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의외였다.
2014년, 변준형(188cm, 가드)은 고교농구 최고의 선수였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돌파와 외곽슛을 모두 갖춰 마음만 먹으면 30득점 이상은 가볍게 했다. 농구에 대한 센스도 좋아 수비를 붙여 놓고 빼주는 패스 또한 일품이었다. 모두들 고교 NO.1 슈팅가드를 이야기 할 때 변준형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변준형은 소속팀 제물포고의 에이스일 뿐 아니라 U-18, U-19 청소년국가대표에 뽑히며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송교창(20, 전주 KCC)과 함께 팀의 원 투 펀치 역할을 해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변준형이 고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두자 내로라하는 유명대학들이 그를 데려가기 위해 달려들었다. 자연스레 상위권 대학으로의 진학이 예상됐다.
하지만 변준형은 예상 밖 선택을 한다. 상위권 대학들의 스카우트를 뿌리치고 중하위권으로 평가받는 동국대행을 선택한 것. 당시 아마추어 농구를 취재했던 한 선배는 “깜짝 놀랐다. 변준형이 동국대에 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동국대는 변준형 한 선수의 영입으로, 그 해 대학 신입생 스카우트 전쟁에서 승자가 됐다.
그로부터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변준형을 만나자마자 첫 질문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동국대행에 대해 물었다. 변준형은 동국대행을 결정한 이유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경기를 뛰고 싶었어요. 잘하는 데 경기를 못 뛰는 것보단 무조건 경기를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1학년부터 경기감각을 익히면서 프로에 가고 싶었죠. 연세대나 고려대에 갔으면 지금 같은 출전시간은 없었을 거 에요.”
평소 동국대에 대한 좋은 인상도 한몫했다. 그 당시 동국대는 이대헌(24, 서울 SK)과 서민수(23, 원주 동부)를 앞세워 대학리그 다크호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국대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이)대헌이 형과 (서)민수형의 존재였어요. 센터가 강한 팀이 좋았거든요. 고등학교 때 대학팀들과 연습경기를 많이 했는데 동국대와 붙으면 ‘힘이 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변준형의 말대로 그는 1학년부터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받았다. 경기당 34분 50초를 뛰며 평균 13.9득점을 올렸다. 전체 신인 중 득점 1위이자 팀 내 이대헌(평균 16득점), 서민수(평균 15.19득점)에 이은 공격 3옵션이었다.
고교 시절 변준형의 라이벌로 꼽혔던 장태빈과 전현우(이상 20, 고려대)가 벤치를 지킬 때 그는 팀의 주축멤버로 자리 잡았다. 2015 대학리그 신인왕도 변준형에게 돌아갔다.
“친구들이 엄청 많이 축하해줬어요. 처음엔 ‘신인왕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주위에서 대단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줬죠.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래도 대학농구 인생에서 한번 밖에 못 받는 상을 받았구나’하는 생각에 기뻤어요.”
변준형은 여타 다른 농구 선수들이 그렇듯, 또래보다 큰 키 때문에 농구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다른 친구들 보다 좀 컸어요. 농구부 감독님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가 됐죠. 처음엔 안 한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운동을 하라고 계속 보내셨어요. 제가 그 때 몸무게가 많이 나갔거든요. 살 빼라고 운동 시키신 거죠. 그렇게 (농구를)하다보니까 계속하게 됐어요.”
변준형이 처음부터 슈팅가드로 뛴 건 아니었다. 센터부터 시작해 포워드까지 차근차근 포지션을 올린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야 본래의 포지션을 찾았다.
“처음엔 5번을 봤어요. 그러다 팀에 180 넘는 얘가 들어와서 4번을 보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키가 작아서 3번을 보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2번을 봤죠. 그래서 ‘센터가 아닌 처음부터 가드를 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기본기를 너무 안 배웠거든요. 그 당시 감독님은 바로 경기에 뛰게 하려고 리바운드와 중거리 슛 등 당장 경기에 필요한 것만 가르쳐주셨어요. 드리블 등 기본기는 소홀해졌죠.”
원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단구초), 중학교(대성중) 때까지 원주를 벗어난 적 없었던 변준형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제물포고에 진학하면서 부터였다. 그 전 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개인 실력은 뛰어났지만 팀 전력이 좋지 못해 전국대회에 나가도 상위권 진입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또 학교가 지방에 위치한 탓에 제대로 된 연습경기를 치르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팀이 약했어요. 대회에 나가 예선통과만 하면 잘하는 거였죠. 또 원주에 있으니까 다른 팀들과 연습경기를 거의 못했어요. 한 달에 한번정도? 연습이 부족하니 잘하는 팀들과 붙으면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제물포고의 김영래 코치는 변준형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원주까지 변준형을 찾아가 “네가 꼭 필요하다”란 말로 그를 설득했다. 김 코치의 말에 감명 받은 변준형은 원주를 벗어나 제물포고행을 결정한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때는 농구가 정말 재밌었어요. 농구를 다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시즌 초반엔 잘 못했지만 후반에 갈수록 손발이 맞아가면서 서로 신뢰가 생겼어요. 그러면서 전력도 올라가고 우승도 했죠. 경기 끝나고 기록지를 보면 코트를 뛴 대부분의 선수들이 두 자리 수 점수를 올렸었어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가 제일 재밌었다고 얘기해요. 반면 3학년 때는 거의 혼자 했어요. 지금 한양대에서 뛰는 (유)현준이가 도와주긴 했지만 공격은 제가 거의 다했죠. 개인적으로 보면 3학년 때 혼자 득점을 넣으면서 주목받았지만 정말 재밌게 농구를 한건 2학년 때였어요.”
2014년 점프볼 영상팀이 올린 변준형 하이라이트 영상의 제목은 ‘고교 농구에 변코비가? 고교 NO.1 슈팅가드 변준형’이었다. 제목 그대로 제물포고의 변준형은 알고도 막기 힘든 선수였다. 공격옵션이 다양했고 힘이 좋아 수비수는 그의 돌파 길목을 알고도 점수를 내줬다. U-19 청소년국가대표팀에서 변준형을 지도한 전병준 코치는 “기량이 굉장히 좋고 무엇보다 하드웨어가 뛰어났어요. 세계대회에서 외국 선수들과 부딪혀도 힘에서는 안 밀릴 정도였으니까요. 미세한 잔기술 같은 경우는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큰 틀로 놓고 보면 정말 좋은 선수에요”라고 고교 시절 변준형에 대해 평가했다. 변준형도 “힘이나 신체조건은 어릴 때부터 좋았어요. 트레이너 선생님들도 부모님께 감사드리래요.”라며 타고난 힘을 인정했다.
고교무대의 활약을 바탕으로 변준형은 U-18, U19 청소년국가대표에 뽑혔다. 같은 나이 대, 전국 최고의 선수들을 보며 변준형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 국가대표에 와서 ‘와, 얘들 정말 잘하는구나, 지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초반 기 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표팀은 전국에서 농구 좀 한다하는 친구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따로 스타팅 멤버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다들 엄청 열심히 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선수는 삼일상고의 송교창이었다. 변준형이 고교 NO.1 슈팅가드 였다면, 송교창은 고교 NO.1 포워드였다. 각각 동포지션 랭킹 1위의 두 선수는 국가대표에서도 팀을 이끌며 공격을 책임졌다.
“(송)교창이 플레이 자체를 좋아했어요. 볼 때 마다 매일 칭찬했더니 부끄럽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 교창이가 대학을 건너뛰고 바로 프로에 가니까 부러웠죠. 한편으론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교창처럼 프로직행은 생각해보지 않았냐는 질문에)전 안돼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교창이는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신체조건이 있었잖아요. 저는 센터를 봤기 때문에 한 발 늦게 출발했다 생각해요. 대학에서 경험을 하고 프로에 부딪히고 싶어요.”
그렇다면 변준형에게 프로에서 뛰는 친구 송교창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송교창이 뛴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챙겨봤다는 변준형은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보면서 웃겼어요. 교창이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가 아닌데 죽어라 뛰는 거 에요. 그 걸 보고 ‘아 쟤도 열심히 하는구나, 저게 프로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저나 교창이가 설렁설렁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안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우리는 정말 열심히 뛰었던 건데...”
송교창, 변준형과 함께 김경원(20, 연세대), 권혁준(19, 경희대), 유현준(19, 한양대), 전현우(20, 고려대) 등이 포함된 우리나라 U19 대표팀은 그리스에서 열린 2015 FIBA U19남자농구대회에서 12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중국을 이기고 강호 세르비아와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아쉽게 패하는 등 나름 선전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세계는 세계더라고요. 유럽 얘들이 키도 크고 농구를 진짜 잘해요. 유럽 쪽이 정말 잘했어요. 보면서 ‘아 농구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농구에 저런 것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다시 대학농구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현재 동국대는 4승 2패로 리그 전체 4위에 올라있다. 시즌 전만해도 이대헌과 서민수의 공백으로 하위권이 예상됐지만 변준형이 공격에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며 만만치 않은 팀으로 거듭났다. 변준형은 올 시즌 평균 18.17점으로 득점 전체 7위에 올라있다.
“1학년 때는 (서)민수형과 (이)대헌이 형한테 의지를 많이 했어요. 제가 못 할 거 같은 기분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그 형들이 나가면서 포스트가 크게 약해졌어요. 리바운드가 밀리니까 제 역할이 많아지더라고요. 수비도 도와줘야하고 리바운드도 참여해야하고. 멘붕이 왔죠. 작년처럼 ‘내 역할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경기에서 지는 거 에요. 그래서 요즘엔 제 욕심을 버리고 팀플레이에 주력하고 있어요. 제가 잘하면 뭐해요 팀이 이겨야죠. 물론 저도 잘해야겠지만 팀이 승리하는 게 더 좋아요.”
어느덧 어엿한 팀의 중심으로 거듭난 변준형. 이제 겨우 대학 2학년이기에 앞으로의 남은 대학생활 2년이 더 기대되고 있다.
“모든 경기를 다 이기고 싶어요. 그리고 안 다쳤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경기를 앞두고 팀 동료들에게 단체 채팅방에서 ‘열심히 뛰자, 잘하자’고 했는데 그거 센터들에게 하는 소리였어요(웃음). 진짜로 분발해서 열심히 하자고요. 또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동국대에 농구부가 있는지 잘 몰라요. 농구부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서 아쉬웠어요. 동국대 농구부가 더 유명해져서 많이 응원도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말> 인터뷰가 끝나고
사실 변준형을 인터뷰하기 전 걱정이 많았다. 대학리그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눠봤지만 단답형의 대답과 차가운 인상 때문에 까칠할 것 같다는 오해를 한 것.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해보니 말 많고 웃음 많은 어느 일반 대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변준형에게 이런 사실을 전하자 “많이들 그렇게 생각해요”라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워낙 인상이 강해서 어릴 때부터 다들 다가가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도 그래요. 실제 성격이요? 개구쟁이 같아요.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요. 코트 밖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해요. 술도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죠. 게임실력이요? 잘하진 않지만 열심히 해요.”
사진_신승규 기자, 유용우 기자, 맹봉주 기자
영상편집_김남승 기자, 박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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