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고양 오리온 이형진 부단장이 애가 탔다. 선수라면 끔찍이 아끼는 그다. 자기 팀 선수를 위해서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그가 KBL에 하소연을 했다. 은퇴하는 임재현(39) 때문이다.
오리온은 지난 14일 베테랑 가드 임재현을 공식 은퇴시키고 코치로 선임했다. 갑작스러웠다. 선수가 시즌 중 은퇴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리온은 코치가 한 명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D리그를 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코치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이를 코치로 올리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임재현을 택했다.
마침 팀은 선수들이 넘쳤다. 여기에 최진수가 곧 전역해 팀에 합류해야 한다. 12명 엔트리를 짜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베테랑 임재현이 설 자리가 줄어든 것은 사실. 이에 추일승 감독과 프런트는 임재현에게 코치직을 맡기고 싶었다.
선수로서 은퇴 후 프로 지도자를 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코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했던 선수라도 프로 코치나 감독으로서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선수생활을 충실히 하고 인간관계도 잘 쌓아야 한다. 그리고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한다. 임재현으로선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팀에서도 고참으로서 성실하게 운동을 한 임재현에게 코치직을 맡기는 건 나쁘지 않았다.
이형진 부단장은 “코치를 한다는 게 선수에겐 좋은 일이다. 그래서 재현이가 마냥 좋을 줄만 알았다. 같이 창원에 가는 기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다 재현이가 그런 얘기를 했다. 좋긴 한데 선수로서 자기 마지막 경기가 언제인지, 마지막 득점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 그런 게 좀 아쉽다고…. 그 순간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이 부단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KBL 국장 회의에서 하소연을 했다. 임재현의 은퇴경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이다.
이 부단장의 남은 홈경기 상대팀 국장들에게 부탁을 했다. 임재현이 은퇴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달라고 말이다. 타 구단들 모두 큰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KBL 규정상 은퇴를 한 선수는 1년 동안은 다시 선수등록을 할 수 없다.
이 부단장은 KBL에 하소연 했다. 방법을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그 부분은 우리가 실수를 했다. 코치를 시켜주는 것이 선수에게 좋을 거라 생각하고, 선수로서 마지막을 잘 만들어주지 못 했다. KBL에도 인정을 했다.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알지만,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이다. KBL에서도 리그를 빛내준 선수인데, 마무리를 잘 장식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오리온은 KBL에 임재현이 은퇴를 번복하고, 1경기라도 더 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KBL도 오리온의 입장에는 동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스포츠토토의 지원을 받는 KBL 경기는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는 민감한 사안이다. 자칫 승부조작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
아쉽지만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이 부단장과 추일승 감독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결국 홈경기에서 임재현의 마지막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22일 고양에서 열린 오리온의 홈경기. 상대는 전자랜드였다. 오리온은 경기 전에 앞서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우선 임재현의 가족을 초청했다. 임재현의 아내 김보라 씨에게 시구를 맡겼다. 김 씨는 임재현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김 씨가 올려준 공을 이승현이 잡아 임재현에게 전했다. 임재현 역시 자신의 유니폼을 입고 골대에 슛을 던졌다.
비록 선수로서는 아니지만, 팬들 앞에서 마지막 슛을 던진 임재현이다. 임재현의 비공식 은퇴경기였다.
하프타임에는 임재현을 위한 시간이 진행됐다. 그 동안의 선수 시절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고, 임재현은 코트 중앙으로 나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추운 날씨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8년 동안 농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뭉클하고 시원섭섭합니다. 지로자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는데,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임재현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복받치는 감정에 임재현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제가 힘들 때 늘 옆에서 내조를 잘 해준 제 아내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든든하게 지원해주신 장인어른, 장모님. 친인척들께 감사드립니다. 2년 전 은퇴시기에 있을 때 추일승 감독님이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셨는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임재현은 2년 전 KCC와 재계약에 실패해 은퇴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때 임재현의 손을 다시 잡아준 이가 바로 추일승 감독이다. 선수로서 미련이 남았던 임재현은 추 감독의 배려 덕에 오리온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
“저와 함께 같이 했던 팬들. 지금까지 늘 제 편에서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날 임재현의 팬들은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로 떡을 돌리기도 했다.

“저를 지도해주셨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주신 구단, 단장님, 부단장님. 프런트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주장 김도수와 오리온스 선수들도 모두 고맙습니다. 나이 많은 형임에도 제가 즐겁게 농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임재현은 그 동안 도움을 받은 이들 한명 한명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꽃다발 증정식이 진행됐다. 팬 대표와 주장 김도수, 최성 고양 시장, 이성훈 사무총장이 나와 꽃다발과 감사패를 증정했다.
아내 김보라 씨는 “3년 전부터 남편 은퇴선물을 준비했는데, 힘들게 이 자리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남편을 응원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벤치로 돌아오는 임재현에게 추일승 감독, 김병철, 조상현 코치도 수고했다며 격려를 했다. 임재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들이었다. 적장 유도훈 감독도 경기 후 임재현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추일승 감독은 “KBL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한 선수다. 긴 시간 동안 몸 관리를 잘 하면서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줬다. 이런 선수들이 지도자로서 성공하길 바란다.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전문분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색깔 있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며 조언했다.
후배 장재석은 “코치님께 너무 감사했다. 선수 때부터 옆에서 많이 배웠다. 자기 관리하는 부분을 많이 배웠다. 언제 어디서나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좋은 코치님이 되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남지만,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알린 임재현.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축복 속에 성공적인 제 2의 인생을 맞길 기대한다.

#사진 -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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