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프볼이 추천하는 유소년 농구교실⑫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

김지용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5 13: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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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지용 기자] 농구전문매체 ‘점프볼이 추천하는 유소년 농구교실’ 프로젝트의 열두 번째 파트너는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이다. 정봉영 원장이 2013년 경남 진주에 개설한 유소년 농구교실이다. 정봉영 원장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21년 처음으로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새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을 찾았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농구 열정에 빠진 합천 소년

정봉영 원장은 1988년생으로 고향이 경남 합천이다. 그곳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며 농구선수를 꿈꾸었다. 계성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2012년 부산 kt에 입단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프로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프로 선수로서 정 원장의 커리어도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은퇴한지 1년 만에 고향과 이웃한 경남 진주에 농구교실 문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무작정 농구가 좋았다. 초, 중학교를 모두 합천에서 다녔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합천에서 농구선수를 꿈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농구를 배울 여건 자체가 안 됐다. 재미로 농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농구를 하면 할수록 선수로서의 꿈이 커졌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농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연달아 거절당했다.”


그는 농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코 중학교 3학년 때 테스트를 보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또래 선수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정 원장의 열의는 대단했다. “합천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진짜 농구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대구에 연고를 둔 동양 오리온스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프로 농구단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시절 오리온스가 김승현, 힉스 같은 선수들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농구에 더 깊이 빠졌던 것 같다. 농구를 보고 나면 꼭 코트에서 따라 해 봐야 직성이 풀렸던 것 같다.”


그는 중학생 시절인 2000년대 초반 농구에 깊이 빠져 버렸다. 정 원장은 합천에서 농구 좀 한다는 선배나 친구들을 찾아가 무작정 농구를 배웠다. 농구 동아리가 없던 중학교 시절에 느꼈던 농구 갈증을 그런 식으로 풀었다.


“농구를 좋아하긴 하는데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 늘 농구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그러다 주변의 농구 잘하는 친구들한테 ‘너희는 어디서 농구를 하냐’고 묻자 합천실내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형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작정 가보니 고등학교 형들이 모여 저녁까지 자체 연습이나 경기를 했다. 그 이후로 매일 체육관을 찾아갔는데 1주일 정도는 끼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다 1주일 정도 지나니깐 형들이 함께하자고 해줬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농구를 배우기 시작한 정봉영 원장은 본격적으로 농구선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매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농구선수로서 꿈을 이뤘다.


그는 고향 합천을 떠나 대구에 있는 계성고등학교 농구부에 들어갔다. 고교 1학년에 처음 시작한 농구선수 생활은 설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서 어려움이 찾아왔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본기를 다져온 또래 선수들과 견줘보면 정 원장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 원장은 이 부분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예상치 못한 부상까지 찾아오며 고등학교 시절 1년 유급까지 해야 했다고 한다.


“주변 동료들을 따라잡는 게 힘들었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엘리트 선수들의 훈련을 따라가려니 빨리 탈이 났다. 두 달 만에 무릎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아서 부상 중에도 새벽 운동은 안 쉬었는데 나중에는 이런 노력이 나에게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하반기에 1분 정도 처음 정식경기에 나갔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경기를 뛰었는데 실력보다는 연습량과 성실함을 인정받았던 것 아닌가 싶다.”


고양 오리온 임종일, 3x3 국가대표 노승준 등과 동기였다는 정봉영 원장은 “난 주변 동료들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농구를 늦게 시작했는데도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교와 프로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조기 은퇴 후 찾은 제2의 인생
프로 입단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이미 프로에 자리잡은 선수들을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프로입단 1년 만에 선택한 길은 은퇴였다.


정 원장은 “프로의 벽은 정말 높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든 관문을 뚫고 올라온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버티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농구를 늦게 시작한 티가 프로에서는 더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프로에서 또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그때 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놨던 것 같다”고 조기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은퇴 후 곧바로 부모님이 계신 진주로 내려왔다. 정 원장은 그 때 농구와 연을 끊고 새로운 일을 하려고 했다. 농구를 주변에 둬봤자 미련만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농구공을 놓고 나서야 세상을 조금씩 알아갔다. 그는 친구와 같이 살면서 주방 설거지, 음식점 서빙, PC방 아르바이트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안 해 본 게 없었다.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일을 해도 프로에서 받던 월급의 반도 벌지 못했다. 그때 ‘내가 농구에서 받았던 혜택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진짜 배부른 소리 많이 하고 살았구나’를 제대로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 지금 현역 선수들도 그럴텐데 미리 겪어본 선수로서 한 마디 해주면 코트를 나와보면 그 모든 것이 너무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질 테니 지금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그 무렵 정 원장은 선수 생활 중 다친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다. 마침 한 지인이 입원중인 정 원장에게 캐릭터를 만들어주면서 다시 농구 일을 권유했던 게 정 원장의 마음을 농구교실 쪽으로 움직였다.


“2013년에 처음 4명의 아이들을 모아 농구교실을 시작했다. 그때는 제대로 된 체육관도 없어 흙바닥에서 농구를 가르쳤다. 그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얻는 대리만족도 커지는 걸 느꼈다.”


2014년에 체육관을 대관한 그는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이란 이름을 걸고 유소년 농구 지도자로 나섰다. 그가 진주에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교실 문을 연 지도 8년째가 됐다.


정 원장은 “지금까지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을 이끌어 온 건 아이들이 나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은 없었을 거라고 본다. 그만큼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의 주인공은 예전에도 우리 아이들이었고, 앞으로도 아이들일 것이다”고 유독 제자들을 강조했다.

#안 보이는 벽을 넘기까지...
2014년 본격적으로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제법 아이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체육관을 찾지 않았다. 그 시절만 해도 진주에서는 돈을 주고 농구를 배워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 이름을 쓰면서 30명 정도 아이들이 모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아이들이 더 모이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진주에는 농구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돈 내고 농구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깔리지 않았을 때였다. 황무지에 서 있는 느낌도 들었다(웃음). 그래도 버티기로 했다. 어느 날은 1명만 수업에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조금씩 부모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2년 전쯤부터는 진주 지역 맘 카페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우리 농구교실에 관한 좋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4년 넘게 따로 홍보를 안 하고, 우리 농구교실에 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복이다’라는 자신감과 진심을 갖고 임했는데 정말 다행인 것 같다.”


그렇게 입소문을 탄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은 코로나19 이전 30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을 만큼 진주를 대표하는 가장 큰 규모의 농구교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갈 순 없었다.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해 2개월 정도 문을 닫았던 것 같다. 수도권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피해가 있었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매일 체육관을 소독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다. 다행히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100여 명 정도의 아이들이 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몇 년에 걸쳐 진주에 농구에 대한 씨앗을 뿌렸던 만큼 이 정도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봉영 농구교실의 기본은 인성과 예의
정봉영 원장의 교육 철학은 확고했다. 아직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성과 예의, 책임감을 농구코트에서 배우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마냥 농구공을 갖고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 중에는 처음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에 오면 적응에 애를 먹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원장은 자신의 교육 철학을 고수했고, 지금은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 사이에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에 가면 농구 외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낫다고 한다.


“아이들을 돈벌이로만 생각했으면 공 하나 던져주고 재미있게 놀라고 하면서 기분을 맞춰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돈을 벌 생각도, 농구를 알려줄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농구를 좋아하고, 평생 주위에 농구를 두고 살았으면 바람이 컸다. 그래서 근시안적인 재미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농구를 통해 많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정봉영 농구교실을 방문했을 때 운동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게 진지했고, 깍듯이 예의를 갖춰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봉영 농구교실의 교육철학은 인성과 예의가 최우선이다. 정 원장은 이같은 철학을 내세우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농구 실력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자주 얘기해준다. 그보다는 농구코트에서 벌어지는 친구들과의 단체 생활을 통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느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 자신의 인성을 잘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겪어야 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이곳에서 먼저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농구코트내 많은 것이 사회생활과 닮아 있어 아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지금 나는 누구보다 농구를 잘한다, 못한다’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다. 지금은 농구를 많이 하고, 적게 하는 차이 정도이지 그게 실력이 아니라고 교육하고 있다. 남과 비교하기보단 자기 자신의 노력을 우선으로 생각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1명이라도 더 농구 좋아하는 학생이 생겼으면
정봉영 원장은 인터뷰 내내 농구교실 뿐만 아니라 진주의 농구 발전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농구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었다. 농구교실과 진주의 농구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인 정 원장에게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 합류는 무척이나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기인 건 맞지만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의 콘텐츠를 이야기 들었을 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친한 농구교실 원장님들께도 물어봤는데 모두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농구교실 뿐만 아니라 진주의 농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은 모르겠지만 지방의 농구교실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어도 조명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 선수로의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도 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농구교실 학생들에게는 이런 아쉬움을 최대한 덜어주고, 굳이 엘리트 선수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돼서도 꾸준히 농구를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에 점프볼 유소년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전국에 진주의 농구를 알려 진주 농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정 원장은 예전과 달리 이제는 학교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모여 농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진행하는 수업 방식을 통해 진주 지역 학생 중 1명이라도 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정 원장은 기초를 강조하면서도 아이들이 농구에 대한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요즘 들어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나를 많이 믿어주고 있다는 걸 크게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한해였지만 2021년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볼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이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농구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 여기서 배운 농구를 바탕으로 학교생활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좋은 사회 구성원이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앞으로 더 꾸준하게 노력할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농구를 쉽게 받아들이고, 평생 농구를 곁에 둘 수 있도록 좋은 지도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INFORMATION**
진주 JBY SPORTS 정봉영 농구교실
주소 : 경남 진주시 내동면 신율리 457번지
TEL : 055-752-1219

 

#사진_김지용 기자

점프볼 / 김지용 기자 mcdas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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