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광주/김인화 기자]2015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대회 광주대회 예선 마지막 날.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천안 성성고의 벤치. 사슴처럼 큰 눈망울에 남들과 조금 다른 피부색을 가진 소년이 홀로 일어서서 응원을 하고 있다. 교체 선수들의 물과 유니폼을 챙기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선수단 프로필을 확인해봤다. 국적 파키스탄. 이름도 생소한 마즈빈로우프(181cm, C). 성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엘리트 농구 선수다. 정식 농구를 시작한지 5-6개월. 아직 기본기를 밟는 단계지만, 예선 첫 경기에서 10분을 소화했다. 큰 신장에 워낙 힘이 좋기 때문에 리바운드나 수비에서 제 몫을 다했다. 두 번째 경기는 벤치에 머물렀다. 팀이 소년체전을 준비하는 경기였기 때문.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마즈빈로우프는 소년체전과 같은 공식 경기는 뛸 수 없다. 성성중 최세현 감독은 “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의욕이 넘치고, 경기에 투입되면 제 역할을 다하는 선수인데 국적 획득하는 절차가 늦어져서 소년체전을 뛰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전했다.
마즈빈로우프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을 따라 5살 때 한국으로 건너왔다. 누구보다 농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인천 전자랜드 유소년 농구팀에서 취미로 농구를 즐겼다. 엘리트 농구의 개념도 몰랐다. 그저 열심히 농구하면 농구선수가 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됐고, 마즈빈로우프는 농구선수가 되려면 정식 농구부에 입단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농구부가 있는 학교마다 테스트를 받으러 다녔지만, 그를 받아주는 학교를 찾기 힘들었다. 이미 정식 농구를 시작하기에 늦기도 했고, 팀 입장에서 외국 선수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농구를 하고 싶었다. 집은 인천. 수도권에서 농구하는 게 어려워지자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찾다 찾다 천안까지 내려오게 됐다. 성성고 역시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농구를 할 수만 있게 해주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사정했고, 진심을 확인한 최세현 감독은 그를 선수로 받아들였다.
한국 나이로 이제 16살. 한창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숙소생활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은 해야 하는 이슬람교 기도는 농구 훈련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취미로 해왔던 농구와도 너무 달랐다. 쉴 새 없이 뛰는 농구 연습을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기본적인 체력부터가 정식 농구 선수들과 달랐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게 그만의 방식이었다.
마즈빈로우프는 “부모님이 하고 싶은 농구를 하게 해주는 대신 하루 다섯 번 기도만은 꼭 지키라고 부탁하셨다. 어쩔 수없이 야간 운동 끝나고 다섯 번을 몰아서 기도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면서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체력이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처음이니까 하다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그가 한국 선수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역시 기우였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문화에 녹아들었다. 팀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아했다. 그는 “팀 후배들이 경기를 뛰는 걸 보면 나도 너무 뛰고 싶다. 그런데 그 마음을 꾹꾹 참고 힘을 불어넣어준다”며 “나보다 나이는 어린 후배들이지만, 농구를 시작한 나이로는 나보다 선배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다. 나이를 떠나 선배나 다름없기 때문에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하프타임 슈팅 연습 때도 도우미를 자처했다. 슈팅을 해보고 싶을 법도 한데 마즈빈로우프는 슛 한번 던지지 않고, 동료들의 연습만을 도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본인은 아직 슛을 던질 입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선택한 방법이다.
마즈빈로우프는 아직 골밑슛 정도밖에 마스터하지 못한 초보지만, 이미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하다. “나는 몸싸움을 좋아한다. 상대 팀에 키가 큰 선수가 있으면 얼마나 잘하는지 붙어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면서 “오세근 선수처럼 포스트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무슨 일이든 한 번 하기로 마음먹어놓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농구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죽을 때 까지 농구를 할 거다. 프로에 가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하게 돼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프로에 못가면 될 때까지 도전할거다. 연습 생이라도 좋으니 무조건 프로 농구선수가 될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한국에서 아직 파키스탄 출신의 프로농구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마즈빈로우프가 프로 선수가 될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어린 소년의 자기 확신과 농구에 대한 갈증과 열망이 그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다.
#사진_선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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