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구의 DEBUT] '잠 못 드는 밤' 주희정이 전하는 눈물의 데뷔전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5-29 16: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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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그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군가에게는 ‘독종’이라 불렸던 남자. KBL 최고의 리빙 레전드 주희정 고려대 감독의 프로 데뷔전은 눈물로 가득했다.

대신초 4학년이었던 주희정 감독은 뛰어놀기 좋아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연히 맨 뒷줄에 앉아 있다가 농구부 테스트를 받게 됐고 달리기 1등을 하며 수십년간 이어질 인연의 끈을 붙잡게 된다.

할머니의 반대로 인해 잠시 위기를 맞이했지만 설득 끝에 농구공을 잡은 주희정 감독. 평범한 신체 조건에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도 힘이 약했던 그는 토성중(현 경남중) 재학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그러나 동아고로 진학 후, 주희정 감독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훈련은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기량 역시 눈에 띄게 발전해나갔다.

주희정 감독은 “25년 만에 만난 부산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혼자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까 봐 저녁에 같이 떡볶이를 먹고 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돌아간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혼자 야간 운동을 하고 돌아가면 새벽 1시가 됐고 다시 새벽 5시가 될 때 학교로 갔다. 친구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25년 만에 간신히 전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때의 나는 농구가 절실했고 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라고 이야기했다.

특출 난 재능은 없었지만 노력 하나만으로 당당히 이름을 알리던 주희정 감독. 1994년 제19회 협회장기 남녀중고농구대회에선 조우현 코치와 함께 활약하며 6년 만에 동아고를 정상으로 이끌기도 했다.

당시 주희정 감독을 알아본 박한 전 고려대 감독은 그를 스카우트했고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 고려대는 막강 전력을 뽐내고 있던 시절로 동포지션에는 신기성 감독이 존재했으며 김병철 코치, 현주엽 전 감독 등이 전성기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조금씩 잊혀져 가던 주희정 감독은 2학년 때 중퇴를 결정했고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다는 의지 아래 프로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의 적극적인 권유, 그리고 최명룡 전 감독의 도움 역시 주희정 감독의 프로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

원주 나래의 창단 멤버로 들어가게 된 주희정 감독의 신분은 연습생. 정식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연습생으로서의 1년은 주희정 감독에게 있어 기회를 잡는 시간이 됐다. 당시 나래의 숙소가 있었던 일원동 근처에 위치한 대모산은 주희정 감독의 주요 훈련지이자 쉼터와도 같았다.

“연습생 때는 경기에 나설 수도 없고 그저 선배, 형들의 뒤치다꺼리만 했다. 남은 시간은 대모산에서 훈련을 하거나 혼자 코트를 뛰며 언젠가는 정식 경기에 나가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1997-1998시즌이 찾아왔고 우연히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주희정 감독의 말이다.

당시 주희정 감독의 하루를 그대로 지켜봤던 강병수 전 감독은 간절함과 절실함이 몸에 가득 찬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주희정 감독의 훈련량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간절함과 절실함이 남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도 너무 열심히 하는 주희정 감독을 도왔겠지만 무엇보다 코트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도 대단했다”라고 기억했다.

주희정 감독은 강병수 감독, 최호 코치와 함께 호주에서 농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며 러닝을 하다가 길을 잃어 3시간을 헤맸다는 것은 하나의 일화. 더불어 시간이 날 때마다 호주인 코치에게 농구를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로 그의 노력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주희정 감독은 1997-1998시즌 나래의 첫 경기부터 선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전 가드로 활약했던 이인규가 부상을 당하자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된 것이다.

주희정 감독은 “처음 선발 출전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날 딱 2시간 동안 잠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질 않더라. LG와 첫 경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1997년 11월 11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나래와 LG의 시즌 첫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전반까지 58-46으로 앞섰던 나래는 후반 들어 기를 펴지 못하며 97-102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주희정 감독은 이날 23분 18초 동안 4득점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신인의 첫 경기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활약이라 볼 수 있지만 그는 달랐다.

“첫 경기에서 패하고 나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원주에 돌아왔다. 당시 막내 선수들은 유니폼 세탁을 하고 난 뒤 야식을 먹었는데 나는 할 거 다하고 난 다음에 씻지도 않고 방에 들어갔다. 20분을 넘게 뛰었는데 팀이 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몸이 덜덜 떨리더라. 룸메이트가 지금 성균관대 감독인 (김)상준이 형이었는데 혼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배려해주기도 했다.”

주희정 감독에게 있어 데뷔전 패배는 끔찍한 순간으로 기억됐다. 지옥과도 같았던 하루, 하루를 보내며 기다려왔던 순간에 승리가 아닌 패배라는 결과를 안았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승부욕이 너무 컸던 탓일까. 뜬눈으로 패배의 날을 보낸 주희정 감독은 이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운동량을 더 늘렸다. 야식도 마다한 채 잠든 그가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공복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시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주희정 감독은 “내 안에 있는 화를 풀기 위해 운동량을 늘렸다. 새벽에 나와 밤늦게까지 코트에서 살았던 것 같다. 빨리 다음 경기를 했으면 했다. 패배의 아픔을 잊으려면 승리해야 했으니까”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나래는 11월 15일, 원주치악체육관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SK를 맞아 117-91로 크게 승리했다. 주희정 감독은 25분 59초를 출전, 13득점 4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하며 데뷔전 패배의 아쉬움을 겨우 씻어낼 수 있었다.

승리의 기쁨보다 패배의 아픔이 더 컸던 주희정 감독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첫 시즌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45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평균 36분 15초 동안 12.7득점 4.0리바운드 4.1어시스트 2.9스틸을 기록했고 당당히 신인상과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 2.9스틸은 전체 1위 기록.

대단한 성공을 이룬 주희정 감독에게 있어 정체, 자만, 방심, 나태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었다. 승리의 순간에도 자신의 루틴을 지켰고 패배의 아픔은 여전히 컸다.

“오랜 시간 프로 생활을 하면서 데뷔전을 치르기 전날의 설렘, 그리고 승리의 기쁨, 패배의 아픔 모두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2016-2017시즌 KGC인삼공사와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 전날에도 새벽 3시까지 STC(삼성트레이닝센터)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 젊었을 때처럼 운동하지는 못했지만 떨림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만큼 간절함과 절실함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과 끝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20시즌(1위), 1,029경기(1위), 8,564득점(6위), 3,439리바운드(7위), 5,381어시스트(1위), 1,505스틸(1위) 등 주희정이 걸어온 역사는 모두 눈물의 데뷔전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던 그의 성실함과 승부욕은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는 위대한 남자의 역사를 그동안 함께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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