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유도훈 감독과 전자랜드

기자 / 기사승인 : 2021-04-06 17: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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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랜드 남자프로농구단이 오늘(2021년 4월 6일) 오후 7시에 전주에서 KCC를 상대로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한다. 플레이오프가 남았는데도 오늘 경기가 전자랜드의 2020-2021시즌을 마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뿐 아니라 전자랜드라는 이름으로 팬들 앞에 모습을 보이는 마지막 무대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곱씹으니 무심하고자 노력해온 나의 마음에도 물결이 인다. 이 팀이 창단되어 오늘에 이르는 과정은 내 정체성의 일부, 생애사의 한 페이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체육기자’이며 ‘농구기자’라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립체육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금도 사고의 밑바닥에 저널리스트의 본능이 잠복했다. 그 본능이 현장과 현상을 들여다보는 매순간 내게 영향을 준다. 아무튼 오늘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정규리그의, 내 마음속의) 마지막 경기를 한다.


전자랜드의 역대 사령탑은 대개 나와 인연이 도탑다. 1994년 대우 제우스의 창단 사령탑은 최종규 감독-유재학 코치였다. 최 감독은 지나치게 크리틱한 나의 기사를 불편해하지 않고 유쾌한 대화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의 깊고 넓은 마음 씀씀이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내가 농구와 관련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 2012년, 인천에 머무르던 최 감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자료 수집을 도왔다. 찰리 마콘, 제프 고스폴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일차적으로 그가 제시한 자료와 증언에 기초했다. 유재학 코치는 대우의 감독으로 시작해 신세기, SK빅스를 거쳐 모비스를 지휘하는 장구한 시간 동안 남다른 능력과 업적을 보여주고 있다. 유 감독은 나의 중요한 취재원이자 농구 공부를 함께 하는 도반이다. 배우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의리가 있어 언제나 훌륭한 사람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나는 농구 현장을 떠난 지 오래지만 뛰어난 코치로서 매 시즌 업적을 쌓아 나가는 그를 변함없이 존경한다.

박수교 감독은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물러났지만 나는 그가 아마추어 현대에서 일할 때부터 정직하고 의리 있는 사나이로서 신뢰하였다. 제이 험프리스와는 바이엘 자이언츠의 코치로 일한 캘빈 올덤을 연결고리로 인연이 닿았다. 이호근 감독대행 역시 아마추어 현대의 선수 시절부터 살가운 사이였다. 최희암 감독은 내가 농구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연세대를 이끌었다. 그는 연세대를 1993-94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문경은-우지원-이상민-서장훈 등을 스타로 키웠고, 남자농구가 겨울철 인기종목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5년에는 나의 모교인 동국대학교 감독을 맡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당시 모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나는 매주 한두 번 훈련을 지켜보고 대화도 하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기승호, 김강선, 천대현, 정재홍 등이 그가 키운 선수들이다. 박종천 감독은 아마추어 현대에서 신선우 감독을 보필할 때부터 깊게 대화한 상대였다. 성실하게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나는 전자랜드라는 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유도훈 감독을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자신이 공평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무지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유도훈 감독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 시기는 그가 연세대를 졸업하고 실업농구 현대에 입단한 1990년이다. 훈련장에서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다.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이미지는 거대했다. 선수 유도훈은 프로농구 현대의 벤치 멤버로서 포인트가드 이상민을 뒷받침했다. 나는 그가 교체되어 코트에 들어갈 때마다 벤치로 돌아오는 이상민보다 크다고 느꼈다. 이때는 ‘천리안’과 ‘하이텔’의 시대였다. 나는 지인이 관리해준 ‘허진석의 농구이야기(huhball.co.kr)’에서 자주 선수 유도훈을 언급하였다. 유도훈은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작지만 대륙에서 대륙으로 비행하며 먹이와 사랑을 찾는 벌새,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 막대처럼 파괴적인 에너지를 내장한 사나이였다. 그의 농구는 언제나 불리한 환경에서 전개되었다. 선수로서는 작은 체구로 거인의 숲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지도자로서는 만성적으로 재정불안을 겪는 팀의 선수들을 이끌어야 했다. 그러나 유도훈 감독은 의기소침하지도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았다. 언제나 최선의 농구를 보여주었고, 결과는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올해도 전자랜드를 이끌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SK, LG와 같은 굴지의 기업 구단이 모두 유도훈 감독과 전자랜드의 발 아래 있다.

전자랜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유도훈 감독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전자랜드는 여러 면에서 가치가 있는 팀이니까 좋은 곳에서 받아 운영하면 좋겠다. 유도훈 감독은 내가 보기에 우리 남자농구의 한 시대를 갈음하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자격이 있다. 유도훈 감독과 비교할 프로농구 지도자는 유재학, 신선우, 최인선 감독 정도다. 이 가운데 현역은 유재학 감독뿐이니 긴 시간이 지난 다음 우리농구 역사의 2020년대에는 유재학-유도훈만 남을 수도 있다. 농구대잔치 시대 전체를 볼 때 방열과 김인건이라는 뛰어난 감독 두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듯이. (매우 유능한 최인선 감독이 실업 무대에서도 업적을 새겼지만 나는 그가 맡은 아마추어 기아를 방열 감독 체제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최 감독은 온전히 자신만의 농구로 정상을 정복해낸 SK 시절 진경에 이르렀다. 그는 1999-2000 플레이오프에서 신선우 감독이 이끄는 현대를 제압하고 SK에 첫 우승을 안겼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 유일하게 두 팀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다.) 슈퍼스타 이충희, 허재, 강동희, 추승균, 현주엽 등이 프로농구 사령탑에 올랐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쟁에서 탈락한 데 비춰보면 불사조와 다름없는 유도훈 감독의 오늘이 더욱 돋보인다.

한 시간 뒤 경기가 열린다. 역사의 한 장면이다. 저물어가는 한국체육대학교의 오후, 내 연구실에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로 유도훈 감독의 경기를 보겠다. 기자의 자세는 불편부당해야 하겠지만 오늘은 유도훈의 마음이 되어 40분을 보낼 것 같다. 그래도 허물은 허물이다. 감수하겠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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