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공격도 재밌지만 수비가 더 재밌어요!" 궂은 일도 마다 않는 언성 히어로, 성균관대 구인교(012)

김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6 11: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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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동환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열두 번째 주인공은 성균관대 4학년 구인교(194cm,F)다.

#001_Scan: 성균관대 구인교


구인교는 여느 형제들처럼 동생 구민교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였고, 운동 역시 함께 즐겼다. 여러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던 그들에게 농구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던진 것은 안산초 유영진 코치였다. 또래보다 키가 큰 구민교에게 테스트를 제안했고, 동생과 모든 것을 함께 해온 구인교도 테스트에 참가하며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구인교에게 농구는 처음에는 진로가 아닌 놀이였다. 단순한 재미를 위한 도구였던 농구는 소년체전 우승으로 승리의 맛을 본 이후 이기기 위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고, 우선순위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구인교의 농구 인생에 있어 큰 걸림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은 신장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3학년 선배들과 피지컬 차이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죠. 심지어 그때는 키가 170cm도 안됐어요. 살아남기 위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악착같이 뛰었던 것 같아요."

피지컬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구인교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갑작스럽게 키가 크며 그의 고민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찾아왔다. 유영진 코치의 포인트가드 권유였다. 가드가 갖추어야 할 기본기뿐만 아니라 농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구인교에게 포인트가드 역할은 너무나 큰 산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구인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농구에 쏟아야 했다.

"2학년으로 올라갈 때 키가 갑자기 많이 컸어요. 그때부터 유영진 코치님이 포인트가드를 시키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볼 핸들링도 좋지 않아서 1경기에 턴오버를 5~6개씩 했고 제가 망치는 경기가 수도 없이 많았어요. 그래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에 드리블과 기본기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3학년 때 대회마다 평균 20점을 넣었고, 코치님의 믿음에 조금씩 보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덕분에 성장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유영진 코치의 가르침은 농구뿐만 아니라 구인교의 태도와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는 향후 구인교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유영진 코치님께 농구적인 가르침도 많이 받았지만 농구 외적으로도 많이 배웠어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나 간절함, 태도를 많이 알려주셔서 지금까지도 여러 선생님들께 잘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인교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안남중에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제물포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리에 익숙해져 있던 구인교에게 용산고와의 맞대결은 충격을 넘어 좌절을 안겼다.

"중학교 때 승리의 기쁨을 느낀 이후로 이기는 것이 경기의 목표가 됐어요. 팀원들과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했거든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까 용산고는 쉽지 않았어요. 2~3번 정도 4강에서 만난 것 같은데, 큰 점수차도 아니고 마지막에 밀리면서 3~4점 차로 졌어요.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문턱을 넘지 못하니까 좌절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구인교는 용산고와의 맞대결을 통해 패배의 쓴맛과 함께 슈팅에 대한 고민을 떠안았다. 부정적인 두 가지를 한 번에 지우기 위해 구인교가 선택한 것은 연습이었다. 잡생각을 잊고 농구에만 집중하며 그는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상대가 지역 수비를 했는데 제가 슛을 하나도 넣지 못해 스스로 질책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돌아오면 그냥 체육관으로 나갔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농구공을 튀기고 있으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체육관으로 나간 것 같아요."

"슈팅을 던지는 것에 비해 효율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랑 슈팅 연습을 많이 했는데, 영점이 잡히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많이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많이 던졌어요. 많이 노력한 덕분에 국가대표 근처까지 갈 수 있었고, 민교랑 성욱이가 청소년 대표로 빠졌을 때도 마지막 대회에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던 것 같아요."


#002_Life in University


여러 대학의 오퍼를 받은 구인교의 선택은 성균관대였다. 강점인 수비를 살리고, 약점인 속공을 보완해 본인의 농구로 녹아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학 무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극복했다고 생각한 피지컬의 벽에 다시 부딪혔고,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슈팅도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처음에는 피지컬이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 같아요. 무대가 달라질 때마다 피지컬은 필연적으로 차이가 났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에 다른 선수들보다 웨이트 훈련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피지컬의 차이는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보니까 슈팅도 차이가 나더라고요. 디테일한 부분들도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서 저도 그런 부분을 더 신경 쓰려고 한 것 같아요."

청소년 시절과 유사한 약점을 마주한 구인교는 해결책으로 다시 연습을 택했다. 청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농구에 투자했고, 어둠만 가득해보였던 그의 대학교 농구 인생에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성욱이와 (김)윤성이는 오자마자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경기에 뛰었는데, 저는 3경기까지는 1분도 뛰지 못하고 벤치에 있었어요. 두 선수를 보면서 저도 자극을 받았죠. 다른 선수들이 자거나 쉴 때, 웨이트 훈련을 했어요. 거의 하루도 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아무도 없는데 혼자 가서 훈련했던 것을 사진으로 남겼어요.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뛸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켰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감독님과 코치님께 성실함을 인정받고 조금씩 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어둠이 짙게 깔렸다. 출전 기회를 늘려가던 구인교에게 부상 악령이 찾아온 것이다. 발목 인대 부상과 햄스트링 부상, 연이어 찾아온 큰 부상은 구인교를 깊은 좌절감에 빠뜨렸다. 이는 열등감과 의구심으로까지 이어지며 구인교를 더욱 힘들게 했다.

"2학년 때 큰 부상을 2번이나 당했죠. 처음에 다치고 복귀하면서 이제 다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인대가 1개 반 정도 끊어졌는데, 2주 만에 복귀했거든요. 근데 햄스트링이 터져버렸고, 열심히 준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초조함이 느껴졌어요. 다른 선수들은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보며 뒤쳐지는 기분도 들고 복귀해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구인교에게 포기란 없었다. 부상으로 허비한 시간은 경각심을 일깨웠고, 재발 방지에 더욱 힘쓰며 3번째 시즌을 건강하게 완주했다.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구인교의 핵심 역할은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이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감독님께서 수비와 리바운드를 많이 강조하셨어요. 하고 싶은 플레이와 해야 하는 플레이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서 팀이 원하는 역할에 맞춰가려고 노력했어요. 수비와 리바운드에 먼저 집중하고 슛 찬스가 오면 자신감 있게 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비는 어렸을 때부터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상대 에이스 수비를 맡았어요. 저는 잘하는 선수를 막을 때 눈빛부터 달라지고 어떻게든 막겠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이기겠다는 마음을 갖고 기술보다 투지로 하다 보니까 수비가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아요. 공격도 재밌지만 수비도 재밌어요. 상대방이 제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패스하면서 도망가면 기분 좋거든요."


구인교의 솔선수범과 헌신적인 태도에 성균관대는 구인교에게 주장 역할을 맡겼다. 구인교의 모범이 되는 자세와 리더십, 코트 내에서 보여주는 궂은 일 등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했다. 구인교가 만들어가고 있는 성균관대의 팀 문화는 시즌 내내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부터 경기 중에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주도했어요. 그걸 감독님께서 좋게 보신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주장 같은 위치에서 팀을 이끌었어요. 그래서 부담감은 크게 없고, 어떻게 하면 팀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선후배 느낌보다 친구처럼 편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고, 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003_Application


구인교는 본인의 농구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성장'과 '발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했다.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농구를 대하는 자세와 성실함은 가장 큰 무기가 됐다. 그리고 노력을 통해 입증해온 그의 '성장'과 '발전'은 본인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슈팅도 많이 발전했고, 수비와 리바운드 등 잘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리더십도 많이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MBC배 대회에서 주춤하면서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긴 합니다. 그래도 제 실력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고, 노력한 과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슈팅 성공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도 있습니다. 자신감 있게 하면 항상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많이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농구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좋고, 남들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입니다. 열정을 토대로 매년 성장하고 부족한 것을 찾아가며 발전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올바른 자세로 농구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비와 리바운드 등 다른 선수들이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역할을 도맡아서 하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우선 열심히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매 시즌 지날수록 성장하는 선수라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열정을 많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농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 선수를 보면 농구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를 수 있는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종 목표는 국가대표가 돼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것만큼 농구 선수에게 좋은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목표로 하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제가 하는 것에 달려 있으니까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끝으로 그는 동생 구민교와 두 아들을 훌륭한 농구 선수로 키워준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민교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것 같아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운동도 같이 하고 1대1도 많이 했어요. 서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농구적인 피드백을 서로 많이 해요. 잘될 때나 잘 되지 않을 때나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 민교랑 제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는 것을 케어를 해주셨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동안 뒷바라지를 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요.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사진_구인교 제공, 김동환 인터넷기자,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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