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프볼이 추천하는 유소년 농구교실⑭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

김지용 기자 / 기사승인 : 2021-06-07 18: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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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지용 기자] "창원 유소년 농구 발전의 밀알이 되겠다."


농구전문매체 ‘점프볼이 추천하는 유소년 농구교실’ 프로젝트의 열네 번째 파트너는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이다.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은 2018년 경남 창원시 북면에 개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구 인기라면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뜨거운 창원에 유소년 농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이승민 원장의 노력과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러 점프볼이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을 다녀왔다. 

 

*본 기사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아쉽게 끝난 현역 선수 생활
1985년생인 이승민 농구교실 원장은 마산해운초, 마산동중, 마산고를 거쳐 성균관대에서 농구선수로 뛰었다. 유년기 시절을 모두 마산에서 보낸 이승민 원장은 성균관대에 진학해 프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을 지나 2학년이 됐을 때 당시 성균관대 박성근 감독님이 경질되었다. 그 후로 1년 넘게 감독님 없이 우리끼리 운동을 하게 됐다. 농구선수로 성장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감독님의 부재 속에 훈련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성장의 기회를 놓친 가장 아쉬운 시기이기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은 이승민 원장은 그래도 열심히 농구에 매진했으나 침체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찾아왔다. 허리디스크, 손, 발 골절 등이 연달아 찾아왔고, 결국 이승민 원장은 프로 진출에 실패했다.

 

“대학 4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학 3학년 시절 조성태 감독님이 부임하셨는데 그때는 김민섭, 방덕원 같은 좋은 후배들이 스카우트 돼오면서 팀의 기조가 어린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쪽으로 맞춰졌다. 당연히 졸업반이었던 나에게는 많은 기회가 없었다. 줄부상까지 겹쳐지다 보니 졸업을 앞두고는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웠고, 예상대로 프로 진출에 실패하면서 선수 생활이 끝났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이승민 원장은 곧바로 현역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전역 후 진로를 고민하던 이 원장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동기로 하승진, 강병현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2010년 초반에 프로에서 우승도 하고 굉장하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하다 내린 진로가 공무원 준비였고, 실제로 공무원 임용시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에 인생을 걸었던 그가 책상에 앉아 장시간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농구가 자꾸 이승민 원장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유소년 지도자는 나의 길이 아니다!
이승민 원장이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성균관대 조성태 감독이 이 원장을 불러 유소년 농구교실 강사로 진로를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유소년 지도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 원장에게 떨떠름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조성태 감독의 제안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성균관대 동기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조성태 감독이 너를 찾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창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던 이 원장은 바람도 쐴 겸 동기들을 만나러 성균관대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조성태 감독이 다시 한번 유소년 지도자 제안을 했다고 한다.


“졸업 후 학교를 찾아갔을 때 조성태 감독님이 또 유소년 지도자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계속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당시 강동희 농구교실 인천 연수점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이 마음에 없으니깐 면접을 보러 갔는데도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성격 자체도 외향적이지 않아서 아이들을 살갑게 대할 자신도 없었고 해서 인사만 드리고 다시 창원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농구가 운명이었을까?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책상에 앉았지만 계속해서 농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유소년 지도자는 아니다 싶어 억지로 외면하기도 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농구뿐이고 공무원 시험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자 이승민 원장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창원에 다시 내려와 책상에 앉았는데 머리에서 농구공 튀기는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머리로는 ‘내가 무슨 유소년 지도자야’ 했지만 가슴에서는 ‘그래도 농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작정 면접을 봤던 강동희 농구교실을 다시 찾아갔고, 감사하게도 그쪽에서 나를 채용해줘 유소년 지도자로서 삶이 시작됐다.”


그렇게 유소년 농구와 연을 맺은 이승민 원장은 강동희 농구교실에서 6년이나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부원장까지 올라가게 됐다.

#강동희 농구교실에서 쌓은 6년 경험
6년이란 시간을 유소년 지도자로 보낸 이승민 원장은 2018년 다시 창원으로 내려왔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다시 귀향하게 된 것. 창원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운영하던 이 원장의 부친이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길 원했다고 한다.


“강동희 농구교실에서 보낸 6년은 굉장히 보람찼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6년이란 시간을 통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농구를 가르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배워야 할 시기가 됐고, 2018년 그렇게 다시 창원으로 내려왔다.”


이제는 정말 농구와 인연이 끊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농구는 이승민 원장 곁에 머물렀다. 인테리어 사업을 배우고 있던 이승민 원장은 2018년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인테리어 사업이란 것이 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정을 꾸려야 하는 이승민 원장은 고정 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고등학교 때 은사였던 당시 사화초등학교 이호재 코치로부터 주말에는 체육관을 써도 좋다는 연락이 왔고, 그렇게 다시 농구와 연을 이어가게 됐다.

 

“결혼을 앞두고 인테리어 사업이 자리 잡기 전까지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고민을 토로했는데 그때 이호재 선생님께서 ‘네 사정이 그러면 주말에라도 체육관을 써서 농구 수업을 시작해봐라’고 권유해주셨다. 그래서 사화초등학교에서 약 7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때를 계기로 ‘아...나는 농구를 떠날 수 없겠구나. 이 길을 가야겠구나’라고 마음먹었다.”

돌고 돌아 다시 유소년 지도자로서 길을 걷게 된 이승민 원장. 사실, 이승민 원장이 유소년 지도자로서의 길을 망설였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계속 망설였던 이유가 나도 농구가 좋아 농구를 시작했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농구 배우는 분위기가 마냥 즐겁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경직된 분위기에서 농구를 배우다 보니 내가 애들한테 농구를 알려주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다. 내 성격 자체도 그렇게 외향적이지 않아서 그 고민이 더 컸다. 그런데 강동희 농구교실에서 6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성격도 변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보람도 느끼면서 이 길을 업으로 삼게 된 것 같다.”

#자신의 이름과 진심 앞세워 전용체육관 개장
이승민 원장은 처음 농구교실을 작게 시작했다. 주말 이틀만 문을 열고 가르쳤다. 하지만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자 이틀 수업으론 한계를 느꼈다. 

 

결국 제대로 농구교실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승민 원장은 결혼을 앞두고 자신만의 체육관을 짓기 위해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한 번 마음을 먹으니 일의 진행속도는 빨랐다. 다만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의 터전이 될 체육관 부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마산, 창원, 진해를 모두 돌아봤다는 이승민 원장은 두 달 넘게 발품을 판 결과 현재 체육관 부지를 찾는 데 성공했다.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 40-3번지에 문을 열게 됐다.

 

“체육관 부지를 얻고, 농구교실에 내 이름을 걸고 하기로 하면서 걱정도 많았다. 아무래도 내가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니다 보니 ‘내 이름을 거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해야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창원은 농구 열기가 뜨거운 곳이라 기존의 유명 농구교실들에 비해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컸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농구를 배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원 3년만에 수강학생 230여명으로 성장
개원 3년 차를 맞는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은 현재 230여 명의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이승민 원장을 포함한 5명의 강사진이 수업을 맡고 있다. 쉬는 날 없이 1주일 내내 체육관에서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이승민 원장은 창원 내에서는 후발주자이지만 ‘진심’이란 무기 하나로 지금까지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무래도 지방은 수도권보다도 더 농구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걱정이 크다는 이승민 원장은 “우리 농구교실에 와주는 친구들에게 늘 너무 고맙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친구들에게 더 즐거운 농구를 알려주는 것과 진심으로 애들을 대하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거 하나라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고민하는 요즘이다. 다만 지방은 농구를 하려는 아이들의 수가 더 줄고 있는 것 같아 너무 큰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가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농구는 즐겁고, 농구를 하면 재밌다는 걸 알려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정이다.

 

“나도 농구선수 출신이지만 학창시절 나왔던 기사나 사진을 지금도 보면 추억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 농구교실 아이들에게 점프볼을 통해 추억을 남겨줄 수 있으면 이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 생각해서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우리 같은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농구교실은 KBL 팀들이 운영하는 큰 규모의 농구교실들에 비해 콘텐츠가 한정적인데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을 찾는 아이들에게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팀워크’와 ‘희생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꼭 배웠으면 한다는 생각에 농구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생, 배려, 이해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다는 이승민 원장은 앞으로 아이들이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배운 교육을 잊지 않고 다양한 인간관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육자인 나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개성을 일일이 잘 파악해 그에 맞는 교육을 하고, 아이들은 코트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배려와 약속 등 기본이 되는 사회적 규범을 잘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더 많이 늘어나는데 적어도 농구를 배우고, 농구를 할 때만큼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서로 간의 약속에 대한 중요성 등 기본적인 규범에 대해 소중함을 잘 아는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창원 이승민 농구교실 INFORMATION*
주소 :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 40-3번지
TEL : 010-6778-2622

 

#사진_김지용 기자 

점프볼 / 김지용 기자 mcdas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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