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될 겁니다" 금메달 목에 건 구민교의 목표 '대한민국 No.1 포워드' (024)

윤소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10-24 11: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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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윤소현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성균관대 구민교(196cm, F)이다.

#001_Scan: 성균관대 구민교


친구들과 놀이로 즐기던 농구, 4학년 때 안남초 류영준 코치가 선수 제안을 하게 된다. 농구공을 잡을 운명이었을까, 13살 구민교의 키는 이미 180cm를 돌파했다. 친구들에 비해 골대가 훨씬 가까웠던 그에게도 농구는 마냥 쉽지는 않았다.

“공이 무서웠어요. 못 잡고 맞은 적도 맞았죠. 그래도 남들보다는 빠르게 적응한 것 같아요. 5학년 때는 농구가 뭔지 알게 됐고, 6학년 때는 우승도 하면서 내가 농구를 잘하는 거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스스로도 느꼈던 재능, 이미 밖에서는 반짝반짝 빛났다. 더불어 중학교 1학년 때 10cm가량 자란 키는 성장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신장에서 우위를 가져갔지만, 구민교는 골밑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지도자의 생각도 동일했다.

“어렸을 때부터 골밑에만 있으면 절대 성장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빅맨같지 않은 플레이를 하려고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류영준 코치님이 워낙 다양하게 알려주시다 보니까 그래서 저한테 이게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드리블, 패스, 슈팅 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웠던 구민교는 2020년에는 KBL 유스 엘리트 캠프 MVP 수상에 이어 이주영과 함께 미국 IMG 아카데미 연수 대상자로 선정됐다.

“미국은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가기 전에 다녀왔어요. ‘이게 세계 1위의 농구구나’싶은 부분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배우지 못한 시스템 부분도 많이 배웠죠. 미국 선수들이 잘한다고 대충 하지도 않더라고요.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도 많았어요.”

농구계의 주목을 받는 유망주로서, 국가대표를 포함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구민교다.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에게는 모든 순간이 설렘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구민교는 자신의 장점을 다각화 하고자 했다. 바로 자신의 장점을 외곽에서도 증명하는 것.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 골밑에만 치중하지 않고 1대1도 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외곽을 간다고 해서 장점을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골밑에서 갖고 있는 장점을 외곽에서도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자 노력했어요. 사실 아직도 완성됐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김상준 감독님도 계속 강조하시는 부분이고,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그는 FIBA U18 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에도 승선해 22년만의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구민교는 이를 고등학교 때 기억에 남은 부분으로 꼽았다.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저희가 해냈다는 게 너무 뿌듯했던 것 같아요. 이세범 감독님께서 잘 이끌어 주셨고, 같이 뛰었던 형들한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002_Life in University


구민교의 선택은 형 구인교가 있는 성균관대. 그러나 확고한 선택의 이유가 있었다.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그들을 이기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연고대를 가서 좋은 선수들과 뛰는 것도 좋지만, 성균관대에서 그 선수들과 경쟁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고, 경쟁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구민교지만 그 과정에서 고충이 없지는 않았다.

“슛이 부족하다 보니까 득점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았어요. 점점 상대 팀도 쉽게 막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김상준 감독님께서 제가 부족한 걸 알고 계시면서도 외곽에서 연습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1학년 때 성적이 안 좋긴 했지만, 감독님 덕분에 다음 연도에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 같아요.”

성균관대의 2025년은 반등에 그치지 않았다. 4강에서 연세대를 꺾고 6년만에 결승 무대에 올랐다. 구민교 개인으로서는 슛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때로, 한 발 발전한 해로 기억에 남았다.

“결승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던 
한 해였어요. 슛을 본격적으로 쏘기 시작한 때고 (강)성욱이 형(KT)이랑 손발도 잘 맞았어요. 대학 무대에 적응을 했다는 걸 느낀 것 같아요.”

성장은 농구에서만 이루어진 건 아니다. 강성욱이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차출로 자리를 비웠던 2025년 MBC배, 성균관대는 6강에서 단국대에게 일격을 맞으며 퇴장했다. 구민교에게 이 때의 기억은 팀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남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그때는 이기적인 선수였다고 생각해요. 팀이 이길 수 있는 플레이보다는 개인적인 플레이만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중심을 잡아줘야 했는데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느껴요. 이번 연도에는 제가 고참이기도 하고, 감독님과도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후배들도 챙기면서 제 플레이를 하는 걸 많이 연습했어요. 작년보다는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고려대의 우승 세레머니를 뒤로하고 아쉬움을 삼켰던 2025시즌, 구민교는 이 기분을 다시는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화정체육관을 나섰다. 복수의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개막전에서 고려대를 마주한 성균관대는 전반 19점차 열세를 뒤집고 승리를 챙겼다.

“초반에는 쉽지 않았어요. 팀원들도 주눅들어 있어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후반에 다들 열심히 뛰고 경기도 잘 풀려서 다행이었어요. 제가 결승 득점을 넣어서 더 뜻 깊은 경기였어요.”

2026 시즌 성균관대의 가장 큰 무기는 3점슛이다. 경기당 10.8개를 폭격하며, 성공률 부문에서도 고려대와 함께 공동 1위(35%)에 올라있다. 지난 시즌 전체 10위(26%)에 그쳤던 점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반전이다.

“동계 훈련 때 연습했던 게 찬스가 나면 슛을 던지고, 리바운드를 많이 들어가는 전술이었어요. 성공률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래서 감독님께서 슛 연습을 많이 시키셨고, 유기적으로 패스를 돌리면서 찬스를 만드는 움직임도 신경 쓰셨어요.”

구민교 역시 3점슛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냈다. 32.6%의 성공률을 기록, 두 배 가량 늘어난 시도 횟수에도 지난해(25.9%)에 비해 크게 뛰었다. 평균 득점 역시 18.9점으로 대학 입학 이래 가장 좋다.

“시즌 초반에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3x3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요. 그런데 배길태 감독님께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선수기 때문에 뽑았다’고 말씀해주셔서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슛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어요.”

3x3 대표팀과 U-리그 경기를 오가며 바쁜 한 해를 보낸 구민교는 한국 농구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FIBA 3x3 아시아컵 2026 한국 역사상 최초 결승 진출에 이어, 2026 아시안게임 역대 최초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배길태 감독과 함께 외쳤던 구호인 ‘하이파이브(HIGH FIVE)’는 ‘정상에 올라 다섯명이서 하이파이브를 하자’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구호가 현실이 된 순간, 구민교의 가슴 속에는 뜨거움이 끓어올랐다.

“저희가 준비한 게 100% 나온 대회는 아니었지만, 간절함 하나로 다들 뭉쳐서 금메달을 땄던 게 정말 값진 순간이었어요. 한 팀에 모여서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게 쉽지 않은데, 코트 안팎으로 넷이서 잘 맞았어요. 또 최초의 3x3 금메달이잖아요. 1년 동안 외쳤던 구호처럼 정상에 서니까, 앞으로 다른 것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가득 찼던 것 같아요.”

#003_Application


1년 동안 3x3 대표팀과 함께하며 얻은 건 결과뿐만은 아니었다. 선수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구민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금메달이라는 결과보다 감독님, (이)동근이 형, (이)주영이 형, (김)승우랑 함께했던 경험이 농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감독님이 ‘말도 안 되게’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아시안컵 준우승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어요. 앞으로 농구를 하면서도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수촌을 가도, 대회장을 가도 항상 행복했어요. 특정한 대회가 생각나기보다는 그런 과정 전체가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납니다.”

지난해에도 얼리 엔트리 선언을 고민했던 구민교는 고민 끝에 드래프트에 나서지 않았다. 경쟁력을 위해, 프로에서 당장 뛸 수 있는 선수가 된 후 도전하고자 했다.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가 아니라 바로 뛸 수 있는 선수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에서 작년에는 부족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는 자신감도 많이 올라왔고, 실력이 잘 다듬어졌다고 생각해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 KBL에는 2,3쿼터에 외국인 선수 두 명이 뛸 수 있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외국인 선수가 두 명 뛰게 된 부분에는 슈팅 능력을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팀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은 시간동안 슈팅을 잘 다듬어보려고 합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공격에서는 돌파, 득점력이 좋다고 생각하고, 1대1 수비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어요. 프로에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고, 안 된다면 되게 만들 겁니다.”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처음부터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없겠지만, 궂은일부터 시작해서 팀이 필요할 때는 득점도 해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길 수 있는 전력에 포함되고 싶습니다.”

먼 미래에 꿈꾸는 모습은, 농구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어디서든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훗날 은퇴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끝으로 구민교는 두 아들을 향해 아낌 없는 지원을 보낸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부모님께서 형이랑 저 모두 뒷바라지 해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잘 해서 형과 함께 효도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사진_구민교 제공, 윤소현 인터넷기자,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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