 더 클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제가 감독님 찾아가서 ‘저 가드로 전환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근데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저 농구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대학도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계속 말씀드리니까 감독님도 결국 허락해 주셨죠. 프로나 대학 경기를 많이 봤는데 180cm에 포워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이러면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잊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포워드에서 가드로 전환했지만 새로운 옷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유현은 흔들림이 없었다. 김윤세(성균관대), 황민재(무룡고 졸업)와 함께 묵묵히 준비하며 몸을 단련했고 KBL과 NBA, 선배들의 경기를 보며 끝없이 연구했다.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해낸 그의 눈빛에는 ‘코트 위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가드’라는 뚜렷한 이상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포지션 변화가 아닌 책임감과 무게감을 스스로 짊어지며 안정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남다른 학습력과 적응력,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만의 가드상을 완성해 갔다.
그 결과 2021년 제51회 추계 전국 남녀 고교농구 연맹전에서 5경기 모두 20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평균 27점 6.6리바운드 8어시스트 4.2스틸로 활약했다. 대회 '어시스트상'과 '수비상'을 휩쓸며 지도자가 뽑은 '베스트5'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어 KBL 유소년 캠프에서 2년 연속 '베스트5'에 선정됐고, 경복고 홍상민·동아고 이동근과 함께 김현준 농구장학금을 받으며 전국구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또 하나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U18 대표팀에 선발돼 국제무대를 밟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출전 시간은 짧았고 눈앞에서 뛰어난 기량을 펼치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때로는 벤치에 앉아 눈시울을 붉히며 무력감을 삼켜야 했다.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문유현은 그 시간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바꿔냈다. 무너지는 대신 더 단단해지기로 선택했고 자신이 채워야 할 부분을 분명히 깨달았다
“대표팀 첫 선발이라 너무 좋았어요. 잘하는 친구들과 경쟁도 하면서 뛸 수 있다는 게 영광이죠. 사실 보여줘야 된다는 마음에 압박감? 부담감도 있었거든요. 동기들이 워낙 출중해서요. 뒤처진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런 상황을 처음 겪으니 혼란스러웠어요. 어린 마음에 위축됐던 것도 사실이고 팀원들 몰래 나가서 많이 울었거든요. 엄마한테 전화하면 맛있는 거 먹자고 위로해주셨죠.
그래도 벤치에서 다른 선수들의 장점, 즉 멘탈이나 준비 과정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이세범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세세하게 알려주셔서 농구에 눈을 더 뜰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또한 우승은 기뻤지만, 꼭 저 친구들보다 더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죠.”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문유현은 고려대에 진학하며 새로운 무대에 섰다. 고교 3학년 첫 대회였던 해남에서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이자 코칭스태프가 “데려가겠다”는 확신을 보였고, 형 문정현의 존재 역시 그의 선택에 힘을 더했다.
“그런 말 있잖아요.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경쟁하면 자기도 모르게 성장한다고요. 더 부딪히고 해야 실력이 는다던데 딱 맞더라고요. 고려대와 연세대는 최고의 학교잖아요. 출중한 선수들과 하니까 저도 모르게 늘었어요. 제 마인드가 항상 좋은 일이 있어도 다짐을 먼저 하는 편이에요. 여기서는 친해도 결국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겨야만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걸 짚고 넘어가야 발전할 수 있는 거예요.”

이후 문유현은 곧바로 U19 대표팀에 발탁됐다. 직전 대표팀에서는 눈에 띄는 활약이 적었지만, 묵묵히 준비해 온 시간은 그에게 더 단단한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FIBA U19 월드컵 최종 엔트리 12인에 선발돼 합숙 훈련에 들어갔고, 대회에서는 총 99점 19리바운드 34어시스트 21스틸을 기록하며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했다.
대표팀 생활은 단순한 출전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다양한 지도자와 팀 문화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유연성을 길렀고, 서로 다른 전술과 철학을 흡수하며 자신의 농구를 확장시켜 나갔다. 이 경험은 문유현을 한층 성숙하게 만든 또 하나의 성장 기록이었다.
“사실 제가 U19에 갈 생각은 못했어요. 근데 운이 좋게 기회가 찾아온 거죠. 오히려 준비를 많이 해서 자신 있더라고요. 누구에게나 태극마크는 꿈의 무대잖아요. 이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중하게 임했어요. 판단력 향상과 팀에서의 역할, 어떻게 하면 출전 시간을 가져갈 수 있는지를 크게 배웠던 경험이에요. 감독님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잖아요. 그걸 빠르게 습득하고 이해해서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는 자세가 생긴 것 같아요.”

그는 성장 궤도를 멈추지 않았다. 2024년 U리그에서 16경기 평균 16.31점 6.5어시스트 4.3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22.6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로 폭발했다. 건국대와의 결승전에서는 29점 13어시스트 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고려대의 통합우승을 이끌고 'MVP'에 올랐다. 고려대 역사상 첫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3연속 통합 우승의 주역이었다.
1학년 때 3점슛 성공률은 42%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2학년 때 부상으로 27%로 떨어졌고, 3학년 때는 또 한 번의 부상으로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3학년 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을 47%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날아올랐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이상백배와 대표팀 합류가 무산되는 시련도 겪었다. 그렇지만 RP센터 김형철 센터장과 청병원 이수우 센터장의 세심한 도움 속에 재활에 전념했고, 지금은 완벽히 회복해 100%의 몸 상태를 되찾았다.
“2학년 때 다치기 전에 3점슛 성공률이 34%였거든요. 어깨를 처음 다쳤을 때는 내 팔이 아닌 것 같았고 슛이 전혀 안 들어가서 답답했어요. 김태홍 코치님이 조언을 해주신 뒤로 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죠. 3학년 초반에 너무 힘들었죠. 두 번이나 다치고 대표팀에도 못 가고 아쉬운 마음에 눈물도 흘렸거든요. 재활은 자기와의 싸움이니까요. ‘부상 때문에 못할 거다’라는 말도 들었지만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어요.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지금은 완벽히 회복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대표팀 무대에서 값진 경험을 쌓은 그는 곧바로 대학 무대에서도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2025년 WUBS(월드 대학농구 시리즈) 3경기에서 평균 21점 5리바운드 2.6스틸을 기록하며 고려대의 우승을 견인했다. 득점 부문 '전체 2위'에 올랐고, 지난 2024년 베스트 수비선수상에 이어 이번에는 MVP까지 거머쥐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터트린 3점슛은 그의 클러치 능력을 증명했고, 대학 최고 유망주로서 세계 무대에서도 꾸준히 가치를 빛내는 무대가 되었다.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말처럼, 문유현에게도 더 큰 도전이 찾아왔다. 이정현(소노)의 대체선수로 발탁돼 2025 FIBA 아시아컵 예선에 출전, 대학 선수 중 유일하게 성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대표팀과 대학 무대를 오가며 그는 농구를 대하는 태도 자체를 새롭게 다잡았다. 선배들과 함께 생활하며 몸 관리, 식습관, 훈련 태도까지 세세히 배워갔다. 그 과정은 문유현을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더 성숙한 선수로 끌어올렸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잖아요. 형들의 몸관리, 식습관, 운동 태도 습관 다 따라하려고 했죠. 형들이 운동을 할 때 어떻게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지, 형들이 미리 나와서 하는 거 보고 ‘이렇게 해야 잘할 수 있구나’는 걸 더 느꼈죠. 선배들이 미리 나와 준비하는 모습, 운동에 임하는 태도는 정말 큰 배움이 됐어요. ‘이렇게 해야 진짜 잘할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주셨죠. 안준호 감독님, 서동철 코치님 정말 감사드려요. 대학생 발탁은 모험이고 저라는 선수를 믿고 큰 경기에 경험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저한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그는 호주전에서 11분 6초를 소화하며 3점슛 1개를 포함해 7점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엔트리 중 가장 높은 득실 마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효율을 증명했다. 당시 안준호 감독은 “깜짝 놀랐다. 이미 프로 레벨에 있는 선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라는 평가를 내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학년까지 있으면 좋았겠죠. 착한 동기들과의 추억, 기특한 후배들과의 정, 감독님과 코치님께 받은 은혜도 크니까요. 하지만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편한 위치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빨리 맞닥뜨려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마이클 조던이 말했듯 ‘나는 인생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실패를 거듭했다’는 말처럼 저도 실패를 겪고 싶어요. KBL의 내로라하는 형들을 언젠가는 잡겠다는 포부로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코트 안에서는 목소리를 내고 저만의 독창적이고 패기 있는 플레이로 끼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내로라하는 형들 사이에서 최고가 될 겁니다.”
“제가 약속할 수 있는 건 후회하지 않게 할 자신 있습니다. 저는 어려운 경험을 할수록 더 강해지고, 제 부족한 점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습니다. 몸 관리도 철저히 하고 생활 적응도 빨라서 팀에 금방 녹아들 자신이 있습니다.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목소리를 내는 선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위기 속에서 자라왔기에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수 밸런스가 좋아 기복이 크지 않고, 담대함이 제 장점입니다. 후반전이나 클러치 상황에서도 믿고 맡겨주셔도 됩니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는 게임 체인저로, 수비가 필요할 때는 수비수로 어떤 역할이든 받아들이며 팀에 녹아들겠습니다.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문유현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KBL에서 주요 선수가 되어 관중석에 제 유니폼이 가장 많이 보이고, 응원가가 울려 퍼지며, 경기 후에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대표팀에도 나가고 싶고요. 저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잘하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력은 뒤에서 하는 거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결과로 증명하는 게 제 몫이죠. 팬들에게도 잘하고, 매너 있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갖춘 선수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안 다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가족, 팬들, 그리고 가르쳐주신 은사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좋게 가르쳐주시고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셔서 그 감사함을 잊지 못합니다. 성공해서 떳떳하게 얼굴 뵈러 가는 날이 꼭 올 거라 믿어요. 부모님께는 표현은 잘 못하지만 정말 감사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알게 된 한재혁(동국대) 선수와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힘들 때나 좋을 때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친구이고, 항상 응원해주고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문유현의 말을 듣고 나면 ‘성공할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든다. 고르게 갖춘 실력 위에 실패조차 성장으로 바꾸는 담대함과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을 더했다. 코트 밖에서는 감사함을 잊지 않는 태도와 바른 예의로 신뢰를 쌓는다. 실력과 마인드, 태도와 인성까지 빈틈없는 문유현은 지도자가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진정한 다각형 선수다. 최고에 오르는 일은 시간 문제일 것 같다.
#사진_문유현,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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