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06) 고려대 이건희 “끈기와 노력, 성공으로 연결짓고 싶어요!”

이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9-12 11: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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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인터넷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수년. ‘25슬램게임’은 드래프트 지명과 KBL 무대 데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 농구 일원들의 생존기록을 담았다. 006번 참가자는 고려대 이건희다.

#001_Scan. 006번 참가자: 이건희

 

이건희와 농구의 첫 만남은 그의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본가인 의정부에 자리 잡은 유소년 농구 클럽 의정부 SK 농구교실에서 농구와의 연을 맺었고, 일주일 내내 농구교실에 가는 날만을 기다리며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취미로만 농구를 즐겨보자는 생각이었죠. 근데 어느 순간 농구 교실에 가는 날만을 기다리는 저를 보게 되었어요. 너무 재밌었고, 그 당시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신체 조건이 좋았다 보니까 오른손 레이업슛만 시도해도 공격이 손쉽게 풀렸을 정도로 농구가 잘 되기도 했어요. 농구교실 선생님들도 저를 더 기용해주실 때가 많아졌고, 농구 선수의 길을 걷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하시기도 했어요. 여러 영향이 더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선수반으로 위치를 옮겼습니다. ‘이렇게까지 농구가 내 삶의 주가 된다고?’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농구를 하게 됐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서는 굳은 결심까지 하게 되었어요. 엘리트 농구 선수의 길을 걸어보자고 말이죠.”

클럽 농구를 ‘폭격’한 이건희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엘리트 농구선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홍대부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클럽 농구와 엘리트 농구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혼자 다해도 잘 풀리던 농구가 아니었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동료들도 널려 있었다. “홍대부중에서 농구를 몇 개월 하다가 든 생각은 ‘나 농구 괜히 시작했다…’ 하나였어요. 저 나름대로는 농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중학교에 갔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었죠. 클럽 농구와는 다르게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다수인데다가 키도 저보다 컸으니까요. 게다가 공격만 하던 버릇이 몸에 자리 잡은 채 엘리트 농구를 시작하니까 수비에 중점을 둬야 하는 시스템을 따라가기 벅차기도 했어요.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죠.”

좌절만 하고 있을 이건희가 아니었다. ‘끈기와 노력’으로 중무장한 이건희는 혼란의 시기를 반전의 기회로 여겼고, 남들보다 더 많은 운동량을 가져가며 농구력을 끌어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부족하다고 해서 마냥 포기할 순 없었어요. 오히려 저의 부족함을 만회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인식을 코치님들께 드릴 기회가 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끊임없이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때 부모님이 ‘농구가 힘들고 어려우면 그만둬도 된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히려 심적 부담과 혼란을 내려놓고 농구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부족함을 갈고 닦아온 이건희의 노력은 홍대부중 3학년 시절, 김동환 코치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코트 안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건희가 가진 슈팅 능력의 잠재력을 알아본 김동환 코치는 그를 향하여 전폭적인 지지를 이어가는 등 무한한 믿음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때 김동환 코치님이 홍대부중으로 오셨는데 이때가 제 농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슈팅 자세 교정부터 시작해서 원 드리블 후 중거리슛을 안정적으로 쏘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셨던 김동환 코치님은 이후에도 오전과 오후, 야간까지 가리지 않고 저를 따로 불러서 외곽슛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경기 중에는 제가 슈팅을 시도만 해도 잘했다고 좋아해 주시고 박수쳐주시기까지 하셨죠. ‘(이)건희야 발만 맞으면 무조건 (3점슛)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많이 밀어주셨습니다. 지금도 자신 있게 슈팅을 쏘는 것은 김동환 코치님이 슛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주신 덕이 크다고 생각해요.”
 

뛰어난 슈팅 능력에 자신감까지 더한 이건희는 홍대부고 진학 후 더욱 크게 발전한다. 그의 정확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터지는 3점슛은 홍대부고의 메인 공격 옵션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결과 3학년이 된 2021년에는 홍대부고의 농구부 창단 첫 연맹회장기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우뚝 서기까지 했다. 당시 이건희는 한 경기에 36점을 기록하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연맹회장기 득점왕을 기록했다.

“그 대회는 큰 도전이었어요. 이무진 코치님이 U19대표팀 사령탑이 되시며 대회 기간 자리를 비우셨고, (안)성우(연세대)도 U19대표팀에 가면서 무언가 텅 빈 상태로 경기를 뛰는 기분이었죠. 자칫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동료들끼리 더욱 하나로 뭉쳤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대회 시작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우리 팀에게는 큰 기회가 될 대회다’라는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정말 철저하게 했고, 노력의 결과가 우승으로 나와 더욱 뿌듯했던 대회로 남아 있어요. 우승하고 나서야 학교 농구부 창단 후 첫 연맹회장기 우승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욱 짜릿하고 기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라 기회만 오면 내가 가진 것 하나라도 여러 관계자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다는 욕심도 강했기도 했어요. 다 쏟아붓자는 마음으로 보내던 시기 중 하나였는데 기회를 잘 잡은 거 같아 배로 뿌듯했던 기억으로도 남아있습니다.”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큰 기대를 가지고 진학한 고려대. 그러나 이건희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동포지션에는 굳건히 주전 라인업을 꿰차고 있는 선수들로 가득했고, 기회를 잡으려 할 때는 발목 부상이 그의 출전을 막았다. 그 결과 이건희는 지난해까지 3시즌 동안 대학리그 22경기 출전에 그치는 짙은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자신 있어서 팀에 어떻게든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주희정)감독님과 코치님들(김태형, 김태홍 코치)도 믿음을 많이 주셨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제 장점은 안 보이고 약점만 많이 보이더라고요. 수비에서 특히 그랬죠. 잘하는 형들도 워낙 많았어요.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느꼈습니다. 제가 걱정이 좀 많은 편이라 당시에는 엄청난 잡념이 머릿속에 넘쳐나며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어요.”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일상. 그렇지만 포기하고 좌절할 이건희가 아니었다. 이미 그는 끈기 하나로 유년 시절 반전을 모색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이건희는 그 누구보다 먼저 체육관에 나와 늦게까지 남았다. 뭘 해야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했고, 연구의 결과는 “건희는 참 열심히 하는 선수인데… 눈여겨봐야겠다”라는 고려대 코칭스태프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상황 속에서 해야 할 것은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과 같았어요. 죽어라 운동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속앓이를 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슛이면 슛 수비면 수비까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특히 약점으로 지적받은 수비는 사이드 스텝 같은 기본 스텝부터 정말 많이 갈고 닦았습니다. 열심히만 한다면 기회는 온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건희는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스텝 맞거나 찬스 나면 자신 있게 슛 던져라. 안 들어가도 된다’라고 자신감이 생기는 말도 계속해주셨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 순간들이었어요.”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건희가 쏟은 노력의 결과는 곧 성과로도 이어졌다. 이건희는 4학년인 된 올해, 주전 가드 문유현이 시즌 초 자리를 비우자 출전 기회를 늘리며 본격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벤치를 지키던 지난 3년과는 다르게 전반기 11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장기인 3점슛은 팀이 어려울 때마다 터졌다. 슛을 던지기 위한 부지런한 오프 더 볼 움직임도 눈에 띄기 충분했고, 이에 더해 직접 투맨 게임 전개에도 나서는 등 공격 옵션도 열심히 추가했다. 수비 역시 악착함을 더했다. 이건희의 공헌은 고려대가 전반기를 깔끔한 공동 1위(11승 0패)를 기록하며 마치는 데 많은 힘을 보탰다. 찾아온 기회를 잡은 이건희를 두고 “건희가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해준다”같은 극찬의 말을 남기는 주희정 감독의 모습도 올해 들어 자주 볼 수 있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제대로 배웠다고 느낀 전반기였어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은 농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독님과 코치님들께 배우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반기 때 감독님께서 정말 많은 것을 요구해주셨고, 알려주셨어요. 무빙 슛도 자신 있게 쏘라고 해주셨고, 중반에 들어서는 포인트 가드 역할도 해보라고 하셔서 수행하기도 했죠. 여러모로 조급하고 어려웠던 것이 많았는데 감독님께 배우고 나서는 패스 길도 더 잘 보이고 여유 있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던 것만을 벗어나 더 많은 도전을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이죠. 느낀 것도 많았습니다. 감독님이 저에 대해서 인정해주시는 말씀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제가 만약 고려대를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회가 또 있었나 싶기도 하네요(웃음).”
 

이에 더해 코트 밖에서 이건희는 부주장 역할을 수행, 주장 박정환과 함께 맏형으로서 책임감을 기르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리더쉽까지 갖춘 이건희는 커지는 성숙함을 내면에 더하고 있었다.

“리그 초반에 (박)정환이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는 주장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어요. 책임감도 평소보다 더 커졌어요. 팀을 이끌어서 분위기를 다잡아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금 느꼈죠. 운동할 때도 분위기를 좋게 가져가기 위해서 대화도 더 많이 하고, 생활 면에서도 솔선수범하며 모범이 될 수 있는 4학년 형이 되려 노력했습니다. 여러모로 전반기가 가져다준 소중한 것이 많아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대학교 4학년 선수들에게 후반기 일정의 재개는 곧 프로 도전의 마지막 관문,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가 성큼 다가온 것을 의미한다. 지난 3년간의 아쉬움을 전반기에 완벽하게 만회한 이건희에게 후반기는 더욱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프로 관계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도전해야 하는 자리이다. 


“아직까지는 아쉬움이 더 많아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기회가 이전에도 많았으니까요. 그렇지만 후반기가 남았으니까 한 경기라도 저의 이름을 각인시키려 최선을 다할 거에요. 후반기가 끝나면, 저는 누구보다 끈기 있고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저의 장점인 슛도 더욱 어필하려 하지만 수비도 정말 열심히 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어찌 보면 저의 전체적인 농구 인생을 지탱해준 원동력인 ‘끈기’를 끝까지 모토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건희가 될 수 있게 후반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고려대생 이건희로서 중요한 행사 역시 남아있다. 바로 오는 9월 19일 열리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고려대는 지난해 정기전 11연승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로 정기전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정기전을 치르는 이건희 역시 필승을 다짐했다. 고려대가 주는 자긍심을 승리로 만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지난해 정기전 패배의 후유증은 정말 컸어요. 저도 울고 형들도 다 울었습니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1패의 여파가 한 달 정도 갔을 정도였죠.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감독님, 코치님들도 수시로 정기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주시고 계실 정도이니까요. 저에게는 마지막 정기전이기도 하고, 1학년 후배들이 패배의 맛을 느끼면 안 되잖아요? 정말 최선을 다하려고요. 1년에 한 번씩 축제를 즐길 때마다 고려대에 대한 자부심이 스스로도 많이 커진 상태에요. 학교를 빛내고 4학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건희는 자신을 ‘연차만 쌓이면 성과를 내며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농구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저는 ‘연차가 쌓여야 터지는 선수’더라고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도 3학년이 되어서야 전환점을 맞이하거나 성과를 냈고, 대학교도 마찬가지죠.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알아가고 체득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습득력이 느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부족한 부분에 대한 빠른 판단을 가지고 보완하는 끈기를 가진 선수가 저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저의 확실한 장점은 슛입니다. 팀이 지고 있을 때나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 강력한 3점슛 한 방을 넣어줄 선수가 저입니다. 슛만 잘 쏘는 것을 넘어 순간 빠른 돌파로 활력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 에이스 역시 잡아주신다면 확실하게 묶어보겠습니다. 즉, 저는 경기만 뛰면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이건희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건희는 자신의 대학교, 중-고등학교 선배인 김태훈(서울 SK), 박성재(수원 KT)의 이름을 꺼냈다. 무슨 이유였을까?


“제가 프로 무대를 노크하기 위해서는 (김)태훈이형과 (박)성재형의 플레이 스타일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들이 프로 데뷔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이유는 수비에서 악착같이 하고, 슛도 중요할 때 항상 넣어줬기 때문이잖아요. 신인 선수가 갖춰야 할 모범적인 자세를 형들이 보여줬죠. 저도 형들처럼 프로 선수가 된다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중요할 때 3점슛 하나 시원하게 꽂아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만 한다면 팬들께 ‘궂은일, 3점슛하면 이건희!’라는 말을 듣는 선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께 보답하는 아들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프로 선수가 되면 부모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뒷바라지에 대한 감사함을 매일매일 보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건희는 인터뷰에 앞서 프로필을 적는 시간을 가졌을 때 이름보다도 보완점을 먼저 적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뭘 더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 선수다. 슛이라는 확실한 장점이 있음에도, 부족하다고 지적받고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는 간절함과 끈기를 가진 선수가 이건희다. 투지와 간절함을 가졌고, 슛 하나 믿음직스럽게 터트려줄 수 있는 자원을 찾는 구단이라면 이건희에게 주목할 이유는 많아 보인다.

#사진_이건희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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