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정다윤 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이른바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이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첫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연세대 최영상(180cm, 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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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상-형(최영호) |
#소년로그
우연히 발걸음을 향했던 집 앞 전자랜드 농구교실. 태권도 소년이었던 최영상은 형(최영호)을 따라다니며 농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마침 유소년 코치의 "한번 해볼래?"라는 가벼운 권유가 그의 인생에 농구공을 쥐여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제가 농구 공을 처음 만진 건 7살이었어요. 처음으로 농구장에 갔던 것 같아요. 엄청 빨리 갔죠(웃음). 그땐 이렇게 힘들 거란 생각도 못했지만 너무 재밌었거든요. 농구장을 갔을 때 선수들의 플레이를 볼 때마다 흥미롭더라고요. 팀이 이길 때는 그 쾌감이 느껴지고요. 그래서 더 농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대현초를 거쳐 휘문중으로 진학한 그는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나 코트에 설 기회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SK 빅맨캠프 MVP, KBL 엘리트 캠프 베스트 5에 선정되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중학교 시절, 득점왕이 두 번이나 될 정도로 팀 사정상 득점에 치중하는 공격형 가드였던 그는 휘문고 1학년 때 이현민 코치를 만나며 플레이 스타일의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코치님께서 '이렇게 계속 해버리면 아무도 관심 없는 선수가 된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사실 늘 해왔던 걸 한번에 바꾸긴 힘들잖아요. 그래도 진짜 정통 포인트가드가 되고 싶어서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어떻게든 노력했어요.”
몸에 밴 익숙함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아주 작은 곳에서 피어난다. 댐을 허무는 작은 구멍이나 단단한 바위를 가르는 물방울처럼, 코치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긴 최영상의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처음에는 공격을 너무 하고 싶었죠. 득점했을 때 기분과 어시스트 했을 때 기분이 다르거든요. 근데 이현민 코치님께서 ‘너가 패스를 줘서 동료가 넣는 그 기분을 알게 될 때면 성장할 거다’고 했어요. 앞에 뛰는 선수들 안 주고 본인이 직접 해결해서 득점 위주로 하려고하는 가드들도 있잖아요. 근데 코치님은 앞에 보이면 주고 몰리면 빼주는게 진짜 잘하는 거라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더 노력했어요.”

삼일고로 둥지를 옮긴 후, 그는 자신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두 번의 환희를 맛보았다. 첫 번째는 2024년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였다. 막강한 전력의 홍대부고를 제압하고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썼고, 그 중심에는 단연 최영상이 있었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극적인 버저비터에 이어, 연장전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어시스트까지 배달하며 승리의 파랑새가 되었다.
두 번째는 바로 지난해 8월 2025년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이었다. 본선에서 고교 농구의 양대 산맥인 용산고와 경복고를 연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경복고와의 결승전은 3쿼터 한때 17점 차까지 뒤지던 열세를 뒤집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사실 왕중왕전 결승은 냉정하게 질 것 같았어요. 초반에 공격도 너무 안 풀리고 수비도 계속 뚫렸거든요. 설마 지나… 싶었는데, 하프타임 때 한말이 있어요. ‘지더라도 보여주고 지자’고 했거든요. ‘이렇게 지면 결승의 의미가 없다’고요.
저는 그때 자존심이 너무 상했어요. ‘쟤네 2학년이라고 정신차리자’고 하고, (양)우혁이는 ‘아직 20분 남았고 안 끝났다’고 했어요. 이렇게 다짐을 하고 후반에 들어갔는데, 우혁이가 미친놈처럼 다 넣어주더라고요. 연습했던 변형 지역 방어도 잘 먹혔고요. 그 경기는 정말 잊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이 대회에서 최영상의 활약은 눈부셨다. 예선전에서 트리플 더블과 연속 두 자릿수 어시스트라는 진기록을 쏟아냈고, 결승전에서도 18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야전사령관으로서 팀을 진두지휘했다. 대회 어시스트상 수상은 득점원에서 정통 포인트 가드로 성공적인 변신을 마친 그에게 주어진 최고의 훈장이었다.
“사실 별 생각은 없었어요(웃음). 가드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이긴 하니까, 기분은 좋았던 것 같아요.”

#대학농구능력시험
일반 학생들이 수능 점수로 평가받는다면, 엘리트 농구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치열하게 증명해 낸 '농구 실력'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연세대에 입학한 최영상이 직접 매긴 등급을 통해, 그의 장단점과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격- 2등급
수비- 4등급
농구 센스- 1등급
외곽- 3등급
피지컬- 8등급
공격력에 스스로 2등급을 부여한 최영상. 아직 골밑 마무리 능력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지만, 공격 전개만큼은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특히 2대2 픽앤롤 플레이와 정교한 중거리 슛은 그가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다. 하지만 수비에서는 아직 채워야 할 공백이 많다고 고백했다.
“수비는 조동현 감독님이 오시기 전까지 제가 수비를 어느 정도 하는 편인 줄 알았어요. 근데 감독님 오시고 비디오 분석을 했는데 연세대 수비 구멍이 다 저인 거예요. 정말 수비를 못한다고 느꼈어요. 더 발전해야 될 거 같아서 낮게 평가를 줬습니다.”
최영상의 진가는 공격 기술을 넘어선 탁월한 '농구 센스'에서 발휘된다. 뛰어난 상황 판단력과 높은 BQ(농구 지능) 덕분에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영리한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며 코트 위를 지휘하는 그의 넓은 시야와 패스를 살려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는, 향후 프로 무대에서도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농구 센스는 사실 과대평가예요(웃음). 그만큼 더 장점으로 삼으려고요. 전학가기 전에 이현민 코치님도 말씀해주시고, 모든 지도자 분들이 센스 있다고 해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농구 경기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아요. 7살 때부터 전자랜드 경기를 시즌권으로 끊고 매일 갔단 말이에요. 그때부터 경기를 본 게 가장 좋은 경험이자 제 살이 되고 뼈가 된 것 같아요. 형이 농구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줬거든요.”
“이현민 코치님도 그렇고, 정승원 코치님, 유병훈 코치님, 박찬성 코치님 등 다 가드 지도자분들을 만났기에 운이 좋았고 잘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최영상은 자신의 3점 슛 능력을 3등급으로 엄격하게 평가하며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슈팅 성공 확률을 극대화해야만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 때문이다.
실전 활용도가 높은 무빙 슛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은 그는, 매일 200개의 슛을 정확히 림에 통과시키는 고된 훈련을 묵묵히 소화해 왔다. 여기에 감독이 직접 만들어 준 슈팅 기록표가 더해지며 그의 훈련은 한층 체계적으로 변했다.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코트로 향해 수백 개의 공을 던지며 스스로의 데이터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있다.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표를 보면 퍼센테이지가 나오는데, 그걸 보고 ‘내가 쉴 수 없구나’ 혹은 ‘더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면 개인 연습을 더 할 수 있어요.”
스스로에게 가장 박한 평가인 8등급을 매긴 항목은 다름 아닌 '피지컬'이다. 거친 성인 무대와 훗날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뼈대를 다져야 할 약점이라는 것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장 보완해야 될 점이에요. 미스 매치가 많이 나니까 팀원들이 힘들어할 거예요. 더 피지컬을 키워야 해요.”

#대학로그
자신만의 냉정한 성적표를 품고 첫 성인 무대에 발을 내디딘 최영상. 아직 그의 앞에는 채워야 할 빈칸이 수두룩하다. 공격, 수비, 체력 모두 대학이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춰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대학 농구는 고교 시절 벼려온 무기가 여전히 통할지 시험받는 치열한 증명의 장이다.그는 현재 이채형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신입생으로서 많은 주전 출전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중고등 농구에서는 개인 능력이나 스킬 가지고 다 뚫었는데, 대학교 와서 경기를 뛰었잖아요.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돌파하다가 힘으로 밀리니까 돌파를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또 안타깝게도 형들이 많이 다쳤어요. 제가 1학년 때 이렇게 많이 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거든요. 감사하기도 하지만 부담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안주하지 않는 그는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복기한다. 날카로운 경기 분석을 통해 오른쪽 돌파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픽앤롤 전개 시 센터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도 스스로 인지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의 경기 영상을 직접 편집하고 돌려보며 전술 공부에 빠져 있다.
“조동현 감독님은 강한 수비 압박을 통해 얼리 오펜스를 추구하고 계세요. 제 숙제는 수비에서 쉬는 부분이랑 미스하는 걸 줄여야 해요. 공격에서는 더 자신감 있게 하고요. 제가 세트 오펜스를 하려고 해서 얼리 오펜스 때 자꾸 멈추거든요. 그 부분을 빨리 바꿔야해요. 고등학교 때 되던 패스도 대학교에서는 안 되니까 미스가 더 많아졌어요. 얼른 고치는 게 제 숙제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다양한 상황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본래 세트 오펜스를 즐기던 그는 팀의 빠른 템포에 맞춰 '얼리 오펜스'라는 새로운 전술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세트 상황에서 조립해서 만들어 줬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근데 그건 제가 원하는 거지, 감독님의 방향이 아니잖아요. 감독님이 준비하신 대로 해야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든 얼리 오펜스로 바꿔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펀지처럼 가르침을 흡수하는 태도는, 그가 지도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가장 큰 이유다. 코칭스태프가 지닌 경험의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팀'을 먼저 생각하는 헌신적인 자세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뢰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농구의 경험의 시간도 훨씬 많으신 분들이잖아요. 감독이라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팀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독님, 코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제 의견이 있으면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제 막 대학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최영상. 그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은 앞으로 펼쳐질 더 큰 도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제가 중학생 때 전설의 포켓몬같은 형들(이채형, 이주영, 홍상민, 이해솔)이거든요. 대단한 형들과 같이 뛸 수 있다는 거에 큰 기대를 하고 왔어요. 그래도 전 연세대의 확실한 가드가 되고 싶어요. 물론 아직 부족해요. 이기려고 농구를 해야 되고 팀이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에서 제가 보탬이 되어야 하고요. 제가 턴오버 안하고 정신 차리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주변에서 다들 저를 (양)우혁이의 파트너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양우혁 옆에 걔?’이런 느낌으로요. 그것도 맞지만 이제는 '연세대 가드 최영상'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더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증명해 내는 선수. 스스로 빈칸을 찾아내고 기꺼이 정답을 적어 내려가는 최영상의 코트 위에는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가 없다. 그가 흘린 땀방울이 모여 완성해 낼 '연세대 야전사령관 최영상'의 찬란한 다음 챕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치열한 코트 밖, 대학생 최영상의 일상도 생기로 가득하다. 원하는 시간에 강의를 골라 듣는 자유로움에 푹 빠진 그는 현재 글쓰기와 체육 수업을 수강 중이다. 강의실을 오가고 친구들과 학식을 나누는 소소한 기숙사 생활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다.
대학에서 맺은 새로운 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다. 아이스하키부 소속 김범수와는 외박 때면 친구 집에서 함께 밤을 지새울 정도로 각별한 우정을 나누며, 학업과 교우관계 모두에서 알찬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근데 한국 무용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형들이 재밌다고 해서 수영이랑 한국 무용을 배웠어요. 수영은 그래도 어렸을 때 해서 재밌는데 무용은 현타(?)가 오더라고요. 거울이 있는데 거기서 부채춤도 추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형들이 놀린 거 같아요. 춤도 못 추는데 혼자 삐그덕 거리고 있거든요. (김)상현이랑 같이 듣는데, 상현이가 잘 춰요. 박자도 잘 맞추고요.”
그는 취미마저도 '농구 시청'일 만큼 지독한 농구 사랑을 자랑한다. 게임엔 영 소질이 없어 잘 손이 가지 않는다고. 룸메이트는 삼일고 선배이자 팀 내 '전설의 포켓몬'으로 불리는 이주영이다.
“제가 게임에는 소질이 없어서, 다들 저랑 팀하기 싫어하더라고요. 뉴욕 닉스 경기 다 챙겨보고 있어요. 잠도 많이 자는 편이에요. 방은 (이)주영이 형이랑 같이 써요. 보고 배울 게 많은 형이에요. 경기 전 몸 관리가 정말 확실하다고 느꼈어요. 영상 분석도 그렇고 농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요.”
두 사람의 기숙사 라이프에서 겪는 가장 큰 시련은 다름 아닌 '모기'와의 사투다. 유독 모기에게 인기가 많은 최영상만의 억울한 고충과, 물릴 때마다 등장하는 "잘 씻으라"는 선배의 타박은 웃음을 자아내는 단골 에피소드다.
“이제 초여름이잖아요. 기숙사가 산 옆에 있어서 모기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방에도 많이 들어와요. 근데 모기가 주영이 형한테는 안 가고 다 저한테만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맨날 모기 있다고 징징 거리거든요. 근데 형은 자기한테 안 온다고 그러면서 ‘모기가 있었어?’이래요. 저는 모기의 밥인데… 형이 계속 저 보고 씻으라고 하는데, 제가 정말 잘 씻거든요. 정말 저는 깨끗한 편인데 저한테만 와서 억울한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대학 일상을 재밌게 풀어내던 중, 최영상이 쓱 내민 사진 한 장에는 카페에 들어선 선배 이주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 주영이 형 얘기 나와서 생각난 건데, 오늘(인터뷰 당일) 교양 수업 같이 들었거든요. 끝나고 체육관 가기 전에 음료 사준다고 데려가서 사준 장면이에요. 형이 평소에도 너무 많이 사줘서 한 번은 찍어야겠다 했는데 오늘 기회가 돼서 찍었어요. 주영이 형 감사합니다!”
#사진_점프볼DB(박상혁, 배승열 기자), 최영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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