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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K 속공, 오리온 스페이싱, 그리고 국가대표팀
편집부(subradio@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8-06-03 02:41

[점프볼=편집부] ‘런 앤 건(Run and Gun)’은 농구팬을 자극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도 풍전고교를 통해 ‘런 앤 건’ 전술의 빛과 그림자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선수의 본능과 열정을 자극하는 속공 전술.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적’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통적 개념에서 ‘런 앤 건’은 경기를 재밌게 해주지만 한계가 있는 전술로 여겨진다. 논리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속공’은 강력한 빅맨이 없는 ‘언더 독’이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쓰는 극단적 전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는 옛말이다. NBA는 스페이싱으로 대변되는 ‘트랜지션 게임’을 통해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침체를 겪었던 NBA는 스페이싱을 중심으로 하는 ‘업 템포 전술’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매 경기 농구 팬을 흥분시키며, 인기는 나날이 치솟고 있다.

 

KBL 리그도 이런 트렌드에 영향을 받고 있다. 3년 전 챔피언이 된 고양 오리온이 스페이싱 농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데 이어 올 시즌 챔프전을 강타한 서울 SK도 ‘속공 농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 전술은 더 나아가 한국 대표팀의 미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론 ‘이 전술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라는 강력한 변수가 남아있긴 하다. 이 글에서는 ‘트랜지션 게임’이 KBL 리그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한국농구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속공, 여러 의미

 

점프볼 칼럼 주제로 고심하던 며칠 전,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은 “속공을 주제로 한 글은 어떤가요”라고 했다. 3년 전 오리온의 스페이싱 농구와 스몰라인업, 올 시즌 SK의 업 템포에 의한 우승. 이런 팀 컬러가 ‘한국 남자대표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했던 필자에게는 매우 적합한 주제였다.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준비했다.


일단 용어 정리부터 하자.

 

속공, 패스트 브레이크, 2차 속공(세컨드 브레이크), 얼리 오펜스, 트랜지션 게임, 업 템포 농구, 스페이싱 & 스몰 라인업.

 

각각의 개념들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일단 속공은 최대한 빨리 공격을 하는 전술이다. 주목적은 2가지다. 아웃 넘버(공격수가 수비수보다 많은 것)를 만들고, 수비 대형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좀 더 공격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패스트 브레이크(fast break)=속공이다. 2차 속공(second break)는 1차 속공이 실패했을 때, 주로 빅맨이 중앙을 쇄도해 골밑 슛을 노리는 두 번째 속공이다. 현대 개념에서는 여러 2차 속공 전술이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살펴보겠다.

 

얼리 오펜스는(early offense)는 빠른 공격을 의미한다. 하지만 속공과 2차 속공과는 좀 다르다. 빠르게 공격하면, 그만큼 수비수가 자신의 공격자를 찾기 힘들어진다. 이런 빈틈을 노리고자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공격 전술이다.

트랜지션 게임은 속공과 2차 속공, 얼리 오펜스를 통칭하는 리드미컬한 공격 전개 양식을 의미한다. 업 템포는 템포를 올린다는 뜻이다. 즉, 트랜지션 게임과 일맥상통한다.

 

스페이싱 & 스몰 라인업은 트랜지션 게임을 하기 위한 선수 구성 조건, 전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론 최근에는 ‘달리는 빅맨’이 워낙 많지만, 빠른 템포를 위해서는 내외곽 공간을 넓게 쓰고, 골밑을 중심으로 하는 빅맨보다는 기동력 있는 포워드를 기용한다. 스트레치 4(중거리슛을 갖춘 빅맨. 외곽으로 나와서 3점슛을 던지고, 골밑의 돌파 공간을 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역시 스페이싱의 개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안 높이의 절대적 약점을 메우기 위해서 쓰던 트랜지션 전술이, 이젠 현대농구의 대세가 되고 있다. 우승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도 여겨진다. 여기에는 외곽슛(3점)의 정확도 향상과 수비 발전이라는 시대적 변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속공의 전술들

 

일단 속공을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은 매우 많다. 속공의 시발점은 리바운드다. 모든 선수들이 리바운드에 가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두 번째, 5명의 선수가 모두 잘 달려야 한다. 체력적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전통적 개념의 속공 전술은 삼성 이상민 감독의 말을 빌려 보았다.

 

“일단 코트를 삼등분합니다. 여기에는 각 포지션별 길이 있습니다. 양쪽 사이드는 슈터들의 길입니다. 가운데는 포인트가드가 지나가는 길입니다. 단, 세컨드 브레이크를 위해 센터도 지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리해 보자. 리바운드에 의한 아웃렛 패스. 그리고 포인트가드가 빠르게 치고 간다. 양쪽 사이드에 슈터들이 달린다. 이후, 사이드의 슈터들은 V-컷(골밑으로 잘라 들어오는 V자 모양의 움직임)을 통해 손쉬운 골밑 슛을 노린다. 수비수에 의해 저지됐을 때, 뒤따라 들어오는 빅맨에게 연결, 골밑 슛을 노린다. 2차 속공이다.

 

최근 가장 많이 쓰는 속공 전술은 ‘2아웃 브레이크’다. 포인트가드(볼 핸들러)가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골밑을 노린 뒤, 여의치 않으면 양쪽 코너에 빠져 있는 2명의 슈터에게 연결, 3점을 노린다. 이후 좀 더 확실한 찬스를 위해서 뒤따라 들어오는 빅맨에게 연결해 골밑슛을 노릴 수 있다.

 

볼 핸들러가 중앙이 아닌 사이드에서 치고 들어간 뒤 반대쪽 찬스나 들어오는 팀동료에게 연결하는 ‘사이드라인 브레이크’, 볼 핸들러가 골밑에 침투하지 않고 외곽에서 쇄도하는 두 명의 빅맨에게 패스를 연결하는(슈터들은 외곽으로 재빠르게 동시에 빠진다) ‘1아웃 브레이크’도 있다. 선수 구성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순간적 판단에 의해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속공 전술이다. 예를 들어 기동력이 좋은 슈터 2명이 동시에 뛸 수 있고, 볼 핸들러의 킥아웃 패스가 뛰어나다면 ‘2아웃 브레이크’, 장신 포워드나 빅맨의 기동력이 훌륭하다면 ‘사이드라인 브레이크’나 ‘1아웃 브레이크’를 쓸 수 있다. 물론, 사전 연습은 필수다.

 

 

 

오리온과 SK의 포워드 농구

 

속공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을 따져보자. 달리는 빅맨이 많지 않은 국내 농구 현실상, 포워드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모두 빠르게 달려야 한다.

 

또 하나, 기본적으로 템포를 끌어올린 업 템포의 농구, 트랜지션 게임을 해야 한다.

 

이 점에서 2년 전 오리온과 올 시즌 SK 농구는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선수 구성 자체가 매우 유니크하다.

 

오리온은 당시 KCC를 챔프전 파트너로 만났다. 극과 극의 팀 컬러를 가진 두 팀이 만났다.

 

하승진과 허버트 힐로 대표되는 높이에, 안드레 에밋이라는 절대적 에이스가 있었던 KCC. 반면 정통센터는 없지만, 헤인즈와 이승현, 김동욱, 최진수, 허일영, 문태종 등 올스타급 포워드들이 즐비했던 오리온은 가드 조 잭슨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오리온은 템포를 높였고, KCC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SK를 보자. 플레이오프에서 문경은 감독이 계속 강조했던 말이 ‘5대4 농구’였다. 템포를 빠르게 하면서 아웃 넘버를 만들고, 거기에 속공과 얼리 오펜스를 하자는 뜻이었다. SK 역시 김민수와 최부경, 최준용, 화이트, 안영준 등 풍부한 포워드진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센터 제임스 메이스도 사실상 포워드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KCC와 DB를 연파했다. 김선형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즉, 트랜지션 게임을 바탕으로 한 두 팀의 컬러가 가장 중요한 챔프전에서도 효율성을 십분 발휘했다. 여기에 이승현과 장재석(이상 오리온) 최부경, 김민수, 최준용(이상 SK) 등을 주축으로 다양한 수비 전술(스몰 라인업을 구축하면, 활동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비에서 다양한 옵션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다)로 아킬레스건인 골밑 수비 약점을 최소화했다. KBL 역시 스몰 라인업에 의한 스페이싱 농구의 효율성을 보여줬다. 즉, 속공으로 대표되는 ‘속도전’이 큰 무대에서 어떻게 경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됐다.

 

 

 

속도와 대표팀의 방향성

 

높이와 빅맨 부재는 그동안 한국 대표팀의 고질적 문제였다. 아시아권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라건아(리카르도 라틀리프)가 귀화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뉴질랜드 전에서 단적인 예를 보여줬다. 라건아는 골밑에서 고립됐다. 좋은 패스워크로 외곽포를 뿜어대던 한국 대표팀은 오히려 라건아의 투입으로 농구가 단순하게 변했다.

 

즉, 대표팀의 고질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아킬레스건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 가장 큰 약점은 정통센터가 아닌, 대표팀의 방향성이다. 견고한 방향성을 이끌 지도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팀이 아시아 3류로 전락했던 2004년부터 전창진→김남기→허재→이상범→유재학→김동광→허재순으로 사령탑을 맡았다. 전 감독 시절만해도 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너무 미비했다. 당시 국가대표팀에 가지 않으려는 선수와 구단 이기주의가 난무했고, 베이스캠프 없이 모텔을 전전한 탓에 대표팀 자체가 최강 전력을 꾸릴 수 없었다. 김남기 감독은 전임 감독이었지만 오리온으로 ‘이직’했다. 2009년 텐진에서 허재 감독은 객관적 전력 열세와 색깔 없는 농구로 참사를 당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지역예선전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상범 감독은 선전했다. 2패를 당했지만, NBA리거 알 호포드가 뛴 도미니카 공화국에 분패했다. 팀 컬러를 짜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유재학 감독은 대표팀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2013년 마닐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농구월드컵에 진출했다. 이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대표팀은 강한 압박과 다양한 트랩 디펜스로 승부처를 헤쳐나갔다. 하지만, 김동광 감독은 다시 창사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비효율적 전술과 용병술로 6위에 그쳤다.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도 원점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허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좋은 3점포와 패싱게임으로 ‘KOR든 스테이트’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이후, 경기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아시아컵 대회에는 경쟁팀의 전력 자체가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필리핀, 이란이 그랬다.

 

그러나 FIBA 월드컵 예선에서 만난 상대는 전과 달랐다. 11월에 만난 중국, 2월에 재회한 뉴질랜드는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화려한 외곽은 있었지만, 이를 살릴 확실한 색깔이 없었다.

 

골밑의 정통센터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강한 활동력과 빠른 템포, 거기에 따른 공간 활용이 여전히 미숙했다. 게다가 스몰 라인업을 가동하려면, 골밑 수비에 대한 보완과 스위치 디펜스의 활용방안(기동력 있는 장신 포워드를 쓰기 때문에 외곽의 스위치 디펜스 활용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이 꼭 필요하다. 11월 뉴질랜드 전에서는 이것이 제법 잘 통했다. 이승현과 오세근 덕분이었다. 골밑에서 버티는 힘이 있고, 하이-로 게임이 가능한 BQ가 좋은 선수들이다. 최준용도 집중력이 좋았다.

 

라틀리프에 대한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외곽의 견고한 색깔을 입힌 뒤 강력한 지원 사격을 해줘야 한다. 대표팀은 이 부분이 부족하다. 국가대표팀은 오리온과 SK로부터 속도전과 스페이싱에 대한 ‘영감’을 얻어야 한다. 비록 오세근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지만, 우리 대표팀에는 여전히 이를 수행할 인적 자원이 있다. 부상서 돌아올 이승현과 김종규, 그 외 최준용, 이대성, 이정현, 최진수 등이 있다. 안영준과 양홍석, 송교창, 김민수 등도 시험해 볼 수 있는 카드다.
 
# 사진_ 유용우, 신승규, 홍기웅 기자
# 본 글은 「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의 기고로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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