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이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아홉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동국대 박지원(197cm, F)'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또래들 사이에서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졸업반이 될 무렵 이미 181cm라는 압도적인 신장을 자랑했던 그는 KBL 장신 선수로 등록될 만큼 남다른 재능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머릿속에 '농구 선수'라는 미래는 없었다.
“아버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하라’고 하셨었거든요.” 그저 취미로 방과 후 코트를 누비던 어린이의 삶이 바뀐 건 운명 같은 만남 덕분이었다. 방과 후 수업에서 만난 삼성 썬더스 유소년 코치의 눈에 그의 재능이 포착되면서, 박지원의 인생 항로는 코트 위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학한 양정중. 엘리트 농구의 길로 접어든 그에게 주어진 보직은 당연하게도 '센터'였다. 압도적인 신장을 살려 중학교 시절 내내 리바운드와 포스트업 등 골밑 플레이에 매진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량을 꽃피워야 할 중학교 1학년 무렵, 코로나19로 인해 훈련을 거의 소화하지 못하는 악재를 맞았다.
시간이 흘러 양정고에 입학한 그는 플레이의 스펙트럼을 한 단계 더 넓힐 기회를 맞이했다. 프로 무대를 누비고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창모 코치를 만나면서부터다.
“고등학교 때는 김창모 코치님한테 많이 배웠어요. 젊으시고 프로에서 은퇴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 보니 가르쳐 주시는 게 체계적이고 내용도 알차더라고요. 제가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수비가 많이 늘었어요. 디테일도 코치님이 많이 잡아주셨어요.”
팀 사정상 여전히 빅맨 역할을 맡아야 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품어왔던 외곽 플레이에 대한 갈증도 고교 무대에서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학교 때보다는 외곽에 나가서 플레이도 해봤고요. 중학교 때는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고등학교 때는 몇 번 하게 해주셨거든요. 사실 몇 번 더 제가 외곽에 나가서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근데 코치님은 ‘더 연습을 하고 안에서 완벽하게 해야 외곽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하셨죠. 더 안에서 확실하게 다듬고 나오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현실적인 고민도 뒤따랐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가오는 진학의 압박은 그에게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코트 위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다소 막연하게 다가왔던 미래가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 비로소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지독한 노력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사실 제가 고2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훈련만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제 고3 올라가는 동계훈련 때 ‘이렇게 하다가는 대학도 못 가겠다’ 싶더라고요. 목표는 프로 선수잖아요. 그래서 매일 밤 나와서 드리블 연습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했어요. 그때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밤을 지새우며 흘린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았다. 고교 마지막 해를 앞두고 마주한 지독한 성장통은 마침내 팀을 결승 무대로 이끄는 값진 열매로 돌아왔다. 단순히 기록이나 성적표의 숫자를 넘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태도를 재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첫 대회인 춘계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는데, ‘연습을 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크게 느껴졌어요. 그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안 했고, ‘열심히 한다고 늘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때 정말 열심히 하니까 되는 거예요.” 노력의 가치를 비로소 깨달았던 순간을 돌이켜봤다.

절박했던 고등학생 시절 마지막 동계훈련은 박지원이 자신의 강점을 선명하게 발견한 시간이었다. 확신이 생기자 노력의 밀도도 달라졌다. 당시 양정고의 스위치 디펜스 속에서 그는 외곽까지 나와 상대 가드들을 끈질기게 괴롭혔고, 수비는 어느새 그의 든든한 무기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공격에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박지원은 처음으로 스킬 트레이닝 센터를 찾았다.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개인 훈련을 이어가며 매일같이 드리블을 다듬었고, 부족했던 부분을 하나씩 채워가며 자신의 농구를 더욱 넓혀갔다.
“본격적으로 중2부터 농구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리바운드랑 골밑 플레이만 하다 보니 드리블의 중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칠 상황도 없었고요. 사실 개인적으로 연습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한참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후로 계속 연습하고 있으니 더 좋아질 거예요.”
실력의 성장만큼이나 그를 성숙하게 만든 건 양정고에서의 '주장'이라는 무게감이었다. 평소 리더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코치의 권유로 캡틴 마크를 달게 됐다. 책임감이 생기면서 코치진과 더 가까워졌고, 성격에 없던 리더십도 자연스레 싹텄다.
팀을 이끄는 방식도 그만의 스타일이 확실했다. 그는 "너무 애들을 잡는 것보다는 자유를 주지만 너무 나간다 싶을 때 잡아주는 역할을 했죠"라며 웃어 보였다.
동계훈련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박지원은 뜻밖에 후배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잠깐의 휴식을 원하는 팀원들의 바람보다 연습이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훈련을 매일 하다 보면 하루 정도는 리프레시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근데 애들이 저더러 ‘축구 한판 정도 하자’고 코치님께 말하라고 하더라고요. 다가오는 대회 기간도 많이 남기도 했고 동계훈련 때였죠. 근데 그때 제가 마인드가 바뀐 시점이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우리 연습해야 된다’고 잘랐거든요(웃음). 그래서 애들이 주장인데 안 해준다고 살짝 서운해했어요. 그때 생각하면 애들한테 미안해요.”

대입을 앞둔 일반 학생들이 수능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농구 선수들에게는 코트가 곧 시험장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익숙했던 주황색 유니폼을 벗지 않은 채, 동국대에서도 같은 색을 입게 된 박지원. 스스로 매긴 성적표를 통해 그의 장단점과 성장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공격- 4등급
수비- 2등급
슈팅 능력- 4등급
블록슛- 2등급
속공- 2등급
대학 무대에서도 그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냉정하게 분석하며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 현재 그의 공격 무기는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업과 풋백 득점, 픽앤롤 등 선 굵은 골밑 플레이다. 그러나 핸들링을 아쉬움으로 꼽으며 4등급을 부여했다.
"가드 친구들처럼 개인 능력으로 드리블해서 일대일하는 비중은 적었어요. 이제 드리블을 가드처럼은 아니더라도 포워드 정도는 키워야죠. 수비를 완전히 제낄 수 있게끔요. 그러면 공격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그를 코트 위에서 빛나게 하는 건 단연 수비력이다. 빅맨의 신장을 지녔음에도 외곽에서 가드를 묶어둘 수 있는 발을 가졌다는 점은 그만의 확실한 메리트다.
"수비는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에요. 제 키에 가드 수비가 되는 건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양정고 때부터 스위치 디펜스를 했거든요. 코치님도 저한테 ‘네가 가드 수비가 되니까 우리 팀이 스위치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해주셨거든요." 가드까지 전방위로 막아낼 수 있는 그의 전천후 수비 능력은 팀의 전술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4등급의 슈팅은 그가 코트 위에서 완벽해지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할 마지막 퍼즐이다. 동국대 진학 이후 슈팅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한 그는 완벽한 슛을 장착하기 위해 밤낮없이 림을 조준하고 있다.
"슈팅은 더 보완해야 돼요. 제가 많이 안 쏴버릇했잖아요. 그렇게 슛이 좋은 것 같지 않아서 계속 꾸준히 연습하고 있어요. 동국대 오니까 슈팅을 또 엄청 많이 쏘더라고요. 최소 2등급이 될 때까지 저는 연습할 거예요. 무조건 1등급 만들기. 프로에 가려면 슈팅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새벽에도 쏘니까 매일 500개 정도 연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림을 사수하는 타점과 본능적인 수비 센스도 남다르다. 무리하게 덤비지 않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영리한 수비는 고교 시절 이미 한 경기 '9블록슛'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낳기도 했다.

"키에 비해 잘 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키 큰데 잘 뛰고 기동력이 좋아서 동국대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비도 괜찮고요." 자신의 강점을 짚으면서도, 성인 무대에서 만난 높은 벽을 통해 배운 점을 털어놨다.
“대학 와서 (김)명진이 형이랑 몇 번 훈련 같이 했거든요. 근데 형이 엄청 잘 뛰시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저보다 키도 큰데… ‘나는 아직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생각했죠. 또 대학은 백코트가 빠르니까 속공 찬스도 안 나오더라고요. 체력과 스피드를 더 만들고 달려버릇해야 될 것 같아요.”
눈앞의 한계를 마주한 그는 이제 더 높은 차원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전통적인 빅맨의 역할에 갇히지 않고 코트 전역에 영향력을 뻗치는 현대 농구의 스트레치 빅맨이 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스트레치 빅맨이 돼서 4번(파워 포워드)이나 3.5번 정도도 가고 싶어요. (이)대균이 형이나 (김)명진이 형처럼 잘 뛰고 인사이드도 되고 외곽도 되는 선수요."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를 뚜렷하게 세워 보였다.

성적표를 품고 첫 성인 무대에 발을 내디딘 박지원, 채워야 할 빈칸이 수두룩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만큼 대학에서 마주한 전술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고교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전술 패턴과 피지컬의 한계는 그에게 큰 숙제를 안겼다. 하나의 패턴 속에서 5명 모두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대학 농구의 시스템에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제가 패턴을 너무 못 외워서 꾸중을 듣기도 했어요(웃음). 고등학생 땐 늘 제 자리만 외우다 보니까요. 하도 틀리니까 패턴을 한 번 싹 그렸어요. 핸드폰 메모장이랑 농구 코트 앱을 다운받아서 패턴별로 정리해서 그리고 쓰고 있습니다. 수시로 확인하고 메모하고 있어요.”
대학 입학 전 미리 합류했던 동계 전지훈련은 그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빡빡한 스케줄과 낯선 환경 속에서 독감과 발목 부상까지 겹치며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기회를 준 감독에게 미안할 정도로 몸이 따르지 않자 '내가 이렇게 농구를 못했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밀려왔다. 하지만 쓰라린 성장통은 그를 무너뜨리는 대신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등학교보다 더 성장한 모습이요. 수비, 블록은 장점이었지만 그런 건 당연히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약점이었던 드리블과 슛을 더 다듬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상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니다!”

치열한 코트 밖, 대학생 박지원의 일상은 어떨까. 입학 전 품었던 캠퍼스의 로망은 성인 무대의 매운맛과 훈련 강도 앞에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리도 들어가고 MT도 가고 동기들과도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런 로망이 있었는데 완전히 깨졌어요(웃음). 감독님이 한 번 다 같이 동계 때 갈 수 있게 해주셨었는데, 형들이 가서 놀 바엔 쉬는 게 낫다고 했어요. 지금은 외박 나가는 게 제일 재밌습니다."
박지원에게 대학 생활은 아직 낭만보다 현실에 가까웠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강의실로 향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 선수의 삶 속에서, 가끔은 웃음 섞인 푸념도 흘러나왔다.
"살짝 현타(?) 온 것도 있어요. 동국대가 불교 학교잖아요. 필수 과목에 명상이 있어요. 다 명상 자세로 앉아서 명상을 하거든요.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현타가 오더라고요(웃음). 빨래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도 현타가 오긴 해요. 힘든 만큼 돌아오니까 결과로 증명해야죠."
웃픈 표정으로 운을 뗀 박지원은 "대학 생활하면서 뭐가 재밌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없어요. 농구는 물론 재밌지만, 대학 생활에서는 재밌는 게 없네요(웃음)"라는 뼈아픈(?) 고백을 전했다.
하지만 힘든 일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동국대를 이끄는 이호근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유쾌한 분위기 덕분이다. 엄격한 지도자이면서도 때로는 친구처럼 선수들과 어울리는 이호근 감독은 선수단 내에서 '인기 만점 감독'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선수들에게 배운 신조어(야르: 좋다는 뜻)를 적극 활용하며 팀 분위기를 한층 밝게 만들고 있다.
“감독님이 너무 좋아요. 저희가 ‘야르’라는 신조어를 알려드렸어요. 훈련 중에 저희 선배가 슛 하나 못 넣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감독님이 완전 ‘야르다, 야르’ 이러시더라고요(웃음). 뜻도 알려드렸는데 그냥 쓰세요. 너무 재밌어요. 식사하실 때도 갑자기 ‘야르야르’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왜 그러시지?’ 했는데 형들이 알려드렸대요.”
써 다음 계획도 세워놨다. 감독에게 또 다른 신조어를 전수해 드릴 생각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조만간 밤티(촌스럽다는 뜻)라는 신조어도 알려드릴 거예요. 감독님 훈련은 빡세지만 정말 재밌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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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그 이미지에 들어가지 못한 '보드 타는 한재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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