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유희형이 나의 삶 나의 농구⓾ 한국농구의 천적 필리핀

점프볼 기자 / 기사승인 : 2021-08-01 09: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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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ABC)2년마다 개최된다. 7회 대회가 197312,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일본에서 열렸던 전 대회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한국 농구의 자존심을 찾는 중요한 대회였다. 홈팀인 필리핀과 결승전을 펼쳤으나 패하여 2위를 했다. 농구의 나라에서 필리핀을 꺾는다는 것은 히말라야 정복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발을 구르고 고함을 치는 관중의 함성에 심판 호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광적인 응원에 기가 죽어 제대로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심판도 넋이 나가 덩달아 춤을 춘다. 웬만한 파울은 불지도 않는다.

 

남자농구자원외교사절단으로 활약

 

일정상 악재도 있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남자농구대표팀이 석유확보를 위한 자원외교사절단으로 이란을 방문해야 했다. ABC 대회 전, 이란에 가서 친선경기를 하고 필리핀으로 가라는 것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란에 도착해서 이란 대표팀과 3차례 경기를 치렀다. 국민은행 여자농구팀도 동행했다. 2차례 경기를 이긴 후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 들어가려는데 감독의 심기가 언짢아 보였다. 알고 보니 져 주라는 것이다. 고의 패배를 하라는 것인데 어이가 없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첫 석유파동이 7310월에 일어났다. 원유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가격뿐만 아니라 석유 감산으로 비산유국은 원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이란의 비위를 맞춰주라고 했다. 열심히 뛸 이유가 없었다.

3차전을 패한 후 필리핀으로 향했다. 유서 깊은 마닐라 호텔에 묵었다. 그 호텔은 2차대전 때 미군의 지휘본부로 맥아더 장군이 묶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복 경찰 두 명이 배치되었다. 체격이 좋고 농구를 좋아하는 형사인데, 권총을 보여주며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루는 버스 안에서 볼펜이 필요하다고 하자, 버스를 세우고 내려가 노점상 볼펜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노점상은 말도 못 하고 권총 찬 사람만 바라보았다. 무법자였다. 필리핀의 장기 집권자인 마르코스 대통령이 우리나라 선수단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했다. 농구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유명했던 신동파 선수를 만나보기 위해 한국팀만 초대한 것 같았다. 마르코스는 21년 간(1965~1986) 대통령으로 철권통치를 하다가 민주화운동으로 86년 물러났다.

마닐라 호텔 옆이 리잘 공원이다. 마닐라 시민의 휴식처이며 데이트 장소인데 유독 동성연애자가 많다. 동행했던 기자 두 분이 체험했다, 공원 산책 중, 긴 머리 차림의 늘씬한 미녀가 휘파람을 불며 유혹하자 함께 술집까지 가게 되었다. 거나하게 술을 마신 후 일행 중 한 명이 화장실을 갔는데, 그곳에서 선 채로 소변보는 여자 일행을 목격한 것이다. 너무 빼어난 미인이어서 남자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고, 충격이 컸다고 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줄행랑을 쳤는데, 그들은 매일 호텔에 나타나 만나고 싶다며 선물을 가지고 와서 미스터 X, 아이 러브 유를 외쳐댔다. 물론 당사자들은 끝내 만나 주지 않았다.

마닐라 호텔은 2차대전 이전에 지어진 낡고 오래된 건물이어서 문제가 많았다. 결국, 3일간 정전이 되었다. 계단을 걸어서 다녀야 했지만, 무엇보다 화장실 때문에 큰 불편을 겪었다. 물을 퍼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필리핀과 결승 앞두고 입원한 신동파

대회에 돌입했다. 대표팀은 2년 전 허리 통증 때문에 사퇴했던 김영기 감독을 다시 불러들였다. 갓 은퇴한 이인표씨가 코치를 맡았다. 4년 전 아시아를 제패할 때 주전 선수 가운데 나와 신동파만 남았다. 김인건, 이인표씨가 은퇴했고, 최종규, 박한 등이 건재했다. 신인으로 고려대 재학생 박형철, 김동광이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박형철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고대에 입학한 첫해, 라이벌 연세대와 정기전에서 30점을 넣으며 일약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신동파 선수와 같은 휘문고 출신으로 후계자가 나타났다고 언론에서 떠들어 댔다. 실업팀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재능이 아까운 선수로 기억된다. 김동광은 인천 송도고를 졸업한 직계 후배다. 전규삼 선생님의 제자다. 고대 입학할 때는 체구도 작고 주목받지 못했다. 그 후 신장이 커지고 힘이 붙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국가대표가 되었다. 힘이 넘치고 돌파력이 좋아 나와 손발이 잘 맞았다. 김 선수는 혼혈아지만 전혀 기죽지 않았고, 잘생긴 외모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

농구의 나라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다짐하며 착실히 준비했다. 이란까지 다녀오는 강행군이 마음에 걸렸다. 아시아 12개국이 참가했다. 예선 경기, 모두 수월하게 승리했다. 전승을 거두었다. 일본에도 23점 차로 이겼다. 내가 32점을 넣어 최고 득점자가 되었다. 필리핀에서 라는 이름으로 매스컴의 호평도 받았다. 대회가 끝난 후 나를 MVP로 소개하기도 했고, 아시아 베스트 5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이 무패로 결승에서 맞붙었다. 결승 3일 전 골 게터 신동파씨가 기관지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악재였다. 매스컴의 취재 경쟁에 불이 붙었다. 결승전에 출전할 것이냐를 놓고 해석이 엇갈렸다. 필리핀의 유명 영화배우인 마리오 몬테네그로가족이 병실을 지켰다. 신 선수의 열렬한 팬이다. 신 선수는 필리핀전에 당당한 모습으로 출전했다. 전반전은 근소하게 우리가 리드했는데, 경기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칠흑 같은 체육관에서 10분을 기다렸다. 리듬이 깨졌다. 관중이 질러대는 함성은 우리를 더욱 위축시켰다. 경기는 리듬이 중요하고 상승세 유지가 승패를 가르는 것인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기세는 무서웠다. 관중응원의 힘을 얻어 더욱 거칠게 나왔다. 안쪽에 들어갔다 나오면 세 번 가격을 당한다. 발을 걸어 넘어지게도 한다.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공격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심판도 못 본 척 외면한다. 최종 스코어 78:90, 막판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2위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농구 괴롭혔던 수비전문선수

미국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은 농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라다. 그만큼 농구 인구가 많고 저변이 넓다. 농구를 잘하면 상원의원도 할 수 있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공터에 농구대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농구를 즐긴다.

또한, 전문 수비선수를 발굴하고 키워낸다. 김영기, 신동파를 전담했던 오캄포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우승했던 69, 70년에는 은퇴하고 없었다. 67년 서울 대회에서 오캄포는 신동파를 철저하게 막았다. 결국, 홈에서 우리나라는 패했다. 오캄포는 거칠기도 하지만, 야비한 행동도 거침없이 한다. 심판 모르게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고, 붙들고 가격하고 팬티를 잡아당기기도 한다. 상대방 성질을 돋운다. 화를 내면 슛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수비수가 이기는 것이다.

71년 일본대회에는 수비선수로프레디 웹이 등장했다. 무척 빠른 선수였다. 몸이 가볍고 빨라서 소리 없이 다가와서 가로챈다. 신동파 전담 수비수였다. 그 대회에서 우리는 필리핀에 8점 차로 패했다. 마닐라 대회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그 후 그는 자워르스키와 함께 상원의원까지 했다. 23명뿐인 상원의원은 막강한 권한과 명예를 가지고 있고, 지역구 투표로 선출된다. 7명의 경호원을 두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필리핀이 부럽다.

 

사진 |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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