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30살의 나이로 새롭게 스포츠 캐스터의 삶을 시작한 청량한 목소리의 소유자. 이승현(33) 캐스터.
퇴사 후, 짧고 불확실한 준비기간이었던 만큼 연습량을 많이 가져간 그는 밥 먹을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연습실에 붙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 지금도 여전히 스포츠 중계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는 그는 그중에서도 특히, 농구 중계에 제대로 매료됐다고 전한다.
향후 농구팬들에게 잔잔한 배경음악과 같은 캐스터로 남고 싶다는 이승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스포츠 캐스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사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서 먼 미래에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웃음). 스포츠 캐스터는 그동안 동경만 해왔던 직업이었고, 지금처럼 업으로 삼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봤고,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
Q.그사이 여러 직업을 거쳤다고?
크게는 대학 졸업 후 바로 ‘ROTC’ 장교로 임관하여 GOP 소초장을 했던 것. 2년 4개월간 군대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은행에서 한 3년 정도 일했다. 그 사이사이 여러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걸 고려하면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Q.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분야가 아예 다른 스포츠 캐스터로 전향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부모님의 반대가 조금 심하셨다(웃음). 아무래도 번듯한 직장을 잘 다니고 있었기에 걱정을 하셨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주도적인 친누나와 달리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던 아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참은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고 나갔다.
Q.그렇다면 일을 그만두고 나서 스포츠 캐스터를 준비한 건가?
맞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2017년 12월 31일에 퇴사를 해서 그다음 날인 2018년 1월 1일에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일하던 곳이 세종시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부터 안 되더라도 딱 1년만 후회 없이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Q.그리고서 정확히 2019년 초, 1년 만에 SPOTV에 입사하게 됐다. 목표를 이루었는데?
대단히 운이 좋았다. 1년간 준비해보고 안 되면 어느 회사라도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왔던 터라 간절함이 컸다. 더구나 시험 볼 기회도 많지 않았던 땐데 진짜 딱 1년이 되는 시점에 입사하게 됐다. 정말 운이 좋았다.
Q.운만이라고 하기엔 그동안의 노력도 뒷받침이 됐을 것이다. 준비기간 1년을 어떻게 보냈나?
‘질보다는 양이다’라는 생각으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당시 원룸 자취를 하고 있을 때라 방에서는 크게 소리 지르지 못했다. 그래서 학원 연습실에 가서 종일 있었다. 바짝 했던 시기에는 아침에 들어가서 저녁에 나왔다. 서너 달 넘게 매일 8시간 이상을 하다 보니까 방에 돌아오면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렇게 혼자 있을 때는 강제 묵언수행을 하며 놀아도 학원에서 놀자는 생각이었다.
Q.다녔던 학원은?
우리 SPOTV 회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다녔다. 다닐 때 정말 모든 게 다 신기했다. 강의실 안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돼 있고 막연히 희망에 부풀던 시기였다.
Q.보통 캐스터가 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나?
이거는 정말 개인마다 다 다르다. 선배들께서도 (내가) 빨리 된 케이스라고 말씀하셨다.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3~4년까지 하는 것도 봤다.
Q.연습생 시절에는 교육을 진행했던 교수 캐스터들이었지만 입사 후에는 선배 캐스터들이 됐다.
처음에는 신기하면서 무섭기도 했다. 과거에는 친절하게 대해주셔도 안 보이는 벽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다 친해져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다.
Q.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좋았나?
아니다. 지금은 종종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변성기도 되게 늦게 왔을뿐더러 예전에 친구 중 한 명이 목소리가 얇다고 놀린 적 있어 충격받은 적 있다. 일하면서 목도 갈리고 톤도 낮아지면서 좋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무척 감사할 뿐이다.
Q.말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이상하게도 모르는 사람과 독대하는 경우, 다른 누군가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말을 잘 못 하는 편인데 뚜렷한 목적과 목표가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말을 잘한다. (나도)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장교 시절에 높으신 분들이 오면 전담으로 브리핑을 도맡아 했었고, 또 기억을 되살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학교 행사 같은 거를 큰 두려움이 없이 잘 진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커서 기업체 면접 같은 걸 보더라도 항상 자신감을 가졌었다.
Q.평소에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지?
생각보다 안 하는 편인 것 같다. 오히려 중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긴장을 하는데, 실제 헤드셋을 끼고 방송 큐 사인이 들어오면 크게 긴장을 안 한다.
Q.첫 중계 날이 혹시 기억나나?
아직도 생생하다(웃음). 농구를 처음 중계하게 하던 날이었다. 지금처럼 KBL이나 NBA는 아니었지만, 사회인 농구 동호회 전국체전 경기를 맡았다. 당시 해설위원이 따로 없어서 3~4경기를 혼자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잊을 수 없다.
Q.첫 중계면서 혼자 진행을 다 했다고?
당시 지금보다 더 농구에 대한 지식도 얕았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했다(웃음). 또 프로 경기가 아니다 보니 현장 지원 스태프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경기 시작 3분 전에 (혼자) 본부석으로 달려가 양 팀 명단 지를 받아오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서 중계석에 앉으면 숨이 차서 한 마디하고 헤드셋을 벗고, 다시 호흡 가다듬고 다음 한 마디하고 그렇게 중계했다.
Q.어릴 때 농구 하는 것도 좋아했는지?
사실 어렸을 때는 축구가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다 보니 더 자주 했던 것 같다. 농구는 친구들과 가끔 하는 정도였다. 근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께서 집 옆 공터에 농구 골대를 놓아주신 적이 있었는데, 혼자 농구공을 던지면서 TV에서 듣던 캐스터분들이 하는 말들을 따라 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자꾸 (혼자) 뭐라고 떠드는 거냐고” 물으셨다. 그때부터 직접 하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을 했다.
Q.주변 친구들도 스포츠 캐스터가 됐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을 것 같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은 좀 놀랐고 그동안 연락하고 지냈던 친구들은 ‘(내가) 언젠가는 말하는 거 뭐 하나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이들 축하해줬다.
Q.스포츠 캐스터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중계해보고 싶었던 종목이 있었나?
그저 다양하게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지난 3년간 20개 가까운 종목들을 중계하면서 구기 4대 종목 가운데서도 배구만 빼놓고 나머지(축구, 야구, 농구)는 다 해봤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Q.실제 현장, 연습과 크게 달랐던 점은?
실제 현장에서 PD들이 어떤 콜과 신호를 주고받는지 몰랐다. 거기에 잘 맞춰서 움직였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다 보니 제 멋대로였다. 혼도 나기도 하고 지적도 많이 받았다. 초창기에는 식은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퇴근길 소위 말하는 ‘현타’의 연속이었다.
Q.KBL 중계를 처음 맡았던 시기는?
지난 시즌 초반 2라운드 때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NBA까지 하게 됐다.
Q.중계 준비는 어떻게 했나?
사실 농구에 대한 지식이 프로농구 초창기 시절에 멈춰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웃음). 방대한 역사를 이른 시간에 다 습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해설위원분들께 많이 의지하고 스스로 공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캐스터의 본질인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시청자분들께) 전달은 하되 주관적인 판단은 웬만하면 다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타 종목과 비교해 농구 중계 차이점은?
좀 더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 있게 경기가 펼쳐지고, 선수들과의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몰입이 더 잘되고 선수들이 잘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곤 한다. 개인적으로 농구 중계가 가장 편하다. 내가 말이 좀 빠른 편이라서 그렇다(웃음). 농구 중계는 하면 할수록 더 재밌고 좋아지게 된다.
Q.NBA는 현장 중계가 아니라서 또 다른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NBA 중계는 스튜디오 안에서 해설위원분과 (내가) 단둘이 고요한 상태서 진행한다. 따라서 (내) 목소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텐션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엠프와 응원 소리가 크다 보니 종종 목소리 체크가 잘 안 돼 목이 뒤집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Q.평소 목 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인지?
캐스터를 하기 전에는 관리를 잘 하지 않았다. 예전에 이비인후과를 가서 30년 만에 (내가) 비염 있는 걸 처음 알았다(웃음). 이후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억지로라도 운동하려 하고 있다. 헬스장을 끊어서 매일 한 시간이라도 하고 최대한 (나만의) 패턴에서 엇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Q.보통 하루, 일과는?
중계가 있는 날에는 중계 준비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컨디션 관리에 초점을 두고 체력을 아껴 둔다. 주마다 다른 일정이 나오기 때문에 쉬는 날은 불규칙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쉴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잘 활용하고 있다. 길게만 못 쉴 뿐이다. 회사에서도 탄력적으로 근무를 할 수 있게 해줘서 많이 배려해주는 편이다.
Q.지방 출장도 잦으니 체력관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쉽지만은 않다. 다만 과거 초창기에 선배들이 일하다 보면 점점 (몸이) 녹아들 거라고 말했었는데 진짜다. 아무리 피곤해도 몸이 반응하고 눈이 떠진다.
Q.이제 막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잘 맞는지?
아주 잘 맞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Q.가장 호흡이 잘 맞는 해설위원이 있다면?
농구를 요만큼 알던 친구를 여기까지 정착시켜준 분들이 해설위원분들이시기 때문에 사실 모든 분께 감사하고 다 잘 맞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 은인이시다. 그래서 딱 한 분만 꼽기는 힘든 것 같다.
Q.그래도 그중 가장 감사한 분을 꼽자면?
종목마다 (내게) 아버지 같은 위원분들이 계시긴 하는데, 농구에서는 이상윤 위원이시다. 저 연차 캐스터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신다고 할까. 지금까지도 굉장히 의지를 많이 하고 있다. (내) 경력이 일천 했던 시기, 이 위원님을 안 만났더라면 정착 단계서 떨어져 나갔을 것 같다.

Q.NBA 해설위원들은 KBL 위원들과 달리 비선출이 대부분이다. 다른 점은?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KBL 위원분들께서는 선수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작은 움직임 하나로 그 선수의 생각을 읽는 것이 뛰어나다. 반면 NBA 위원분들은 경기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야와 좀 더 시청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설명해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덧붙여 말하면 NBA 박세운, 조현일 위원의 경우에는 (내가) 어떤 멘트를 던져줘도 완성품이 될 수 있게끔 다 받아주시고 이민재 위원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중계를 같이 시작했다. 약간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웃음).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하면서 동반 성장하고 있다.
Q.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팬분들께서 경기를 잘 봤다고 연락해주시거나 현장에서 인사해주실 때 뿌듯하면서 힘을 많이 받는다. 지금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캐스터로서 부상 선수가 복귀해서 그날 경기를 잘했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다. 지난 시즌 (창원) LG 서민수 선수가 6주 만에 복귀해서 결정적인 3점슛을 집어넣고 포효한 적 있는데, 기분이 좋아 “서민수가 6주 만에 포효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친 적 있다.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좋았다. 또 한상혁 선수도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복귀 후, 바로 다음 경기에서 잘 봤다고 인사드린 적 있는데 굉장히 좋아하더라. 이후부터는 안면을 터서 인사를 주고받는다.
Q.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와 구장이 있다면?
먼저 선수부터 말하자면 이재도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적 키가 큰 나는 하승진이고 타코 폴이고 제프 위디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지 못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봤을 때 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바로 이재도 선수였다. 그리고 창원 LG 구장에 가서 놀랐던 게 기억난다. 팬분들께서 엄청 열정적이셨고 어린아이들까지도 플로어까지 내려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뜨거운 사랑을 목격했다. 물론 타 구단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좋은 스포츠 문화 속에서 아이들도 커가면서 좋은 기억으로 평생 간직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Q.중계 전 루틴은?
보통 경기 시작 세 시간에서 두 시간 전 사이에 도착해서 그날 중요한 예상 기록이나 양 팀 기록 등을 제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서 당일 경기 중 CG로 나가는 자료들을 확인한다. KBL은 경기당 20개, NBA는 40개 정도 된다. 그리고 PD들과 상의한 후에는 위원분들께서 도착하시는 대로 그날 녹화 방향이나 주제 설정에 대해 논의하는 편이다.
Q.중계 자료준비와 중계석 테이블 세팅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돼 있나?
중계 자료는 캐스터마다 다르게 준비하는데 (나는) A4 용지 딱 한 장으로만 준비해간다. 너무 많아도 현장에서 다 보기 힘들더라. 특이사항 등을 간략하게 적어서 자유투를 던질 때라던지 경기 중 잠깐 여유 있을 때 위원분들과 한 번씩 멘트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한다.
중계석 테이블 기본 세팅은 가운데 오디오 연결 장비 하나와 좌우 측에 모니터 두 대가 있다. 좌측은 실시간 경기장 화면을 잡는 모니터. 시간, 기록, 스코어가 없는 깨끗한 화면이어서 (우리가) 흔히 ‘클린’이라고 부른다. 우측에는 실제 방송과 동일한 화면이 나오는 모니터가 있다. 현장과 2초 정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캐스터가 입도 바쁘지만, 눈도 되게 바쁘다. 코트도 보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경우, 실시간 화면도 봐야 하고 게임 중에 기록 관련 CG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 화면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Q.본인의 부족한 점을 꼽자면?
초창기에는 소리치는 게 약했다. 그래서 많이 지적도 받았다. 지금도 스스로 압박하고 스트레스를 주면서 고쳐나가는 중이다. 아무래도 중계를 하면서 감을 계속 찾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은 좀 좋아졌고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종종 계신다.
Q.반대로 본인의 강점은?
딱히 없는 거 같은데 굳이 찾아보자면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떤다는 점? 연패가 길어지고 있는 팀이나 선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 “이게 바로 우리가 알던 선수/팀이다” 또는 “그가 돌아왔다”라는 느낌으로 칭찬을 해준다. 그나마 (내가 가진) 다른 기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말하고도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다(웃음).
Q.본인만의 시그니처 콜이나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나만의) 시그니처 콜이나 멘트를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잘 안되더라. 이미 선배님들이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내가) 괜히 억지로 만들어 넣다 가는 중계가 더 이상해질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당장은 (내가) 그나마 하는 중계의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한다. 또 (나는) 되도록 농구를 처음 접하시거나 새로 유입되시는 팬분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중계하려 하고 있다. 어려운 용어가 있으면 좀 풀어서 얘기하는 편인데, 예를 들면 스크린은 ‘벽을 세운다’라든지 베이스라인을 공략하면 ‘줄타기를 한다’라고 알아듣기 편하게 도움을 주려한다.
Q.롤 모델을 삼는 선배 캐스터는?
(우리) 회사 모든 선배 캐스터분들이 다 내 롤 모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근데 괜히 (내가) 선배 캐스터를 따라 하면 어색해지더라.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내가) 선배 캐스터분들처럼 되는 게 아니더라. 동경은 하되 최대한 나쁜 습관 안 드리는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
Q.가장 친한 선배는?
다들 친하게 지내지만, 특히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있다면 조주영 캐스터다. 집도 가깝고 나이대도 비슷해 공통분모가 좀 있다. 정서적으로 제일 많이 도와준 선배이기도 하다. 캐스터로서 (내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 농구도 잘한다. 큰 피지컬에 비해 민첩하다(웃음).
Q.스포츠 캐스터로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또 캐스터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조언하자면?
캐스터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이 참 많겠지만,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바로 ‘멘탈’이다. 언제나 중계하면서 실수하기 마련이다. 잘못된 콜을 했을 경우 빠르게 정정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러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머릿속에서 끝까지 지우지 못한다면 다음 실수 때 그게 엮이면서 방송이 점점 무너져간다.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는 그래도 정신줄을 놓아선 안 된다. 그리고 종종 인턴 친구들을 봐주면서 해주는 조언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연습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준다. 아무래도 부족한 점은 연습으로만 메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Q.앞으로 어떤 캐스터가 되고 싶나?
물론 캐스터란 직업이 말을 하는 직업이고 팬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줘야 더욱 흥이 나는 직업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 목소리가 경기 중에는 아무도 모르게 ‘비지엠’처럼 깔리는 그런 거슬리지 않은 존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
Q.팬분들에게 한마디.
최근 농구팬분들의 수가 늘어난 게 확실히 느껴진다. 이는 젊고 유능한 스타 선수들이 많이 등장한 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 중계진들도 많이 준비하고 재밌는 방송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당연히 부족한 점도 많고 성에 안 찰 수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KBL을 사랑하는 만큼 저희 (방송국) 중계진들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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