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무조건 로터리픽’ 금메달 품고 KBL 도전장, 김승우 “레전드가 되고 싶습니다”(023)

정다윤 기자 / 기사승인 : 2026-10-22 1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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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연세대 3학년 김승우(192cm, F)이다.

#001_Scan: 연세대 김승우

김승우가 농구에 눈을 뜨게 한 건 친형이었다. SK 유소년 클럽에서 뛰던 형을 보며 농구의 매력에 빠졌고 자신도 같은 클럽에서 공을 잡았다. 이후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용산으로 이사하면서 삼광초로 전학했고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박정웅(정관장)도 저랑 SK 유소년 클럽에서 함께 운동했어요. 당시 정웅이가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다고 해서 저도 영향을 받았죠. 또 어렸을 때 예능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에 삼광초가 나온 적이 있는데 농구를 정말 잘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 방송을 보고 삼광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삼광초에서 용산중-용산고로 이어지는 익숙한 길 대신, 그는 휘문중으로 방향을 잡았다. 친하게 지내던 형들이 먼저 진학하면서 휘문중을 향한 동경심이 싹텄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선택에 힘을 보탰다.

“중학교때 농구가 많이 늘었어요. 처음 입학했을 때 동기들 중에서 제가 가장 실력이 떨어졌어요. 저도 나름 삼광초에서는 에이스라고 생각해서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모든 면에서 부족하더라고요. 그때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슛의 첫 교본은 유기상(LG)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용산중에서 뛰던 유기상의 정석적인 슛폼을 봐왔고 늘 슛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운이 좋게도 2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경기를 뛰게 됐는데, 경기를 계속 많이 뛰면서 그때 좀 폭풍 성장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도 외곽슛은 김승우의 확실한 무기였다. 3점슛을 앞세워 한 경기에 41점을 퍼부을 만큼 일찍부터 뜨거운 손끝을 자랑했다. 2019년 협회장기에서는 최우수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선배들 사이에서 2학년 김승우가 대회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제가 2학년 때 MVP를 받으니까 그때부터 자신감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진짜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제가 달리기도 느리고 몸도 약해서 집에 가면 맨날 줄넘기를 많이 했어요. 주말에도 쌩쌩이를 500개씩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선수들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는 단단한 마침표를 찍기 위한 밑거름이었다. 주말에도 빠짐없이 운동하며 슈팅 연습에 매진했다. 그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가 직접 공을 잡아주고 친형도 함께 코트를 누비며 힘을 보탠 덕분에 김승우는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중학교의 끝자락, 새로운 문턱에 선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용산고의 이세범 코치였다. 평소 깊이 존경하던 지도자에게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설렘은 발걸음을 자연스럽고도 단단하게 용산고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유기상처럼 될 수 있다"는 이 코치의 한마디는 망설임을 단번에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동경하던 선배의 뒤를 밟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품고 그는 주저 없이 용산고 코트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입학하기 전부터 (유)기상이 형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코치님도 저한테 기상이 형처럼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기상이 형이 용산고에서 최고의 활약을 남겼고 저도 형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기상이 형이 달았던 17번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화려한 별들이 모인 용산고의 거센 경쟁 속에서도 그는 1학년 때부터 당당히 자리를 꿰찼다. 각자의 역할이 뚜렷했던 그곳에서 외곽포를 책임지는 슈터로 입지를 다졌다.

그 해 김승우는 2021년 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서는 베스트 5에 올랐고, 유망주 미국 IMG 아카데미 연수 기회까지 거머쥐며 코트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거침없이 넓혀갔다. 2학년이 되어서도 U16 대표팀 태극마크를 달았고 NBA 국경 없는 농구 캠프까지 다녀오며 일찌감치 값진 해외 무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흐름에 뼈아픈 제동이 걸렸다. 2학년 마지막 대회에서 무릎 연골판 부상을 입은 것이다. 3학년의 시작을 알리는 동계훈련마저 통째로 하얗게 비워내야만 했다.

“3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감독님께서 저한테 주장이라는 임무를 맡겨주셨는데, 주장인데도 동계훈련을 같이 못 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또 운동을 쉬다 보니까 예전만큼 기량이 안 올라오는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5개월을 쉬다 보니까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많이 올라오면서 제가 뒤처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넌 최고다.” 이세범 코치의 격려는 재활을 견디는 버팀목이었다. 이 코치는 충분히 좋은 선수이니 금방 기량을 되찾을 거라며 자신감을 북돋웠고, 자신의 부상 경험도 농담 섞어 들려주며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재활 기간을 몸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으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복귀한 대회에서 몸이 적응도 안 되고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코치님이 컨디션 찾도록 도와주시고 자신감도 많이 심어주셨어요. 새벽 운동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그때는 숙소에서 생활했어요. 아침에는 새벽 운동을 하고 예전처럼 몸을 끌어올리려고 그때 정말 독기 품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새벽마다 쌓아 올린 노력은 다시 김승우의 손끝에 자신감을 돌려줬다. 2023년 종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는 용산고가 성공한 3점슛 8개를 책임졌다. 30점을 몰아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승우는 대회 MVP까지 품에 안았다.

연맹회장기에서는 한 경기에 3점슛 11개를 꽂기도 했다. 용산고 시절 거의 모든 대회를 우승으로 물들이며 17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힌 주역이다. 부상으로 잠시 멈췄던 시간도 그의 성장을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002_Life in University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라는 또 다른 문턱에 섰을 때도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선배들과의 뚜렷한 실력 차이와 한층 높아진 무대를 체감하며 그가 품은 다짐은 단순하고도 묵직했다. ‘팀에서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가 되자.’

김승우를 더 빛나게 하는 건, 멈추지 않는 성장에 대한 갈증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매일의 훈련 속에서 무엇을 채우고 쌓아가는지 그 궤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남들 쉴 때 더 노력하고, 남들이랑 같은 운동을 할 때도 같은 시간 안에서 더 많이 깨우치려고 했어요. 그냥 '오늘도 운동 하루 끝냈다'가 아니라, 하루하루 뭐라든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면서 의미 있게 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까 그게 다른 선수들이랑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훈련장에서 세운 기준은 언제나 스스로를 향한 엄격한 잣대였다. 정해진 목표를 채우는 데 머물지 않고 매번 자신의 기록을 앞당기며 한계를 부수고 나아갔다. 남들과 같은 훈련 속에서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벼렸고, 하루하루 쌓인 노력은 성장의 폭을 넓혀갔다.

“훈련할 때도 진짜 악착같이 해요. 예를 들어 10분 안에 들어와야 하는 달리기가 있으면 다른 선수들은 그 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 시간을 계속 단축시켜 보자’는 생각을 해요. 10분 안에만 들어오면 되는 건데도 계속 줄이고 줄여서 이번에는 8분까지 단축시켰어요.”

“그냥 계속 똑같이 하면 의미가 없잖아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훈련하더라도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훈련해요.”

흘린 땀방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헌신은 고스란히 코트 위에서 빛을 발했다. 데뷔 시즌부터 평균 13.4점 7.0리바운드에 3점슛 성공률 36.4%라는 눈부신 기록을 남기며 당당히 신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상을 거머쥔 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부상까지 겹치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학년 때 평균 13.3점 6.7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4.9%로 제 몫을 지켰고, 이상백배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선발되며 경험의 폭도 넓혔다.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상무를 꺾고 연세대가 16년 만에 전국체전 금메달을 차지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어느덧 팀의 중추가 된 3학년, 그의 저력은 더욱 무르익었다. 평균 16.7점 6.6리바운드에 3점슛 성공률 36.2%를 기록하며 이주영과 함께 팀의 중심축을 든든하게 떠받쳤다. 사령탑이 바뀐 올 시즌 새로운 팀 색깔을 입혀가는 동시에, 3x3 대표팀 차출까지 겹치는 숨 가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고 있다.

“조동현 감독님께서 이제 저한테 ‘프로에 가서는 2대 2플레이를 꼭 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죠. 그 방법도 많이 가르쳐 주신 덕분에 더 늘었어요.

감독님께서도 항상 ‘프로에서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 된다.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잘해야 한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을 많이 강조하시거든요. 앞으로는 어떻게 머리를 더 잘 쓰고 효율적으로 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몸을 열심히 만들고 좋은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려고 해요. 그런 자기 관리에 대한 부분도 많이 배웠어요.
”

#003_Application

한국 농구의 새로운 역사에 기꺼이 영웅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FIBA 3x3 아시아컵 2026에서 한국 농구 역사상 최초의 결승 진출이라는 감격적인 준우승을 이끌며, ‘팀 오브 더 토너먼트’(대회 베스트 3선정)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6 아시안게임 무대에서는 마침내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거대한 금자탑을 쌓아 올리며 한국 농구의 새로운 페이지를 활짝 열어젖혔다.

“저희가 1년 동안 진짜 금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농구 생활을 하면서 늘 지도자를 항상 잘 만났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3x3에서 배길태 감독님을 만나면서 감독님의 농구를 배우고, 새롭게 농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트였다고 생각해요. 팀원들이 너무 잘해줬고요. 제가 금메달을 땄다기보다는 팀원들 그리고 감독님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너무 잘 만들어준 것 같아요.”

배길태 감독의 세심한 지도는 선수들의 마음가짐부터 생활 습관까지 두루 닿았다. 그 안에서 간절함을 키운 선수들은 가족처럼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평소 긴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승우도 이번만큼은 마음을 졸였다.

“제가 원래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일본에 도착해서부터 진짜 긴장이 돼서 잠도 잘 못 잤어요. 밥은 그래도 잘 먹었는데(웃음) 잘 때 딱 눕기만 하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진짜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준비했는데 지면 어떡하지 싶었어요. 한 번 지면 끝나는 거니까 그런 생각에 너무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친구한테 영상통화를 걸어서 ‘나 너무 긴장된다. 뭐라도 좋으니까 욕 좀 해달라’고 했어요(웃음).”

긴장도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가리지는 못했다. 김승우는 코트 위에서 제 기량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동안 흘린 땀이 마침내 금빛 결실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진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희가 1년 동안 준비하면서 계속 좋은 생각만 하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현실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도 제가 농구를 하면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계속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김승우는 주어진 자리마다 제 몫을 해내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왔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프로 감독과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그는 이제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고 프로 무대의 문을 두드린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저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농구적인 부분도 그렇고, 팀에 밝은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코트에서 가장 열심히 뛸 자신이 있기 때문에 팀에 정말 좋은 활력소가 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슛이라는 무기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점들이 팀에 플러스 효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트에서는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뛸 자신이 있습니다.”

늘 막내일 때 기회를 기다리기보다 부족한 점을 채우며 제 자리를 만들어왔다. 주춤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한 뼘씩 성장해온 시간은 프로에서 다시 막내로 출발할 그에게도 자신감의 밑바탕이 됐다.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프로에 가서 자리를 잘 못 잡고 처음에 좀 흔들리더라도, 늘 1학년 때 가졌던 마인드와 초심을 다시 잡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를 받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항상 있거든요. 그래서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제가 원래 잘했을 때 어떻게 했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농구를 하면 프로에 가서도 제 스스로가 기대되는 것 같아요.”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승우 역시 그 장면의 끝에 한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 뒀다.

“제가 KBL에서 뛰고 있는 상상을 해요. 어렸을 때부터 TV로 KBL 경기를 봐왔는데, 이제는 제가 그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하는 거죠. 코트에서 제일 많이 뛰어다니고, 땀도 제일 많이 흘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뛰게 될 자신에게 어떤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냐고 묻자 웃음이 돌아왔다. “딱히 불리고 싶은 별명은 없어요. 아무렇게 불러주셔도 감사해요. 다들 주변에서 저를 놀리는 식으로 이광수라고 하는데, 저는 고맙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광수를 좋아하거든요(웃음).”

오래도록 코트에 남고 싶은 마음만큼은 분명했다. “장기적인 목표는 큰 부상 없이 제 몸이 녹슬어서 못 뛰어다닐 때까지 프로에서 살아남아 롱런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KBL 레전드가 되고 싶은 욕심도 좀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제가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 감도 안 오지만, 최대한 차근차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하면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승우는 유력한 로터리픽을 넘어 1순위 후보로도 거론되는 대형 슈터 유망주다. 정확한 슈팅을 간판으로 내세우지만, 그 뒤를 받치는 수비와 리바운드도 탄탄하다.

여기에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성실함은 그의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이미 갖춘 기량에 멈추지 않을 줄 아는 태도까지, 지명 순서가 돌아왔을 때 선뜻 지나치기 어려운 이름이다.

#사진_점프볼DB, FIBA, 김승우 제공, 정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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