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역사 속으로’ 김병철 전 코치 “명문구단 만들고 싶었는데…”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07-07 13: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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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오리온 농구단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창단 후 줄곧 오리온의 역사를 함께 해왔던 김병철(49) 전 코치는 결국 정식 감독을 맡아보지 못한 채 휴식기를 갖게 됐다. 그가 구상해왔던 청사진도 부질없는 일이 됐다.

KBL은 지난달 24일 열린 임시총회를 통해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한 데이원스포츠를 신규 회원으로 승인했다. 이로써 KBL이 출범할 때부터 명맥을 이어왔던 오리온은 2021-2022시즌을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김병철 전 코치도 휴식기를 갖는다. 김병철 전 코치는 전희철(SK 감독), 정재훈(한양대 감독) 등과 함께 1996년 창단한 실업농구단 동양제과의 창단멤버였다. 2010-2011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줄곧 오리온에서만 뛴 프랜차이즈스타였다. 2002-2003시즌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는 등 오리온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고, 은퇴 후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됐다.

은퇴 직후 오리온 유소년 농구교실 감독을 맡았던 김병철 전 코치는 2013년 2월 1군 코치로 임명됐다. 이후 2021-2022시즌까지 줄곧 오리온 코치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오리온의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추일승 감독이 자진사퇴한 2019-2020시즌 막판 감독대행으로 2경기를 치른 게 전부였다.

김병철 전 코치는 이후 다시 수석코치를 맡아 오리온 감독이 되는 날을 기다려왔지만, 끝내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리온은 김병철 코치에게 전한 말과 달리, 2021-2022시즌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접었다.

오리온 농구단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솔직한 심정은?
구단이 사라지기 전부터 (소문이)떠돌았다. 반반이라 생각했는데 구단에서 “아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믿고 갔다. 그 말을 믿고 계속 구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운영을 접는 게 맞았더라. 공식발표도 너무 늦게 나왔다. 굉장히 난감했다. ‘미리 알려줬다면…’이라는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꾸준히 오리온의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공식적으로는 오리온 감독을 맡지 못한 채 구단 역사가 끝났다.
아쉽긴 하다. 사실 감독대행 맡고 있을 때 회사에서도 걱정하지 말라고, 준비 잘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었던 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구단까지 매각됐다. 감독도 안 되고 구단까지 없어지니 마음이 아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어디에 말도 못하겠더라. 감독이 되지 못한 것보다 구단이 사라진 게 더 힘들다.

오리온에서 상징적인 존재였다. 농구인 김병철에게 오리온은 어떤 의미인가?

오리온에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 내가 열심히 하고 공부하면서 길을 잘 닦아가면 감독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선수를 잘 키워서 오리온을 명문구단으로, 이승현을 프랜차이즈스타로 만들고 싶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서 지도자까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굉장히 컸다. 우리 팀 출신 감독이 나왔으면 했다. 이승현에게도 똑같이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들을 선수들과 공유했던 게 부질없는 일이 됐다.

오리온 이외의 팀에서 뛰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었나?
당연히 FA 자격을 얻었을 때 생각을 했었다. 당시 단장님, 임원분들이 붙잡았다. “지도자까지 가야 한다”, “(전)희철이도 가서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다”라고 하셨고 나는 거기에 응답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주장이었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후배들도 있어서 떠나지 않았다.

오리온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이전 시즌 최하위에서 통합우승까지 올라섰던 2001-2002시즌, 추일승 감독님과 만든 챔피언결정전 우승(2015-2016시즌) 모두 기억에 남는다. 추 감독님과 머리 맞대고 집에 못 가면서 준비한 시즌이었다. 추 감독님께 팀을 운영하는 시스템, 선수 구성 등에 대해 많이 배웠다. 프로는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코치로 우승했을 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선수를 모으고, 키우고, 조직력을 만들어서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의 느낌은 또 달랐다. 2~3년에 걸쳐 만든 선수 구성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1순위(2014년)가 나와 이승현을 뽑았고, 그러면서 다음 시즌 외국선수를 어떻게 선발하면 되겠다는 계산도 나왔던 것이다. 이후 문태종까지 데려오며 포워드 전력이 완성됐다.

선수, 지도자로 만난 외국선수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는?
마르커스 힉스, 대릴 먼로다. 대부분이 피트 마이클을 얘기하겠지만, 외부와 안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힉스, 먼로는 동료들과 함께 하며 이기는 농구를 했다. 피트 마이클은 개인기가 좋았지만 이기는 확률이 떨어지는 농구였다. 40점 이상 넣을 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공격 횟수가 많았다. 팀 성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먼로는 굉장히 똑똑할 뿐만 아니라 인성도 좋았다. 힉스는 성깔이 있었지만 그게 승부욕으로 발휘가 됐다. 팀을 이기게 하는 농구였다. 기량 자체도 대단했지만, 우리가 한 대 맞으면 앞장서서 나서는 의리도 있던 선수였다.

오리온을 사랑한 팬들에게 한마디한다면?

선수였던 대구 시절부터 지도자가 된 이후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이후 경기장에서 만난 팬들이 꼭 감독까지 해달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하셨다. 한 팀에서 오래 있었던 부분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오리온 농구단이 매각돼 (지도자 커리어가)중단됐지만, 쉬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달려왔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코트에서 다시 팬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한다.

#사진_최창환 기자, 점프볼DB(유용우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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