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리그] 제자들이 말하는 이민현 전 조선대 감독

이재범 / 기사승인 : 2019-06-17 21:01: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이재범 기자]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항상 남자다우셨고, 많이 청렴결백 하시다.”

남자 프로농구 감독들이 젊어지고 있다. 프로농구 선수 출신들이 6개 구단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30년간 경희대 감독을 역임한 최부영 감독이 2014년 물러났고, 22년간 단국대를 이끈 장봉군 감독이 2016년 체육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1년간 조선대 감독을 맡은 이민현 감독도 지난 5월 강양현 감독에게 자리를 물러줬다.

이민현 전 감독은 대학시절까지 최고의 선수였지만, 스카우트 파동을 겪으며 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KBL 김동광 경기본부장은 “당시 정말 잘 했던 선수다. 자기 또래에서 탑이었다. 故 김현준보다 오히려 앞섰다. 솔직하게 대학 시절에는 민현이가 현준이보다 더 월등했다”며 “나중에 현준이가 삼성으로 가면서 더 컸고, 민현이는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져서 잘 안 풀렸다”고 이민현 전 감독의 학창시절 기량을 들려줬다.

은퇴한 뒤 기업은행, 배재고, 고려대 등에서 코치를 역임했던 이민현 전 감독은 2008년 당시 조선대 감독에서 LG 코치로 자리를 옮긴 김대의 천안성성중 코치의 제의를 받은 뒤 조선대 감독을 맡았다. 이민현 전 감독은 2년 정도 조선대 감독을 맡을 생각으로 광주로 내려갔는데 11년간 인연을 이어나갔다.

조선대의 시작은 프로농구 출범 덕분이다. 광주 나산 플라망스가 광주에 연고지를 정하며 광주에 농구부 창단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대는 2부 대학에서 1부 대학으로 어렵게 올라선 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하위권에 맴돌았다. 또한 이민현 전 감독은 감독과 코치, 매니저 등을 1인다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민현 전 감독은 선수들의 개인기량 발전에 중점을 두고 싶었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민현 전 감독은 “주마등처럼 11년이란 시간이 스치는데 최수현 등 프로에 간 선수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신입생을 포지션과 상관없이 8~10명 가량 뽑았다. 2학년 즈음 대부분 그만둔다. 4학년이 되면 2명 정도 남았다. 그들이 죽기살기로 노력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선수들”이라며 “프로에서 빛을 발했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조선대를 졸업한 제자들을 떠올렸다.

이민현 전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건 2011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단국대에게 역전승을 거둔 경기다.

“대학농구리그에서는 특별하게 이긴 경기가 많지 않다. 그래도 학교에서도 기대를 가지는 전국체육대회에서 단국대에게 이긴 경기가 생생하다. 당시 단국대 선수들이 좋아서 다들 단국대가 다 이긴다고 했고, 3쿼터까지 18점 정도(52-70) 뒤졌다. 끝나기 3분~4분 전에 지역방어를 선 게 통한데다 김동우의 버저비터로 이겼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당시 버저비터의 주인공 김동우는 “그 때 우리는 단국대에게 당연히 질 거라고 생각하며 외박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제가 버저비터를 넣어서 이겼다. 다음 경기(8강) 상대가 연세대라서 형들이 ‘왜 넣었냐’고 농담을 하더라”며 웃은 뒤 “4쿼터 들어가면서 외곽이 터져 점수 차이가 좁혀졌다. 특히, 경기 막판 3점슛이 잘 들어갔다. 단국대가 실책을 해서 험블이 되었는데 그걸 제가 잡아서 원 드리블 후 슛을 던졌는데 백보드를 맞고 들어갔다. 하프라인 한참 뒤에서 던진 게 들어가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짜릿하다. 감독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기업은행 코치 시절부터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형님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공사 구분을 하고, 작전지시까지도 했던,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 받았던 이민현 전 감독을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음은 제자들이 떠올린 이민현 전 감독이다.

최수현 삼성 매니저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대학에 데려가서 많이 혼내셨다. 그 때는 뭐라고 하셔서 싫었는데 잘 되라고 하셨던 말씀이시다. 제일 깨끗하시다. 돈도 허투로 쓰지 않고, 선수들을 위해서 사용하셨다. 부모님께 강요도 없고, 신사 같은 분이시다. 이런 표현을 해도 되나? 그런 부분에서 너무 좋으셨다.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대학 때 선수들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더 먹이려고 하시고, 코치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3학년 때 한 번 농구부를 나간 적이 있다. 경기 끝나고 회의감이 들어서 그랬는데 그 때 만약 농구를 그대로 그만뒀으면 프로도 못 오고, 이도저도 아닌 걸로 끝났을 것이다. 감독님께서 코치에게 어떻게든 데려오라고 시키셨다. 다음날 농구부에 들어가서 감독님께 ‘농구를 더 이상 안 한다, 못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감독님께서 정말 강하게 질책하시고 바로 훈련하라고 하셨다.

김동우 3x3농구선수
되게 좋았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농구용품을 챙겨주시는 등 선수들을 위해서 힘을 많이 쓰셨다. 조선대가 약체인데 선수들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도록 말씀도 많이 하셨다. 때론 자극을 주는 말씀도 하셨는데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안다. 저는 1학년 때부터 기회를 많이 받아서 경기도 많이 뛰었다. 그 덕분에 기량도 많이 좋아져서 4학년 때는 득점 2위까지 할 수 있었다.

이상민(KT)
경기 중 자신 없는 모습을 싫어하셔서 경기가 안 풀리는 때도 소심하게 있으면 많이 혼났다. 경기 중에 칭찬을 많이 하시지 않는 편이다. 경기 중에는 칭찬을 들은 적이 없다. 4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자 감독님께서 ‘2,3학년 때와 달리 지금 그렇게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 드래프트가 금세 눈앞에 온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훈련해라’고 하셨다. 지나고 나니까 맞는 말씀이셨고, 그 말씀을 안 듣고,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후회하고 있을 거다 그 때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박여호수아 조선대 전 코치
아버지 같은 존재셨다. 풍채도 워낙 듬직하시지만, 항상 남자다우셨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다. 한 번 뱉은 말씀을 바꾸시지 않아 신뢰가 가는 분이시다. 선수로서도,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코치로 있으며 감독님의 철학, 가치관을 잘 배웠다. 많이 청렴결백 하시다. 선수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 다른 요구하시는 걸 본 적도 없고, 워낙 확고하시다. 식사 자리에서 한 번 여쭤보니까 ‘봉사하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가르치는데 장난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대학 3학년 때 건국대와 대학농구리그 첫 경기에서 아마 40점 이상 졌던 걸로 기억한다(49-92). 선발로 출전하지 않았고, 2쿼터에 들어간 저에게 질책하셔서 왜 나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의아했다. 3쿼터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전을 안 시키시고, 4쿼터에 투입하며 ‘너 마지막 기회야’라고 하셨다. 이해를 못하면서도 열심히 했다. 경기 후 엄청 질책하셨는데 선발로 나간 것도 아니고, 경기에 큰 영향을 줄 만큼 많이 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질책하셔서 3학년 전반기에는 경기를 못 뛰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동국대와 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시켜 주셨다. 교체 선수로 나가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선발로 기용하셔서 그 전 경기 질책 때문인지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되어 동국대를 이겼다(79-67). 감독님께서는 그 기억을 못 하시더라.

감독님께선 연습 때 보여준 걸 경기 중에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때 질책하신다. 평소 3점슛을 던지던 선수가 경기 중에 포스트업을 하면 경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변칙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길 요구하는데 선수들이 자꾸 다른 걸 하면 강하게 뭐라고 하신다. 돌파를 잘 하는 선수는 돌파를 하면서 공격 능력을 발휘해 출전시간을 늘려나가야 한다. 그런데 슛을 던지니까 ‘잘 하는 돌파를 안하고 왜 슛을 던지냐’고 이런 식으로 말씀 하신다.

선수마다 장기를 파악하셔서 그걸 최대한 살려주려고 하시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확하시다. 선수들은 돌파도, 슛도 다 잘 하려고 하는데 프로 무대에 가려면 어중간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감독님께서 그걸 아시고, 한 가지만 확실하게,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능력을 키웠으며 하는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하신다.

플레이 할 때마다 질책을 하시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놔두면서 큰 틀에서 벗어날 때 잡아주신다. 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수비 중심의 농구를 배웠다. 볼을 돌리다 제 기회일 때 슛을 던지는 편이었다. 대학 들어와서 형들이 너무 공격적으로 해서 솔직히 2학년 때까지 적응을 잘 못 했다. 졸업하고 보니까 너무 잘 배운 거 같다. 수비 중심으로 고등학교까지 배웠는데 대학에서 제가 어떻게 공격을 할지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나 스스로 득점을 많이 올리려고 공부하게 되었다. 너무 공격만하면 보통 교체를 하실 건데 감독님께선 더 하라며 공격을 안 하면 교체한다고 하셨다(웃음). 그러니까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대학 입학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졸업할 때 드래프트에 참가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입장이었는데 감독님 덕분에 3,4학년 때 경기를 많이 뛰어서 드래프트도 경험했다. 대학 때 감독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일찌감치 농구를 그만뒀을 거다. 코치로도 좋게 봐주셔서 엄청 감사하다(웃음).

김현국 경희대 감독(기업은행 제자)
기업은행에서 1년 정도 지도를 받았다. 굉장히 선수들을 안아주시고, 감독님의 스타일을 농구에 접목 시키려고 하셨다. 코트에서는 지도자였지만, 코트 밖에서는 동료이자 친형같이 대해주셨다. 그 때 제가 막내였는데 막내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져주셔서 감사했다. 지금도 형님처럼, 큰 감독님처럼 생각한다.

제가 경희대 코치로 왔을 때 고려대 코치님을 하셨다. 그러다 조선대 감독님으로 부임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기 죄송하지만, 조선대가 약하니까 감독님의 농구를 보여주기에는 작은 팀이었다. 좀 더 좋은 팀에서 지도자를 했다면 지도자로서도 꽃을 피웠을 텐데 팀이 약해서 감독님의 가진 능력을 모두 펼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럼에도 일부 팀들은 조선대에게 혼나는 경기를 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 해서 결국 프로까지 보내는 걸 보면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는 걸 다시 생각했다.

#사진_ 점프볼 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재범 이재범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