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극한직업으로서의 농구감독, 그리고 심판

허진석 기자 / 기사승인 : 2021-01-05 08: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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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차의 패배. 그것도 역전패다. 한때 21점까지 앞섰지만 결국 따라잡혔고, 끝내 뒤집어졌다. 패배의 쓰라림이 얼마나 클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니, 느낄 수 있다. 나도 18년 전에, 눈이 무릎까지 내린 겨울에 치른 원정경기에서 대역전패를 한 적이 있다. (‘나’라고 해서는 안 되며 ‘우리 팀’이라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전반까지 20점 이상 줄곧 앞섰지만 후반에 따라잡혔고, 결국 졌다. 나는 불펜이라는, 독일 3부 리그에 속한 낯선 팀에 참담한 패배를 당한 다음 기자회견을 기다리며 적막한 체육관에서 느낀 아픔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 고통마저 달콤하게 느껴질 때가 없지는 않다. 농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으므로. 또한 나의 기억은 그때 우리 팀의 패배를 낭만적으로 재생하고 있다. 나는 직업 코치가 아니었고, 성적에 따라 내 신분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돌아와야 할 편집국이 있었다. 짧은 권유도 있었다. “이봐. 자네는 좋은 사람이고, 우리 모두 자네를 좋아해. 선수들도 좋아하니까, 남아서 일하는 게 어때?” 기뻤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 이런 경험의 소유자이므로, 프로 리그 감독의 패배에 공감한다는 서술이 얼마나 무례하고 사실과 동떨어졌는지 알 수 있으리라.

아무튼 유도훈 감독은 항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해야 마땅한 그 일을 아주 품위 있게 해냈다. (요즘에는 경기 중에 코트에 걸어 들어가 관중이나 농구 팬, 시청자 -이들은 모두 상업 농구의 고객들이다-의 불쾌감에는 아랑곳없이 심판을 붙들고 언성을 높이는 코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 만으로도 우리 농구 문화의 발전이 눈에 보인다.) 경기가 끝난 다음 인터넷으로 읽은 여러 기사를 종합하니 유도훈 감독의 항의가 정당함을 알겠다. 그리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그의 방식을 통해 인품을 확인했다. 그는 정말 큰 감독이다. 코트에는 큰 감독, 작은 감독, 큰 코치, 작은 코치가 있는데 이 구분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따로 하겠다.

나는 나이 많은 기자가 되어갈수록, 그리고 데스크가 되었을 때 심판(진)을 비판하는 기사는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자들에게도 견문발검(見蚊拔劍)하지 않기를 주문했다. 사실 심판부는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약한 집단에 속한다. 모질게 두들겨도 심하게 반항하지 않는(못하는) 취재원이 심판들이다. 경기 단체를 두들기면 갈등이 따르지만 그곳에서도 심판을 보호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경기 단체는 대개 심판을 벌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그럼으로써 미디어를 달래려 한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심판은 기자들에게 비교적 ‘안전한 사냥감’에 속한다.

기자는 대부분 꼼짝 못할 근거를 가지고 심판을 비판한다. 경기가 끝난 다음, 동영상 자료 등을 뒤져 찾아내면 당할 재간이 없다. 이번에도 “느린 그림을 돌려보면 ㄹ아무개가 오른팔로 ㄱ아무개의 오른팔을 치는 장면이 명확하게 나온다.”는 식의 기사가 보인다. 심판이 어찌 당해내겠는가. 더구나 머리 좋고 논리적인데다 잘 훈련된 종목 기자들을. 하지만 나는 경기 현장에서 대번에 “오심!” 하고 단정할 수 있는 기자는 생각보다 적으리라고 생각한다. 기자의 전문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자석과 경기장의 거리가 워낙 멀고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심판들은 해당 종목의 전문가로서, 선수로 뛴 경험도 있다. 그래도 숨이 턱에 찬(심판들도 경기를 할 때 뛰어다닌다. 그래서 너무 늙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가운데 높은 곳, 가려진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을 지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감독이나 코치 입장에서 사이드라인 바깥에 선 채 경기장을 들여다보면 긴장한 가운데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땀이 흐르고 어떤 장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사람에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본능이 있다. 일정한 시간대에, 일정한 장면이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크게 보일 때도 있다. 여기 감정을 더하면 마침내, 불이 붙는다.

기자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추상과도 같은 비판’이 있다. 그러나 ‘건전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고, 그런 경우에라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자는 힘이 세다. 그들의 비판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소소한 잘못에 매를 들면 시끄러운 훈수꾼이 되기 쉽고, 우악스럽게 몽둥이를 휘두르면 폭군이 된다. 기자의 관용이 불의를 정당화할 수도 있기에 무조건 침묵하거나 인내만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어려운 직업이다. 내가 다시 현장에 나가 축구나 농구 경기를 취재한다면 양쪽을 모두 경계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경계할 것임은 물론이다.

경기를 할 때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나는 승부의 갈림길이 된 장면에서, 동료의 슛이 림을 때릴 때 리바운드하기 위해 날아오른 모비스의 37번 선수를 칭찬하고 싶다. 그 한 순간이 그의 소속 팀에 승리할 자격을 더해 주었다. 오심도 승부를 가른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점(!) 차의 승부가 아니었는가. ‘흐름을 바꾼 오심’ 같은 표현은 매우 심오하고 멋지지만 내 생각에 기자가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문장이다. 애매하면서도 단정적이어서 독성이 강하다. 또한 유능한 감독이라면 그런 변수도 이겨내야 한다. 감독은 벼랑 끝에 까치발로 서서 40분을 인내해야 하는 직업이다.

감독이 (특히 경기 중에) 심판 판정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데는 여러 의도가 숨어 있다.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부러 심하게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구단의 신임을 잃어 시즌이 끝난 다음 거취에 자신이 없는 감독들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농구장의 분위기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성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심판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제치고 오직 하나를 골라낸다면 ‘이기고자 하는 열정’이다. 승부는 그토록 처절한 것이다.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던져 넣어 자신조차 남지 않을지라도 승리하고자 갈망한다. 전자랜드의 다음 경기를 기대하겠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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