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도쿄패럴림픽

기자 / 기사승인 : 2021-08-18 16: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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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외부 필진의 글로 본지의 의도와는 상관 없음을 알립니다.

나의 학문적인 정체성은 역사학자로서 스포츠와 체육(특히 정책)을 연구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체육과 스포츠의 역사를 연구했고, 당연히 논문도 같은 분야의 학회에만 냈다. 그러나 한눈을 파는 습성 때문에 관심 분야는 꽤 넓다. 몇 해 전 딸과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라는 주제로 대화한 적이 있다. 나는 ‘비교언어학’이라고 대답했다. 만약 지금 누군가 내게 “대학원에서 체육정책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전공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장애인체육’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장애인을 동정해서 도와야 한다.’라든가 ‘모든 사람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코가 커서 ‘호색한’이라는 놀림을 당하는 남성도 있고, 키가 보통 이상으로 커서 불편하다는 여성도 있다. 나는 장애란 특징이라고 보고 싶다. 장애를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므로 안됐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평범한 사람들이 다소 불편을 나누어 갖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것도 ‘내가 당신들을 위해서 이만큼이나 불편하지만 참고 노력한다.’는 식의 생색은 빼고.

내가 대학생일 때, 고등학교 후배가 함께 입학했다. 나는 공부에 뜻이 없어 엉뚱한 곳을 돌아다니다 뒤늦게 입학했고, 후배는 문과대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였다. 그는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진학했으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차별하는 법령 때문에 아픔을 겪었다. 내가 보기에 후배는 교사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정의감에 넘쳤으며, 배우는 데도 가르치는 데도 능했다. 운동신경도 발달해서 웬만한 운동은 다 어울려서 해냈다. 어느 날 대운동장에서 야구(타격만)를 했는데, 무척 큰 타구를 연속으로 날려서 놀란 적이 있다.

내가 독일에 가서 공부할 때 가장 관심이 큰 분야는 물론 스포츠-인문학이었다. 또한 농구를 사랑해서, 매일 바이엘의 농구단에 나가 일했다. 그러나 그런 활동 못지않게 관심을 둔 분야가 장애인 체육(Behindertensports)이다. 독일 체육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장애인을 위한 준비는 철저하고, 우선적으로 편의가 제공된다. 우리의 공공건물에는 아직도 적절한 장애인용 진입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그러나 바이엘의 체육관이나 운동장 중에는 아예 그런 시설이 필요 없도록 설계된 곳이 적잖다. 대개의 경우 휠체어를 타고 길에서 체육관 안으로 그냥 들어가면 된다.


독일 프로축구 바이엘 레버쿠젠의 홈구장은 바이아레나(Bayarena)다. 이곳에 있는 클럽하우스 입구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컵을 치켜든 차범근 선생의 사진을 담은 큰 액자가 걸려 있다. 이 사진이 아니라면 수용 인원이 3만 명을 겨우 넘는 이 경기장에서 강한 인상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크기만 보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바이아레나에는 특별한 자리가 있다. 장애인석이다. 장애인들은 큰길에서 바로 입장해 안전시설이 있는 특별석에서 경기를 관전한다. 귀빈용 스카이박스 바로 앞이 이들의 자리다. 여기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전시설도 있다.

매우 날씨가 흐린 가을날, 나는 바이엘의 종합 스포츠 센터 농구장에서 청소년들의 농구 훈련을 지켜보았다. 오후 네 시에 시작된 훈련은 한 시간 반이 지나자 끝났다. 훈련을 마치고 나오니 하반신 장애 선수들이 공을 튀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맡은 다음 훈련은 두 시간 뒤에 시작되었다. 가장 운동하기 좋은 시간, 직장이나 학교를 마친 다음 여유 있게 와서 충분히 운동할 수 있도록 시설과 시간을 배정한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기다리며 울창한 숲길 사이로 난 조깅 트랙을 달렸다. 그때 내 후배를 생각했다. ‘녀석이 여기 왔으면 참 좋았겠다.’라고.

도쿄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대표선수단 본진 45명이 오늘(18일) 출국했다. 대한민국은 오는 2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이번 패럴림픽에 총 159명(선수 86명, 임원 73명)을 파견한다. 본진에 이어 30일까지 14개 종목의 국가대표들이 차례로 도쿄를 향해 출발한다. 대표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4개를 포함한 메달 34개, 종합 20위권 진입’이다. 출정식에서는 “도쿄 올림픽의 열기를 이어 받아 패럴림픽에서도 우리 선수단이 국위선양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는 격려사도 나왔다. 국위선양은 아직도 힘센 구호다. 내가 보기엔 장애를 이겨내고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것만도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대표선수단에는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이후 21년 만에 출전권을 따낸 남자 휠체어 농구 대표팀도 있다. 우리 장애인농구는 1997년 4월에 ‘휠체어농구연맹’을 창설하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발기인 명단에 최희암 연세대 감독이 보인다.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로 일하던 나는 초대와 2대 이사로 일했다. 그해 8월 한·일국제휠체어농구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는 숨이 멎을 것처럼 기뻤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본선 진출을 이끈 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한사현 감독의 영전에 메달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고 한다. 이번 패럴림픽에서 꼭 뜻을 이루기를 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사진=Bayer 홈페이지의 장애인체육 페이지 초기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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