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실패해도 한 번 더 해보자” 동료의 득점길을 여는 ‘2m 빅맨’ 우성희가 꽃피우기까지(011)

정다윤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4 11: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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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주인공은 동국대 4학년 우성희(200cm, C)이다.

#001_Scan: 동국대 우성희

우성희가 처음 품었던 꿈은 농구 선수가 아닌 축구 선수였다. 취미로 공을 차다가 선수의 길까지 알아봤지만, 연고도 정보도 없는 그에게 문턱은 높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키가 178cm까지 자란 무렵, 체육 시간에 우연히 잡은 농구공이 그의 발걸음을 다른 코트로 돌려놓았다.

체육 시간에 처음으로 농구를 했어요. 일반 학교였는데 농구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놀이터에서 레이업을 연습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도 했어요.

혼자 놀이터에서 슛을 올리던 우성희에게 농구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준 건 어머니였다. 간호사인 어머니의 동료 아들이 농구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엄마 친구 아들(?)’은 명진초에서 엘리트 농구를 하던 여찬영(건국대 4학년). 여찬영이 금명중으로 향하자 우성희도 금명중 테스트에 도전했다.

금명중으로 낯선 코트에 발을 들였지만 경기에 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유급 후 맞은 1학년에는 기초 체력과 기본기를 다지는 데 매달렸다. 그사이 키는 20cm나 자랐지만, 2학년이 돼서도 출전 기회는 4쿼터 막판 몇 분에 그쳤다. 주말리그에서 조금씩 경기를 뛰며 감을 잡았고, 3학년에는 팀에서 가장 큰 선수로 코트에 서는 재미도 알게 됐다.

키가 자란 만큼 우성희의 자리는 골밑에 가까워졌다. 센터 출신 김일모 코치에게 빅맨의 기본기를 배우며 골밑에서 동료에게 공을 빼주는 피딩도 갈고닦았다. 처음에는 혼자 놀이터에서 림을 바라보던 선수가, 이제는 코트 안에서 동료를 보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아무래도 키가 크다 보니까 골밑이랑 포스트에서 뛰었어요. 김일모 코치님이 센터 출신이시거든요. 저한테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때부터 동료들한테 공을 빼주는 피딩 같은 부분을 많이 연습했어요.

금명중에서 익힌 농구를 안고 연계 학교인 부산중앙고로 진학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훈련이 끊겼고 2학년 때는 박훈근 코치의 지도 방식에도 좀처럼 발을 맞추지 못했다. 체력부터 수비, 기본기까지 다시 지적받으며 낯선 운동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거의 못했어요. 2학년 때 박훈근 선생님으로 코치님이 바뀌셨는데, 처음에는 제가 적응을 못했어요. 운동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많이 혼났죠. 체력도 지적받았고 수비와 기본기도요.

그해 U16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처음 품은 태극마크의 설렘에 혼자 계단을 뛰며 몸을 만들었지만, 코로나19로 대회가 취소되면서 준비한 시간을 코트에서 보여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정말 설렜고 꼭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때 운동을 못해서 살이 좀 쪘거든요. 그래서 혼자 아파트 비상구 계단도 뛰면서 운동을 많이 했어요. 대회가 취소돼 너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표팀에 도전할 기회는 앞으로도 있으니까 더 잘해서 꼭 제대로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다짐했죠.

대표팀 대회는 무산됐고 학교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홀로 골밑을 지켰던 우성희는 고등학교에서 신지원(소노)과 함께 뛰며 익숙하지 않은 스몰포워드 역할을 맡았다. 어디에 서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2학년을 지나 신지원이 졸업한 뒤 다시 골밑으로 돌아오면서 조금씩 길이 보였다.

중학교 때는 팀에서 저 혼자 센터를 맡았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신)지원이가 있어서 저는 처음으로 스몰포워드를 맡게 됐죠. 낯선 자리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했고, 징크스도 생겼어요. 지원이가 졸업한 뒤 다시 센터를 맡았는데 그때는 코치님이 피딩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거였죠.

돌고 돌아 선 골밑에서, 우성희는 박훈근 코치의 농구가 자신이 중학교 때부터 익혀온 피딩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득점을 서두르기보다 골밑에서 중심을 잡고 동료의 찬스를 살렸다. 공을 한 번 빼줄 때마다 벤치에서 박수가 들렸고 우성희도 자신의 역할에 확신을 더해갔다. 갈고닦은 피딩은 그렇게 지금의 우성희를 설명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됐다.

경기할 때마다 공을 하나씩 빼주면 코치님이 좋아하시면서 박수도 쳐주시고, 서로 엄지도 들어 보였어요. 코치님이 저를 마음에는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외곽보다 골밑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공격할 수 있을 때는 하되 무리하지 말고 동료에게 찬스가 보이면 공을 주라고 하셨던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002_Life in University

우성희가 동국대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분명했다. 더 많이 뛰고 싶었다. 처음 학교를 찾아가 치른 연습경기에서 감독과 선배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1학년 때부터 코트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선택을 굳혔다.

처음 학교에 가서 연습경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장난도 쳐주시고, 성격도 좋으시고 재밌으시더라고요. 형들 분위기도 좋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동국대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무엇보다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게 가장 컸어요.

기다리던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농구 인생에서 가장 긴 쉼표도 1학년 때 찾아왔다. 건국대와의 경기에서 종아리가 파열됐고, 재활 중에는 발날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운동을 이어간 지 2주 뒤, 골절을 확인했다.

그전에는 잔부상만 있었는데 1학년 때 처음으로 발날이 부러졌어요. 건국대랑 경기하다가 종아리가 파열됐거든요. 재활하는데 발날이 아프길래 ‘별일 아니겠지’ 하고 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2주 뒤에 확인해 보니 부러졌더라고요. 혼자 마음속으로 ‘이제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했어요.

그만둘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우성희는 스스로에게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고 말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코트를 밟았으나 복귀가 곧 회복을 뜻하지는 않았다.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경기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혼자 울기도 했어요. 원래 제가 힘든 얘기를 잘 안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께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2학년 때는 제대로 슬럼프가 왔었죠.

답을 찾으려 할수록 플레이는 더 꼬였다.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다 동료에게 패스를 주지 않았고 질책을 받으며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때 곁에서 우성희를 붙든 건 동기와 부모님의 말이었다.

동기들도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해줬어요. 부모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해봐야지’라고 하셨고요. 부모님이 감성적인 편은 아니시거든요(웃음). 부산 분이셔서 쿨하세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우성희는 그 말을 되새기며 다시 한 걸음씩 내디뎠다. 3학년 때 마음을 다잡아도 한 번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식스맨으로 들어가면 리바운드 하나라도 잡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챙겼다. 

4학년이 되자 그 마음에는 책임감도 더해졌다. 오래도록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을 떠올리며 프로라는 다음 목표를 향해 힘을 냈다.

4학년이 되니까 책임감도 커지고 부모님 생각이 제일 많이 나더라고요. 계속 뒷바라지해 주셨잖아요. 프로에 가서 효도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책임감을 갖고 하다 보니 또 잘되더라고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던 우성희에게 4학년은 더 물러설 곳 없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동계 훈련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마쳤다. 힘든 날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고 연습경기에서는 1대1 공격에도 꾸준히 부딪혔다. 그렇게 버틴 시간이 이번 시즌 코트 위에서 조금씩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평균 15.1점 7.8리바운드 2.8어시스트 1.3스틸. 골밑을 지키면서 동료의 득점길까지 열어주는 우성희는 이제 동국대 농구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포스트업을 하다가 미드레인지 점퍼도 많이 써봤는데 잘됐어요. 한두 개가 들어가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드라이빙도 시도해 봤는데 그것도 되니까 자신감이 계속 올랐어요. 슛은 매일 500개씩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거든요.

공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만큼 팀에서 맡는 역할도 커졌다. 우성희는 강호 고려대를 상대로 거둔 두 차례 승리에도 힘을 보탰다. 올해는 골밑을 지키는 데 더해 외곽 수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김명진(SK)이 얼리 엔트리로 팀을 떠나면서 그 몫이 우성희에게 돌아왔다.

(김)명진이가 외곽 수비를 맡아서 많이 뛰었거든요. 그런데 명진이가 얼리 엔트리로 나가고 제가 외곽 수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감독님도 올해부터 역할을 더 주셨고요.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따라가지?’ 싶었죠.

줄곧 골밑에서 상대를 막아온 그에게 외곽은 낯선 자리였다. 그래도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습경기와 팀 훈련에서 가드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길목을 먼저 막아봤고, 직접 부딪혀 얻은 감각을 수비에 보탰다.

매번 골밑 수비만 하다가 외곽 수비를 하려니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해야죠. 프로에 가면 더 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연습경기에서도 해보고 우리 선수들을 상대로도 해봤는데, 길목을 막으니까 상대가 꿈쩍도 못하더라고요.

달라진 건 기술만이 아니었다. 부상과 슬럼프를 지나며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법을 배웠다. 2학년 때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던 우성희는 이제 낯선 역할 앞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다. “옛날에는 뭐 하나 실패하면 포기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한 번 실패해도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태극마크의 아쉬움도 풀었다. U16 대표팀에 뽑히고도 대회 취소로 출전하지 못했던 우성희는 2026년 이상백배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 우승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선발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대학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또 하나의 자극을 얻었다.

저는 안 될 줄 알았어요. 못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발되고 혼자 신났죠. 많이 설렜어요. 선수들이 운동하는 걸 보니까 파이팅도 넘치고 서로 토킹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 선수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때는 같은 팀이었지만 대회가 끝나면 다시 상대 팀이니까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죠.

해외 무대에서는 골밑의 몸싸움이 한층 치열하게 다가왔다. 안에서 버텨야 외곽의 기회도 열린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자신이 잘하는 피딩에 더해, 슈터를 살리는 스크린과 팀 수비에서 맡아야 할 자리도 다시 살폈다.

몸싸움이나 포스트업이 치열하더라고요. 안에서 적극적으로 해줘야 외곽 찬스가 많이 나겠다고 느꼈어요. 스크린도 더 많이 걸어줘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슈터를 살리는 스크린이나 길목을 막는 수비, 팀 수비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도 더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공격에서는 다재다능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골밑에서도 할 수 있고, 외곽에서도 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피딩이에요. 동료에게 찬스가 나는 걸 잘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코트 밖에서는 조용하고 말도 별로 없어서 동생들한테는 조금 바보 같은 형이에요(웃음). 그런데 코트에 들어가면 성격이 터프하게 달라져요
.”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우성희 역시 그 장면의 끝에 한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 뒀다.

팀에 필요한 선수, 잘하는 선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공격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사진_점프볼DB, 우성희 제공, 정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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