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옛 된 얼굴의 한 청년이 첼시 리와 버니스 모스비에게 빠르게 작전 지시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시즌 부천 KEB하나은행의 작전 시간만 되면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 하지만 당분간 경기장에서 이 청년의 얼굴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이 청년의 주인공은 지난 시즌 여자농구 유일의 남자 통역으로 주목 받은 KEB하나은행의 통역 신용철(22) 씨. 그는 오는 5월 17일 현역으로 군에 입대한다.
“신인 선수부터 고참 누나들까지 다 군대 얘기하며 놀려요. 다음 시즌엔 올 시즌보다 통역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데...아쉬워요. 하지만 군대 가는 시기를 더 늦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통역 일을 통해 철도 많이 들었고 신용철이라는 사람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거 같아요.”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평소 농구에 빠져 지냈던 그는 자신의 미래를 농구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예전부터 농구를 좋아해서 주위에 농구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느 날 지인 중 한분이 KEB하나은행에서 외국선수 통역을 할 생각이 없냐며 갑작스런 제안을 하셨죠. 그 일이 있기 일주일 전, 농구 쪽으로 제 진로를 굳혔던 터라 ‘운명 같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중학교 때 우연한 계기를 통해 농구에 빠져들었다. “중학생 때였어요. 점심시간에 농구를 했는데 친구들이 안 끼워주더라고요. 오기가 생겨 농구에 매진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선 학교 농구부 대표로 뛰며 농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쌓은 영어실력과 농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남자임에도 여자농구 통역으로 일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KEB하나은행 구단 관계자도 “시즌 중 감독님과 선수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특히 농구 용어를 많이 아는 등 전반적인 농구 지식이 뛰어났다”고 신종철 씨에 대해 평가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통역일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사회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사회에서 따르는 격식도 잘 몰랐고 미국생활을 오래해 존댓말도 어눌했어요. 당연히 실수도 많이 했죠. 7라운드 쯤 돼서야 ‘아, 이 일은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하는 감이 왔죠.”
흔히 통역이 하는 일을 경기 중 감독의 작전지시를 외국선수에게 전하고 공식 인터뷰 때 선수의 말을 팬들에게 전달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통역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통역 일 뿐 아니라 외국선수들의 통신비라던가 음식과 관련된 일, 집까지 데려다주는 일, 장 볼 때 도와주기 등 외국선수의 사소한 일까지 챙겨야 해요. 외국선수 개인 매니저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거 에요.”
생애 처음으로 도전하는 여자농구 통역,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창피하면서도 웃겼던 일.”이라며 입을 땠다.
“팀 비디오 미팅 때 졸았던 적이 있어요. 감기가 걸려 감기약을 먹었는데 약기운에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박종천 감독님이 그런 절 보고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Wake up!'이라며 소리를 질렀어요. 번뜩 잠에서 깼죠. 지금 생각해도 창피해요. 그 때 이후론 비디오 미팅 때 절대 졸지 않아요.”
KEB하나은행 통역을 하면서 여자농구를 처음 보게 됐다는 신용철 씨는 한 시즌 만에 여자농구 매력에 푹 빠졌다.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진 여자농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남자농구만 봐왔기 때문에 재밌을 거 같아서 도전해봤죠. 가까이서 여자농구를 경험해 보고 놀랐어요. 어떤 면에선 남자농구보다 더 거칠어요. 저득점으로 재미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경기를 실제로 보면 정말 치열해요. 무엇보다 선수들의 열정이 대단해요.”
인터뷰를 하던 도중 평소 통역에 대해 궁금하던 것이 생각났다. ‘통역은 작전 타임 때 감독의 주문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것일까? 시끄럽고 정신없는 저 상황에서 놓치는 부분은 없을까?’
“물론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감독님이 보드에 그린 것을 보고 무슨 플레이인지 파악해요. 팀 패턴은 다 외우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에요. 만약 약속된 패턴이 아니라 갑자기 만든 작전이라면 감독님이 말한 단어 몇 개를 잡아내서 예측을 해서 통역을 해요.”
여자농구를 취재하다 보면 구단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여자 선수들은 감정적으로 섬세하다.”라는 말이다. 그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자 “가끔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선수들은 감정이 섬세해요. 남자인 제가 공감을 못해서 가끔씩 마찰이 있었던 적도 있죠. 하지만 민감한 부분에 대해선 다른 여성 통역분이 도와주셔서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정작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든 부분은 이런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방송 인터뷰였다. 인터뷰 얘기를 하자 그는 한숨부터 쉬었다.
“경기 후 기자실에서 하는 수훈 선수 인터뷰는 괜찮은데 방송 인터뷰는 너무 떨려요. 제발 영어가 가능한 리포터가 와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해요. 두 번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모니터를 하니 진짜 못 하더라고요.”
신용철 씨는 지난 한 시즌 첼시 리, 모스비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코트 안팎에서 그녀들을 살뜰히 살피며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노력했다. 당연히 두 선수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였다.
“첼시 리는 굉장히 재밌는 선수에요.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장난도 많이 쳐요. 모스비는 의외로 얌전해요. 코트 위에선 화려한 플레이를 많이 하지만 평소엔 조용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죠. 한마디로 정숙해요.”
마지막으로 신용철 씨에게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군 입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조만간 일이 마무리 되면 세계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군에 가기 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여자농구를 많이 사랑해주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즌 선수들이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뛰는 모습을 보고, 같은 팀이지만 팬이 됐거든요. 가족들에게는 군대 잘 갔다 오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사진_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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