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울 SK ‘큰 형님’ 문경은 감독, 새시즌 목표는 정상에 서는 것

강현지 기자 / 기사승인 : 2020-08-12 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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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강현지 기자] ‘람보 슈터’라고 들어봤는가. 서울 SK 문경은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이다. 2011년 SK 감독대행으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SK 나이츠라는 팀의 색깔을 만들어낸 그는 90년대 한국농구에서 환호를 가장 많이 받던 스타 슈터였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 정규리그 1위,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며 ‘스타 플레이어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세간의 편견을 무너뜨렸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그러나 역경 뒤에는 늘 보란 듯 다시 상위권에 팀을 올려놓으며 저력을 보였다. 공동 1위로 시즌을 마친 2019-2020시즌이 그랬다. 2020-2021시즌 준비가 한창인 현재, 새 시즌에는 단독 1위로서 당당히 정상에 서겠다는 문경은 감독을 점프볼 취재진이 만나보았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람보 슈터가 흘린 피와 땀
3점슛에 있어 ‘람보 슈터’는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정규리그에서 성공시킨 1,669개의 3점슛 기록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독보적인 기록이다. 흔히 말하듯 ‘발만 맞으면’ 언제든 솟구쳐 올라 정확히 3점슛을 꽂아 넣고 포효하던 문경은. 그를 ‘람보 슈터’로 만들어준 3점슛의 비결이 궁금했다.  

 


민준구. 광신상고를 졸업했다. 대부분 광신상고 출신들이 경희대로 진학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연세대로 스카우트 된 배경이 궁금하다.
광신중과 광신상고는 연계학교다. 교문을 같이 쓰는데, 보통 학교에서는 중학교가 2시, 고등학교가 4시에 훈련한다. 그런데 그때 우린 다 같이 연습을 했다. 한 학교를 6년을 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 다음 코스가 경희대다. 경희대는 매년 좋은 선수들을 데려갈 때면 그 다음해 나오는 선수들까지도 받아주곤 했다. 당시 광신상고가 신림동으로 이사를 간다고 학교를 부수는 바람에 훈련할 장소가 없어서 경희대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경희대를 갈 거라 생각했다. 당시 최부영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고, 나도 잘 챙겨주셨다. 연세대, 고려대 진학을 고민 안 한 건 아니다. 그러다 중앙대에 가고 싶다고 학교에 이야기를 했는데, “연세대, 고려대 중 어디를 가고싶냐”는 물으시길래 연세대라고 했다. 내 동기들이 3명이 있었다. 연세대는 3명 모두, 고려대는 2명을 함께 받아준다고 했다. 또 연세대 체육관을 가보면 알겠지만, 연습 경기를 하면 학생들이 왔다 갔다하고, 들어가는 입구에 잔디도 있고, 대학교 분위기가 나지 않나. 조건도 좋고, 숙소 생활도 해서 결국 연세대행을 결정했다.

민준구. 그때 연세대가 아닌 경희대를 갔다면 어땠을까.
더 웃긴 건 이후다. 대학교 1학년 때 청소년 대표팀이 소집이 되었는데, 조성원, 봉하민, 김승기, 이상민, 전희철, 서장훈 등과 2~3년을 함께했다. 그때 감독님이 최부영 감독님이셨는데, 여전히 잘 해주셨다(웃음). 내 밑에 후배가 경희대에 간다고 이야기가 됐나 보더라. 그러다가 결국 또 고려대에 가긴 했지만. 하하. 내가 경희대를 갔다면 장창곤, 최명도, 김현국, 이창수에 나까지…. 정말 강해졌을 것이다. 내가 가면 3번 자리까지 보강되었을 테니 더 좋았을 것 같다. 연고대는 무슨…. 하하.

김용호. 삼성전자에 입단할 때도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내가?’ 이런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현대에 가고 싶다고 그랬다. 상민이도 그랬고. 그런데 내가 삼성으로 결정이 되니, 상민이가 현대가 됐다. 지그재그로 삼성과 현대를 갔는데, 내가 현대에 갔다면 상민이가 삼성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난 삼성을 잘 간 것 같다. 현대는 분위기가 더 자유로웠는데, 타이트한 연세대에서 생활하다 현대를 갔다면 좋은 선수가 못 됐을 것 같다. 삼성은 지방 선수들이많았고, 당시 전창진 감독님이 주무였다. 음주를 할 수 있지만, 밤 11시쯤이면 들어와야 했고, 제약이 있었다. ‘삼성 고등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내가가서 바꿔놓긴 했다(웃음). 숙소 앞 주차장에 차가 3대가 있다. 진효준 감독님, 김인건 감독님 차가 있고, 돌아가신 (김)현준이 형의 차가 있었다. 나머지는 뒤에 반대쪽에 차를 돌려 세워놓더라. 난 그런 게 어딨어 하면서 현준이 형 차 뒤에 세우고 했다. ‘누구야’라고 하면 ‘저요’하고 내가 손을 들었는데 조용히 넘어가주곤 했다. 삼성의 그 무시무시한 형들이 희한하게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다.

강현지. 선수 문경은 하면 독보적인 것이 3점슛이다. 문경은에게 3점슛이란?
날 만들어준 숫자다. 나한테는 농구의 재미였다. 어떻게 편안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내 슛 폼으로 던질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다. 성공하고 나면 희열이 있었다. 속공 노마크 상황에서 3점슛을 쏘는 것은 재미가 없다. 그건 기본이다. 4명이 정말 열심히 수비를 해서 얻어낸 공격권을 날릴 수도 있다. 그럼 다시 허무하게 백코트를 해야 하지 않나. 그걸 줄이려고 10개 중에 9개를 넣도록 연습했다. 선수들에게 ‘문경은은 슛을 던져도 된다’고 납득을 시키는 게 중요했다. 3점슛을 막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안 들어갈 수도 있지’라고 생각되게끔 내가 연습하는 게 중요했다. 그 정도로 연습을 했다. 하프코트를 넘어오면 전문 수비수가 붙었다. 그 선수를 스크린이든, 드리블이든 떨쳐내고 편안하게 3점슛을 던질 때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민준구. 사실 선수 문경은의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센터에서 슈터로 포지션 변경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월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을 텐데.
초등학교 땐 포지션이 없지 않나. 드리블 하고, 슛 날라 가면 이리저리 뛰고 하는데, 중학교 1학년 때 4번(파워포워드)을 봤다. 4번으로 뛰다가 내 포지션이 잡힌 건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였다. 3점슛 라인이 생겨서 슛을 던지게 됐다. 그때 내가 신장이 178~180cm정도 됐다. 그 당시 센터들이 182cm 정도였는데, 다행히 우리 팀에는 센터들이 있어서 내가 골밑 대신 외곽에 있을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도 4번을 계속 봤을 테고, 전희철처럼 농구를 했을 수도 있다. 포지션만 슈터였고, 내외곽을 넘나들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덩크슛이 됐고, 신장이 컸다. 슛 연습은 정말 많이 했다. 연세대 시절에는 (오전)11시 40분쯤이면 다섯 군데 지점을 두고 3점슛을 20개씩 던졌다. 100개를 성공시키면 끝났는데, 19개째에 안 들어가면 다시 해야 한다. 무빙슛 300개도 던졌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처음에 적응이 안 되면 어지럽다. 스텝도 안 맞고, 슛도 제대로 안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체격은 대학교 2학년 때 좋아졌던 것 같다. 그때 대표팀에 뽑혀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는데,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 관장님이 계셨다. 상체가 왜 그렇게 말랐냐며 당시 김세진, 마낙길 등 배구선수들과 함께 특별 훈련을 시키셨다. 벤치 프레스, 스쿼트를 했는데, 배구 선수들과 함께 점프 스쿼트를 했다. 그러고 나니 덩크슛도 자유자재로 됐다. 그전까지는 한 손으로 하거나, 러닝점프로 해서 두 손으로 마무리 하는 정도였다. 점프는 정말 스쿼트 훈련이 최고다. 나중에는 그 훈련들을 안 하다 보니 덩크슛도 한 손으로 겨우 할 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김용호. 정규리그 통산 1만 득점(9,347점)을 앞두고 은퇴했다. 아쉽지는 않나.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 수치상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34살부터 40살 은퇴할 때까지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점점 포기가 빨라졌다. 서른 중후반이 됐을 땐 만 득점은 힘들 것 같아 3점슛 타이틀이라도 가지고 은퇴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1만 득점보다 엔트리에 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3점슛 1,600개 기록 달성에 2~3개를 남겨두고 엔트리에 한동안 못 올랐었다. 지금은 선수단 엔트리에 들어간 선수들만 벤치에 앉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관중들은 모르지 않나. 화면에 잡히긴 했지만, 엔트리에 들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래서 사이클을 타는 날이 많았고…. 홈에서 정말 기록 달성을 하고 싶었는데, 사실 그 때 내가 뛰려면 선수 한 명을 빼야 했다. 외국 선수 두 명에, 방성윤, 이병석, 김기만까지 있었다. 그땐 서운했지만, 감독이 되어보니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되더라. 그때 전(희철)코치가 김진 감독님께 살짝 이야기를 했었다. KT&G와의 경기에서 주희정에게 맨투맨 수비를 하면 뚫리니 지역 방어를 하자고 했다. 2대2를 못하게. 경은이 형이 수비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경기를 운영해보자고 귀띔해줘서, 당시 경기에서 선발로 나갔다. 난 기록 달성에 성공했고, 팀도 이겼다. 하지만 기록 달성을 하고는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총 3점슛을 1,669개 성공시켰으니 이후로도 많이 넣은 거다. 아, 신선우 감독님이 오셔서 막판에 경기 출전이 많았다. 12월에 오셨는데, 6강 진출이 힘들어져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신나게 뛰어보라고 하셨다. 그때 25분 정도 뛰면서 마무리했던 것 같다.
 

지금의 문경은 감독을 만든 아픈 시절
문경은 감독은 학생이었을 때부터 이미 충분한 인정을 받은 선수였다. 스카우트 전쟁을 펼쳐야할 정도로 가치가 높았던 그가 삼성전자에 입단할 당시, SK맨이 될 거란 상상을 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또, 은퇴하는 날까지 팀의 베스트 멤버일 것만 같았던 람보 슈터가 말년에는 벤치에서 출전 기회를 기다리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하지만 문경은 감독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감독으로서 선수단을 지휘하는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민준구. 영원한 삼성맨일 줄 알았는데, 두 번의 이적이 있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너무 좋은 회사에서 좋은 분들을 만났고, 삼성을 거쳤다는 것에 자부심도 있다. 8년을 있었다. 하지만 현준이 형이 없어지니 기댈 곳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었다. 주희정이 MVP가 되고, 내가 삐쳐서 이적했다는 소문문도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주희정을 중심으로 강혁, 김희선, 이규섭까지 선수 구성이 맞아 들어갔다. 난 경기에 뛰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마침 유재학 감독님이 날 원하시기도 했다. 2000-2001시즌 우승 여행으로 하와이를 갔는데, 그때 김동광 감독님께 이적 시켜 주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서 훈련을 안 하겠다고 땡깡을 부리기도 했다. 매일 밤 감독님 방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께 2대2도 배우고 좋았다’라고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감독님은 ‘그러니까 왜 가려고 하냐~’라고 하셨다. ‘일단 방에 가~’하시면 다음 날 또 찾아갔다. 하와이에서 놀아야 했는데, 매일 밤 감독님을 찾아갔다. 결국 이적을 시켜주셨다(웃음).

강현지. SK로 이적할 당시 이렇게 오랫동안 SK의 일원으로 남을 거라 예상했나.
36살 때 전희철 코치가 전화가 왔었다. 선수 구성에 제외가 될 것 같다고 하더라. ‘알았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감독님께서도 은퇴 이야기를 하셨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장(지탁)국장한테 전화를 했다. 집 앞으로 오라고 해서 갔는데, 은퇴 이야기를 꺼내며 다른 팀을 알아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며칠 뒤에 전화가 왔다. 사무실로 오라고. 그리고 2년 계약을 했던 것 같다. 그게 38살인가 그랬다.

민준구. 본인을 미래의 SK로 점찍어 둔 것이 아닐까.
SK 빅스에 계셨던 허남철 단장님이 계셨는데, 그 단장님이 왜 SK가 명문팀이 안 되는 줄 아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주인 의식이 없고, 우승을 위해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SK를 잘 알지 못하는 스타 감독들이 있으니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고 말씀하셨다. 프랜차이즈가 필요한데, 문경은과 전희철이 레전드이니 키워보라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이후 SK출신은퇴 선수들은 다 함께 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전력분석, 매니저 등까지 다 SK 출신들이지 않나.

김용호. 대부분의 시절을 주전으로만 뛰어오다가 처음 식스맨이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벤치에서 시작하는 게 어색했을 것 같은데.
창피한 건 있었다. 홈 경기장이 인천(전자랜드)에서 잠실(SK)로 옮겨졌는데, 지인들에게 경기를 보라고 하면 경기 후에는 ‘내가 너 자전거 타는 거 보려고 오라고 했냐’라는 말도 들었다. 근데 은퇴하고 1년 반 전력분석을 하고 했던 것들이 지금 지도자생활 10년을 하는데 밑거름이 됐던 것 같다. 내가 순탄하게 막판 10분~15분을 뛰고 은퇴를 했더라면 내가 선수단을 통솔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을 거다. 그럼 분명 내 이야기는 경기 출전하는 5~6명에게만 먹혔을 거다. 안 뛰는 선수들은 내가 컨트롤을 못했을 것이다. 주희정도 그랬다. 희정이가 SK에 왔을 때 20분을 뛰고 싶어했다. 당시 우리 팀은 김선형을 키워야 했기에 어려웠다. 희정이에게 ‘더 올라가는 것만이 잘 해보이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수평만 유지해도 사람들은 그 선수의 실력과 수고를 다 알아준다. 후배들과 발을 맞춰 간다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해줬고, 희정이도 내 의도를 이해해주었다. 덕분에 희정이도 선수단과 잘 어우러졌다. 이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선수들은 내 말에 공감을 못했을 거다. 종종 웃으면서 ‘나도 자전거 탔어~’라고 말한다.

강현지. 감독으로서 첫 경기 때 땀을 뻘뻘 흘리고 긴장했던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기억이 나는지
KCC에게 26점차로 대패했는데, 어떻게 기억을 못하겠나(웃음). 긴장을 하지 말고, 선수들한테 너무 지적하지 말자. 타임아웃 타이밍을 보자고 생각하면서 경기에 나섰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깨지다 보니 손은 어떻게 할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날 감독 시킨 걸 후회 하겠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 부분이 후회가 된다. 박빙의 경기에서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하고, 집중하다 보니 경기의 재미를 안 것 같다.

김용호. 감독 생활을 돌아봤을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전희철 코치가 아닐까 한다. 본인에게 전희철은 어떤 사람인가.
동생이다. 수석 코치의 역할은 두 번째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게 첫 번째다. 처음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식사 자리에 갔을 때 보통 코치들이 감독들을 잘 챙기지 않나. 근데 전 코치가 처음에 그런 걸 잘 못해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난 대우받고 싶지도 않았다. 오해를 받으면서 전 코치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게는 코치이기 이전에 동생이다. 내 속마음, 집안일까지 서로 다 아는 사이다.

김용호. SK는 코칭스태프 사이가 돈독하기로 소문났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라 보는가.
형, 동생 사이가 먼저라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또 두 번째로는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SK에서 은퇴를 했지 않나. 성격, 스타일을 다 잘 알고 있다. 공과사 구분도 확실하다. 올스타 브레이크 무렵에 전력분석 파트까지 포함해 모든 코치들에게 숙제를 내준다. 숨겨 놓은 패턴들을 꺼내 보라고, 후반기에 써보자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연습을 할 때는 그 패턴을 만든 사람이 직접 알려준다. 나도 내가 준비한 게 안 풀리면 뭐가 문제인지 코치들에게 물어보고 빨리 바꾸려고 한다. 

 

강현지. 애런 헤인즈의 최장수 기록은 SK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헤인즈를 택했을 때 이 선수가 한국에서 이처럼 오래 뛸 것이라 생각했는지
솔직히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교체로 매 번 보겠다고 생각은 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헤인즈 수비 안 하잖아, 몸싸움 안 하잖아라고들 평가했는데, 반대로 빅맨들이 헤인즈를 못 쫓아오게 하면 되지 않나. 빅맨 수비를 하는 건 감독인 내 몫이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가리면 됐다. 헤인즈가 있었기에 김선형도 컸고, 김민수도 컸다. 그래서 헤인즈에게 고맙다. 국내선수들을 업그레이드 시켜줬다. 선형이도 헤인즈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김용호. 경기를 치르다보면 화나는 상황도 많을 텐데 퇴장도 없었고, 벤치 테크니컬은 단 두 번뿐이다. 본인만의 멘탈 관리법이 있다면
흥분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 상황도 기억이 난다. 아마 선수가 흥분을 해서 내가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헤인즈였을 거다. 그리고 한 번은 감독이 되고나서 초창기 였을텐데, 심판이 내게 반말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김용호. 챔피언결정전에서 마주했던 유재학, 이상범 감독과는 감독 이전부터 남다른 관계였다. 챔피언결정전 시리즈를 치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그리고 두 시리즈를 치르면서 어떤 것을 배웠나.
현대모비스와의 첫 챔피언결정전(2012-2013시즌)은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 해보면 내가 너무 안도를 한 것 같기도 하다. 홈에서 한 번은 이길 수 있었는데, 방심과 안심을 했던 시기다. 첫 해에 챔피언결정전을 갔으면 잘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님은 헤인즈는 왼쪽, 선형이는 오른쪽 (막고), (최)부경이와 (박)상오는 내주라는 등 준비를 디테일하게 해오셨다. 그러니 이길 수가 없었다. DB와 했던 두 번째 챔피언결정전(2017-2018시즌)은 그때 기억에 대한 보약이었다. 원주에서 2패를 하고 서울을 왔는데도 진다는 생각이 0.1%도 안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홈에 가면 선수들이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수들도 잘 하겠다고 했다. 2대2를 만드는 모습을 봤는데, 선수들이 뭉치는 것이 보이더라.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현지. SK에서 성공한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들을 떠나보낼 때의 마음은 어떤가.
마음이 아프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아서 늘 선수들이 잘 되게끔 키워주고 싶었다. 특히 정준원의 경우는 마음이 아팠다. 선수들과도 친했고, 나도 예뻐했던 선수다. 또 트라이아웃 때 정말 잘했다. 그때 우린 방성윤 자리가 고민이었는데, 빠르고, 슛도 좋았다. 결국 타 팀으로 보내게 됐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이번 비시즌에는 우동현을 보냈다. 1번으로 바꾸려고 도전을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장점인 슛도 잘 못 던지게 되더라. 하던 것도 잊어버렸다. 결국 KGC인삼공사로 보내기로 결정했는데, 다행히 좋은 가드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잘 컸으면 좋겠다.

강현지. 코트에 나갈 때 입는 정장이나 넥타이 등은 본인이 고르는 편인가?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신경을 많이 쓴다(웃음). 팬들도 팬들이지만, 선수들이 벤치를 봤을 때 우중충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다. 선수들이 벤치를 봤을 때 밝고, 또 멋지다고 생각했으면좋겠다. (신경을 쓰면)팬들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시더라. 하하.

문경은 감독과 SK는 다시 정상을 바라본다
앞서 말했듯 SK는 지난 시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조기 종료로 인해 정규리그 공동 1위라는 아쉬움 섞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가오는 시즌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매우 열정적이었다. 국내선수 등록일 기준으로 역대 최다 18명의 선수단을 구성한 SK는 외국선수도 검증된 경력자(자밀 워니, 닉미네라스)를 선택하면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남을 수 있었다. 물론, 타 팀도 변화가 많았기에 새로운 대비를 해야겠지만, 문경은 감독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김용호. 지난 시즌 리그 득점 2, 3위를 차지한 워니와 미네라스를 동시에 영입했다. 이 선수들과 내고 싶은 결과물이 있다면.
복잡하다. 첫 번째는 자밀 워니가 에이스인 건 분명하다. 또 미네라스를 단순히 숨고르기를 위한 선수로 투입시키지는 않을 거다. 이 부분을 국내 선수들에게 인식 시키는 게 중요하다. 다른 컬러가 되는 거다. 워니가 뛸 때는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고, 미네라스가 뛸 때는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게 될 거다. 옵션이 더 많아지는 셈이다. 지난 시즌 골밑 수비를 하는 과정에서 미네라스가 버거워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아예 외곽으로 빼면 어떨까 한다. 우린 민수, 부경이,(송)창무, (김)형빈이, (최)준용이 등 2m선수들이 많다. 장점을 살려주면서 단점을 가려주겠다. 말도 안 되는 라인업이긴 하지만, 장신 라인업도 상상해봤다. 최준용-안영준-미네라스-최부경-송창무를 쓰면서 미스매치를 상황을 만들고, 지역방어를 섰을 땐 미네라스가 3점슛을 던지면 되지 않나. 앞선에서 최준용이 막는다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준용이가 2대2가 되지 않나. 아직까지 상상만 하고 있다(웃음).

민준구. 전체적으로 외국선수 레벨이 많이 올라갔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두 선수를 뽑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뒷돈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감독이라면 40만불로 미네라스를 데려오겠나? 하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외국선수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졌는데, 좋은 차가 길들여지기 전에 우리가 해치워보겠다(웃음). 

 

강현지. 유재학 & 양동근(현대모비스), 위성우 & 박혜진(우리은행)처럼 문경은 & 김선형도 빼놓을 수 없는 조합이 되어가고 있다. 문경은 감독에게 김선형은 어떤 의미인가.
가족같고, 동생이다. 한결같다. 아직까지도 내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본인 때문에 경기에 진 날이면 체육관으로 와서 저녁 먹고 밤 10시 반쯤 체육관에 나온다. 또 비시즌 서킷 트레이닝을 하면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다. 죽기 살기로 하는데, 안 예뻐할 수가 없다.

민준구. 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문경은 감독이 지금 현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문경은의 평균 득점은 어느 정도일까.
15점 이상?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닌가). 노마크 레이업은 3개씩은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비 제치고, 패스 받아서 레이업을 한다면 평균 두 자리 득점은 하지 않을까.

강현지. 최준용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정도인가.
이제는 정리가 많이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첫 시즌에 엉뚱한 모습이 100개가 나왔다면 지난 시즌에는 50개, 올 시즌에는 30개로 줄어들 거다. 비시즌마다 갖는 선수단 미팅이 있는데, 올해 준용이와 이야기하면서 고쳐야 할 점, 해야 할일, 목표 등을 적어 면담을 했다. 목표에 세 글자를 적더라. ‘MVP’라고. 그러면서 MVP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팬, 언론에게 인정받는 건 다음이다. 가깝게는 동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힘들거나 어려운 걸 안하려고 하면서 경기 때만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 팀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용이에게 ‘올 시즌 김선형과 투톱으로 올라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선형이의 나이가 되면 준용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 아닌가. 무거운 짐을 줬는데, 그러면서 좀 더 가지치기가 될 것이라 본다.

민준구. 이현석, 최원혁, 최성원 등이 꽃을 피웠다. 2020-2021시즌에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선수가 있는지
형빈이는 아직 이르다. 1군에 올려서 좀 더 보려고 한다. 8월 한 달 동안 프로 팀과의 연습경기에 많이 출전시킬 거다. 기회를 많이 줄 거다. 선형이 부경이, 민수와 같이 훈련을 많이 시키고 있다.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려면 2~3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올 시즌에는 배병준과 양우섭이 지난 시즌 전태풍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한다. 두 선수가 수비가 좋다. 때로는 선형이가 2번으로 뛸 수도 있다.

강현지. 올 시즌에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그리고 또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건강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고 싶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 무관중 경기를 치렀을 때 팬들의 함성소리가 그리웠다. 지난 시즌 5연승을 하면서 공동 1위로 마무리가 됐는데, 선수들이 그 분위기를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했으면 한다. 1라운드 막판 순위가 끝까지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강팀이라고 평가를 해주고 있으니 정상 도전도 해보려고 한다. 

 

# 인터뷰 진행_ 강현지, 민준구, 김용호 기자

# 사진_ 유용우, 윤희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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