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기호로 읽는 농구, 그 괴로움에 대하여

허진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2-21 13: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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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잠시 생각했다. 가끔 잠실에 가서 프로야구와 프로농구 경기를 봐야지.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학은 바쁜 곳이고, 내가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더구나 코로나19 때문에 달라진 환경은 나로 하여금 격리를 강요했다. 올해 들어 강의는 모두 ‘비대면’으로 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의 얼굴을 대부분 보지 못한 채 두 학기를 보냈다. 나는 겨울이 되면서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운전해 출근하고 있다. 출근할 때는 집을 나와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학교에 주차하고 연구실에 들어간다. 퇴근할 때는 정확히 그 반대다. 연말 모임은 모두 취소되었고, 얼마 전 아들의 생일 모임도 집에 모여서 했다. 그러니 경기장에 가서 프로야구나 프로농구를 보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몇 경기를 보았다. 프로농구도 일주일에 한두 경기씩 보고 있다. 카메라를 여러 대 사용해서 만드는 중계 프로그램은 품질이 퍽 좋다. 크고 선명한 텔레비전을 이용해 경기의 흐름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세세히 살필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불만도 있다. 캐스터나 해설자가 쏟아내는 정보가 자주 귀에 거슬린다. 작전시간에 벤치를 기웃거리는 카메라와 마이크도 치웠으면 좋겠다. 현장기자로 일할 때, 나는 방송 카메라로 작전 판을 비춰서는 안 되며 감독의 음성도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다. 어찌됐든 최근의 중계는 시각적인 면에서 매우 세련됐다. 휴일 오후에 거실에서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중계를 시청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프로농구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텔레비전으로 농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심하게 불편해졌다. 내가 화면 속을 누비는 선수들을 각각의 기호(記號)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칼이 가닥가닥 일어서서 두피와 직각을 이루었다. 마로니에의 뿌리를 보고 구역질을 하는 로캉댕이 된 기분이었다. 사르트르가 쓴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댕이 구역질을 느낀 것은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서였다. 눈앞에 보이는 마로니에 나무뿌리를 보면서,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는 서로 아무 관계도 없이 존재한다는 부조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김희보, 2000.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그 날 나는 왜 농구 중계를 보면서 영화 매트릭스의 시그니처 화면처럼 온갖 디지털 부호가 흘러내리는 광경에 진저리쳤을까.

나는 농구가 인간의 행위이고 유대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오래전 농구전문 잡지(그때는 아직 『점프볼』이 창간되기 전이었다)에 기고한 칼럼에 “농구를 만든 것은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간의 꿈”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날 내가 텔레비전을 보며 느낀 감정은 간단한 사실 하나로부터 시작되었을 뿐이다. 나는 한 선수도 알지 못한 채 화학반응을 지켜보듯 코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허재’, ‘강동희’, ‘문경은’, ‘서장훈’, ‘김유택’이 아니라 1, 2, 3, 4, 5번이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 속도는 대단히 느려서 지루할 정도였다. 운동 속도와 어울리지 않는 중계진의 고함소리는 두통을 불렀다.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농구코트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농구 기사를 쓴 게 언제였던가. 중앙일보의 기자로 일하면서 2006년에 추승균을 인터뷰한 기사가 보인다. 그해에 중앙SUNDAY를 창간하기 위한 연구팀에 들어가면서 현장을 떠났다. 물론 그 뒤로도 경기장에 나갔고, 유재학이나 최희암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경기장에 가서 리그를 지켜보고 선수들을 확인하는 일은 2006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모비스의 양동근이 은퇴했을 때 나는 내가 현역 기자로서 인터뷰하고 대화한 마지막 선수가 코트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직 양희종, 기승호, 이정현 같은 선수가 있지만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들을 일대일로 인터뷰한 적이 없다. 호흡을 섞은 선수가 코트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이산(離散)의 감정을 실감하게 만든다. 공허한 시선으로 농구를 바라보고 산술적으로 경기를 읽어나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마로니에의 뿌리를 접한 로캉댕을 체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감정의 노동이며 마음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사실에 충실하면, 사실 글 솜씨나 표현능력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기자로서 농구경기를 볼 때, 나는 자주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다. 이러한 태도는 기자로서 중대한 결함이었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려는 노력이 감정이입으로 말미암았다. 가끔은 경기와 팀, 감독과 선수의 현실이 나의 일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은 보다 뜨겁게 경기의 흐름 한가운데로 나를 초대하였다. 나는 도도한 흐름에 섞여들어 때로는 의도했고 때로는 그렇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사를 적어나가곤 했던 것이다. 이런 체험으로부터 격리돼버린 나는 농구여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상태로 감각과 정서의 함몰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구를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특히 나라는 개인은 농구를 그러한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몇 주간 고민한 다음 『점프볼』의 권부원 편집인에게 전화를 했다. 권 편집인은 경향신문에서 필명을 떨친 뛰어난 농구기자였고, 무엇보다 나와 경험을 공유한 동료이며 마음 맞는 친구다. 나는 그에게 자주는 아니고 가끔 『점프볼』에 농구와 관련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OK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나는 얼른 글을 쓰지 않고 뭉갰다.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밀렸고 논문과 연구용역, 저서의 마감이 겹쳤다. 『점프볼』에서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이 잡지에 글을 싣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인연이 겹쳐 있고, 구성원들과 특별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권부원과 존경하는 선배 박진환 대표가 지켜온 농구전문매체가 아닌가.

지난 2002~2003년, 나는 중앙일보의 지원을 받아 독일에 공부하러 갔다. 쾰른에서 공부하고 레버쿠젠에 가서 운동했다. 특히 바이어(Bayer) 소속의 분데스리가 클럽 자이언츠에서 농구 일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농구팀의 코치가 어떤 일을 하며, 농구팀은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어떻게 호흡하고 움직여나가는지, 구단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학습했다. 그때 배운 것들이 내 머릿속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점프볼』에 글을 싣는다는 의무와 책임, 그리고 특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생생히 보고 행동하며 익히고 새긴 경험을 『점프볼』에 실어 보냈다. 박진환 대표가 부족한 글을 받아 실어 주었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

나는 ‘옛날기자’다. 현역일 때도 뛰어난 기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쓸 능력이 없다. 그저 진지한 태도로 농구 경기를 들여다보겠다는 것. 선수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우고 기억하면서 이 아름다운 운동에 대한 사랑을 지켜가려는 욕심, 그것뿐이다. 이번 겨울에 몇 꼭지나 글을 쓸지 분명하지 않다. 그저 정성을 다해 경기를 관찰하고 진심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기자에게는 마치 접신(接神)과도 같은, 감정의 이입과 공감의 영역을 넘나드는 경험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로지 그러한 쾌감을 누리고자 노트북을 열지는 않겠다. 나는 여전히 농구를, 이 운동에 속한 묘든 요소들을 사랑한다.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환경, 시간과 세월 그 모든 것을. 가능하다면 ‘사랑’에 대해 쓰고자 노력하겠다.

◇필자소개: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스포츠기자로 일했다. 『농구코트의 젊은 영웅들』 『길거리농구 핸드북』 『아메리칸 바스켓볼』 『우리 아버지 시대의 마이클 조던, 득점기계 신동파』 『맘보 김인건』 등 농구 관련 서적을 많이 썼다. 현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교양교직과정부 교수 겸 미디어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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