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우려고 하루에 여섯끼를 먹었어요”

김종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01-17 19: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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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20)] '잘생긴 마당쇠' 송영진

‘궂은일 잘해주는 선수가 고맙다!’ 많은 지도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팬들의 눈에 띄고 인기를 끄는 선수는 주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에이스급 선수지만 지도자는 수비 잘하는, 혹은 궂은일 잘하는 선수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마당쇠’유형의 선수가 있으면 팀의 방패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것은 물론 팀 조직력까지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공격에만 집중해 팀이 어수선한 경우는 있어도 잘 뛰고 수비 열심히 하는데도 팀이 흔들리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외려 에너지 넘치게 활동량을 가져가고 궂은일에 앞장서는 선수가 있으면 다른 선수들까지 시너지효과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비부터! 리바운드 참가해!’ 등의 말이 매 경기 작전타임 때 감독 입에서 자주 터져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KBL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강팀에는 수비 등 궂은일을 잘하는 주전급 선수가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경우가 많았다. KCC ‘이조추’ 시절의 추승균, ‘신강하’시절의 신명호, 강병현, SK 첫 우승의 일등공신 로데릭 하니발, DB 전성기를 이끈 3&D 플레이어 양경민, 수비와 허슬만으로도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KGC 양희종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KCC와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KGC에도 각각 정창영, 문성곤이라는 마당쇠가 존재했다.


14시즌 동안 프로 코트를 누빈 송영진(44‧198cm) 또한 그러한 유형의 대표적 선수다. 정규시즌 606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평균 7.4득점, 2.5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한 성적만 놓고 보면 대단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성적표가 아닌 실제 경기를 봐야 드러난다. 그가 전성기를 보낸 KT 시절 전창진 감독은 “(송)영진이 없으면 게임하기 힘들어요”라고 대놓고 말한바 있으며 김승기 수석코치 또한 “KBL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이다. 대인수비는 물론 도움 수비 역시 완벽하다”며 수시로 송영진을 칭찬한 바 있다.


당시 경기를 봤던 팬들이라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송영진은 장신이면서 빠른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마인드 자체도 궂은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었으며 BQ가 좋아 볼이 없는 상황에서도 빈 공간을 잘 찾아다녔고 작전 수행 능력도 탁월했다. 타팀 감독들 사이에서도 ‘데려오고 싶은 선수 0순위’로 불렸다. 존재 자체로 팀을 강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KT, 연세대학교를 거쳐서 현재는 휘문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어요. 얼마 전 동계훈련을 갔다온 상태고 현재는 2차 동계훈련을 준비 중입니다. 운 좋게도 은퇴한 이후부터 꾸준하게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저는 농구를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중학교 1학년 2학기 정도에 시작하게 됐어요. 동네에서 친구들과 축구, 야구도 열심히 하는 등 운동은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선수를 해야겠다 그런생각은 안했거든요. 그런데 키가 갑자기 쑥쑥 크면서 제의를 받게 됐죠. 시골에는 큰 친구들이 별로 없거든요. 큰 키 때문에 눈에 띄게된거죠.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 견학 한번 해보고 결정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저의 눈에 농구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쳤고 그래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올라갈 때가 168~170cm정도 되었는데 운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182cm까지 삽시간에 컸어요.


Q.본래부터 4번 포지션을 맡았나요?
아뇨.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시골에는 키 큰 학생이 많지 않아요. 제가 제일 큰 축에 속했으니까 농구를 시작할 때는 5번 센터를 맡았어요. 포지션에 대해 세분화가 잘되어있지도 않은 시대였을 뿐더러 일단 키가 크니까 골밑을 지키게된거죠. 저뿐 아니라 지방쪽 상당수 선수들이 그런 케이스가 많을거에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키 큰 선수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4번을 맡게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3번 포지션까지 소화하게 됐어요.

Q.어릴 때부터 마른 체질이셨을까요?
맞습니다. 살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었어요. 골밑에서의 몸싸움 등에서 불리할 때가 있는지라 몸을 좀 키워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대신에 몸이 가벼우니까 스피드, 점프력 등에서는 경쟁력이 있었죠. 더불어 운동능력 등도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았고요. 억지로 몸을 불리기보다는 타고난 제 장점을 살리는 쪽이 저에게 맞는 옷이었습니다. 몸이 가벼우니까 막 달리고 뛰고 그래도 별다른 부상도 없었어요. 단 학창시절에 빈혈로 살짝 고생하기는 했어요. 당시 병원에서 혈액속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다고 하더라고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키 크고 마른 체형 중에 빈혈로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어요. 선수들은 특히나 더요. 먹는 것에 비해 과하게 몸을 써서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한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Q.농구를 배우면서 ‘와, 저 선수는 정말 잘한다’고 느낀 또래가 있을까요?
제가 센터 포지션을 봐서 그랬는지 어릴때부터 가드를 맡고 있는 선수들을 동경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보다 2년 위인 이홍수 선배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아무래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더 그랬지 않나 싶어요. 지금이야 한두살 차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는 1년 선배만 하더라도 꽤 크게 다가왔잖아요. 되게 차이 많이나게 느껴지고요. 조우현, 황성인, 조상현 선배 등이 그랬죠. 그런 선배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아…, 나는 언제 저만큼 할 수 있을까?’생각했어요. 이후 조금 커서는 경복고에서 고려대를 갔던 박재규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가드 포지션에서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대학에서 농구를 그만뒀더라고요. 더불어 프로에 가서 보면 제 또래 전후로 (김)승현이가 가장 잘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량도 좋았고 그만한 임팩트도 남겼잖아요.

Q.와! 정말 가드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네요.
맞아요. 저는 가드를 많이 좋아해요. 제 키에도 패스를 나쁘지 않게 하고 피딩능력이 되는 것도 그러한 영향을 받은듯 싶어요. 좋아하는 만큼 눈여겨봤고 ‘저런 기술은 나도 써먹어보자’고 생각하게 되고 그랬던거죠.

Q.지금 시대에 농구를 했으면 스윙맨 스타일의 3번도 가능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내외곽을 오가면서 패싱게임도 즐기고 폭넓게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실제로 KT에서 추일승 감독님과 함께 할 때 3번도 했었죠. 이전팀과 달리 활동반경도 넓게 가져갔고 신장을 이용해 미스매치가 발생하면 포스트업도 시도하구요. 말씀하신데로 스윙맨 스타일이라기보다는 3.5번에 가까웠다는게 맞을 것 같네요. 스윙맨으로 농구를 배우지는 않았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이후 전창진 감독님 오셔서는 4번으로 활약했고요. 어쨌든 두분 감독님 모두 제가 잘하는 것을 잘 뽑아서 활용하셨던 것 같아요. 농구 인생에 있어서 고마운 분들이죠.

Q.좀 더 크게 보면 2번 슈팅가드까지 가능했으려나요? 지금은 장신가드도 대세잖아요. 슈팅, 스피드도 되고 패싱능력도 있으니까요.
에이, 농구를 시작할 때 가드로서의 훈련과 경험치를 쌓았으면 모를까 거기까지는 힘들었을거에요.(웃음) 가드는 단순히 빠르고 슛팅력 있고, 패스 센스까지 어느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드리블이 좋아야 해요. 당시 제가 포지션 감안해서 드리블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가드 수준은 아니였어요. 가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볼 운반이에요. 오랫동안 볼을 손안에서 가지고 놀 줄 알아야 되요. 안정적으로 볼을 운반하는 것은 물론 간수 능력도 있어야죠. 그게 안되면 다른게 아무리 좋아도 힘들어요. 다른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어느 정도 배워서 침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패싱능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경기중 순간순간 나오는 센스고 오래 볼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조리딩까지 해야 하는 2번의 그것과는 다르죠. 물론 가드도 타포지션의 파워와 터프함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1번과 2번 혹은 3번과 4번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완전히 포지션이 달라 버리면 다른 영역이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사이즈가 문제가 아닌 농구를 배워온 방식과 플레이 경험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까요.

 

 

“주성이와는 둘다 빠르고 점프가 좋으니까,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중앙대학교는 어떻게 가게 된 것인가요?

다른 대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기는 했지만 진작부터 중앙대를 갈 것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중앙대에서 일찌감치 관심을 가져주셨던 영향이 커요. 의리도 영향을 끼쳤고요.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셨어요. 중앙대에 간 선배들 말 들어보면 예전부터 중앙대가 그런 식의 스카웃을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찍 유망주를 발견해서 관심 가져주고 친해지는 스타일요.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니 아무래도 비슷한 조건이면 중앙대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저 개인적으로도 중앙대에서의 활약으로 이름을 많이 알리게 되었으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1학년 때는 이은호, 정훈종 등 선배들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잘하신 것도 있지만 일단 저는 항상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 스타일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고등학교 1학년 때 3학년 선배들을 보면 흡사 아저씨 같았다니까요. 어른이 되어서는 큰 차이가 아니겠지만 학창시절에는 좀 다르더라고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그랬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등학교 막 올라갔을 때는 적응도 해야 되는데 빈혈로 몸까지 안 좋아서 한때 농구를 그만둘까 라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훈련을 따라가야 해서 마음은 급한데 일단 제대로 뛰지를 못하니까요. 저도 지도자 입장이 되어보니까 확실히 알겠어요. 선수들의 재능은 둘째치고 성향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훈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사용법이 다 달라요. 거기에 따라 원석이 보석이 되기도 하고, 보석이 깨져서 쓸모없어지기도 하죠.

Q.1년 후배 김주성과의 ‘트윈타워’는 한기범, 김유택과 비견되었을 정도인데요. 높이도 높이지만 역대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골밑 콤비가 아닐까 싶어요.
일단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트윈타워’중 하나와 비교가 된다는 것 자체로 너무 영광이고 기분 좋습니다. 한기범, 김유택 선배님이야 정말 전설로 남을 존재들이죠. (김)주성이와는 호흡이 잘 맞았어요. 확실히 파워 콤비는 구성에 따라 엇박자가 날 수도 있겠지만 빠른 선수로 조합이 되면 플레이하기가 서로 좋은 것 같아요. 특히나 골밑을 지키는 ‘트윈타워’가 둘 다 스피드에 강점이 있는지라 어떤 조합에도 다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그때는 훈련량도 많아서 체력도 엄청 좋았어요. 끊임없이 뛰어다녔죠. 거기에 둘다 빠른 것은 물론 점프력도 나쁘지 않았고 슈팅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세트오펜스, 속공 모두 원활하게 잘됐어요. 특히 수비같은 경우 앞선에서 일부러 열어주기도 했죠. 구태여 타이트하게 막지 않아도 포스트 근처로 몰고 오면 저나 주성이가 블록슛을 뜨면 되니까요.

Q.허재‧강동희‧김유택‧한기범의 중앙대, 김승기‧양경민‧김영만‧조동기의 중앙대, 강병현‧윤호영‧오세근‧김선형의 중앙대 등 시대별로 뛰어난 중앙대 라인이 있었습니다. 송영진의 중앙대까지 합쳐서 어느 시대가 가장 강했다고 생각하나요?
어…, 여기에 대한 확답은 누구도 어렵겠죠. 각 시대별 중앙대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던 것 같아요. 개인별 능력이 탁월했던 팀, 슛이 유달리 좋았던 팀, 질풍같은 스피드가 돋보였던 팀 등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더욱이 농구는 팀 스포츠인지라 멤버들의 조화나 시너지 등도 무시할 수 없고 서로 붙었을 때 상대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같은 경우는 높이와 스피드가 모두 좋았고 더불어 각 포지션별로 정돈이 잘된 팀이었던 것 같아요. 최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졌던 것도 아닌 듯 해요. 답은 없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죠. 다만 제가 뛰었던 팀이니까 마음은 갑니다.

 

 

“살을 찌우려고 운동하다가도 중간에 음식을 먹고 왔습니다”

Q.2001년 드래프트 1순위의 높은 기대치에 비하면 활약이 떨어졌어요. 무리한 증량이 좋지않은 쪽으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창원 LG팬분들의 기대가 컸던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올라가던 시절도 그랬지만 제가 적응하는데 살짝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기도 해요. 더불어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 시절 운동을 해왔던 사람인지라 어지간한 것은 감수하고 그런 성격이었지만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멘탈도 많이 깨졌고요. 무리한 증량 역시 마이너스로 작용한 부분이 분명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못 맞춘게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을 잘 못했던거죠.

Q.체질을 무시하고 증량하는 과정 또한 힘드셨을 것 같고요.
일단 계속해서 먹어야만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운동의 비중보다 먹어서 찌워야 되는 부분이 더 컸던 시절이죠. 팀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당시 LG는 3점슛과 속공의 팀이었는데 확실한 토종 골밑 자원이 부족했죠. 그런 부분을 채워줄 마지막 퍼즐로 저에게 기대하는 부분도 컸고요. 때문에 무조건 몸을 키워서 골밑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만 되는 상황이었어요. 벌크업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선수 체질이나 컨디션까지 체크하면서 과학적으로하는 시대가 아니었잖아요. 그냥 먹고 먹고 또 먹고 일단 살부터 찌우자는 것이 1차 미션이었죠. 밤에 야식은 기본이고요. 하루에 여섯끼를 먹었어요. 운동하다가도 중간에 먹고 오고 그랬으니까요. 먹는게 스트레스였고 그러다보니 체중은 늘었지만 신체 밸런스가 깨져서 본래가지고 있던 순발력, 운동능력 등에도 지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당시 10㎏넘게 찌웠었는데 다른 부분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몸무게만 늘어버렸어요.

Q.김태환 감독께서 대학교 은사셨는데 선수 송영진 사용법을 잘 모르셨던 것 같아요.
제자된 입장에서 사용법을 알았다 몰랐다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감독님께서도 정해진 기간 내에 성적을 내시고 뭔가를 이루시고자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셨을 수도 있을거에요. 때마침 대학 무대에서 4번으로서 좋은 성적을 내고 온 제가 팀에 들어왔고요. 자신이 가르키는 제자가 잘 안되기를 바라는 지도자가 누가 있겠어요. 그냥 기대하셨던 모습에 제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살을 찌우면서 효과적으로 파워풀한 포스트 자원이 되는 선수가 있는 반면 저는 거기에 맞지 않는 체질과 성향이었던 거죠. 감독님께서도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행보를 생각해봐도 저는 스피드와 운동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상태에서 부지런하게 돌아다닐 때 신바람이 나는 선수였어요. 말랐다고는 하지만 상대 토종 선수들에게 크게 힘으로 밀리지도 않았어요.

Q.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음에도 KT에 보상선수로 가게 됐을 때 마음이 씁쓸했을 것 같아요.
LG구단과 팬분들께는 기대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도 컸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풀리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요. ‘여기서도 못하게 되면 나는 정말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도 있었고요.


Q.LG와 KT에서의 활약이 달라진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기록만 놓고보면 별반 차이는 없어요. 단순히 성적표만 놓고 보시는 분들은 그 시절이나 저 시절이나 비슷하게 여길 수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경기를 보신 분들께서는 ‘달라졌구나’하고 평가를 해주시더라고요. 제 스스로 느끼는 장점 중 하나는 공 없는 움직임이 좋다는거에요. 당시 멤버들도 나쁘지 않았고 제가 딱히 뭔가를 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잘 맞춰 보자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단순히 득점, 리바운드 등 눈에 비치는 기록에 욕심내기보다는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수비 등 궂은일부터 하는 등 팀 플레이어로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어요. 전체 1순위 출신 그런 것들은 내려 놓은지 한참 되었으니까요.  

 

 

Q.전창진 감독이 선수 송영진의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썼던 것 같아요.
이전 추일승 감독님도 그렇고 전창진 감독님도 그렇고 모두 고마운 분들이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서 열심히 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좋은 동료들이 많았던지라 저는 그들을 믿고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추감독님께서는 저를 3번으로 주로 쓰셨고 전감독님은 4번으로 뛰게 했는데 둘 다 좋았습니다. 어차피 활동량 많이 가져가면서 궂은 일하는 것은 비슷했으니까요. 당시에 체중이 아주 많이 나가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감독님께서 처음 봤을 때 저에게 ‘살을 좀 더 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마도 제가 예전에 날렵했던 시절의 플레이를 보셨던 것 같아요.

Q.FA 자격을 2번을 얻는 동안 KT에 모두 남으셨어요
마음적인 부분도 컸죠. 제가 원해서 KT로 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 팀이고 실제로 결과도 좋았으니까요. 단순히 돈만 생각했으면 조금이라도 더 조건이 좋은 팀을 쫓아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KT생활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비록 신인 시절부터 몸을 담았던 팀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한팀에서 뛰면서 프랜차이즈 비슷하게 남고 싶었어요.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KT에 송영진이라는 선수가 있었다’정도만 기억되어도 기쁠것 같습니다.

Q.함께 뛰어본 외국인선수 중에 인상 깊었던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애런 맥기와 필립 리치가 기억납니다. 기량도 빼어났고 팀에도 잘 녹아들었어요. 저와도 호흡이 잘 맞았고요. 다방면으로도 두루두루 잘하던 선수들이었죠. 더불어 나이젤 딕슨도 잊을 수 없죠. 딱 보기에도 체격이 엄청 좋았잖아요. 거기에 걸맞게 파워도 굉장해서 흡사 탱크를 연상시켰습니다.

Q.은퇴 후 조동현 감독과 KT수석 코치를 맡던 시절은 어떠셨나요?
사실 당시 저는 은퇴할 마음이 없었어요. 기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가 남아있었죠. 하지만 조동현 감독님이 새로 부임하시면서 옆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은퇴를 하고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챙기는 것과 코치로서 감독님을 도와 이끄는 것은 많은 면에서 다르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성적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당시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후 지도자 생활을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던 조동현 감독님께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와의 첫 만남이 나름 인상적이었습니다”

Q.현재 사모님을 만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싸이월드라고 기억나시나요? 예전에 많이들 하셨잖아요. 어느날 어느 선배의 싸이월드에 들어갔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여성분 사진을 발견했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개시켜 달라고 했죠. 첫 만남 때부터 제가 좀 실수를 했어요. 저녁 경기를 뛰고 숙소에 들어갔다가 나가서 늦은 시간에 만남을 가졌어요. 문제는 서둘러 나가다 보니 추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가게 된거에요. 예의가 아니죠.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어떤 복장인지도 인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급한 마음에 ‘빨리 가야지’라고만 생각하고 튀어 나간 거죠. 나중에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첫 만남인데 그런 복장으로 나올 수가 있냐'고.(웃음)

Q.아드님이 야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올해 중학교 2학년되고요. 잠신중학교에서 하고 있어요. 신장(178cm)이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또래 중에서는 적지 않은 키고 아직 2차 성장도 오지 않아서 좀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체격조건을 살려 투수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본래는 운동 자체를 시킬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농구를 하느라고 시즌 중에는 가족들을 잘 못봐서 그런 것인지 농구에는 별반 관심이 없더라고요. 체육관에 와도 농구경기 등에는 관심도 안보이고 매점에 가있는다거나 그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느날 처남이랑 같이 아이를 데리고 잠실에 가서 LG대 두산 경기를 본 적이 있어요. 경기를 보고 오더니 야구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해서 클럽 야구팀 같은 곳에 가서 조금씩 시켜봤어요. 재능도 있는듯하고 애정도 꾸준한 것 같아서 조금 늦었지만 엘리트 야구 쪽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죠.

Q.슬램덩크 만화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아, 제 카톡 프로필에 강백호랑 서태웅이랑 하이파이브하는 그림 보신 것이죠? 제 시대 농구 좋아했던 사람 중에 만화 슬램덩크 한번 쯤 안본 사람이 있을까요.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이 얼마나 그 순간이 기뻤으면 하이파이브까지 했을까?‘싶기도 하고요. 제가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원팀‘, ’하나된 우리‘등을 강조하거든요. 만화 장면 속에서 그런 부분이 겹쳐서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요. 팀 스포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Q.마지막으로 여전히 선수 송영진을 기억하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것도 아니고 관심 속에서 은퇴식을 하고 그런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기억해주시는 팬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현역시절에도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응원해주시는 팬분들 덕에 다시 기운 차리고 열심히 뛰었던 것 같습니다. 농구인들에게 팬분들의 관심과 성원은 전부라고 할 수 있죠. 그러한 애정이 있었기에 제가 선수 생활도 이어나가고 은퇴 후에 지도자 생활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내주신 마음 잊지 않고 잘 간직하면서 현재의 꿈나무들을 열심히 가르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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